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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계정씨(草溪鄭氏)의 2대 종헌(宗憲 ; 宗訓)은
국민생활(國民生活 ; 百姓本分)은 세습충효(世襲忠孝)로 대대로 충효사상(忠孝思想)을 답습하여 지킨다는 뜻이고,
개인생활(個人生活 ; 修身齊家)은 가전청백(家傳淸白)으로 집집마다 청백정신(淸白精神)을 전수 계승한다는 뜻이다.
예부터 역대보첩(歷代譜牒 ; 傳承族譜) 및 종사(宗史)에 등재(登載) 계승(繼承)되고 있기에 첫페이지(첫장 ; 首面) 첫머리(序頭)에 인용한다.
사촌리, 동촌리, 혈곡리, 파수리 선영 벌초 실태
사촌리는 벌안 중간에 풀이 그대로 있었다.
동촌리는 벌초를 했으나 하단에는 풀을 걷어내지 않고 쌓여 있었다.
혈곡리는 하단부 분묘는 벌초를 하지 않고 제외시켰다.
파수리도 하단부 분묘도 벌초를 하지 않고 역시 제외시켰다.
선산 벌초 관계는 선산 인근 마을의 예초기 잘 다루는 사람에 위탁을 주면 선산 내의 모든 묘는 말끔히 벌초해 준다. 나중에 현장에 확인차 가면 그러했다. 농협에서 알선하는 벌초 위탁업체이 아니라도 추석 명절 전 일당 벌이가 되기에 마을에도 할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종중을 맡은 사이비 3인방(이하 여러 사례에서 이하 완전 사이비다)은 후손을 동원하여 자체적으로 해야 한다며 입으로만 주장하더니만, 3년은 커녕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상기와 같이 처삼촌 벌초하듯이 하단은 제외하고 대충으로 하고 말았다.
사이비 3인방의 입에 발린 번지르한 말처럼 후손의 참석이 쉽지 않을 것이다. 후손의 자발적 동참도 진실하고 진정성으로 대해야 한다. 3년도 못가서 30여 명에서 5~7인 제들 뿐이다.
농경시대에는 후손이 선산의 인근에 기거했기에 수백년 간 자체적으로 벌초를 해왔다. 당시는 예초기가 없었고 낫으로 직접 손으로 베었다.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위선충효사상은 현대와는 많이 달랐다. 지금은 시대가 변하여 농촌 출신이 아니기에 후손들이 낫질도 할줄 모르고, 예초기 다루는 기술도 없다.
잘못하면 크게 다치는 경우도 주변에 허다하다. 도회지 출신 젊은 후손들이 주변에서 일 도우려다 아차하는 순간에 칼날이 솟은 돌 등에 튀어 다치는 사고가 빈번하다.
예초기는 안전을 지키지 않으면 큰 사고가 난다. 예로 함안 산인의 중학 동창생이 동생이 다루는 예초기가 돌뿌리에 팅겨서 주변에서 낫질하는 형이 허벅지를 크게 다쳐서 2개월 간 장기 입원한 적도 있다.
선산 아래 예초기 다루는 사람을 찾아 맡기면 비용도 적게 들기에(4곳 선산 모두 60~80만원 내외) 5년 전부터 그렇게 하자고 제안 했으나 3인방의 정해영 등 한 둘이 주동으로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
그런데 입으로 말하던 사람들이 3년이 채 못가서 상기와 같이 선산 벌초를 속담의 말 처럼 처삼촌 벌초하듯이 대충하고 있었다. 내가 제안한 것은 요즈음 젊은 후손들을 어렵게 동원해봤자(문자 메시지 등 협조 전화) 비능률적이었다. 얼음 박스에 각종 음료와 간식 준비물과 식당 주선(점심)의 수고로움 등 경비만 많이 들고 일의 효율이 없었다.
위탁업체나 개인에게 시켜놓고 벌초 후 현장 확인만 하면 되는 것이다. 본인이 2004년 추석 전 벌초 부터 도유사 겸 대표자(2003.11.2~2013.11.17 ; 사이비 3인방의 경충재 추담 사건 전까지)로 벌초를 주관하면서 개선해야 겠다고 느낀 체험의 결과였다.
정해영의 주장처럼 직접하자는 것은 공동선산이 아닌 개인이 소유한 산이나 임야 소재의 부모나 조부, 증조부의 묘소등 직계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 종중 명의의 200~400년 윗대의 상기 4군 데 선산 묘소는 위탁을 줘야 한다는 취지였는데 사이비 3인방은 결사 반대 했다.
