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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와 열차 타고
전날 밤부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강한 봄비가 중부 지방에 휘몰아쳤습니다. 배낭을 챙기고 등산화 끈을 조여 매는 제 뒤에 서서, “아주 대~단한 엄홍길 후계자 나셨네”라고 아내가 놀렸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 농담 속에 담긴 아내의 마음을. 일 말고는 그 흔한 스타크래프트 게임조차도 할 줄 모르는 제가, 요즘 마치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즐겁게 웃음을 흘리고 다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내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출입문을 나서자 기분 좋은 빗방울이 얼굴에 와 닿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동문과 함께 전국 투어 2차, 사직 산악회 출범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산으로 떠나는 날 아침입니다.
비 내리는 경부선 남행 열차에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는, 남자주인공 김상중이 경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여주인공 추상미를 우연히 만납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짧지만 강한 며칠 동안의 백일몽처럼 벌어지는데, 기차를 타면 누구나 그런 꿈을 꾸기 마련입니다만 그건 항상 꿈일 뿐입니다. 역시 오늘도 제 옆자리에는 언제나 그렇듯, 아니 언제나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죽어라 울어대는 아기를 안은 아줌마가 앉았습니다. 술 취한 아저씨가 코를 골며 잠든 상황보다 더 심각한 상황, 남들이 보기엔, 아니 아기 아빠는 왜 저리 태연히 창 밖만 보고 있누? 라고 해도 좋을 그런 장면이 연출되었던 것입니다. 휴우, 어찌 보면 이것이 진정한 ‘생활의 발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다음 정차역은 ‘부산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잦아듭니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언제 4호선까지 생겼나, 하며 신기한 듯 노선도를 바라보는데 어느새 지하철은 부산대학 앞에 도착합니다. 이 지하철에 얽힌 많은 추억도 나중에 한 번 정리해봐야겠단 생각을 합니다. 혜경이, 미혜, 수희, 그리고 정미. 후훗. 잠시 후 1기 선배님께서 운영하신다는 오죽헌에 도착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을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우리 동문들은, 사직고 출신임을 증명하는 더 강한 아우라가 있습니다. 정중동 외유내강의 몸소실천자 최효수형님(1기), 넉넉한 옆집 형님 조봉기형님(3기), 뒷모습조차 음란한 음란서생 박기덕형님(3기), 곧 도착한 흑안경대인 박대우형님(2기), 그리고 한 살 아래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절대동안 서창성후배(6기)가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동기가 왔다 하여 집안 일을 잠시 미루고 와 준 대한민국 순수절정 이정화친구(5기)가 반가운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의 머리를 보고 좀처럼 놀라는 경우가 없는데 오늘 저를 허걱, 하게 만든 오죽헌 사장님 1기 영길 형님, 존경합니다. 하여튼 존경합니다.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
