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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학』이 주목하는 이 계절의 시인 / 대담 임애월 편집주간
노마드의 고단한 계절을 지나 마음속 정주로의 여행
정 복 선 시인
우수 무렵, 봄기운이 고물거리는 청평 들녘을 지나 정복선 시인님이 은거한다는 가평의 청우산 계곡을 방문하였다. 한적한 시골길에 들어서자마자 함박눈이 쏟아져 내렸다. 온 계곡을 덮어버릴 기세로 소리 없이 푹푹 내려쌓이는 눈 속에 조용히 서 계신 시인님은 참 편안하고 부드러운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임애월 : 정복선 선생님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이렇게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복선 : 눈보라를 몰고 오듯이 멀리서 와주신 세 분, 고맙습니다. 북한강변을 휘돌아 미끄러운 길을 오셨네요. 저 쪽 호명산에 올라가서 바라보면 산줄기만 이어져 있어요. 가평이 얼마나 산골짜기인지 여실히 드러나지요.
임애월 : 그러게요. 오늘 따라 이 산골에 함박눈이 펑펑 걱정도 없이 내리네요. 이 겨울 마지막 눈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곳 가평은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리는 편인가요?
정복선 : 네, 눈이 많은 편입니다. 올 겨울엔 눈 대신 비가 왔으나, 이삼 년 전에는 자고나면 한 자씩 눈이 쌓여서 눈삽으로 뜰의 눈을 치우는 게 일상사였어요. 아름답고 재밌기도 했죠.
임애월 : 산자락의 소나무 숲에, 계곡에 눈 내리는 풍경이 정말 장관이네요.
창문을 열면 자동차 소음 대신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림직도 한 이 고요함이 창작에 어떤 영감을 줄 것도 같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적요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도 많으시겠지요?
정복선 :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어쩌면 자신의 운명의 장소이겠죠. 서울에서 사십 몇 년을 살았기에 고향인 전주보다 더 익숙해진 곳이고 골목벽화처럼 지나간 인생의 행적이 남은 곳들이 많습니다. 이제 그런 그리운 날들을 훌쩍 떠나와서 청평에서의 삶을 받아들임으로써 뭔가 다른 시가 우러나오겠지요. 제가 아끼는 작품 중의 하나인 「무공적無孔笛」도 이 잣나무 숲에서 얻어진 것입니다.
임애월 : 네,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여기는 어떤 인연으로 오셨으며 오신 지는 얼마나 되셨는지요?
정복선 : 보시다시피, 이곳은 남편이 택한 곳이예요. 미술대학 조소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에 작업실을 물색하면서 경기도 일원을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였답니다. 일 년 정도를 찾아다니다가 이곳이 맘에 들어서 처음엔 작업실을 짓고 얼마 후에는 집도 지었어요. 처음에는 볼품없었던 땅을 이토록 그럴듯한 공간으로 가꾼 건 몇 번이고 뜯어고치는 그이의 예민함 덕분임을 꼭 말하고 싶네요. 서울과 불과 한 시간 거리이기에 자주 오가곤 했어요. 그 세월도 이십 몇 년이 넘었고, 퇴임 후에는 이 청우산 밑에 아주 들어와 정착한 셈입니다.
임애월 : 네, 정원에 전시된 조각 작품들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는 이 산 이름이 청우산이라고요? 이름이 참 詩的입니다.
선생님의 호가 청우성이라고 알고 있는데 혹시 이곳 산과 관련이 있나요?
정복선 : 청우(靑雨), 푸른 비라는 산 이름은 옛 시인이 붙인 게 아닐까요. 그 이름이 좋아서 스스로 호를 청우라고 지었었는데, 내가 다닌 개화사의 주지스님께서 법명을 청우성(淸雨聲)으로 지어주셨지요. 맑은 빗소리라고요.
임애월 : 아, 법명이시네요. 시인 선생님은 법명도 정말 시적이십니다.(웃음)
이제 시골생활에는 좀 익숙해지셨는지요, 근황 좀 알려주세요.
정복선 : 처음 이사 들어와서는 서울생활로부터의 고립을 별로 안 느꼈는데, 점차 체력도 딸리고 해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그냥 집에서 지내다 보니, 어떤 때는 고적감에 짓눌리기도 했어요. 이젠 그런 시기도 지나갔어요.
임애월 : 사실 전원생활은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꿈꾸는 삶의 궁극점이기도 하답니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자랑하셔도 되십니다.(웃음)
정복선 : 지금은 외출과 사람들과의 환담도 잠시의 즐거움으로 여겨져요. 뭔가, 더 중요한 것, 뭔가, 더 숭고한 것, 더 깊이 있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내면에 출렁이고 있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내 인생을 가로지르는 그 호기심이 나를 이끌어 시인이 되게 했을 것이고, 박물관대학 강의도 듣고 경전공부도 하고, 좋은 책을 찾아 읽게 되고..., 지적 호기심을 넘어 내 삶과 이 우주의 비의에 대한 탐구라고 하면 어떨지요.