2016.9.10(토) 파수리 선산 현장 확인차 가보니, 밀양 박씨 묘 1가 선산 수재공 제3(셋째) 손자 정이순 공 묘 밑에 있는데, 아름들이 소나무를 4군 데나 중간에 톱질을 했는지 예초기로 했는지, 흉물스럽게 찍어 놓고 있었다, 사진 참조하기 바란다.
이 소나무는 박가 놈(나쁜 짓을 했기에 존칭어를 쓰지 않는다) 묘 옆이 아니고, 정이순 묘 옆의 소나무인데 박가들이 자기들 묘에 가지가 그늘을 지운다고 무지막지하게 100여 년 된 벌안 노송을 4군 데나 그렇게 한 것이다. 박가묘는 우리 선산 땅에 옛날부터 어떤 인연으로 있었던 묘이지만, 남의 선산 안에 있는 주제에 상식에 어긋난 짓을 하고 있었다.
군청 산림과나 경찰서 민원실에 누가 그렇게 했는지 찾아내어 신고를 해야 한다. 사진상은 적게 찍혔지만 남의 선산 도래솔에 대한 예의와 도리가 아니라고 본다. 종중을 맡고 있는 3인방은 책임감으로 해결해야 한다.
사이비 3인방이 세운 망측한 엉터리 비석 제단도 2016.11.22 묘사 때 배부한 문헌상으로 지적했는데도 교체하거나 철거하지 않고 3년 동안 그대로 있었다.
비석에 윗대의 선조 휘(이름)를 묘사 때의 지위(紙位, 지방, 신주) 쓰듯이 본인(정일권)을 기준으로 표기한 것은 선조를 자기의 예하의 아랫사람 후손으로 만든 법도에 맞지 않은 표기이다. 그렇게 지방 쓰듯이 댓수는 선조의 휘(이름)를 상단 머리위에 쓰지 않고 후손은 맨 아래 측면에 낮추어 몇대손 아무개라고 적어야 한다.
윗대 선조에 대한 아무런 사적이나 기적에 대한 기록도 없다. 쉽게 말하여 어떤 조상(선조, 사람)이라는 내용 기술(이력)은 고사하고 간략한 기술(기록)마져도 없는 망측 그대로였다. 명단만 출석 부르듯이 나열하여 적어 놓았다.
420여 년 선조를 출석부처럼 적어 놓았다. 그런 비석를 사이비 3인방은 비석이 예법에 맞다고 세워놓고 있다. 엉터리 쌍놈 행위로 비석을 만들었다. 위선하라는 7기의 분묘 보상금 24,025,300원(정일권 수령 ; 2013.12.9)은 어디에 사용했다 말인가??
꼭 세나 대를 표기하여 후손이 알아보기 쉽게 하려면 시조 홍문공 광유후 정배걸로 부터 해당 선조의 세나 대를 표기하는 방법은 있을 수 있다. 시조 광유후 홍문공 정배걸로 부터 수재공 정구룡(배위)는 15세손이고, 정설(배위)는 16세손, 정이황(배위)는 17세손이 된다. 그렇게도 하지 않았다. 조상을 정일권으로 부터 댓수를 정해 아랫 후손으로 만들어 놓았다. 비석의 표기가 선조를 정일권의 후손으로 만든 꼴이다.
사이비 3인방은 세수와 대수(대수는 세수에서 1를 뺀다)도 셈할 줄 모르는 엉터리 비석을 세웠다. 모르면 주변의 아는 이에 자문이나 감수를 받아야 한다. 학력을 들먹이는 것은 다중에게 좀 미안하지만, 3인방의 2인은 초등이지만 1인은 고등으로 명색히 교육행정직(주사급)에 있었다. 주변에서 보고 듣는게 있는데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정도는 알아야 한다. 최초 잘 못 된 것을 발견하고서 즉시 지적했더니 정해영은 옳다고 주장했다.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상하여 동촌 부대부지 선산에서 이장해온 함안 공설묘원의 개개 분묘도 제대로 되었는지 한 번 찾아보니 그곳의 2기도 누구의 조언이었는지, 댓수 표기도 잘 못되어 있었다. 고조나 고조모의 손자는 현손(고손이지만 높을 '고' 자를 피하여 현손이라 표기한다)이라 표기한다. 꼭 댓수로 표기하려면 4대손이 된다. 이것을 모두 5대손이라 표기하고 있었다.(세와 대를 혼동하였다)
고조,고조모라면 비석판이 작다고 하지만 직계 후손의 증조부, 조부, 부, 자의 4대의 이름을 명기해야 하는 데, 위로 3대의 휘(이름)은 다 생략하고, 4대손(그곳에는 5대손이라 표기) 단 1인만 표기되어 있었다. 잘 못 되어 지적하니, 정해영은 맞다고(옳다고) 주장하기에 자기들 알아서 할 일이라 틀리든 맞든 소종중이라 그만 두었다. 이것도 상기 당 종중의 2,400만원 분묘보상금 농단 사건 때문에 자기들의 소종중의 분묘이장 비석판을 우연히 찾아보니, 그러햏다.
