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전 사물- 법고
無音 一音의 부처님 소리 시방세계를 깨우치다
북은 일반적 개념으로 본다면 나무로 짠 둥근 통에 가죽을 씌우고 채로 두드려 연주하는 타악기의 일종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불전 사물 중 하나로서의 법고(法鼓)는 단순한 악기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고 각종 재를 베풀고 의식을 거행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 또는 소리공양을 베풀어 속세의 모든 축생을 제도하는 상징적 용구가 되기도 한다. 북과 관련해 불경에서는 정법의 북을 쳐서 시방세계를 깨우치게 한다거나, 상서로움의 징조로서 하늘 북[天鼓]의 울림을 말하는 것을 보면 사찰에서 북이 가지는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구려 안악고분 벽화의 주악도(奏樂圖)에 보이는 입고(立鼓), 행렬도에 보이는 담고(擔鼓:어깨에 메는 북) 등이 그 최초의 증거가 된다.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종류의 북이 사용돼 왔고, 조선시대에도 군기시(軍器寺)에 북을 만드는 고장(鼓匠)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북의 종류는 좌고.교방고.소고(小鼓).소리북(고장북).매구북(농악북) 등 20여 종이 있다. 이 중에서 예기적(禮器的) 성격이 가장 강한 것이 사찰의 법고(法鼓)라 할 수 있다. 이 일이 북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에 북 만드는 기술 전체를 일컬을 때도 ‘북 메우기’라고 부른다.
북을 메울 때에는 소나무 여러 쪽을 둥글게 깎아 서로 짝을 맞춰 붙여 북통을 만들고, 기름을 뺀 쇠가죽을 북통의 양편에 메고 못을 박아 고정시킨다. 마지막으로 북통에 단청을 하고 주석 고리를 달면 법고가 완성된다.
단청을 할 때는 가죽 부분 중앙에 청.적.황색으로 된 삼파문(三巴文, 삼태극이라 하기도 함)을 그리거나 만자문(卍字文)을 그려 넣기도 하고, 변죽을 돌아가면서 적.청.황.녹색 등 색 띠를 치장하기도 한다.
북통에는 용을 단독으로 그리거나 구름과 함께 그리는 것이 상례인데, 이 용의 이름이 기룡(夔龍)으로 알려져 있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기룡은 용의 우두머리로서 먹거나 마시는 데 절도가 있으며, 더러운 곳에 노닐지 않고, 찌든 샘물은 마시지 않는다고 하며, 기룡의 가죽으로 만든 북을 치면 소리가 오 백리까지 들린다고 한다.
북통에 용을 그린 뜻은 오직 북소리가 멀리 퍼지게 하려는 데 있다.
법고는 예기(禮器)의 일종이므로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고 법고대(法鼓臺)를 만들어 정중히 보관한다. 법고대에는 전체 하중을 받는 대좌와 북을 높이 올려놓는 간주(竿柱)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있고, 간주 없이 대좌만으로 돼 있는 것이 있다.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법고대를 보면 대좌를 귀부(龜趺), 해치(), 사자 등 동물 형태로 조각해 놓은 것이 있는데, 경주 불국사 범영루의 법고대(귀부형), 호암미술관 소장 법고(사자형),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해치형), 흥국사 법고(사자형) 등이 각각의 예에 속한다. 불국사 범영루의 법고대는 간주가 없는 귀부형 법고대로, 완전한 거북이 형태로 돼 있다.
육각형문양이 뚜렷한 귀갑 정상부분에 안전시설을 만들고 그 위에 법고를 올려놓았는데, 형태는 거북을 빼닮았으나 표현 기법은 타성에 젖어 생명력을 잃었다.
국립 중앙박물관의 법고대는 안장의 한복판에 하엽형(荷葉形)으로 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3단으로 된 간주를 만들어 붙였다. 이 중 상단은 연꽃봉오리이고 중단은 북모양으로 나타나 있는데, 그 둘레에 소박한 칠보문이 새겨져 있다. 동물의 꼬리 중간까지는 고사리 모양의 당초문이 새겨 있다. 흥국사 법고는 지금 사자형 대좌 위에 그냥 올려져 있으나, 원래는 간주가 있어 그 위에 올려놓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몸과 다리, 꼬리 부위를 따로 조각해 조립한 것이 분명하지만 보기에 어색한 점이 전혀 없어 조각장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외형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고 있지만 사찰에서 법고가 갖고 있는 근원적 가치와 의미는 오직 소리에 있다. 외형이 아무리 아름답다 하더라도 소리가 좋지 않으면 법고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당초부터 법고는 사찰을 시각적으로 장엄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소리공양을 위한 의기(儀器)로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법고의 소리와 관련해 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법고 소리가 나무에 의지하고, 가죽에 의지하여 소리가 나지만 법고 소리는 과거에도 공(空)이고 미래에도 공이며 지금도 공이다. 왜냐하면, 이 법고 소리는 나무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죽과 북채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니며 삼세(三世)에서 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 이것은 곧 나지 않는 것이다.”(〈금광명최승왕경〉 제5권, 의공만원품)
무음은 부처님의 소리이고, 부처님의 소리는 곧 원음(圓音)이다. 북소리는 특정한 곡조가 없는 소리이기 때문에 일음이고, 일음(一音)은 곧 원음이다. 그러므로 북소리는 부처님의 소리임을 이 경의 내용은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러 범천왕들이 부처님께 말하되, ‘무상 법륜 굴리시어 법 북을 울리시고 큰 법라(法螺) 부시며 법 비를 널리 내려 중생 제도하여 주시기 바라오니 연설하여 주옵소서’” 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것은 법고 소리가 부처님의 설법에 비유됨을 알게 해주고, 또한 “사천왕과 모든 하늘은 부처님을 공양하기 위하여 항상 하늘 북을 울리며, 다른 모든 하늘은 하늘의 기악을 울리되, 십 소겁을 다하고 멸도하실 때까지 또한 이와 같이 함이니라”고 한 대목은 북소리가 부처님에 대한 공양의 한 방법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 이들 명칭은 쇠북의 모양이나 구조와 상관없이 같이 쓰이고 있다. 장식은 돋을새김한 굵은 원 2∼3개로 북 면을 나누고, 바깥쪽 원안에는 당초문.운문을, 그리고 맨 안쪽에 연화문을 시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옆면은 1∼3개의 고리가 중심에서 위쪽으로 달려있으며, 1∼2개의 굵은 선으로 구획된 곳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경에서는 이처럼 법고나 쇠북에서 나오는 묘하고 아름다운 소리는 삼세의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두려움을 끊어주고,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퍼져 3악도의 지극히 무거운 죄와 인간의 모든 고액을 없애준다고 설하고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북과 북소리가 갖고 있는 참된 의미는 어디까지나 무성(無聲)과 일음(一音)과 원음(圓音)에 있음을 강조해 가르치고 있다. 무성의 북소리는 진리 그 자체이며, 곡조 없는 북소리는 일음으로서 그것은 곧 원음이다. 이런 의미를 갖고 있는 북소리이기에 아침저녁 예불할 때 북을 불전사물 중 가장 먼저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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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토함산솔이파리 원문보기 글쓴이: 솔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