임애월 :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 계곡과 선생님과는 묘한 조화를 이루며 아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도시적이며 지적인 시인님과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산과 계곡...... 극과 극의 어떤 초극적인 만남이라고나 할까요......(웃음)
정복선 : 전원생활은 농경문화를 겪어온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옛 시절에 대한 향수도 겸해서 꿈꾸는 것이긴 한데, 실제로 한 곳을 정하는 것도 어렵고 낯선 곳에 뿌리내리기는 더 어렵죠. 모든 일에는 좋은 점 반, 나쁜 점 반이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좋은 점 반을 위해서 나머지 반을 포기한다면 좋은 점이 더 확산될 거예요.
이제 곧 봄인데, 뜰에 수선화가 아마 이백송이쯤 펴요. 차례차례로 먼 여행에 다녀오는 꽃들을 맞는 기쁨이 있죠. 복사꽃, 자목련꽃, 아가위꽃..., 저는 특별히 옥잠화꽃이 참 좋아요. 저 키 큰 나무들은 후박나무들인데 연꽃 같은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한 달 내내 향기가 진동하죠. 텃밭에서 따먹는 상추, 풋고추의 맛도 빼놓을 수 없고요.
임애월 : 와우, 이백 송이 수선화라고요? 저도 참 좋아하는 꽃인데 이 정원에 가득 피어있는 봄 한나절 오후의 그림이 저절로 그려집니다.
전주가 고향이신데, 예향의 고장 전주에서 자라셨네요. 언니가 일곱 분이시면... 딸부자집의 막내따님이셨어요?
정복선 : 전주에 사는 동안엔 예향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사십년 이상 초등교육에만 매진하셨으므로 임지를 따라 전라북도 내에서 가족이 수십 차례 이사 다녔다는데,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다섯 번 정도만 따라다녔고 그 이후로는 아버지 혼자서 부임하셨어요. 나는 출생지인 동산촌(현재는 전주시)에서 춘포(현재 익산시)로, 또 당시 이리(현재 익산시)로, 그리고 우전면(현재 전주시)으로, 금암동(전주시)으로 다니다가, 전주여중과 전주여고, 전북대학을 다니는 내내 전주에서 살았어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축음기를 통해서 클래식 음악에 익숙했고 아버지가 자주 시를 쓰셨으며 그림도 그리셨어요. 어머니는 판소리의 일부분을 부르시고 장구도 조금 치셨는데, 노래를 딸들보다 잘 부르셨어요. 언니들은 한자리에 모이면 학교에서 배운 가곡들을 불러서 나도 웬만한 가곡은 다 흥얼거리곤 했지요. 막내로 자랐기에 부모님의 사랑이 두터웠고, 모든 언니들도 내겐 너그러웠어요. 부모님껜 힘듦이었어도 아들 없는 집에서 딸들은 평등하게, 자유로운 발언을 하면서 자란 듯해요.
임애월 : 이사를 자주하신 것 빼고는 비교적 다복함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셈이네요. 언니가 많으면 좋은 점이 더 많을 텐데, 언니 분들 중에도 혹시 문인이나 그림 그리시는 분이 계신가요?
정복선 : 부모님이 연로하신 탓에 제가 삼십대 초반에 아버지가 소천하시자 어머니도 의사인 다섯째 딸을 따라서 미국으로 이민 가셨어요. 자주 아버지,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울곤 했지요. 그 빈자리를 언니들이 어느 정도는 채워줬어요. 언니들은 모두 음악성과 예술성을 타고 났지만, 예술에 종사할만한 여유나 열정이 조금 부족했나 봐요. 언니들 넷이 국교교사, 한 언니는 중학교교사, 그리고 한 언니가 의사, 나도 중학교 영어선생을 몇 년 했어요. 아버지는 1907년생이시고, 그 시대에 평생 봉급만으로 딸 여덟을 가르친 아버지의 사랑과 교육열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죠?
임애월 : 그 시절이니까 가능했겠지요. 요즘은 자식 한둘 기르는 것도 힘들다고 다들 헉헉거리거든요.... 청소년기에는 미술대학 지망생이셨다고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왜 영문학과로 방향을 바꾸셨는지, 또 문학과는 어떻게 연을 맺으셨는지 궁금해져요.
정복선 : 사실은 중고교 시절부터 홍익대학교에 가려 했어요. 고2 때엔 홍대 고교생 대상의 미술실기대회에서 입선도 했죠. 그런데, 고2 겨울 무렵에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누우셨고 어머니의 눈물어린 설득으로 서울유학을 접었어요. 전북에는 어디에도 미대가 없던 시절이라 그 중 영문학이 좋을 듯했을 뿐이예요.
임애월 : 그렇군요, 학교도 환경에 맞추어 가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이었지요.