400여 년 전의 선무원종일등공신 수재공의 배위 진양정씨와 인천이씨 등 7기의 공동선조는 정일권 단독의 선조가 아니다. 그런데 나라(창원시)로 부터 받은 윗대 선조 보상금 24,025,300원이 제 돈인양 단독으로 제 이름만 명기(정일권)했다. 종중에는 항렬 상하가 있다. 안하무인 건방진 자다.
분묘보상금이 족보상 종손 명의로 입금되는 것을 악용하여 제 멋대로 사용했다. 주변 역시 회의 수당을 받으며 방치한 것이다. 그래서 사이비 3인방이라 2015.11.22 묘사 때의 호칭이다. 작금 2016년 11월까지도 사이비 3인방이다.
후손이 정일권 외에는 없다는 말인가? 선산이 제 단독 선산인가? 무례하고 무지한 자다. 후손에는 항렬로 규, 현, 영, 병, 용 자가 여럿 있다. 제 개인 돈으로 세워도 그렇게 못한다. 삼강오륜의 하나인 장유유서 즉, 위 아래도 모르는 자다.
23년 전 고인이 된 정삼영과 본인(정봉영)은 종중에 산과 위토 27건을 크고 작고를 떠나 집합시킨 공로자이다. 수재공 정구룡의 산과 위토는 군북면 동촌리 산104번지와 유현리803 - 2 답(논) 376평 2개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종중을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것이다. 그것도 답 하나는 유현리 논은 정금조와 정삼영 2인 개인 연명이었다.
정삼영 작고 후의 직계 후손과 생존한 정금조로부터 명의를 회수하여 창원의 네스트 오피스텔 817호를 매입했다. 개인 연명의 명의자가 죽으면 땅은 뺏긴거나 다름없이 어려움을 겪는다. 타 성씨 문중에서 그런 쌍놈 사건이 수없이 많다. 본인이 신속 해결했다.
그런 사례가 있다. 우리 종중에도 함안 군북 유현리 산 195번지 4,045평의 선산(증, 공조참판 정태원의 묘가 있는 275년 전의 선산임) 유현 유전 정병달에게 뺐긴 적이 있다. 남해고소국도 함안 휴게소 옆으로 하단부 유현리 산 195 - 1은 잘려나가 정병달이 보상금도 취하였다.
산이 윗쪽에 있었기에 큰 면적은 들어가지 않아 그런대로 다행이다. 주변의 야산은 100%가 함안휴게소의 고속도로에 편입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3인방의 400여 년 조상의 분묘보상금 2,400만원 농단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93.10.29 전후에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있어 당시 대표자 정삼영과 '초계정씨 함안경충종종' 설립 추진위원장 본인이 함안 가야면, 군북면, 함안면 관내 일원의 종토 28개를 조치법으로 수용(산하 중소 종종 것까지 편입함) 할 때 상기 함안 군북 유현리 산 195번지 14082m2(4,260평)도 특별조치법 유현리 보증인 이판기, 김차희(작고), 이병철(작고) 3명으로부터 종중 선산으로 보증 받은 서류가 보관되어 있기에 맨 아래에 사진을 게재한다.
정태규의 증손자 정병달이 함안군청 게시판의 30일간 공고 중에 이의서를 내어 정병달이 가져갔다. 정병달은 그런 소행 이후론 부끄러워서 묘사에 한 번도 온 적이 없고, 본인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족보로 나이를 검색해보니 올해 1955년 생으로 62살이 된다. 이런 몰지각한 작태가 없어야 한다.
