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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빅토리앙 사르두의 희곡 <라 토스카>
대본 주세페 자코사 및 루이지 일리카
초연 1900년 로마 콘스탄치 극장
배경 1800년 6월 로마
<2009.4월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공연 / 125분 / 한글자막>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파올로 카리냐니 지휘 / 로버트 카슨 연출
플로리아 토스카........오페라 가수..........................................에밀리 매기(소프라노)
마리오 카바라도시.....화가. 토스카의 애인...............................요나스 카우프만(테너)
스카르피아 남작........로마 경찰의 수뇌...................................토마스 햄슨(바리톤)
성당지기..................성 안드레아 엘라 발레 성당의 성당지기.....주제페 스코르신(베이스)
별들은 반짝이고 대지는 향기로운데
저 화원 문을 열고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났네.
향기로운 그녀가 다가 왔네. 그리고 내 품에 안겼네
아, 달콤한 키스와 나른한 포옹
난 떨면서 그녀의 베일을 벗겼네.
사랑에 대한 나의 꿈은 영원히 사라졌네.
그 순간은 날아가고 난 절망 속에 죽는구나!
이토록 살고 싶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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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지은 번역>
1막 성 안드레아 성당 내부
성 안젤로 성에서 탈주한 정치범 케사르 안젤로티가 성당에 있는 누이 아타반티 부인의 기도실로 몰래 숨어든다. 성당지기가 들어와 화가 마리오 카바라도시가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자 의아하게 여긴다. 카바라도시가 도착해 마리아 막달레나의 초상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작품의 모델은 최근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목격한 파란 눈동자와 금발머리의 아타반티 후작부인이다. 카바라도시는 흑발의 미녀이자 자신의 연인, 그리고 당대 최고의 프리마 돈나인 플로리아 토스카와 금발의 막달레나를 비교한다.
성당지기가 떠나자 교회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안젤로티가 숨었던 장소에서 나온다. 하지만 카바라도시임을 알고는 안도한다. 카바라도시는 그를 도와주기로 한다. 갑자기 토스카의 음성이 들리자 안젤로티는 황급히 숨는다. 질투로가득 찬 디바, 토스카는 카바라도시가 다른 여인과 있었다고 믿는다. 안젤로티의 신변을 염려한 카바라도시는 그녀의 의심을 잠재우며,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한다. 떠나려던 찰나, 토스카는 그림 속의 여인이 아타반티 후작 부인임을 알아채고 질투에 휩싸인다. 카바라도시는 모델이 단지 기도하러 온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명하고, 둘은 헤어진다. 다시 나타난 안젤로티에게 카바라도시는 근처에 있는 자신의 별장으로 몸을 피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안젤로티의 탈옥을 알리는 대포 소리가 들리고 둘은 함께 달아난다.
성당지기가 성가대원들과 함께 돌아온다. 나폴레옹이 아렝코 지역에서 참패했다는 방금 들려온 소식에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날 저녁 열리는 승리 기념식에서 토스카를 독창자로 성가대가 새로운 칸타타를 노래할 예정이다. 갑자기 안제로티를 추적하던 경찰청장 스카르피아와 그의 부하 스폴레타가 성당으로 들이닥친다. 성당지기 조사를 마친 후, 스카르피아는 공화당 지지자로 의심되는 카바라도시가 탈주범의 도피를 도와주었다 짐작한다.
토스카가 카바라도시에게 저녁 때 만나지 못하겠단 말을 하러 돌아오자, 평소 그녀를 마음에 품고 있던 스카르피아는 질투를 유발해 안젤로티의 은신처를 알아낼 계략을 세운다. 그는 아타반티 가문의 문장이 박힌 부채를 건네고, 이내 격렬한 질투에 사로잡힌 토스카는 연인을 만나고자 뛰쳐나간다. 스카르피아의 부하가 그녀를 미행한다. 경철청장은 카바라도시를 처형장에 보내고 토스카를 차지하려는 두 목표를 동시에 실현할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의 속셈에 따라 곧 다가올 일들을 상상하며, 토스카가 때문에 신을 저버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2막 파르네제 궁 스카르피아의 자택
스카르피아는 곧 토스카를 품을 생각에 들떠 있다. 궁의 다른 편, 나폴리 왕비 앞에서 노래 부르고 있는 토스카에게 만나자는 전갈을 보낸다.
스폴레타가 들어와 토스카를 뒤쫓아 카바라도시의 별장에 갔지만 안젤로티를 찾지 못했다고 주저하며 말한다. 곧이어 대신 카바라도시를 잡아아 심문 중이라 보고한다. 카바라도시는 탈주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잡아떼자, 스카르피아는 고문을 명한다. 토스카가 도착하고, 카바라도시는 옆방으로 끌려가기 전 간신히 아무것도 입 밖에 내지 말란 주의를 준다. 교묘하게 스카르피아의 질문을 피해가던 토스카는, 이내 옆방에서 새어 나오는 연인의 비명을 듣고 만다. 괴로움을 못이긴 그녀는 안젤로티의 은신처를 자백한다. 끌려 나온 카바라도시는 토스카의 배신을 강하게 비난한다.
스카르피아의 또 다른 부하 시아로네가 나타나 알려진 것과 달리 마렝고 전투에서 승리한 편은 나폴레옹의 군대란 소식을 전한다. 카바라도시는 스카르피아가 있음에도 기쁨의 탄성을 외치지만 형장으로 끌려가고 만다. 스카르피아와 단 둘이 남겨진 토스카는 연인의 생명을 대가로 금전을 제안하지만, 스카르피아는 본인의 조건을 밝힌다. 바로 토스카의 몸이다. 토스카가 증오할수록 그의 욕망은 더 깊어만 간다. 스카르피아가 주장을 굽히지 않자, 토스카는 결국 연인을 살리고자 제안을 수락한다.
하지만 스카르피아는 카바라도시를 그저 풀어줄 수는 없으니, 거짓 총살이라도 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토스카는 카바라도시와 그녀 앞으로 통행 허가증을 요구한다. 허가증에 서명을 마치고 포옹하러 다가서는 스카르피아를 토스카는 칼로 찔러 살해한다...... 그리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에 자리를 뜬다.
3막 성 안젤로 성채의 성벽
카바라도시가 처형을 기다리고 있다. 토스카의 아름다움과 그들의 사랑을 가슴 저리게 회상하며 연인에게 작별 인사를 쓰는 중이다. 이때 토스카가 달려와 통행 허가증과 스카르피아의 죽음을 알리며 가짜 처형에 대해 설명한다.
집행부대가 전진하고 총성이 울리자, 카바라도시는 쓰러진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토스카는 군인들이 떠나자마자 그에게 달려간다. 허지만 카바라도시의 주검을 발견하곤 스카르피아에게 속았음을 깨닫는다. 스카르피아의 부하가 그녀를 체포하기 위해 당도하지만 이들의 손에 닿기 전, 토스카는 성벽 아래로 몸을 던진다.
=== 프로덕션 노트 === <영상물 내지 해설 / Mari Prackauskas / 박지은 번역>
1900년 1월 4일 로마 코쓰탄찌 극장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를 신호로 오페라의 새로운 세기가 열렸다. 그로부터 백 년을 훌쩍 넘긴 오늘 취리히 오페라하우스에 오르는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서도 스카르피아의 야비한 욕망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며 암울한 전조를 드리운다.
이 작품은 1800년 6월 17일 로마를 배경으로 오페라 가수 플로리아 토스카를 조망한다. 질투가 초래한 치명적 음모의 덫에 걸린 그녀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비극적 캐릭터로 꼽힌다. 빅토리앙 사르두가 명배우 사리 베르나르를 위해 집필한 피비린내나는 역사극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정작 이 희곡은 독자의 뇌리에서 잊혀지고 말았다.