정복선 : 그래도 영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문학이 좋아졌고, 과 봄소풍 백일장에서 뜻밖에도 내 시가 장원을 한 거예요. 시작(詩作)을 조금씩 하다 보니까, 미술 말고도 시라는 또 다른 예술에 매혹되었어요. 시집들을 읽게 되었고 시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소맷자락에 시라는 꽃물이 들어버렸나 봐요. 「완화삼」처럼.
임애월 : 운명처럼 자신도 모르게 ‘시의 꽃물’에, 시인의 길에 젖어 드셨나 봅니다.
아까 들어오기 전에 정원과 갤러리에 있는 조각 작품들을 잘 감상하였습니다. 부군께서 모 대학의 미대학장까지 지내신 조각가님이신데, 혹시 미대에 대한 로망이 그렇게 이루어지신 걸까요?
정복선 : 물론이죠.(웃음) 함께 미술실에서 실기 연습하느라 열심이었던 한 친구가 홍대 조소과에 입학했는데, 그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어 결혼에 이르렀죠. 내가 사랑한 미술을 그를 통해서 사랑한 점도 있을 걸요. 아버지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 중에 성격이 운명을 만든다, 라는 말처럼, 내 인생의 길은 이렇게 정해져버렸어요.
임애월 : 선생님께서는 1988년, 그렇게 이르지는 않은 나이에 《시대문학》을 통해 그 운명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셨는데, 등단 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정복선 : 대학시절에 신춘문예에 한번인가 도전해봤으나 역부족이었어요. 직장생활과 결혼생활로 한참동안 시를 잊었다가 삼십 초반에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어요. 본래 예술가가 꿈이었는데, 그 예술의 성 밖 변경에서 서성대는 걸로는 삶에 대한 만족감이 없이 소외감만 생겼거든요. 시인이 꼭 되려는 절박함은 삶의 세속성에서 벗어나서 본래의 성스러운 세계를 향한 비상과 소통을 꿈꾸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을까요. 한국여성문학인회의 백일장에서 시부문 장원을 한 일이 있고, 본격적인 국문학 공부를 위해서 성신여대대학원 국문학과에 들어갔는데 첫 등록금이 없어서 꿀 정도로 무모했어요. 대학원공부 외에 전과한 학부 2년 과정의 학점을 따느라 힘들었죠. 그때 시인이자 평론가인 한영옥 교수의 강의가 좋았고, 석사학위 논문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타난 순환구조 연구》의 지도교수로는 허영자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 무렵에 수필가인 친구를 통해 시인이신 성춘복 선생님을 뵙게 되었고 습작과정을 거쳐서 그분이 발행하는 《시대문학》으로 등단했어요.
모두 1980년대에 일어난 일들이고, 제 인생의 가시연꽃빛 나날입니다. 등단 후에 시인들과 더불어 국내여행뿐 아니라 외국여행의 기회가 많았는데, 기억나는 것은 서정주 선생님과 함께 한 한강유람선에서의 시낭송회, 또 조병화 선생님과의 방콕 및 국내 세계시인대회 등이 있어요. 『시대문학』에 5년 반 동안 <시인이 만난 시인>이라는 연재를 맡아서 만나 뵌 22인의 시인들 영상이 지금도 남아 있고, 그 중에는 김구용 선생님, 박재삼 선생님, 홍윤숙 선생님, 김영태 선생님 등 고인이 되신 분들이 있으며, 최승범 선생님을 위시하여 황금찬, 허영자, 민 영, 오세영 선생님 등 이 땅의 멋진 선배 시인들과의 대담이라는 영광을 누렸어요.
임애월 : 문학이라는 운명의 한복판으로 거침없는 진군을 하셨네요. 최근의 문단활동 근황도 들려주세요.
정복선 : 최근에는 박제천 선생님의 <문학아카데미>에서 좋은 시를 선정하여 짧은 ‘감상평’ 을 쓰는 작업을 합니다. 즉 『시인들이 뽑는 좋은시』라는 책인데 필진으로 참여해서, 2014년, 2015년, 그리고 올해까지 발간되고 있어요. 또 두 권의 시집에 해설을 쓰는 모험도 했습니다.
임애월 : 저도 몇몇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올해의 좋은 시’ 류의 작품집들을 읽어보고 작품이 실리기도 해봤습니다만 거기에 작품들을 선정하시는 분들이 과연 한해에 수만 편 이상 발표되는 그 많은 시들을 다 읽어보기는 하시는지 그게 참 궁금했거든요. 그냥 대체로 잘 알려진 시인들이나 같이 활동하는 문예지, 혹은 본인과 가까운 시인들의 작품을 싣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요. 어떻게 작품을 선정하시는지요?
정복선 : 이 질문은 내가 충분히 대답할 수 없군요. 출판사마다 나름대로의 지침이 있을 겁니다. 우리는 필진이 13인 정도이고 한 사람이 12-3인 정도를 선정하는데, <문학아카데미>에서 발행하는 계간 『문학과 창작』에 발표된 작품들 위주로 선하지만 개인시집이나 타지에서도 좋은 시인(시)을 선정하는 재량이 있어요.