'초계정씨 함안경충종중'(함안군 군북면 유현리 333 - 1 소재의 경충재에서 따온 종중 이름이다)을 고 정삼영과 본인이 1993.10.23 설립했다. 실무 총 책임자는 본인 정봉영이다. 종중명의로 돌린 물건(선산과 위토)이 대소 28개였다.
가야면 혈곡리 사이비 정재영은 23년 전 종중을 설립할 적에 손가락 하나도 까닥한 적이 없는 자다. 그런데도 등기부 상의 대표자 명의는 도둑 고양이처럼 몰래 바꿨다(가져갔다). 전 대표자를 배제시키고 작당한 도둑질(놈) 행위이다. 함안의 주변(부화뇌동자)은 모르고서 동조했다. 무례하고 천면피한 행위를 하였다.
대표자 명의 이전의 대표자 정재영을 보증한 인감증명 제출자는 사촌되는 가야 정해영과 재종(6촌)되는 도항리 정영상이다. 3인방 중의 김해 정일권은 핫바지 방귀로 살짝 빠지고, 나이 많은 정영상(1935, 82세)을 끌어들인 장본인은 정재영과 정해영이다.
보증인 2명을 채우기 위하여 연배가 높은 분을 억지(어거지)로 이용한 것이다. 3인방의 본인에 대한 고소 후 이 건 관계로 5개월 후 본인이 맞고소를 했는데 수사과정에 갑짜기 돌아가셨다 한다. 이 수사건은 한 사람의 작고로 수사에 면피를 준 셈이 되어 창원검찰청 마산지청에서 증거불충분이란 명찰(이름)로 종결되었다.
82세의 정영상의 갑짝스런 작고로 사이비 3인방의 죄를 구제해 주었다. 조사하던 검찰도 요즘의 농민 물대포 사건처럼 문제될까(트집 잡힐까) 들컥 겁이 났던 것(모양)이다.
창원시 상남동 네스트 오피스텔 816호와 군북면 유현리 333 - 1 경충재 재실터 등 유현재 소재 종토 6건 모두는 본인의 고조인 춘강공 정배민 산하 후손의 관련 위토와 선산을 집어 넣은 것이다. 춘강공의 종손은 마산 거주 정병열이다.
현재 전체로는 산과 토지 28건 중 3건이 줄어 25건이다. 3건은 군북면 유현리 803 - 2 답 376평으로 유현 유가수에 2007.12.24 평당 9만7천원, 3,650만원에 매도하여 종중의 있는 돈 없는 돈을 딱딱 걹어 모아 보태어 창원 상낭동 네스트 오피스텔 817호를 매입했다. 상기에서도 거론했다.
이 건과 기타를 가지고도 3인방과 주변 방조자는 내게 내용증명이란 것을 1차(2011.12.5), 2차(2011.12.16), 3차(2012.2.6)로 3회나 된다. 주모자는 3인방 중의 정해영이다. 마지막 형사 고소 사건까지 무고하는 내용증명 상습범이다. 이에 대하여 1차 답변서(2012.1.1), 2차(2012.2.13) 답변서, 3차 종합 답변서(2012,3.7)를 하였다. 답변서를 다 해 주었는데도 계속 무고 사건을 일으킨 자가 3인방의 이간질 주모자 정해영이다.
종중에 돈이 좀 붙으니(수익이 들어오니)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정해영이 농협조합의 감사를 좀 했다는 데, 듣기로로 '무엇이든 파는 게(들추어 내는 게) 취미'라고 했다. 우리 종중에서도 끈질기게도 그렇게 했다. 요즘 유행어(2016년 10월)인 '최순실 연설문 고치는 게 취미'라는 말과 일치했다.
또 3인방 중 정해영의 주도로 2011.11.30자로 3인방의 혈곡 정재영이 아닌 군북 월촌 정재영을 회장으로 부회장에 정병삼으로 하는 결의가 있었다며(군북 유현 유전까지 개인 서명을 받았다 함 ; 후일 울산 거주 정재근 증언) 내용증명(2012,2.3)을 본인과 오피스텔 817호, 918호, 1014호 3명의 임차인들에 까지 회장이 바꿨다며 제들 통장으로 월세를 보내라며 소동(무슨 일이냐? 며 임차인 모두 전화 문의)을 벌이기도 했다. 월촌 정재영은 2개월 후 업무를 감담 할 수 없다며 바로 사퇴했다. 농촌에 살지만 그래도 주제 파악은 하시는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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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400여 년 윗대 분묘보상금 2,400만원 위선사업에서도 보았듯이 군북 동촌리 산 104번지 보상금 1억 5,200만원 건과 산 104번지 소재 49기를 무연고로 빼았긴 분묘보상금 1억 5,500만원의 행정 소송 건의 중요한 과제가 산재해 있어 이들의 능력으로는 불가하다고 판단했다.