오늘날 <토스카>하면 사람들은 응당 푸치니의 오페라를 떠올린다. 사르두는 당시 작곡 초년생으로 여겼던 푸치니가 <라 보엠>으로 존재를 입증해 보이자 희곡에 대한 권리를 양도한다. 드라마는 열 여덟 시간 동안 실감나게 실존 장소를 배경으로 1막 성 안드레아 성당, 2막 파르네제 궁의 저녁, 3막 동틀 무렵 성 안젤로 성채로 옮겨가며 사건을 전개한다.
줄거리는 추적, 억류, 고문, 강간 미수, 살인, 총살, 그리고 자살로 이어지며 일부 팀미주의자조차 고개를 내저을 정도다. 그러나 나폴리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에게 충성하는 군주제 옹호론자이자 경찰청장 스카르피아가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 아래 공화주의자와 진보주의자를 잔인하게 처형하며 로마 합스부르크 왕궁을 지키기 위해 무자비한 탄압을 가했던 일은 모두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다. 토스카의 연인이자 화가였던 카바라도시도 스카르피아가 박해하던 진보주의자였다. 토스카는 한 때 양을 치며 수녀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천부적인 재능으로 가수가 되지만 종국에 비극적 소용돌이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녀는 스카르피아를 살해하고도 연인의 처형을 막지 못했음을 깨닫곤 스스로 성 안젤로 성벽에서 몸을 던쳐 어두운 심연 속으로 생을 마감한다.
1900년 1월 14일 로마 콘스탄찌 극장 초연 당시 전망은 가히 밝지 않았다. 최종 리허설까지 마스카니, 프란게티, 칠레아를 위시한 푸치니의 경쟁자가 초연을 방해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움베르토 1세를 향한 폭탄 테러 위협도 대중을 동요시켰다. 그날 밤 <토스카> 공연은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평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리와 런던, 북미와 남미에서 무대에 올렸다.
1902년 드레스덴 초연은 "끔찍하고 괴기스런 공포 스토리"란 평을 받았지만 대중은 드라마틱한 이 작품을 오랜 시간 사랑해 왔다. 취리히에는 1908/09년 시즌 프로그램으로 첫 선을 보인 이래 오페라 극장 레퍼토리의 단골로 자리잡았다.
푸치니의 자서전을 충실하게 독일어로 펴낸 디터 쉬클링은 푸치니가 그동안 오페라 무대에 자주 오르긴 했지만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점이 많다고 언급했다. 우선 극장과 대중이 '멜로디의 왕'이란 익숙한 시각을 내려 놓아야 하는데, 푸치니의 오페라는 끊임없이 동일한 역사를 배경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 나면 푸치니의 오페라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의미 있는 인간 신화를 상징하고 있음이 눈에 들어옵니다."
"Come la Tosca in teatro(무대에서 토스카처럼)" - 토스카에게 가짜 처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카바라도시가 읊는 이 대사는 바로 로버트 카르센 감독이 연출할 때 외는 주문이 되었다. 카르센 감독은 푸치니 오페라에 대해 열변을 토했는데, <토스카>야말로 진정한 걸작이라 말한다. 숨막히는 스릴러이자, 극중 스며있는 심리상 성적 긴장감으로 히치콕의 영화를 떠오르게 하며, 극의 모든 요소가 시계 태엽 같은 정밀함으로 얽혀 있다.
극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여주인공 토스카를 묘사하며, 푸치니는 온전히 무대에 삶을 바친 한 여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다. 토스카의 세계관과 인간 관계를 정의하는 기준은 전적으로 무대였다. 마치 그녀 삶을 드라마에서 따온 듯 말이다. 토스카는 계속해서 한번쯤은 연기했던 배역과 시나리오를 불러내는 듯하다. 그녀에게 인생은 오직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만 견딜만했다. 토스카는 실제와 무대 사이에 경계를 긋지 않았기에 외려 매 순간 진실할 수 있었다.
로버트 카르센은 푸치니가 텍스트와 음악을 적재적소에 배치했음을 잘 알고 있다. 이 특징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자유로운 해석의 여지가 얼마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카르센은 어떻게 해야 되풀이되는 비슷한 해석을 피할 수 있을 지 고민했고, 관객이 오페라 가수에 대한 오페라를 보러 극장을 찾는다는 점을 주목했다. 오페라 가수는 관객에게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실로 토스카의 삶은 그 어떤 무대에서보다 극적이다. 토스카가 확고히 말하듯, 가수가 되기 위해선 늘 가수임을 의식해야 한다. 프리마 돈나는 낮이고 밤이고 항상 예술을 위해 산다. 토스카는 실제 삶에서도 오로지 무대와 연관지어 생각하고 배역에 몰두해 있다. 그러나 정작 카르센 감독과 세트/의상 디자이너 안토니 와드에겐 <토스카>가 무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토스카에게 예술이란 바로 종교와 마찬가지였습니다."
<토스카>가 당시 정치 시대상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로버트 카르센은 작품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베르디가 이러한 소재로 작품을 썼다면 어떠했을까 도전적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랬다면 1막 마지막에 환희에 넘치는 <Te Deum 찬미의 노래>는 없었을 것이다. 푸치니는 당시 로마가 스카르피아의 감시 아래 얼마나 심한 고통을 받았는지를 말하기 보단, 극장과 교회가 얼마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비슷하게 무대 연출을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보여준다. 극장은 대중 없이 돌아갈 수 없고, 토스카 역시 팬 없이는 무의미한 존재다. 스카르피아와 카바라도시야말로 그녀의 가장 열렬한 팬이었다. 카르센은 세 주인공이 형성하는 성적-심리적 삼각형을 보여준다. 특히 스카르피아의 사디즘에서 극명히 드러나는 성적 코드를 강조했다. 토스카가 창조해낸 예술은 스카르피아의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강력한 약물이었다. 2막에서 카바라도시가 받는 고문은 실상 토스카를 향한 것이다.
스카르피아는 안젤로티의 은신처를 찾아내기 위해선 토스카를 추궁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본인의 행동을 즐기며, 순전히 재미를 위해 질투와 음모를 조장해 스스로를 이야고(셰익스피어의 희곡 <오델로>의 등장인물)의 화신이라 여기는 인물이다. 사실 스카르피아와 토스카는 둘 다 거의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점에서 비슷하다. 토스카는 비록 스카르피아를 경멸하는 반면 그가 자신을 탐하는 것을 즐기기도 한다. 둘 다 무의식적으로 공격을 가하고 감정에 상처를 내며 상대를 해하려 한다. 서로에게 적수인 디바와 무자비한 압제자는 둘이 마치 피란델로의 희곡에서 작가를 찾아 나선 여섯 명의 등장인물처럼 단지 연극을 하고 있을 뿐이란 걸 안다. 각자 분야의 프로이지만 사실 마음은 수천 번 되풀이해온 이 드라마 말고 다른 것에 감동 받는다. 오로지 카바라도시만 마지막까지 이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여전히 이 모든 사태가 혁명 때문이며, 감정 놀음이 아니라 진심이라 믿는다. 토스카의 가식과 특이함에도 불구하고 있는 그대로의 그녀를 조건없이 사랑한다.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했지만 이 관계의 지배권은 토스카가 쥐고 있다. 연하라 예상되는 연인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또박또박 설명해주는 쪽도 토스카다. 이 작품에 피해자가 있다면 그건 바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 토스카의 드라마에 말려든 카바라도시이다. 3막의 도입부는 그가 느끼는 내면의 외로움을 표현한다.
로버트 카르센에 따르면 토스카는 인생을 무대로 바꾸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인생은 리허설이 아니다. 실패한 일을 되돌릴 기회란 없다. 결국 토스카는 그녀의 열렬한 지지자를 모두 잃는데, 스카르피아는 칼에 찔려 죽고, 카바라도시는 총살당한다. 그녀를 따르는 팬이 없다면 인생은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기에, 토스카는 주어진 출구 중 가장 비극적인 방법, 자살을 선택한다.
