옻칠과 자개
옻칠의 우수성은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한 요즘에조차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경남 다호리 고분 (BC 1세기경)에서는 옻칠된 그릇이 나왔는데, 그 그릇 속에서 반건조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밤이 2000여년만에 발견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옻칠의 효과는 내구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부패도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700여년 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잘 보존돼 오고있는 팔만대장경, 그 세월동안 또 얼마나 여러번 인쇄의 과정을 거쳤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대장경판에 옻칠이 되어있다는 점이다.
옻의 특성중에서 제일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방부성이다. 수천여년을 땅속에 묻혀 있던 관이 썩지 않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페인트나 락카 등, 현대의 도료들은 피도체의 표면에 막을 형성하여 보호하지만, 옻은 나무의 세포까지 스며들어 오래도록 모양을 보호한다. 또한 물에 대하여는, 70년대 신안 해저에서 인양된 많은 유물들 중에 몇 점의 칠기 제품들이 있었다. 도기류와는 달리 무게가 가벼우므로 조류나 다른 어떤 충격으로 파손되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었으나 수백년을 바다 속에 있었으면서도 본래의 형체를 지니고 있었음은 놀랄만한 일이다.
그 다음으로, 내열성을 들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검은색은 열을 받기 쉽지만 옻은 그렇지 않다. 옻칠한 밥상을 쓸 수 있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옻칠한 젓가락을 즐겨 쓰는데, 이는 열에 강한 옻의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옻칠은 열을 흡수하지않고 내뿜는 특성이 있는데, 미쓰비시 엘리베이터 회사에서 한국인 옻칠 전문가 전용복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자개로 장식하고 옻칠한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섭씨 700도 정도의 열기가 발생하는 화재가 나도, 안에 있는 사람은 안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도료는 습기가 적고 서늘한 곳에서 잘 건조되지만 옻은 그렇지 않다. 70퍼센트 정도의 습도와 섭씨 27도 정도의 상태에서 가장 잘 마른다. 이것은 장마철의 후덥지근한 날씨의 상태이며 이 때가 옻을 말리는데는 최적의 시기이다. 방부성, 방수성, 방열성, 살균성 등 - 옻은 아직까지 그 어떤 화학적인 도료로도 그 장점을 모두 갖추기 어려운 천연의 최우수 도료인 것이다.
옻칠로 서양유화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색감을 표현할 수 있는데, 유화의 수명은 길어야 50년인데 비해 옻칠은 5000년 이상 거의 영구적이다. 악기에 함부로 도료를 칠하면 오히려 음색을 떨어뜨리며, 피아노 품질보증기간이 10년정도밖에 안되는 이유도 아무리 훌륭한 화학도료를 칠한 음향판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옻칠을 한 악기는 오히려 음색을 더 신비롭게 해주고 수명도 거의 영구적으로 만들어 주는데, 그 이유는 옻칠은 나무의 결에 속속들이 스며드는 자연친화적인 도료이기 때문이다. 옻나무에 흠집을 내서 땀나듯 조금씩 솟는 즙의 작은 방울들을 긁어 모아 옻칠원료를 채취하는데, 맥주 반컵 정도를 모으는데 약 3주가 소요된다. 한번 즙을 채취한 나무는 15년이상 기다려야 다시 채취가 가능해진다. 완성된 옻칠에서는 살구향이 난다. 고대 이집트 미이라의 붕대에는 옻칠이 되어있다. 동경의 어느 초호화 중국집에는 17명이 식사를 할 수있는 자개 옻칠로 장식되어 있는 원형 테이블이 있는데 제작비용이 30억원 정도나 들었는데, 전용복 등 한국장인들의 작품이다. 미국에서는 벤츠 승용차에도 옻칠로 장식한 것이 있고, 옻칠한 자개 뉴퐁라이터가 200만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금속위에 직접 옻칠을 할 수 있었던 우리선조들의 뛰어난 기술에 토대를 두고 있다. 옻나무가 없는 곳에서 자란 사슴의 뿔은 녹용으로서 약효가 없다고 전해진다. 옻닭은 우리 건강에 도움을 주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간에 무리가 가므로 주의해야 한다.
`나전칠기`의 나(螺)자는 `소라`라는 뜻이고, 칠(漆)자는 `옻`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나전칠기를 순수한 우리말로 풀이하면 옻칠한 그릇에 소라껍질을 다듬어서 붙였다는 뜻이 된다. 한편, `자개`라는 말은 전복껍데기의 안쪽 바닥을 일컫는 말인데, 오늘날 나전칠기와 같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요즘에는 극도로 세밀한 세공이 가능한 첨단기술로 조개껍질을 다듬지만, 수백년전 당시에는 단지 작은 바늘을 사용하여 수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고도의 집중력으로 자르고 다듬어 나갔다 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어느 시인은 "하늘에는 별, 땅에는 꽃, 바다에는 진주"라고 노래하였다. 그 진주를 품은 조개를 진주패 (Mother of Pearl)라고 하는데, 우리 선조들은 옻칠한 표면에 조개껍질을 다듬어 붙이면 옻의 검은 색과 조화를 이루어 우아한 빛을 발하는 것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나전칠기에 사용하는 조개는, 남해 통영의 자연산 전복패를 `색패`라 하여 제일로 친다. 이 곳의 조개는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며 높은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물 속에서 자라는 특수한 환경때문에, 조개 안쪽 표면의 색이 아주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모양 또한 물결치듯 아름다운 굴절이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남다른 시련속에서 자란 조개가 최고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우리가 한번 더 음미해 볼 만한 일이다. (EBS TV 세상보기 2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