종중에 대한 위선사업의 사명감 책무(최초 종중을 설립한 자로서)로 쥐고 있었는 데, 이들 3인방을 비롯한 주변(부화뇌동이라 칭)은 본인이 무슨 꿍심(이익을 취하는 비리 ; 타 성씨 문중에서 간혹 발생함)이 있다고 의심 혹은 무고한 사건이 바로 상기의 1차 2011.11.30 자 월촌 정재영 회장 선임 내용증명과 2차 2013.11.17 자 묘사 때 경충재 마당 춧담에서의 인기식 투표행위의 현재의 사이비 3인방의 하나인 혈곡 정재영 회장 사건이다. 2건이 동명이인 모두 정재영이다.
3년간 맡겨서 지켜보니 현재의 결과물이 분묘보상금 2, 400만원 농단 사건이다. 상기 내용을 기록물로 남긴다.
글 내용이 다시 유현 위토와 동촌리 선산 건으로 이어진다.
당시 유현리 답 803 - 2(376평) 이 건 토지의 소유주는 토지경지정리 작업으로 조치법으로 시효 10년이 경과되지 않아 부동산 조치법으로 명의 회수가 안 되었다. 정금조, 정삼영(당시 작고) 2인 연명으로 되어 있었지만 종중에서 회수하는데 절차상 법적으로 안되어 그렇게 된 것이다.
군부대가 오면서 보상받은 군북면 동촌리 산 26번지 4,680평의 보상금 151,966,200(2011.11.8)은 양도세 11,591,090원 선납하고 남는 잔액으로 창원 상남동 네스트 오피스텔 918호,1014호 2개를 취득했다.
종중의 오피스텔 전체는 현재 3개이다. 본인의 고조 춘강공 정배민 816호까지는(종손 정병열) 총 4개가 되었다. 동촌리 선산 보상 건 이것 2개 매입시에도 사이비 정재영, 특히 정해영은 극구 반대했다. 절반은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묘보상금 2,400만원의 사용처를 볼 때 의심을 가질 만 하다.
특히 사이비 정재영은 1014호 매입시는 매입가를 1,000만원 업(올려)하여 본인이 취했다고 퍼뜨리고, 정해영은 반은 종중에서 현금을 쥐고 있어야 한다며 결사적으로 반대한 장본인이다. 소인배들, 이런 작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그리고 위토 1개가 줄어든 것은 혈곡리 사이비 정재영이 묘지한다고 떼를 쓰서 매도 매수한 혈곡리 102번지 54평이다. 혈곡리 102번지는 평당 5만5천원으로 매도금액은 300만원 종중 장부에 입금되었다.
이렇게 종중을 설립하고 공로가 있고, 창설한 사람이 생존하고 있고, 종중에 수십년간 벌초와 묘사에 참여한 종중의 어른들이 많은데 제 통장에 분묘 보상금 돈이 들어왔다고 만든 제단비에 제 돈인 양 단독으로 이름을 버젓이 명기했다. 그것도 정일권은 저 아래 병자 낮은 항렬로 서열로 치면 한참 아래의 병졸 격이다.
가관인 것은 임진란 선무원종1등공신의 수재공 정구룡의 배위 2기와 아들 정설과 배위의 2기, 장손 정이황과 배위 2분의 3기, 합 7기를 무례하게도 9대나 낮은 제(정일권) 5대조 정연민과 같은 서열로 이름을 병기했다(올렸다) 완전 쌍놈 비석 제단이다. 공동 선조로 임진왜란 선무원종1등공신의 2분 할머니를 정일권의 5대조에 합하여(보태어서) 추모제단을 만들고 그것도 정일권으로 부터 대수를 계산하여 적은 쌍놈 비석을 만들었다.
정일권의 5대조 정연민의 분묘이장 보상금은 별도로 정확히 4,557,100원이 따로 지급 받았다. 이 문제에 대하여는 민, 형사상 책임을 물을 것이다. 같은 소종중 후손인 정일권의 5촌 되는 김해 진영 거주의 정재영(1935년생, 82세)는 약 460만원에 대하여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소종중 460여 만원에 대종중 2,400만원을 걸치기 한 것이다.