그동안 제작되었던 <토스카>는 매번 표현과 의상, 매너에서 드러나는 오랜 전통을 얼마나 잘 살렸는지 꼼꼼이 평가받았다. 백 년 이상 무대에 오르며 맡은 가수가 배역에 자신의 이름을 새킬 만큼 디바의 오페라로 자리잡았고, 그 중 대표로 단연 마리아 칼라스를 꼽을 수 있다. 마리아 칼라스와 티토 곱비가 노래한 2막은 많은 오페라 팬들이 <토스카>를 볼 때면 머리에 떠올릴 만큼 전설로 남았다. 디바를 향한 추종은 칼라스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디자인은 그 결과 토스카를 마리아 칼라스와 똑같이 묘사하진 않으나 50년대 스타일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시간이 지나며 오페라 무대는 서서히 간략해졌다. 무대 디자인은 최소한으로 줄고, 연주자와 관객만을 남겨 놓았다.
로버트 카르센은 <토스카>가 감독에게 욕심나는 작품이라 말한다. 가사나 음악이나 양쪽 모두 '군더더기'가 없다. 무엇보다 두 주인공 사이 강도 높은 커뮤니케이션은 연출자를 극한까지 시험하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카르센은 이번 취리히 공연 출연진을 뜻밖의 반가운 선물이라 여긴다. 여주인공은 이번에 토스카역을 데뷔하는 에밀리 마지가, 카바라도시는 최근 <카르멘>의 돈 호세 역할을 맡아 취리히 관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던 요나스 카우프만이 노래했다. 토마스 햄슨도 오랜 기대에 부응해 새 배역인 스카르피아에 도전했다. 파올로 카리냐니가 지휘봉을 잡고 취리히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 작품해설 === <2010년 8월 8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푸치니, 토스카
강렬한 사실주의 스타일과 라이트모티프 사용 등 현대적 기법이 돋보이는 오페라
1898년 작곡, 1900년 1월 14일 로마에서 초연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의 대표 아리아입니다. 이 노래 제목을 보면 이 오페라도 상당히 낭만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 것 같지요. 하지만 이 오페라는 비밀경찰, 고문, 살인 같은 살벌한 소재로 이루어집니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역시 가장 끔찍하고 절망적인 순간에 여주인공이 외치는 탄식과 절규의 노래랍니다.
1798년 나폴레옹 혁명군이 이탈리아와의 첫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로마 교황청의 위신은 완전히 추락했습니다. 교황은 프랑스로 끌려가 이듬해 세상을 떠났고, 로마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이곳을 공화국으로 선포합니다. 그러나 1799년에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떠나자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연합군은 로마를 공격하지요. 나폴레옹 군대에 밀려 시칠리아 섬까지 쫓겨갔던 나폴리의 전제군주 페르디난트 4세와 왕비 마리아 카롤리나는 이 해 9월에 군대를 이끌고 로마까지 진격해 프랑스 군대를 몰아내고 로마 공화국을 무너뜨립니다.
다시 권력을 잡은 군주제 옹호론자들이 공화정을 지지해온 자유주의자들과 계몽사상가들에게 보복과 박해를 가하자, 이탈리아 자유주의자들은 지하조직을 만들어 투쟁을 전개합니다. 오페라 [토스카]는 이처럼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로마를 배경으로 해 1800년 6월 17일에서 다음날 새벽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그려낸 사실주의 오페라입니다. 이 오페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가공의 인물이지만, 이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은 그 시대 로마가 처했던 상황 그대로입니다. 극중에서도 오페라 가수인 여주인공 토스카(토스카)를 사이에 두고, 자유주의자인 화가 카바라도시(테너)와 전제군주에게 충성하는 경찰청장 스카르피아(바리톤)가 대결을 펼칩니다. 프랑스 작가 빅토리앙 사르두(Victorien Sardou, 1831-1908)가 명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쓴 희곡 [토스카]를 토대로 이탈리아의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가 대본을 썼습니다.
현대적인 화성 속 명곡의 향연
탐미적인 호색한 스카르피아는 국가의 주요 행사 때마다 독창자로 무대에 서는 오페라 가수 토스카의 미모에 반해 어떻게든 그녀를 손에 넣으려 기회를 엿봅니다. 그러나 토스카는 카바라도시와 열애중. 이 사실을 알게 된 스카르피아는 연적 카바라도시를 정치범으로 엮어 교수대로 보내고 토스카를 차지할 계략을 꾸밉니다. 예술가답게 열정과 질투의 화신인 토스카는 간교한 스카르피아의 덫에 걸려 카바라도시와 다른 귀족 부인과의 관계를 잠시 의심하고, 탈옥한 동지(공화국 집정관 안젤로티)를 자기 별장에 숨겨주었다가 체포된 카바라도시는 스카르피아 집무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연인의 목숨을 구하려는 토스카는 평소 뇌물을 밝히기로 유명한 스카르피아에게 돈을 제시하지만,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의 몸을 요구합니다. 연인은 살려야겠고, 뱀 같은 경찰청장에게 몸을 허락하는 일은 너무 끔찍하고... 그런 극한의 심리적 고통과 갈등 속에서 터져나오는 독백이 바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랍니다. ‘예술과 사랑을 위해 살았을 뿐 누구에게도 몹쓸 짓을 한 적이 없는 저에게 왜 이런 가혹한 벌을 내리시나요?’ 하며 신을 원망하는 노래죠.
이 오페라에는 이 아리아 말고도 테너의 멋진 아리아가 두 곡 더 나옵니다. 첫 곡은 성당에 기도하러 온 후작 부인의 모습을 모델로 삼아 마리아 막달레나를 그리던 카바라도시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연인 토스카의 아름다움과 비교하며 부르는 ‘오묘한 조화’, 그리고 두 번째 아리아는 총살형을 앞두고 토스카와의 즐거웠던 날들을 가슴 저리게 회상하며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입니다. 갈등하던 토스카는 스카르피아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카바라도시의 석방 약속을 얻어냅니다. 그리고 로마를 빠져나갈 통행증까지 받은 다음 토스카는 식탁에 놓여있던 칼로 스카르피아를 찔러 죽이죠.
죽음을 기다리던 카바라도시에게 달려온 토스카는 ‘거짓처형’을 알려주지만, 총성이 울린 후 그는 주검으로 돌아옵니다. 교활한 스카르피아는 가짜로 처형한다고 약속하고는 카바라도시를 진짜로 처형하게 했던 것입니다. 스카르피아의 시신을 발견한 부하들이 달려와 체포하려 하자 토스카는 ‘스카르피아, 하느님 앞에서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 안젤로 성벽 꼭대기에서 몸을 던집니다.