임애월 : 2004년에 출간하신 다섯 번째 시집 『여유당 시편』이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으셨는데 여행지에서 쓴 시편들이 유독 많아 보입니다. 작품에 미시령, 하회마을, 곰소, 경주, 채석강, 화진포, 간월도, 만경평야, 영천사 등이 등장하는데 혹시 작품 구상을 위한 여행을 자주 다니시는지요?
정복선 : ‘유목’과 ‘정주’에 대한 서로 길항하는 갈망은 인류의 진화 속에서 나에게로까지 전해진 DNA 탓인가 합니다. 아마도, 아프리카로부터 시작하여 전 지구로 퍼져나간 인류의 끊임없는 탐험심이, 초원을 가로질러 말을 타고 다니던 그 숙습(宿習과 熟習)이, 비록 이 생에서는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다 해도 사라지지는 않았나 봐요. 한편으로는, 끈질기게 한 곳을 찾아내서 정주하고 싶어함도 포함해서 말이죠. 많이 여행하고 싶었고 기회가 닿는 한 가곤 했어요. 작품은 여행하다 보면 저절로 얻게 되지요. 늘 시를 잊진 않으면서도 일부러 시를 위해서 여행한 건 아니예요.
1
역광 속에 그가 앉아 있다
등 너머로 떨어지는 햇살
세상은 언제나 대숲에 던진 칼바람 소리
몇 천 밤을 걷고 걸었던가
다산(茶山) 기슭엔 정석(丁石) 자만
차갑게 얼어붙어 있다
2
영하, 밖에서 안쪽으로 퍼져오는 살얼음
안은 밖보다 어둡고
밖 또한 안보다 어둡다
어둠을 씻는 그는
책 한 수레 싣고 어디로,
그 긴 유배의 죽음보다 더한
시퍼런 강줄기
어둠 속에 있었으나 못다 핀
사랑, 들끓으며
마음속마저 어두웠겠는가
여유당 뜨락은 텅 비어
3
저물녘 쪽배를 저어간다 강화도에서 석모도 쪽
겨울 바다는 노을을 받아 찬란한 만큼
깊은 속 더욱 쓰라리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스스로 열지 않고서는
그 밤 안으로 죽을 것만 같은 고독
4
그곳엔 하루 종일 낙엽이 졌다
어제도 지고 오늘도 내일도 졌다
부끄럽고 부끄럽게 물든 속살
시나브로 시나브로 지고
벌레들이 툭툭 떨어지고
객지에서 객지로
아침이면 천지가 녹이 슬어
조금씩 조금씩 바스러져 내리는데
별들도 바스러지고
5
역광 속에
누군가 앉아 있다
대숲에 떨어진 단도가
썩어
죽순으로 돋아나는 동안
- 「여유당 시편」
인용된 이 시는 오랜 동안의 구상과 습작 끝에 정리한 것으로, ‘정약용 선생’이라는 이미지를 차용했어요. 다산 선생은 내가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 싶은 분이예요. 18년간의 유배생활, 그 굴욕과 고독과 비애를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가시연꽃잎이라고 투덜대기가 미안하죠.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박석무 편역)에서도 일면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개인적 고통을 초월한 그분의 나라와 민족, 혈육과 지인들에 대한 사랑은 통찰력과 혜안을 지닌 분임을 절감케 합니다. 강진의 다산초당에는 땡볕의 날들에 혼자 찾아가봤고, 수종사 근처 양수리 한강변의 <여유당> 생가엔 지금과 같은 개발이 없던 시절부터 종종 찾았어요. 어느 비오는 날, 친구와 둘이서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낙숫물을 바라보며 무념무상에 빠질 때에도 다산 선생은 추녀마루 위를 스쳐가는 바람결이었을까요.
‘긴 유배의 죽음보다 더한’, ‘그 밤 안으로 죽을 것만 같은’ 고독과 어둠을 넘어서 마침내 ‘다산과 ’여유당‘을 넘나드는 경지에서의, ’단도‘가 소멸하여 ’죽순‘으로 재생되는 시간성을 담고 싶었어요.