동문들의 근황과 지난 추억들을 안주삼아 차분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의 자리가 계속되었습니다. 사실 효수형님이나 봉기 형님의 표정으로 미루어봐 이 때까지만 해도 제가 받은 느낌은, 재호 이거 뭐 별 거 아니네? 페이스북에서는 마구 설치더니 아무 것도 아니잖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좀 싱겁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치밀하게 고도로 계산된 저만의 탐색전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원하는 대로 맞추어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이른바 일점사혈의 치명타를 만드는 과정이었고, 그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화룡점정이라고 마침 박기덕 형님이 벌떡주와 함께 정말 요망한 것을 꺼내는 순간, 저는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악셀을 밟았습니다. 힘찬 엔진소리가 터집니다. 병 뚜껑 웃겨 보셨습니까? 제가 입을 살짝 여니 병 뚜껑이 끼릭끼릭하고 웃기 시작했고 덩달아 형님들이 웃기 시작합니다. 그럼 그렇지, 이제부터 슬슬 달려볼까. 꽉 잡으십시오. (2부에 계속됩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비 내리는 장전동의 풍경이 생경합니다. DMZ 일대의 땅을 보고 온 기덕형님이, 땅보다 더 좋은 것이라며 꺼내놓은 벌떡주와 이상야릇한 모양의 술잔. 그것으로 분위기가 훈훈해졌습니다. (그 상세한 모습은 對동문 퀴즈를 통해 보여드린 바 있습니다) 역시 음란서생 일물견후 좌중폭소 매상쑥쑥. 잠시 후 일행은 자리를 옮기자는 것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유는, 고기가 맛이 없다는 효수 형님의 제안 때문이었습니다. 10인분 넘게 먹고서도 고기가 맛이 없었다니… 나는 맛있던데, 역시 1기들은 잘 사니까 맨날 고기만찬 묵으니까 그렇제, 하는 덕규형님 톤의 불평이 내 속에서 꼼지락거렸습니다. 어쨌건 기덕형님의 5,000CC 고급 외제 자동차 슈뽀르튀지 아아르에 여섯명이 ‘낑기 타고’ 일행은 범내골 중앙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길, 게다가 선글라스를 낀 대우형님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우리는 목적지를 아주 쉽게, 아주 쉽게 찾았습니다. 빌어먹을 놈의 비. 빌어먹을 선글라스. 후훗. 일행이 도착한 곳은 중국식 양꼬치 구이집. 양꼬치입니다. 양고기를 꽂아두었다는 뜻이지 다른 뜻으로 읽으시면 안됩니다. 흠…
1년에 열명 정도는 마신 다음 날 죽는다는 이과두주를 곁들이며 담소를 나누는데 잠시 후 절세미인 한 분이 업장에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순간 가게 주인이 우리를 위해 있는 형광등을 다 켜고 그것도 모자라 부산백화점 시계탑을 떼 온 줄 알았습니다. 그만큼 실내가 환해졌습니다. 그 분은 바로 중국 절세미녀 함주라(含朱羅)를 능가하는, 미경 형수님, 즉, 효수형님의 부인이셨습니다. 역시 부페도 빨리 가야 킹크랩을 먹을 수 있고, 세상도 빨리 태어나야 먼저 미인을 얻는 것입니다. (여보, 미안해. 1기야, 1기. 상대는 1기라구) 어느 장부가 형수님만하겠으며 어느 호인이 형수님을 대적하겠습니까? 단골집이라는데도 찾는데 한참 걸린 대우형님이 무색하게 한큐에 알다마 스무개, 쿠션 두개, 가락 한 개를 잡는 인천 최고수 김삼락 옹처럼, 형수님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 집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대함은 대단한 것입니다. 형수님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더욱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그리고 곧 대한민국 최고의 덴티스트, 자기 전에 항상 핀란드 여자를 잘근잘근 씹는다는 정동수형님(2기)이 도착하셨습니다. 이 때는 이미 좌중의 분위기는 무르익고, 조봉기형님(3기)은 저의 치밀한 공략에 ‘발기발기’ 찢어진 깃발처럼 밟히고 있을 때였습니다. 역시 술 자리에는 호인(好人)과 호구가 있어야 됩니다. 봉기형님이 호구란 말씀은 절대 아닙니다. 편하게 받아주신 봉기형님께 이 자리를 빌어 쌤통입니다. 16년 동안 후배에게 밟혀오신 발기, 조봉기 선생님. 흐흐흐.