드라마틱한 연기 펼치다 총상에 골절상
1900년 1월 14일 로마에서 초연된 [토스카]는 [마농 레스코](1893)나 [라 보엠](1896) 같은 푸치니의 전작들보다 더 20세기 음악에 접근한 현대적 음악세계를 펼쳐보였습니다. 각 등장인물에게는 바그너의 음악극에서처럼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시도동기, 시도동기 또는 유도동기. 특정한 인물이나 상황이 다시 등장할 때 그 인물이나 상황에 주어진 기본 모티프의 멜로디와 화성을 되풀이해 청중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방법. 그 멜로디를 들으면 조건반사작용처럼 특정 등장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현대의 영화나 TV드라마에서는 이런 라이트모티프를 ‘철수의 테마’나 ‘영희의 테마’처럼 주인공의 이름을 붙여 사용한다)가 주어졌습니다. 토스카나 카바라도시, 스카르피아 뿐만 아니라 조역인 안젤로티 또는 성당지기까지도 자신을 나타내는 음악적 모티프를 갖게 된 것입니다. 격정적인 극의 내용에 어울리는 어두운 선율과 자극적인 화성도 [라 보엠]의 서정성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푸치니는 탁월한 무대감각을 지닌 작곡가였고, 관객이 오페라극장에서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파리에서 유행하던 공포-괴기극 ‘그랑 기뇰(Grand Guignol, 19세기 말 파리에서 유행한 공포-괴기극을 이르는 말. 살인, 고문, 자살, 엽기행각 등을 소재로 삼고 무시무시한 무대장치와 조명을 사용해 크게 인기를 끌었다. ‘어른을 위한 구경거리’라는 뜻이며 20세기 들어 영국과 이탈리아로도 전파되었다)’ 기법을 [토스카]에 도입했고, 불협화음을 자주 사용해 극 전체의 불안과 공포를 더욱 생생하게 느끼도록 했습니다. 1막의 성 안드레아 성당, 2막의 파르네제 궁, 3막의 성 안젤로 성채 등 로마의 명소이자 역사적인 장소들을 무대로 삼았다는 점도 관객의 흥미를 끄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시간적 배경뿐만 아니라 장소까지 극적인 실감을 더했던 것입니다. 3막에서 로마의 새벽이 열릴 때 들려오는 호른의 음색이나 양치기의 서글픈 노랫가락, 성당의 종소리 등은 이런 효과를 더욱 완벽하게 해주었습니다.
[토스카]는 푸치니의 어떤 다른 오페라보다도 주인공들에게 드라마틱한 연기를 요구합니다. 그때문에 극에 지나치게 몰입한 주인공들이 위험에 처하는 일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1965년 런던 코벤트가든 공연 때는 2막 스카르피아의 집무실 책상 위에 있던 촛대에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머리카락에 불이 옮겨붙어, 당시 스카르피아 역을 맡았던 바리톤 티토 고비가 서둘러 불을 꺼야 했습니다. 1920년대에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토스카 역을 노래하던 마리아 예리차는 스카르피아에게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실제로 그의 배에 칼을 꽂아 상처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가장 위험한 장면은 역시 3막의 총살 장면입니다. 장면을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실제로 탄약을 사용하기도 하는데요, 2005년 이탈리아 마체라타 극장에서는 카바라도시 역을 맡은 테너 파비오 아르밀리아토가 공포탄에 다리를 맞아 의사가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고, 공연은 중단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총살을 집행하는 연기자들이 무대 위에서 누구를 쏘아야 하는지 몰라 카바라도시 대신 토스카에게 총을 겨누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 토스카가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연습 때와는 다른 방향으로 뛰어내려 소프라노 가수가 골절상을 입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위험한 만큼 열정이 넘치는 [토스카]는 그때문에 푸치니 오페라 중 [라 보엠] 다음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는 오페라입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토스카-카바라도시-스카르피아 순
[음반] 마리아 칼라스, 주세페 디 스테파노, 티토 고비 등, 빅토르 데 사바타 지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1953년 녹음, EMI
[음반] 레온타인 프라이스, 주세페 디 스테파노, 주세피 타테이 등,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1962년 녹음, Decca
[DVD] 라이나 카바이반스카, 플라시도 도밍고, 셰릴 밀른즈 등, 브루노 바르톨레티 지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암브로시언 합창단, 잔 프랑코 데 보시오 연출, 1976년(영화판), DG
[DVD] 다니엘라 데시, 파비오 아르밀리아토, 루제로 라이몬디 등, 마우리치오 베니니 지휘, 마드리드 왕립극장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누리아 에스페르트 연출, 2004년 마드리드 왕립극장 공연 실황, Opus Ar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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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5월 5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은밀한 조화
푸치니 <토스카>
이 드라마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이탈리아이다. 1796년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서 승리한 후 북이탈리아에는 공화국이 세워진다. 이후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위기에 빠진 틈을 타 다시 오스트리아가 그 땅을 회복하였으나, 1800년 알프스를 넘어온 나폴레옹은 순식간에 잃은 땅을 되찾아 밀라노에 입성한다. 오스트리아는 견디지 못하고 강화조약을 맺는데, [토스카]는 그 동안에 일어난 비극이다.
유명 여배우 사라 배르나르(Sarah Bernhardt)를 위해 사르두(Victorien Sardou)가 쓴 희곡을 보고 감동한 푸찌니(Puccini, 푸치니)가 오페라로 만들게 했다. 대본은 [라 보엠]을 쓴 지아코자와 일리카가 만들었다. 이 피비린내 나는 드라마는 당시 유행하던 베리즈모 오페라의 영향이 짙고 음산(陰散)한 호소력을 지닌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비극
1800년의 로마. 가수 토스카에게 사악(邪惡)한 욕망을 품은 악의 상징인 로마 경찰 총장 스카르피아는 토스카의 연인이며 혁명 사상을 가진 화가 마리오 카바라도씨(Cavaradossi, 카바라도시)를 정치범 은익죄로 구속한다. 그리고, 고문 협박하는 현장에서 연인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그녀의 정조를 요구한다. 하는 수 없이 승낙한 토스카는 스카르피아가 그와 그녀를 살려주겠다는 문서를 쓰는 동안 과일 칼을 몰래 가지고 스카르피아를 찔러 죽인다. 총살하는 척만 하겠다는 스카르피아의 약속은 사실이 아니어서 결국 카바라도씨는 처형되고 만다. 스카르피아 살해 범인을 잡으려고 몰려오는 경찰들을 본 토스카는 “스카르피아, 하느님 앞에서!”라고 외치고 성벽 위에서 뛰어 내린다.
'은밀한 조화'
두 개의 다른 아름다움에서
은밀한 조화(調和)가!
훌로리아는 갈색 머리,
불같은 나의 연인.....
그리고 미지의 여인 당신은
블론드의 풍성한 머리와,
푸른 눈,
토스카는 검은 눈!
예술은 신비스런 재주로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하나로 섞는다;
허나, 이 그림의 주인공을 그릴 때
내 생각은 오직 하나,
아! 내 생각은 오직 하나, 당신 뿐!
토스카, 당신 뿐!
성 안드레아 델라 발래 성당의 벽화에 기도를 드리려고 가끔 오는 부인을 모델로 삼아 막달라 마리아 상을 그리는 카바라도씨는 붓을 놓고 토스카의 초상이 든 메달을 꺼내 마리아 상과 대조적인 토스카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그녀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다. 제1막 처음에 나오는 아리아 ‘은밀한 조화’는 후에 등장하는 토스카에 대한 기대를 집중시킨다. 토스카의 용모, 격렬한 성격 및 이름이 훌로리아 (Floria Tosca, 플로리아 토스카)임도 알게 된다. 따라서 토스카 역의 여자 주인공은 등장할 때 새삼 자기소개를 할 필요가 없이 아름다운 모습만 보이고 드라마의 중심으로 들어 설 수 있다. 이 노래 제목인 Recondita armonia에서 흔히 recondita를 ‘오묘한’이라고 옮기나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감춰진, 비밀의“이 옳다([이태리어 사전]외대 출판부).
추천할 만한 CD와 DVD
[CD] 사바타 지휘, 밀라노 스칼라 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53) 스테화노(T) EMI
"불을 뿜는 마에스트로“라고 불린 사바타(Victor de Sabata)의 지휘가 서두의 오케스트라 화음에 의한 스카르피아 동기로 시작하는 약 60개나 되는 라이트모티브(leitmotiv, leitmotif=지도동기)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등, 요소 마다 어김없이 꼭꼭 찍어 나가 듣는 이를 꽉 붙들어 맨다. 전성기의 칼라스는 예스러운 신앙심과 오직 한길의 남자에 대한 사랑, 그리고 질투심 사이를 오가다가 결정적 순간에는 악덕 경찰총장을 죽이는, 격렬한 성격을 완벽하게 노래했다. 곱비(Tito Gobbi, 티토 고비)의 스카르피아도 귀족적 품위의 내부에 간직한 냉혈적인 호색(好色)한 성격과 악마적인 힘을 표시하는 데 폭발적인 힘을 과시한다. 디 스테화노(di Stefano, 디 스테파노)의 카바라도씨가 내뿜는 뜨거운 정열의 표출도 잊을 수 없다.