임애월 : ‘대숲에 떨어진 단도가/썩어/죽순으로 돋아’난다는 표현이 기가 막히네요. 둘 다 강렬하고 날카롭고 곧은 이미지의 상징인데 ‘단도’는 금속성이면서 언제든지 가능한 숨은 공격성을 지니고 있는 반면에, ‘죽순’은 이제 막 돋아나는 대나무의 어린 순으로써 다 자라나기까지의 시간적 여유와 대나무로 성장한 후의 쓰임새에 따라 대숲이 되기도 하고 소쿠리가 되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서는 죽창이 되기도 하는 다변적인 자질을 갖고 있는데, 이 두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매우 넓으면서도 긴밀하여 그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천지도 녹이 슬어’가는 이 시대에 그 죽순은 과연 어떤 모양새로 이 세상과 소통할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정복선 : 임 주간님의 질문이 많은 걸 함의하고 있네요. 내 시를 나보다 잘 이해해주니 썩 안심이 되고요. 암울했던 한 시기의 자화상이 시화(詩化)되는 과정에서, 실제의 경험과 상상력이 혼융되어 상당히 극적인 이미지가 된 듯합니다. 시대의 흐름과 독자의 상황에 따라서 새롭게 공감을 느껴주면 좋지요. 독자의 마음밭에서 연둣빛 죽순으로 솟아오르길 바라고, 언제든 임 주간님의 깊이 있는 평을 기다릴게요.
임애월 : 2008년에 출간하신 영한대역시선집인 『Sand Relief』는 직접 번역을 하셨는지요?
‘북’이 ‘Drum’으로 영역되잖아요. 선생님 작품 속의 ‘북’은 ‘접시처럼 재잘거리는 북’ 등 그 형태가 다양하게 등장해서 그래도 덜 어색한대요. 한국의 ‘북’은 서양의 ‘Drum’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서 일반적으로 ‘북’이 ‘Drum’으로 번역되면 그 의미의 전달이 아주 애매해지는 경우를 봤거든요. 번역하실 때 서로 다른 언어의 의미장이나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그런 류의 어려움도 많으셨을 것 같거든요.
정복선 : 직접 번역할 만큼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하죠.(웃음)
고창수 시인께서 어려운 일을 맡아주셨어요. 전문적인 번역가로서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 파키스탄 대사로 근무할 때 그곳 민속박물관에서 제작한 단편영화 ‘모헨조다로’ 는 서사시와 영상의 융합작업으로서, 시적, 예술적 감성과 철학적, 종교적 사색에 의한 역작이죠. 외교관이자 시인, 영상예술 및 사진작가, 그리고 번역문학가입니다.
내 시 속에서의 ‘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북’을 말하며, 한 생명체로서의 꿈 혹은 욕망에 대한 상징입니다.
임애월 : 아, 네.... 그러셨군요.
「바그다드 카페」나 「고비사막」, 「사막 한가운데」 외에도 사막으로 은유하거나 꿈꾸는 작품들이 간간이 보이던데, 선생님께 ‘사막’은 어떤 의미인지요?
정복선 : ‘사막’은 내 자신 및 이 세계의 ‘한계성’에 대한 상징인데요. 위에 언급한 세 시편들의 창작시기가 달라서 은유의 폭은 다르지만, 지금 다시 읽어 보니, 「바그다드 카페」에서는 노마드적인 존재자의 고립과 창작에 대한 은유이고, 「고비사막」은 탈자아를 통한 자유와 자연에의 희구를, 「사막 한가운데」는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불가능한 꿈을 은유한 것입니다. 실제로 몽골초원의 끝이자 고비사막의 시작 지점의 <게르>에서 일박을 한 일이 있는데, 낙타를 타고 건너보지 않고서는 사막에 대해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다만, 새벽녘 비단 같은 안개의 띠를 두른 지평선의 아름다움이 잊히지 않네요.
임애월 : 유목의 근성이 아직도 남아있는지 저도 근래 가장 가까운 여행계획이 사막을 건너보는 것이랍니다.(웃음)
2012년에 「무공적」으로 ‘한국시문학상’을 받으셨는데 ‘회심과 각성의 시편이 삶의 비의에 존재의 결을 새겨내는 부조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준다’는 박제천 시인의 평처럼 이 작품을 읽고 나면 그 울림의 물결이 크게 다가오네요.
어릴 적부터 불고 싶어 한 피리가 있다
문득문득 입술을 대고 불어보았고
어떻게 하면 소리를 낼 수 있을까 궁리했었다
바람이 마음속에 몰려오고 몰려가고
언젠가는 피리를 제대로 불게 되겠지, 되겠지,
어느 날 피리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렸다
서랍을 뒤지고 다락방, 선반을 뒤지다가
티끌 속에서 피리를 찾아냈다
말갛게 씻어낸 아침,
열린 창밖에서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새소리였다
바로 저거다!
새도 죽을힘을 다해서 제 목숨줄을 연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바람도 억겁 동안 지구를 떠돌아본 솜씨로
잣나무숲을 연주하고 있음을 알았다
전 생애를 기울여 제 몸을 연주한 끝에 얻는 한 소리
그것이 저 맑은 새소리, 저 무상한 바람소리라면
피리는 잊어도 되겠다
- 「무공적」
최선의 삶을 살아내는 자에게만 길은 열린다는 의미로 저는 이 시를 읽었습니다만 작품의 창작 의도나 배경 등을 작가님께 직접 듣고 싶어집니다.