정일권의 5대조 정연민과 배위 경주김씨는 분리해야 하는데, 400여 년 윗대 조상 7분을 비석돌 한 판에 합쳐서 명기하는 망측하고 패륜적 제단비를 만들어 버젓이 3년째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미친놈들의 제단비라고 감히 말한다. 불충 불효의 엉터리 쌍놈 비석이다. 이것이 바로(잘)되었다고 박수친 자가 사이비 3인방과 주변의 부화뇌동(4인)이다.
왜 잘 못돠었는지를 모르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무지 몰지각한 사이비 3인방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9대로 치면 270~315여 년(1대를 30~35년 기준으로 함)이나 연대 차이가 나는 저 아래쪽 후손인데, 엉터리로 제 5대조를 보태어 추모제단을 세운 것이 옳다고 방조하는 사이비들이다.
다른 성씨의 양반 씨족에는 그런 패륜의 예가 없다. 어떻게 선무원종1등공신의 배의 할머니 2분(진양정씨, 인천이씨)을 제 5대조 정연민과 보태느냐는 것이다. 상식 이하다. 법도를 모르는 자다. 이 내용을 밝히는 내 자신마져도 부끄러운 사건이다.
개장(이장)하여 조상을 모셔올 때, 부부(내외분)가 다른 선산에 있을 때는 꼭 부부 내외 2분을 병기한 후 다른 장소에 있는 소재지 위치를 표기하여야 한다. 그래야 다른 한쪽의 배우자가 어디에 있구나~? 하며 확인이 된다. 이런 기초적인 예법도 갖추어 지지 않았다.
정경부인 진양정씨와 정경부인 인천이씨가 누구의 배위란 표기도 없다. 쌍놈의 비석을 세워놓고 주변 벌초를 3년째 하고 있었다. 무식에 무식 그 자체이다. 이에 대한 3인방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 엉터리 비석이 옳다고 벌초까지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기가 찬다. 모르면 잣대를 즉시 내려 놓아야 한다. 잣대를 지금도 쥐고 있으니 계속 잘했다는 철면피다.
본인은 함안 파수리 산26번지 8,986평 중앙(가운데)에 경상남도 제1호 종중자연장지(일명 종중수목장지) 599평 허가를 2013.4.16 받았다. 9,000여 평의 중앙 센터에 받은 것은 앞으로 자연장지의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599평은 지목이 임야에서 묘지로 변경되었다. 100년을 내다보며 종중자연장지 허가를 받았다. 3인방은 이것도 반대했다. 이것 만드는 데(시작하는 데) 승인 도장 찍어 놓고는 잘 못 했다고(되었다고) 형사고발을 한 사이비 3인방이다.
경상남도 자연장지 제1호를 아무나 따는 것이 아니다. 이것 하고 물이 새는 경충재 재실 지붕개량하면서 무슨 비리가 있는 양(먼지를 털면 나올거란?) 나를 무고로 고소했다. 그것도 400여년 윗대 선조 분묘보상금 2,400만원에서 650만원을 고소용 변호사비(지출일 ; 2014.10.8)로 사용한 사이비 놈들이다. 주객이 전도된 도둑놈이라 감히 말한다.
부화뇌동자 중 1인(정영건이다)은 650만원 짜리 형사 고소장을 뒷쪽에서 몰래(본인 몰래 살짝) 작성해 놓고는 본인 더러 만나자고(전화상으로 이상한 언투의 압력이 있어 이상하다 했다?) 해서 뇌동자의 창원 소재 사무실에 갔더니(2014.11.19), '형님 어떻게 할거냐~?' 요지의 젊잖은 척 협박조(기세 등등 했다)의 말을 하기도 했다.
650만원 짜리 형사고소장이 없는 죄(가전청백의 종헌)를 죄를 있게 만드는 것(뒤집어 씌우는)으로 아는 사이비 3인방이다. 변호사 3명 의뢰 650만원 짜리 형사 고발 투망이면 뭐든지(고기 잡는 식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무지(형사 사건 과신)가 그 사건의 전말 내용이다. 이 사건의 변호사 고소장 작성 의뢰를 제안한 부화내동자 1인이 양심이 있다면 너무 잘 알 것이다.