[CD] 카라얀 지휘, 빈 휠하모니(philharmonie, 필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가극장 합창단(1962) 스테화노(T) DEC
1960년대를 대표하는 [토스카]의 명반이다. 이 음악에서 이만큼 극적인 힘과 긴장감을 도출해내어 그것은 관현악으로 표현한 연주도 드물다.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양식을 벗어나 너무 거창하게 스케일을 확대시킨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푸찌니 음악 속에 포함된 드라마를 극한까지 추구해 나간 연주로서 특이한 가치를 지닌다. 토스카의 프라이스(Leontyne Price), 카바라도씨의 디 스테화노, 스카르피아의 타데이(Giuseppe Taddei) 등 3명의 가수가 전성기의 목소리에 못 미치는 안타까움이 있으나, 카라얀의 지휘에 호응하여 박력 넘치는 표현으로 긴박한 드라마를 전개한다.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의 눈부신 음향도 충실하고 다채롭다.
[DVD] 바르톨레띠(Bartoletti, 바르톨레티) 지휘, 뉴 휠하모니아 관현악단/앰브로지아 합창단(1976) 도밍고(T) 데 보시오 연출, DECCA
로마에서 현지 로케이션으로 만든 오페라 영화이며 초보자에게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상이겠지만, 수수한 무대 오페라 애호가는 거부감을 느낄 만큼 원본에 없는 부분을 연출가가 멋대로 덧붙인 점이 거슬릴 것이다. 먼저 안젤로띠가 말없이 도망 Bartoletti 치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 성당 앞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음악이 시작되는 첫 장면부터가 익숙한 사람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더구나 그 음악은 스카르피아와 관련된 가락이다. 또 제2막 마지막 부분의 토스카가 층계를 뛰어내려 오는 장면에서는 스카르피아의 죽음을 연민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연출가 데 보시오(Cianfranco de Bosio)는 이 무대를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음악극이라는 점을 아예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러나 지휘자 바르톨레띠(Bruno Bartoletti)와 출연진은 우수하다. 토스카 역에서 명성을 얻은 카바이반스카(Raina Kabaivanska) 전성기의 노래와 도밍고, 밀른즈(Sherrill Milnes)의 중량감 있는 정상의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 빈틈없는 앙상블을 이룬다. 과장이나 무리함을 배제한 바르톨레띠의 음악 만들기와 연주표현 또한 베리즈모 적인 요소가 강한 이 오페라를 훌륭하게 감싸며 선명하게 부각하고 있다.
[DVD] 시노폴리 지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 관현악/합창단(1985) 도밍고(T), 제휘렐리 연출 DG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에 처음 등장한 시노폴리(Giuseppe Sinopoli)는 예리하게 분석한 표현을 세부에 까지 생생하게 파고들어 푸찌니 음악의 극성(劇性)을 선명하게 부각하여 열기에 찬 연주를 이룩하고 있다. 이처럼 강하고 아름다운 긴박감을 품은 [토스카]연주는 좀처럼 듣기 어렵다. 드라마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한 시노폴리의 연주에 호응하여 가수진도 각기 있는 힘껏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베렌스(Hildegard Behrens)의 토스카는 인기 절정의 소프라노답게 자랑과 사랑으로 흔들리는 여심(女心)을 뛰어난 연기와 노래로 잘 표현하고 있다. 도밍고의 카바라도씨가 이상적인 적역(適役)임은 물론이고 맥닐(Cornell MacNell)이 그 용모와 연기로 스카르피아의 간악함을 교묘하게 돋보이며 드라마를 한층 더 긴박감 넘치게 하고 있다. 제휘렐리의 연출도 충실한 연주에 못지않게 뛰어나며 특히 넓은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살린 제1막의 성당 내부의 장려(壯麗)한 무대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순간 바뀌어 무겁고 숨 막히는 분위기가 감도는 제2막의 스카르피아 방과의 대비(對比) 그리고 제3막에서 시간 경과를 교묘하게 암시하는 조명의 변화 등 세부에 이르기까지 잘 꾸민 무대와 연출로 확실한 드라마를 차곡차곡 쌓아 올려 보는 이를 만족시켜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은밀한 조화 - 푸치니, [토스카]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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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8월 25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으로 살며
푸치니 <토스카>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종교 의식이 성대하게 치러질 때 로마의 경찰청장 스카르피아가 음탕한 속셈을 드러내며 토스카에게 다가드는 제1막의 휘날레(피날레, finale)로부터, 그 스카르피아가 토스카의 애인 카바라도씨(카바라도시, Cavaradossi)를 탈옥한 정치인을 숨겨준 죄를 물어 그녀 앞에서 고문하며 애인의 목숨은 네 몸을 내게 허락하느냐에 따른다고 다그치는 제2막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리얼하고 박진감이 있어, 마지막 막이 무색해져 박력이 뚝 떨어진다.
<토스카>는 눈으로 봐야 할 오페라
특히 제3막은 CD로만 들으면 유명한 카바라도씨의 아리아 “별은 빛나고”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사족이 되기가 십상이다. 즉 CD로는 대천사 미카엘 상(像)이 사람들을 위압하듯이 솟구쳐 있는 로마의 성 안젤로 성 옥상(屋上)에서 동트는 새벽하늘의 별들도 보이지 않고, 토스카가 스카르피아에게 약속을 받아낸 거짓 처형이 결국은 실제로 카바라도씨가 총살되고 마는 역전(逆轉)된 결과와, 뒤이어 성벽에서 토스카의 투신자살이라는 스펙타클한 장면도 일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리로만 들으면 그 전 막이 끝날 무렵에 토스카가 스카르피아와의 거래를 승낙한 듯 보이나 그를 찔러 죽인 뒤, 지금까지 팽팽한 긴장감이 확 풀려 그 전의 분위기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노래로 살고 사랑으로 살며’의 가사를 살펴 보면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다는 식의 사랑의 관한 말은 한 마디도 없다. 노래에 관해서도 앞에 나오는 ‘arte’(예술)이란 단어가 나오지만 그것은 토스카가 가수니까 ‘예술’이란 ‘노래’를 뜻한다고 이해할 뿐이다. 호소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고 노래도 아니다.
'노래에 살고 사랑으로 살며'
노래로 살고 사랑으로 살며
살아 있는 사람을 상처 준 일도 없고,
불행한 사람을 보면
슬며시 남모르게 도와주었습니다.
끊임없이 참된 신앙심을 갖고
나의 이 기도를
거룩한 성상(聖像) 마다에 드려 왔습니다.
끊임없이 참된 신앙심을 갖고
제단 마다 꽃을 바쳐 왔습니다.
이런 고난의 시기에, 어째서
왜 주님은, 어째서
제게 이런 보답을 하십니까?
보석들을 성모님의
망토에도 바쳐 왔고,
노래를 하늘의 별에,
한층 아름답게 빛나는 별에 바치기도 했습니다.
이 고난의 시기에 어째서,
왜 주님,
아 어째서 내게 이런 보답을 하십니까.
주여. 왜, 어째서 내게 이런 보답을?