정복선 : 네, 그렇게 읽어주시면 돼요.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아침에 창을 열면 보이는 잣나무 숲과 들려오는 새소리들과 더불어서 살아가는 이곳에서 얻은 시입니다. 동물들은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까요? 인간은 목적의식 없이도 살 수 있는 걸까요? 오디세우스는 20년간의 파란만장한 유랑 속에서 왜 끝까지 고향 이타카와 아내 페넬로페에게로 돌아간 것일까요? 이 시를 통해서, 인간으로서의 모든 목적을 잊고서 이 세계를 혹은 우주를 그냥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역설적인 생각을 한번 해보면 어떨지요.
임애월 : ‘오디세우스의 이타카’나 선생님의 청우산 계곡이 말해주는 것은 결국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한 모든 목적을 초월한 목적이 고향, 즉 순수무구한 자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섯 번째 작품집이지요? 『마음여행』은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데다가 시편들 전편에 불교적 색채를 짙게 깔고 있어서 수행자로서의 마음 자세가 느껴지는데요, 불교와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으신지요?
고명수 시인은 방황과 유목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정주의 삶’으로써 오히려 자유를 얻어내고 ‘원융무애’한 경지에 다다랐다고 평했는데 불교경전들이 그 ‘정주’의 마음의 고향과도 관련이 있는 듯해서요.
정복선 : 어릴 적부터 현존하는 세계 너머의 우주 혹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죠. 인간세계를 초월한 비의의 세계에 대한 탐구심 정도? 대학시절에 영어성경을 통해서 인생관에 영향도 받았는데, 풀지 못한 암호 같은 것, 풀리지 않는 매듭 같은 게 남았지 않았나 싶어요.
중년 이후에 만난 불교는 경전의 해석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우연히 문고본의 『금강경』을 만났는데, 한문을 우리말로 옮겨 놓았지만 해독불가, 그 뜻이 궁금하기 짝이 없었어요. 그래서 어떤 절의 <금강경 강의>를 들었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던 차에, 친구가 개화사 주지스님의 명강의를 권유해줬어요. 접하지 못한 낯선, 새로운 세계였고, 확연무성(廓然無聖)한 세계에 대한 눈뜸이랄까, 무한한 호기심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공부라고 할 수 있었죠. 일요일마다 경전강의 및 다회에 10년을 나갔었고, 그동안 몇 권의 경전을 읽었어요. 경전들은 詩처럼 낯설지만 심연을 품고 있는 책들입니다. 기원전부터 수천 년 동안 가감해서 전해 내려온, 삼천대천세계 속의 존재에 대한 인류의 심오한 사색과, 해탈에 이르는 수행법에 대한 안내서라고 해야겠어요. 내겐 수행자라는 말은 쓰면 안 되고,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위해서 들끓는 수평선을 잡아당기는 사람이죠. 시집 『마음여행』은 이런 과정에서의 무의식적인 심경이 드러난 모양이네요.
임애월 : 불교경전들은 저도 읽어보려고 한두 번 시도해 보았지만 너무 어려워서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거든요.
10년이나 공부하셨으니 작품 속에도 그 경륜과 깊이가 묻어나올 수밖에요.
정복선 : 방랑은 시인이 타고난 마음의 숙명이겠지요. 마음은 아침부터 밤까지 온 지구를 샅샅이 스치고 다닐 수가 있고, 온 우주를 휘돌아서 별들과 유성우를 만날 수가 있으며, 꿈속도 휘젓고 다니고 과거와 미래까지도 오가기도 합니다. 한때는 이 삶이 유배지라는 생각, 위리(圍籬)를 부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겠으나, 모두 추억입니다. 이 삶에, 이곳에, 정주하지 않으면 어쩔 거냐는 물음도 일고, 마음속에 꽃이 있으니 부러 꽃씨를 뿌릴 필요가 없는 경지를 원해요. 어떤 여행이나 따라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아무데도 갈 필요가 없는, 그런 경지를 추구합니다.
불교의 초기경전인『잡아함경』에서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차유고피유)/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며(此生故彼生 차생고피생)//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此無故彼無 차무고피무)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此滅故彼滅 차멸고피멸) 라는 <연기법緣起法>으로 모든 존재의 상호관계 내지 인과관계를 드러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중중무진의 인드라망의 인연 속에 내가 있으므로, 현재의 내 삶이 맘에 안 들어도 내가 만들어 온 것, 내게 주어진 것이죠. 오히려 한걸음 나아가서 남은 시간을 옥잠화꽃빛으로 머물다가, 향처럼 다른 세계로의 건너감을 꿈꿉니다.