좌중과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에 저는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그것은 100% 형님들 때문이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친형을 잃었던 저의 모친이 아픔을 달래려고 고향집 뒷동산에 올라가서 항상 부르던 노래가 ‘연분홍 치마’입니다. 그러면서 많은 형들을 모시고 살라면서 저를 가르치셨기 때문에 저는 형님들께서 계신 자리에선 늘 이 노래가 생각납니다. 또한 형님들을 비롯한 우리 동문 모두의 봄날을 추억하려고 이 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입에 물고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이런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도 대우형님은 인증샷을 찍어야 된다고 난리, 효수형님은 우리 동문들 멋지제 하며 형수님한테 자랑한다고 난리, 기덕형님은 집에서는 빨리 오라고 전화에 불이 나지, 가기는 싫지 어쩔 줄 몰라서 난리, 봉기형님은 저한테 밟히고 뜯겨서 그걸 받아내느라 난리, 창성후배는 양꼬치와 이과두주 혼자 다 처묵느라고 젓가락질이 난리, 동수형님은 니들이야 뭘하든 ‘나는 미경 누님이 좋아요’ 목소리 엄청 깔면서 미경형수님 손 한 번 잡으려고 난리, 저는 일일이 컨트롤 하면서 맞춤 개그 하느라 난리,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전쟁이 한 번 더 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난리의 풀 세트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 난리를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양꼬치 집 사장님도 제게 추파를 던지면서 옆에 와서는, 제 전화번호를 따려고 중국어로 물어보던 사실, 여러분들은 모르실 것입니다. 그렇게 즐거운 난리가 이어지는 위태로운(!) 상황에, 이 세상 모든 난리는 자취를 감추어라 하면서 순간 백겸중형님(1기)이 따악 출현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겸중형님의 싸부 태극권 고수, 겸중형님의 여자친구 윤교수님, 대만에서 온 여자손님, 그리고 난리 종결의 극치, 난리 평정의 엑스타시, 고기 냄새 진동하는 양꼬치 집에, 그것도 빼갈 판이 벌어진 난리법석에 신부님도 아닌 목사님도 아닌 스님, 스님!을 모시고 나타난 것입니다. 쿠구궁! 마음 속에는 벌써 난리라는 번개와 이럴 수가,라는 천둥이 사이 좋게 두 손을 잡고 마쎄이를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분 좋은 봄비가 내리던 2011년 4월 30일 저녁, 부산 범내골 양꼬치 집에서, 사직산악회 출범 전야제는 그렇게 클라이막스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3부에 계속)
겸중형님 일행의 등장으로 전야제 파티는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겸중형님을 아는 분은 다 느끼시는 대로, 무얼 하든 어디 있든 자신만의 아우라를 펼치시기 때문에, 잠시 한 눈이라도 팔면 댓글을 놓치는 페북처럼, 잠시 주의를 분산하면 입으로 향하던 술잔마저 목적지를 잃게 됩니다. 겸중형님은 여자 친구를 옆에 모신 그 상황에서도, ‘나는 어떻게 이사벨 여고를 정복했나’ ‘나에게 담배란 무엇인가’ ‘하룻밤 몇 번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번에 몇 시간이 중요하다’라는 새로운 이론을 설파하시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창성후배의 머리에서는 연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눈치로 보아 창성후배는, 전 재산을 걸고 손모가지를 걸어서라도 다른 고등학교 출신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가소로운 자식. 손모가지 함부로 걸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그렇게 올인한 적이 있었으냐. (안도현 시인의 연탄 표절) 하여튼 저는 우리 동문들에게는 날릴 수 있는 뻐꾸기는 다 날리고 텅 빈 새장처럼 기진맥진한 상태였던 터라, 새로 등장한 신진 인사들에게 날릴 수 있는 거라곤, 해박한 외국어 실력 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 타켓은 대만에서 오신 미모의 여자분. 그러나 아쉽게도 요즘 자이언츠처럼, 많이 날렸으나 넘어가지는 않고 빗맞는 타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타격전의 와중에 스님이 일순 수면의 세계로 도피하시고, 저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너 같은 놈 처음 본다’는, 마흔 하나 일생 일대 최고의 찬사를 태극권 고수에게 마침내 듣게 됩니다.
(중간 과정은 필름을 계속 반복 상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씹고 뜯고 마시고 즐기고)
Ver. 1.