이 가사는 2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前半)은 한 성숙한 여성이 일상적인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깊은 신앙심을 지닌 일반 이탈리아 여성의 규범적인 행위이다. 토스카는 이 카톨릭적인 선행(善行)을 쌓아왔는데 ‘왜, 어째서’(perchè,perchè)하고 질문하고 있다. 기도도 애원(哀願)도 아닌 질문이다. 후반(後半)은 성모 마리아의 망토를 장식하기 위한 보석류를 바치고, 그리고 하늘의 별에게 노래를 바친다 하여, 비로소 처음 ‘노래’(canto)라는 말이 나온다. 그녀에게 가장 소주한 문제는 마지막 무렵에 와서야 떠오른다. 사랑의 대상에는 일체 말이 없다. 이 역설적인 표현은 이 노래를 서정적인 것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 아리아 다음에 토스카는 우발적인 충동처럼, 이 살인의 동기가 로마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던 경찰 총감 스카르피아를 찔러 죽인다. 이 살인의 동기가 ‘어째서’(perchè)이다. 드라마의 결론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추천 음반 및 DVD
[CD] 쁘레트르(프레트르) 지휘,빠리 음악원 관현악단/빠리 가극장 합창단(1964-65) 칼라스(S) EMI
칼라스가 가수에게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목에 이상이 있어 잠시 쉬고 나서 다시 무대에 돌아 왔을 때의 녹음이다. 은퇴하기 얼마 전이어서 과거와 같은 완벽함은 없으나 극적인 역할을 소화하는 능력은 교묘하며 호방(豪放)하다. 상대역인 베르곤찌는 그의 생애 중 가장 충실하던 무렵이었다. 곱비의 스카르피아 역도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둔 열연이었다.
[CD] 콜린 데이비스 지휘, 코벤트 가든 왕립 가극강 관현악단/ 합창단(1976) 몽세라 카바예(S) Philips
전성기의 카발예(Motserrat Caballé)의 토스카 역은 중음역(中音役)이 충실하며 카레라스(José Carreras)와 빅셀(Ingvar Wixell) 등 남성 가수진도 막강하다. 데이비스의 군더더기 없는 산뜻한 연주는 참신하고 상쾌하다.
[DVD] 마리아 칼라스「토스카 제2막」실황 녹화-칠라리오 지휘, 코벤트 가든 관현악단(1964)
명 연출가 제휘렐리가 공연한 무대를 찍은 제2막의 영상이다. 유명한 트리오 중 디 스테화노가 빠진 것은 아쉽지만 티토 곱비가 출연하고 있어 단순한 녹음이 아니라 실제 무대를 보게 되어 놓칠 수 없는 기록이다. 특히 곱비의 스카르피아는 귀족적인 품위를 겉으로는 보이면서도 속으로는 냉혈하고 호색적인 성격과 악마 같은 힘을 과시하는 모습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명연기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래로 살고 사랑으로 살며 - 푸치니, [토스카]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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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9월 15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내 마음의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푸치니 <토스카>
푸찌니(푸치니, Puccini)는 본래 후기 낭만파에 속하는 작곡가이며 본질적으로는 낭만으로 가득 찬, 달콤한 음악을 특징으로 삼는 사람이지만 이 [토스카]는 그 내용이 좀 다르다. 오페라의 중심인물 3인이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 죽거나 높은 성벽 위에서 떨어져 죽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음악의 경향, 즉 상상의 세계나 동경(憧憬)의 세계를 무대 위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신변(身邊)에 일어나는 피비린내 나는 사건에서 소재(素材)를 얻어 그것을 그대로 무대 위에 재현(再現)하려는 베리즈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점이다.
베리즈모 오페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그러나 자기 음악의 어법(語法)을 잘 알고 극 음악가로서 확실한 감각을 지닌 푸찌니는 그것을 영향의 단계에 그대로 멈추어 둔 채 결코 그것에 떠밀려 나가지 않도록 어디까지나 자기 내부에 깃들어 있는 극성(劇性)을 끌어낸다는 입장을 굳게 지키면서 [토스카]를 작곡했다. 따라서 이 오페라는 ‘극성‘이라는 면에서 그의 다른 오페라에서는 다르지만, 진짜 그의 음악극이며 자칫 낭만 과다에 빠지기 쉬운 그의 결점이 고쳐진, 진실성이 있고 생명감 넘치는 작품으로서 그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평론가도 적지 않다.
남자를 울리는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 만큼 남자가 울고 남자를 울리는 아름다운 아리아는 없다. 젊은 화가 카바라도씨는 자유의 투사이며 정치범인 친구가 탈옥하여 찾아온 것을 숨겨준 죄로 처형당하게 되었다. 동 트는 새벽녘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자기의 생각을 적으라는 허락을 받았으나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어야 하는 기막힌 처지를 생각을 하니 울음이 북받쳐 저도 모르게 말이 솟구쳐 나온다. 로마의 산타 안젤로 성의 옥상이다. 이 아리아의 제목은 ‘별은 빛나고’가 번역상 옳으나, ‘별은 빛나건만’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고, 곡의 내용과도 어울리는 느낌이 있어 그렇게 하였다.
'별은 빛나건만'
별은 빛나고, 대지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채소밭의 문이 삐걱거리며
모래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그녀가 들어와
내 품속에 몸을 맡겼다.
오! 달콤한 입맞춤, 수 없는 나른한 애무(愛撫),
나는 떨면서 베일을 벗기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틈도 아쉬워하며....
이 사랑의 꿈은 영원히 사라졌다.
시간은 흘러갔다.
절망 속에 나는 죽는다. (반복)
이제 와서 이토록 아쉬운 것일까 목숨이란!
(목숨이란!)
뼈아픈 비탄이 가슴을 저민다
이 아리아의 선율은 제3막이 올랐을 때부터 몇 번인가 오케스트라로 되풀이 연주되며 분위기를 돋구다가 드디어 기다렸다는 듯이 부른다. 제1행의 “그리고 별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대지는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라는 노래는 이미 머지않아 죽으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즉 제11행의 “절망 속에 나는 죽는다”(e muoio disperato)의 전제인 셈이다. 그리고 이 아리아의 주요 내용은 제2행부터 제8행 사이에 이루어진다. 채소밭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성과의 밀회(密會)가 추억 속에 떠오른다. 로마 시부터 동떨어진 카바라도씨의 별장이다. 토스카와의 사랑을 불태우고 또 친구인 정치범을 숨겼다가 가혹한 운명에 빠진 그 특별한 장면이다. 오페라 [토스카]는 매우 치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드라마의 전개에서 보자면 “은밀한 조화”를 부르는 제1막과 “노래로 살고 사랑으로 살며”를 노래하는 제2막 사이에 ‘카바라도씨의 별장 장면’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 장면을 생략하고 제3막의 아리아 “별은 빛나고”에 아주 응축(凝縮)된 추억 형식으로 포함되어 보다 강한 효과를 올리고 있다. 마지막 줄의 뼈아픈 비탄(悲嘆)은 가슴을 저민다.
<토스카>에 얽힌 에피소드
1961년에 샌후란시스코(샌프란시스코) 가극장에서 있은 일이다. 프로듀서는 그 해 시즌이 끝나는 마지막 공연을 출연진인 간단하되 효과 있는 오페라로 무난히 끝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작품이 [토스카]였다. [토스카]에는 중요한 등장인물은 3명밖에 없다. 그 밖의 출연자는 제1막의 합창단, 제2막의 성가대, 제3막의 사형집행대 뿐이다. 합창대는 리허설이 필요하겠지만, 성가대는 무대 뒤에서 노래할 뿐이고 사형집행대는 노래하지 않는 역할이므로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그 생각에는 뜻밖의 함정이 있었다. 제작진은 사형집행대를 그 고장 대학의 학생을 골라 출연시키기로 결정했다. 학생들은 오페라의 내용을 전혀 모르며 원기 왕성하여 바쁜 연출자에게 계속 묻는다. “우리 언제 나갑니까?" "무대에선 무엇을 합니까?”하고 물어도 정신 없이 바쁜 프로듀서는 “나중에, 나중에”하는 대답뿐이었다. 공연 날이 다가왔다.