임애월 : 네, 지금 제가 행동하는 일거수일투족이 다음 생의 삶의 모양을 결정한다는 말씀으로 알아듣기는 합니다만 100% 다 수용하고 그 내용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기에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미련이 제게는 많은 듯합니다.(웃음)
「마음여행」 연작시를 따라가다 보면 ‘마음속에 잡동사니가 가득할 땐 울리지 않는다//마음속에 날선 유리가 있을 땐 깨지는 소리가 난다//마음이 못(池)이 되면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목탁소리」처럼 고승과 선문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선적인 이미지들이 마음을 정화시켜 어딘가에 ‘정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크고도 넓은 마음의 세계’를 여행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렇게 깊게 확장된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만큼 수행의 깊이가 깊어졌다는 의미로 읽습니다. ‘목탁소리’가 ‘낙숫물 소리’로 들리기까지는 깜깜한 무명을 깨워줄 엄청난 내공이 필요할 것 같거든요.
정복선 : 이 시 한편 속에 제 인생이 함축되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청춘의 모험심이나 야망의 시기를 지나서, 좌절 및 이 세계와의 불화의 과정을 겪었고, 이제는 타자와의 화해 및 우주와의 화음을 이루어나가고 싶다는 소박함이 들어 있으니까요.
스스로 마음을 확장해 나가려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지푸라기 하나가 걸려서 잠을 못 이루는 일이 많은 게 사람의 한계이니까요. ‘낙숫물’로 떨어지는 일, 하찮은 빈 곳에 떨어지는 일, 누군가에겐 물소리로, 음악으로, 화해의 손길로, 따스한 말씀으로... 들릴 때, 그때가 바로 무명도 없고, 무명의 다함도 없음에 이르는 순간이 될 거예요.
임애월 : 고명수 시인의 말처럼 ‘마음여행’이 이제 ‘절대수용의 경지’까지 이르신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 저 산과 이 계곡의 바람소리도 한몫을 했을까요?
정복선 : 그렇겠죠. 도연명의 「귀거래사」, 이백의 「산중문답」, 또 <무릉도원>이나 <샹그릴라> 등에서 엿보이는, 옛사람들이 귀향 또는 이상향을 원했던 이유는 무얼까요. 현실 속에서 만족하기 어려운 사람살이를 여실히 드러내는 게 아닐까요. 사람들은 사람들과의 순수한 관계보다 오히려 개인적 욕망에 지배되는 경향이 강하지요. 그럼에도, 환경에 의해서 조금씩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 틈에서가 아닌 산과 계곡의 바람소리와 새소리 속에서 사는 날이 많아지면서 스스로 나무가 되어가는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임애월 : 대자연만큼 좋은 친구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만 한적해서 외롭지는 않으신지요? 물론 외로움도 좋은 친구긴 하지만요.
정복선 : 고립감으로 우울증에 빠질 듯한 때도 더러 있었어요. 사실, 오래 살아온 서울살이를 사랑하는 편이니까요. 한 사람을 선택함으로써 예까지 이르렀기에 선택에 대한 책임은 이 생애에서 내려놓을 수가 없으므로, 역으로 제 마음을 내려놓는 겁니다. 한편, 어린 시절에도 혼자 놀기에 여념이 없어서 어머니가 귀가하셔도 아는 체도 안 해서 오히려 섭섭하셨다는 말도 들었어요. 국민학교 교장이셨던 아버지를 따라서 국교를 네 군데나 전학 다니며 교장관사에서 살던 날들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데, 텅 빈 운동장에서 혼자 철봉을 하거나 소나무 등걸 위에 누워서 노래를 부르고, 저 산 너머, 우주 너머를 동경하며 자랐어요.
사람들과의 복잡한 삶의 과정을 겪은 후, 이제 다시 그 옛날에 혼자 놀았듯, 집에서 음악 듣고 차 마시고 책 읽고 컴퓨터로 글 쓰고 인터넷도 하고 TV 보며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많아졌어요. 맑은 공기와 자연의 향, 나무들과 꽃, 또 새소리와 냇물소리, 바람소리가 제 하루의 배경이지요. 이런 곳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리석다’라고 생각해요. 남은 소망이라면, 새 세대를 위해서 무탈한 날들을 바랄 뿐, 동북아의 평화공존 및 세계평화를 기원할 뿐...
임애월 : 네, 전쟁 걱정이 없는 평온한 지상의 시간들은 우리 모두의 바람이지요.
최근 모 문예지에 신작시 5편을 발표하셨는데 그 작품 평에서 윤정구 시인은 ‘정복선 시인의 시가 가진 큰 덕성의 하나는 관념을 완벽하게 탈피’하여 구체적인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평을 읽었어요. 앞으로의 시 쓰기의 방향이 궁금합니다.
정복선 : 시는 은유와 상징에 의한 이미지로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롭고 낯선 집을 축조하는 일이죠. 나는 늘 비슷한 일상 언어의 식상함을 알아요. 같은 꽃이라도 들길에서 볼 때, 화분에 있을 때, 또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들여다볼 때가 다르잖아요? 시적 이미지가 다른 차원으로 가는 암호가 되었으면 해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사물들이나 사건들을 블록처럼 이렇게 저렇게 쌓아올려서, 눈에 보이지 않는 태초의 순수한 시간에 도달하는 통로를 가리킬 수 있길 바랍니다. 시는 독자를 통해서 또 다른 이미지로 변주될 때 그 가치를 더하는 거니까요.