범내골 작은 선술집에서 열 두 명이 모여 웃고 떠들다 보니 시간은 빨리 흘렀습니다. 바깥에 내리는 비도 잦아들고, 아쉽지만 일행은 다음을 기약하며 (2차를 기약하자는 사람도 한 사람 있습니다. 2기 선글라스 총각. 보팔가능신공실천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계산은 18만원 나왔습니다. 그 집 개업 이후에 단일 팀 최고의 매상이라며 사장님은 입구까지 나를 따라 나와 쎄쎼,를 연발하였습니다. 일행들이 다 돌아가고 저는 다음 날 산행을 기대하며 근처의 숙소로 들어가 편안한 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Ver 2.
쎄쎄를 연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헤어질 수 없었던 일행 중에 동수형님, 대우형님, 종표형님, 창성후배는 저와 함께 근처 노래방으로 향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많이 지쳤기 때문에 테이블에 있는 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형님들과 후배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 정말 나는 좋은 고등학교를 나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산행을 위해 일찍 자리를 파하고 근처의 숙소로 들어가 편안한 밤을 맞이하게 됩니다.
Ver. 3.
쎄쎄를 연발하였습니다. 그 때 저는 이미 취했고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성후배에게 몸을 의지하고 근처 노래방으로 들어가 행패를 부리기 시작합니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난리 주사 발광을 부리고 벽을 잡고 개 춤을 추기도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 동수형님께, 제가 실수가 많았죠 드립을 연달아 10연발 발사합니다. 중국어 노래와 가무 실력을 보인 다음, 완전히 녹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종표형님이 이상한 약을 하나 주었습니다. 그것을 먹자 속에 있던 것들이 올라옵니다. 종표형님이 눈짓을 하자 일행들은 알았다는 듯 앞다투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종표형님은 나를 택시에 태우고 자기의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와중에서도 종표형님의 음모를 알고 있었기에 갈 수 없다고 발버둥칩니다. 계속해서 애원하는 목소리로 ‘형님,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저는 남자에요, 남자.’ 이 이야기를 들은 택시 기사님이 화를 벌컥 내며 종표형님에게 ‘당신, 참 비위도 좋소’라고 일갈을 해 줍니다. 그리고 길가에 차를 잠시 세우는 그 틈을 타서 저는 탈출을 하게 됩니다. 저를 구해주신 부산 삼선교통 5바 2347호 박명식 기사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는 근처에 눈에 띄는 모텔로 황급히 몸을 숨겼습니다.
그 충격으로 방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제가 옷을 벗은 채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욕실에 물을 받아 두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 팬티가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종표형님이 자기 욕심을 채웠나 싶어, 방을 샅샅이 뒤진 결과, 저는 팬티를 고이 접어 제 배낭 속에 넣어 두었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두고, 여기 동문 페북에서는, 종표가 재호를 범했다. 재호가 당했다. 재호가 팬티에 오물을 묻혔다. 심지어 더 노골적으로, 재호가 술 처먹고 빤스에 똥을 쌌다 등등 수많은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저, 뒤끝있다는 건 1만 5천 사직 동문들이 다 압니다. 그런 댓글을 양산하는데 일조한 김모대영, 조모봉래, 조모봉기(발기)형님들, 손톱 길러서 칠판 긁는 소리 매일 들려줄 겁니다.
또한 동수형님이 미경형수님의 손을 오랫동안 잡지 못하게 된 이유가 저의 뻐꾸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셨는지, 제가 노래방에서 울었다거나, 쌍욕을 날리면서 추태를 부렸다거나, 창성이가 찍은 동영상을 공개하겠다거나 하는 협박을 하고 다니신다는데, 형님, 하늘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젠 명문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참는 데도 한계가 없습니다. 계속 참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형님.
하여튼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산행의 날이 밝았습니다. 저는 어제 제가 피신한 모텔의 지형을 익히며 마침 모텔 앞을 지나던 삼선 교통 택시를 타고 범어사로 향하게 됩니다. 화창한 봄의 하늘이 위기에서 도망친 저를 잘했다고 격려하는 것 같았습니다 (4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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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발대식은 참석안해서 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