갑자기 환자가 생기고 하여 의상(衣裳)을 입고하는 마지막 총연습도 생략했다. 비로소 처음 5분 가량 틈을 낸 프로듀서가 그래도 할 지시는 제대로 내렸다. “자, 제군들, 무대 매니저가 신호를 보내면 천천히 행군해서 무대에 나가게. 그대로 대형을 유지하고 있다가 장교가 칼을 아래로 내릴 때까지 기다리게. 그러다 내리면 일제히 사격을 하게.” “그런 뒤에 언제 무대에서 퇴장합니까?” “퇴장? 퇴장은 주역이 할 때 같이 하면 되네.”
결국 그날 청중이 본 무대는 다음과 같다. 사병 한 분대가 행군해 나왔다. 그러나 그들 앞에 나타난 사람은 좀 쫓기는 듯한 남자와 여자였다. 병사들은 그들이 쏘아야 할 사람은 한 사람뿐이라고 알고 있었다. 좀 어리둥절하여 처음에는 남자에게 총을 겨누었으나 남자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서 있었다. 그러다가 여자에게 야릇한 시선을 보냈다. 군인들은 재빨리 여자에게 총부리를 돌렸다. 여자는 어처구니없다는 몸짓으로 자기가 아니라는 몸짓을 했다. 그러나 죽음을 앞둔 몸짓이라고 짐작하고 또 이 오페라의 이름이 [토스카]이고 비극적인 이야기라고 알고 있었다. 저 앞에 서있는 뚱뚱한 여자가 토스카임이 분명하다. 근엄한 장송(葬送)음악이 흐르며 장교가 칼을 내리려하고 있다. 드디어 사건은 일어났다. 군인들은 이치에 맞게 카바라도씨가 아니라 토스카를 사살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20야드 정도 떨어져 있던 남자가 쓰러졌다. 사살한 여자는 죽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남자에게 달려갔다. “자 일어나요, 빨리 출발해야지”하고 울며 외친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어쨌든 주역을 쏘았다. 아무래도 방향을 잘못 쏜 것 같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다음 지시는 ‘주역과 함께 퇴장해야 된다’이다. 군인들은 좀 당황한 표정으로 무대 위에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았다. 그때 스카르피아의 부하들이 떼 지어 몰려들었다. 그러자 토스카는 성벽 꼭대기에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밖으로 뛰어내렸다. 막이 천천히 내리는 속을 연출자의 지시를 충실히 지켜 사형집행대 전원도 차례로 뛰어 내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별은 빛나건만 - 푸치니, [토스카]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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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10월 7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희곡 『토스카』와 오페라 <토스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19세기 유럽 전역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에게 깊은 고민을 안겼다. 프랑스 혁명의 대의에 공감한 유럽의 공화주의자들에게 나폴레옹은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 이념의 계승자이자 전파자였다. 하지만 유럽 각국의 민족주의자에게 나폴레옹 군대는 프랑스의 침략자일 뿐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의 수호자였지만 권력욕에 물든 독재자였고, 프랑스를 지킨 애국자였으나 동시에 유럽 침공에 나선 정복자이기도 했다. 그는 법과 제도의 개혁가이면서도 군주제로 후퇴한 반동이었다.
나폴레옹, 해방의 영웅이자 침략자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후퇴 이후 빚어진 권력의 공백을 군사 작전 같은 치밀하고 빈틈없는 전략으로 파고 들어갔다. 집권 당시부터 이미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인물이었던 것이다. 나폴레옹 자신도 “모든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고 증오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지지하다가 철회했고 또다시 지지했다”라고 적었다. 그는 몽상가이자 현실주의자였고, 프랑스 혁명의 ‘자식’인 동시에 ‘살해자’였다.
당시 유럽 지식인들의 고뇌는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의 창작 배경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프랑스 공화주의에 깊이 공감했던 작곡가는 이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 ‘보나파르트’라는 제목을 붙이려 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1804년 나폴레옹의 황제 취임 소식을 접한 뒤 “그도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권을 짓밟고 야망에 탐닉해서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독재자가 될 것이다”라며 분노했다. 결국 작곡가는 보나파르트라고 적었던 악보 표지를 찢어버리고 ‘영웅’이라고 명명했다. 지금까지 전하는 악보 표지에도 ‘보나파르트’라는 글자를 격하게 긁어서 지워버린 흔적이 뚜렷하다. 하지만 2년 뒤 이 곡의 악보를 출판할 때 작곡가는 “위대한 인간에 대한 추억을 기리기 위해 작곡한 영웅적 교향곡”이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베토벤에게도 나폴레옹은 격렬한 애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19세기 당시까지 통일 왕조를 이루지 못했던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한층 사정이 복잡했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의 영향력 하에 있었던 북부 지역과 중부의 교황령, 남부의 나폴리·시칠리 왕국과 사르디나 왕국 등으로 사분오열되어 있었다. 1796년 이탈리아 주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나폴레옹이 1차 이탈리아 원정에 나서자 이탈리아는 단숨에 유럽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이탈리아 원정 초기에 나폴레옹은 롬바르디아를 오스트리아의 속국에서 해방시킨 뒤 공화국으로 선포하며 개혁가적 면모를 보였다. 로마가 교황령에서 벗어나 프랑스의 위성 공화국으로 선포된 것도 1798년이다. 하지만 1802년 나폴레옹은 이탈리아 공화국을 선포한 뒤 스스로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탈리아에서도 그는 해방자인 동시에 침략자였다.
마렝고 전투와 희곡 『토스카』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앙 사르두(Victorien Sardou, 1831~1908)의 희곡 『토스카』의 배경이 바로 나폴레옹 시대의 이탈리아 로마였다. 정확히 말하면, 1800년 6월 17일 로마의 단 하루가 배경이다. 그 사흘 전인 6월 14일 이탈리아 북서부 마렝고 평원에서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군을 격퇴했다. 2만 1000명의 병사와 26대의 포병으로 구성된 나폴레옹군은 3만 7000명의 병사와 대포 115대에 이르는 오스트리아군에 비해 수적으로 절대적인 열세였다. 실제로 전투 초반 내내 프랑스군은 오스트리아군의 빗발치는 포격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측근 루이 드제 장군이 이끄는 보병 사단이 반격에 나서면서 전세는 역전됐다. 드제의 부대는 오스트리아군의 선봉 여단을 격파해서 적의 예봉을 꺾었다. 그 뒤 프랑스 기마대의 투입으로 승패가 갈렸다. 이집트 원정 당시 ‘정의로운 술탄’으로 불렸던 드제 장군은 이 전투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드제의 시신은 전투가 끝난 뒤에야 프랑스군의 시체 더미 사이에서 발견됐다. 이 전투는 프랑스가 이탈리아에서 우위를 다지게 된 결정적 계기로 평가된다.
마렝고와 로마의 공간적 거리가 빚어낸 사흘이라는 시간적 간격은 『토스카』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초가 된다. 이 작품에서 토스카의 애인이자 화가인 마리오 카바라도시(Mario Cavaradossi)는 나폴레옹을 지지하는 열렬한 공화주의자다. 원작 희곡에서 토스카가 카바라도시에게 “신과 왕과 교황의 적(敵)이자 선동 정치가, 무신론자, 프랑스 계몽철학자 볼테르를 읽는 사람”이라고 면박을 주자, 카바라도시는 “나는 공화파이자 피를 들이켜는 자”라고 맞받아친다.
반면 토스카의 ‘육체’와 카바라도시의 ‘목숨’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하는 로마의 경찰 총수 스카르피아는 구체제의 신봉자다. 1798년 나폴레옹이 선포한 로마 공화국은 불과 1년 남짓 지속됐고, 1799년 프랑스군이 철수한 뒤에는 다시 오스트리아와 영국이 지원하는 나폴리 왕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나폴레옹이 최종 실각한 1815년까지 로마는 프랑스와 반(反) 프랑스 세력의 치열한 각축장이었다. 극 중에서 카바라도시가 숨겨준 정치범 안젤로티는 단명한 로마 공화국의 집정관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마렝고 전투의 승패는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흘의 시차를 두고 로마에도 전황(戰況)이 중계되고 있었던 것이다.