시의 쉽고 어려움, 난해성에 대한 논의보다는 시인의 시를 쓰는 자세의 진정성과 절실함이 더 필요하다고 봐요. 시를 통해서 삶의 덧없음 혹은 무의미함이라는 폐허에서 소멸과 재생의 우로보로스적인 순환성을 생각하며 예술이라는 불멸의 가장자리를 넘볼 수 있다면, 계속 시를 쓰는 의미가 깊어지지 않을까요. 나아가서, 이 우주와 만물의 무구한 아름다움과 생명에 대한 페이소스를 잊지 않으려고요.
“폐족(廢族)이라 벼슬은 못하지만 성인(聖人)이야 되지 못하겠느냐, 문장가가 못 되겠느냐?” 라는 다산 선생의 말씀이 내겐 의미가 있어요. 이번 생에서의 꿈 이루기와 책임 감당하기를 잘 해내질 못했으니, 좋은 책을 찾아 읽는 것, 그리고 시 쓰기를 느긋하게 더 해보려고요. 내가 떠나왔던 곳이라고 혼자 우겨보는 곳, 자주 꿈속에서 접하는-3차원의 언어로는 옮기지 못하는-저 미지의 세계로 언젠가는 귀환해야 하지 않겠어요?
임애월 : 모든 ‘생명에 대한 페이소스’는 예술인이라면 꼭 지니고 있어야할 덕목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이렇게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다 보니 제 마음도 자연스럽게 정화가 되는 것 같습니다. 고요해진 선생님의 마음이 제게도 조금씩 전염되나 봅니다.(웃음)
오늘 함박눈이 내리긴 합니다만 내일모레가 雨水네요, 봄의 시 한편 들려주세요.
정복선 : 문득 생각나는 시 중에 「복사꽃 편지」가 있네요.
복사꽃나무를 뺑 둘러 심었답니다
내년 봄 혹은 후년이나 그 다음해쯤
여기 오시면......
복사꽃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가는 이
고향집 우물에 목마름 적시고 싶은 이
고향집 빨랫줄에 전 생애를 내다 널고
진진했던 삶을 접어둔 부챗살처럼 펴볼 이
아니, 그곳에서 떠나신 부모님께
생전에 해드리지 못한 말씀, 심중에 남아 있는 말씀을
조곤조곤 들려드릴 이
못 만나는 피붙이 형제, 아픈 새끼들을 만나서
고구마든 뭐든 한 소쿠리 쪄서 호호 불며 나눠 먹고 싶은 이
아니아니, 복사꽃 그늘에 무심히 앉아 있을 이
복사꽃 꽃잎 흩어질 때 노래 부를 이
꽃잎 따라 오래오래 떠다닐 이
-「복사꽃 편지」
임애월 : ‘고향집 우물에 목마름 적시고 싶은 이/고향집 빨랫줄에 전 생애를 내다 널고......’ 내리는 눈발 속에서 이 시를 들으니 참 포근하면서도 알 수 없는 여운으로 가슴이 저릿해 오네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 정말 ‘꽃잎 따라 오래오래 떠다니’고 싶을 때, 문득 한번 이 계곡으로 흘러들고 싶어질 것도 같습니다. 어느 봄 복사꽃이 필 무렵에요.....
이렇게 긴 시간을 기꺼이 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정복선 : 오늘 하루 눈발 속에서 ‘걱정도 없이’ 詩 같은 시간을 함께 누렸어요.
멀리 와주신 임병호 회장님, 강희동 시인님과 임 주간님, 세 분을 전생에서부터 기다린 건 아닐지요.(웃음) 책이 나오면 또 한 번 즐겁겠죠. 눈길 조심해서 안녕히 가십시오.
천지를 흐르는 바람과도 같던 노마드의 계절을 지나 이제 정주의 길목으로 들어선 정복선 시인은 가평 청우산 산자락에 기대어 집 앞뜰에 복사꽃나무를 심으며 마음으로의 긴 여행길에 접어들었다. 이 함박눈 그치면 곧 연녹색 봄물이 오르는 해빙의 시간이 시작되리라.
한 시인의 삶을, 작품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은 곧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오늘 가평에서 정복선 시인님의 무한하고 고요한 마음 속 여행을 곁눈질하면서, 필자는 살면서 복잡하게 엉켜있던 마음속의 실타래를 조금은 풀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돌아오는 길에 꽁꽁 얼었던 북한강물 풀리는 소리를 들었다.
정복선 시인약력
전주 출생(옛 지명은 동산촌)
전북대학교 문리대 영문학과 졸업
성신여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88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여유당 시편』(경기문화재단지원금 수혜), 『마음여행』 등 6권과
영한대역시선집 『Sand Relief』
한국시문학상, 빛나는 시상 수상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한국시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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