사르두의 희곡이나 푸치니의 오페라에서 공히 1막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종교곡 [테데움]은 오스트리아군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한 작품이다. 로마 최고의 성악가인 토스카가 희곡 2막에서 부르기로 되어 있던 이탈리아 작곡가 조반니 파이시엘로의 칸타타도 오스트리아의 승전을 축하하기 위한 곡이다. 마렝고 전투의 개전 초기에 오스트리아군이 우세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2막까지는 등장인물 모두 오스트리아군의 승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희곡 2막 말미에 프랑스군의 승전 소식이 전해지자 로마 귀족들의 안색은 창백해진다. 오페라에서는 2막에서 스카르피아의 고문을 받던 카바라도시가 승전의 기쁨에 열창하는 장면으로 각색됐다.
시대적 비감과 통속적 재미
장서가였던 사르두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와 테르미도르 반동, 나폴레옹 집권기 등 프랑스의 역사적 사건에서 작품의 소재를 즐겨 찾았다. 특히 당대 유럽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른하르트를 캐스팅한 연극 [토스카]는 1887년 초연 이후 프랑스에서만 3,000여 회 공연할 만큼 대대적인 인기몰이를 했다. 베른하르트는 이 역할로 이집트와 터키, 호주와 남미에서도 순회공연을 했다. 1905년 리우데자네이루 공연 당시에는 토스카가 성벽에서 몸을 던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른쪽 무릎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이 괴저로 번지는 바람에 베른하르트는 오른쪽 다리 전체를 절단하는 비운을 겪었지만, 1923년 78세로 타계하기 전까지 의족을 달고 연기 활동을 계속했다.
연극 [토스카]는 대중적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반면 평단의 반응은 싸늘했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1890년 런던에서 이 작품을 관람한 뒤 “멍청하고 형편없는 싸구려”라고 혹평을 퍼부었다. ‘여성에 대한 학대’처럼 상투적인 기법에 의존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악당 스카르피아가 부채를 이용해 토스카의 질투를 유발하는 장면도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이아고의 손수건 계략을 빼닮아 있었다. 이처럼 [토스카]에는 통속적인 표현이나 전개 방식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비판자들이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있었다. 분명 [토스카]는 고문과 살인, 자살 등으로 뒤범벅이 된 통속극이다. 하지만 동시에 [토스카]는 나폴레옹 시기의 로마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이자 ‘시간과 장소, 행동의 일치’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극 원칙에 충실한 작품이기도 했다. 1800년 6월 17일 한낮에 카바라도시가 안젤로티를 성당에 숨겨주면서 시작한 드라마는 이튿날 새벽 카바라도시의 죽음으로 끝난다. 작품의 무대인 1막의 성 안드레아 델라 발레(Sant'Andrea della Valle) 성당과 2막의 파르네세 궁전, 3막의 성 안젤로 성은 로마의 젖줄인 테베레 강을 사이에 두고 한 시간도 되지 않는 근거리에 있다. 여주인공 토스카와 악당 스카르피아는 ‘이중의 음모’를 서로에게 꾸미고, 이들의 계략이 현실화하는 순간에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파멸을 맞는다. 일절 비약이나 회상 없이 제한된 시간과 한정된 공간 아래 파국의 변주를 빚어낸 것이다. 1990년대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나 [여명의 눈동자]처럼 시대적 비감(悲感)과 통속적 재미가 적절하게 뒤섞인 것이야말로 [토스카]의 매력이었다.
푸치니의 손에 재탄생한 블록버스터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가 밀라노에서 이 연극을 관람한 것은 1889년이었다. 당시 공연에도 베른하르트가 출연했다. 작품의 탄탄한 구성과 극적 긴장감에 깊은 인상을 받은 푸치니는 오페라 작곡을 위해 필요한 판권 계약을 출판업자에게 의뢰했다. 하지만 작곡 과정은 난산에 가까웠다. 원작자인 사르두는 고국 프랑스의 음악가가 아니라 당시 31세의 이탈리아 작곡가가 곡을 쓴다는 것이 못내 미심쩍었다. 푸치니의 단짝 대본 작가였던 주세페 자코사와 루이지 일리카도 오페라에 잘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이 작품은 푸치니가 아니라 동료 작곡가 알베르토 프란체티의 손에 들어갔다. 하지만 푸치니는 “잔인한 작품”이라면서 포기를 종용했고, 프란체티는 순순히 작품을 푸치니에게 내주고 말았다고 한다. 만약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오페라 작곡의 이면에도 [토스카] 못지않게 음흉한 공작이 깔려 있었던 셈이었다.
1894년에는 오페라 대본 작가들이 사르두의 허락을 받기 위해 파리로 찾아가 대본을 낭독했다. 당시 오페라 [오셀로] 공연을 위해 파리에 머물고 있던 여든 살의 작곡가 베르디도 낭독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일리카에게 대본을 건네받아서 작품을 읽어본 베르디는 “내 나이만 아니라면 [토스카]를 직접 작곡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당시 그는 마지막 오페라 [팔스타프]를 완성한 직후였다. 베르디는 7년 뒤인 1901년 타계했다.
오페라는 23명에 이르는 희곡의 등장인물을 9명으로 과감하게 줄이고, 원작의 5막을 3막으로 압축하면서 속도감을 높였다. ‘2시간 안으로 작품을 편집한다’는 할리우드 영화의 숨은 공식처럼, [토스카]도 전체 3막을 2시간 안에 공연하면서 파국으로 빠르게 치닫는 흥행 공식을 철저하게 따랐다. 요컨대 [토스카]는 감독의 고집으로 빚어낸 예술 영화보다는 치밀하게 계산된 오페라의 ‘블록버스터’에 가까웠다.
소프라노 가수가 부르는 극 중 여가수의 노래
오페라는 1900년 1월 14일 작품의 배경인 로마의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됐다. 당시 공연에는 이탈리아 왕비와 총리 등 명사들은 물론, 푸치니에게 이 작품을 넘겼던 작곡가 프란체티도 참석했다. 프란체티는 내심 실패를 바랐을지 모르지만 카바라도시의 [별은 빛나건만]과 토스카의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등 주옥같은 아리아가 담긴 이 오페라는 초연 직후에 영국과 프랑스, 미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오페라로 작곡되기도 전에 작품에 내재한 폭발력을 꿰뚫어보았던 노대가(老大家) 베르디의 혜안이 적중한 셈이었다. 특히 오페라 2막에서 신에게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토로하는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마리아 칼라스를 비롯해 당대 소프라노들의 애창곡이 됐다.
“노래로 살고 사랑에 살며/살아 있는 사람에게 상처 준 일도 없고/불행한 사람을 보면/남모르게 도왔습니다./언제나 참된 신앙심으로/정성을 다해 기도하고/제단에는 아름다운 꽃을 바쳤지요/이 고난의 시기에/어째서 어째서 주님은/제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 토스카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토스카는 성량이 풍부하면서도 카랑카랑한 음성과 당찬 성격까지 그대로 담아내야 하기에 드라마틱 소프라노(dramatic soprano)에게 어울리는 배역이다. 하지만 오페라 극장에서는 이 작품을 불러본 적이 없는 서정적인 리릭 소프라노(lyric soprano)나 화려한 기교의 콜로라투라 소프라노(coloratura soprano)도 자신의 독창회에서만큼은 이 노래를 빼놓지 않는다. 토스카가 당대 로마를 사로잡았던 여가수라는 오페라의 설정도 소프라노들에게는 매력적으로 비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과 노래야말로 모든 여가수들이 꿈꾸는 지고지순의 가치가 아닐까. 여가수에게 여가수의 배역을 맡긴 푸치니의 눈썰미야말로 이 작품이 누리고 있는 인기의 숨은 이유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희곡 『토스카』와 오페라 [토스카] -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문학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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