또 경충재 시멘트기와가 1977.4.5 건축 준공 이후 37년이나 경과로 부식 되어 2014.11.4 내 개인돈을 선투자하여 기와형 강판지붕으로 교체했다. 공사비용은 600만원이 들었다. 본인 대납 부담금은 아직도 회수하지 못했다. 이유는 대표자 명의 탈취 사건 후, 창원오스텔 3개 중 2개의 월세 수입을 사이비 3인방이 탈취해 갔기 때문이다.
탈취일은 오피스텔 918호(임차인 ; 채호진)의 보증금 500만원 월 40만원은 2015.3.1부터이고, 1014호(임자인 ; 진권형)의 보증금 1,000만원 월 40만원은 2015.6.26부터이다. 이 이후의 월세 수익은 사이비 3인방이 취하고 있다.
현재 918호는 2015.4.27~2016.4.26 기간으로 보증금 300만원에 월 40만원으로 변경되었고, 1014호는 2016.4.16~2017.4.15 기간으로 보증금 2,000만원에 월 25만원으로 임차인이 변경돤 것으로 조사되었다.
918호는 2011.12.13 매입시 고정자산 보증금이 500만원이고, 1014호는 2011.11.10 매입시 고정자산 보증금이 1,000만원이다. 줄거나 증가시에는 시재(현금 잔고)에 가감으로 계상해야 하기 때문에 보증금은 그대로 존속해야 한다. 1014호는 보증금을 1,000만원 더 받는 바람에 월세 수입이 4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줄어들었다(낮아졌다)
사이비 3인방은 최초의 보증금(매입시 고정자산 ; 건물 매입 시 잔금에 포함된 금액) 그대로 하지 않았다. 918호는 보증금을 보증금을 5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낮추었고, 1014호는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늘리면서 월세를 40만원에서 15만원 낮추어 종중에 연간 180만원(15만원×12개월) 수익 손실을 보게 했다. 전체(총액) 보증금 금액으로 2개 오피스텔에서 합계 800만원(종중 장부 잔고에 계상할 돈)을 이자없이 놀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사이비 3인방은 본인이 잘 못하고 있다고 창원 '사람들법률사무소' 변호사 3인에 수임료 거금 650만원(2014.10.8 정영건 인출)를 들여 나를 무고했다. 3인방 개인이 변제 충당해야 한다.(두서없이 일사천리 열거로 상기에서도 거론)
그것도 650만원 돈은 420년 윗대 조상 분묘 7기의 보상금이다. 윗대 선조 위선사업은 안 하고 분묘 보상금을 변호사 수임료에 사용한 것이다. 본인에 대한 고소 고발금에 전용한 것이다. 본인을 무고하는 데 사용한 금액 650만원은 2014.11.4 경충재 재실 지붕개량 공사 대금 600만원 보다 많다. 아둔하고 미친놈들이다 라고 감히 말해둔다.
경충재 재실 개량 돈은 정봉영 개인 돈으로 대납했다. 이자들은 분묘 보상금 2,400만원에서 빼내어 나를 고소하는 데 사용했다. 수재공 정구룡 할아버지의 배위 2분(진양정씨, 인천이씨)의 위선사업(비석)은 온데 간데 없고, 나의 먼지를 터는 고소로 종권을 탈취하려 했다. 돈을 종권 탈취 변호사비에 전용했다.
주변 부화뇌동자 4인(이름 거명 안 해도 제들이 잘 안다, 명예를 조금 생각하여 거명을 생략한다)을 끌어들여 일을 저지른 종권 탈취 범죄자이다. 나쁜자(놈 자)들이다. 분개하고 통탄할 일이다. 수재공 공신 할머니의 분묘 보상금으로 초계정씨 함안경충종중 창립자를 본인을 무고한 것이다.
사이비 3인방의 신청 대리인(변호사 손정표, 이우성, 서인교)의 정봉영 무고 고소, 고발 사건에 대한 처분결과는 다음과 같다.
2015.5.22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윤동환 처분요지 ; 업무상횡령 혐의 없음
2015.10.8 부산고등검찰청 창원지부 검사 이재덕 ; 업무상횡령 항고 기각
2016.1.15 2015초재 재정신청 부산고등법원 창원제1형사부 재판장 윤종구, 판사 최진곤, 김도균 ; 재정신청 기각(각하)
2016.2.19 창원지방검찰청 마산지청 검사 박철량 ; 업무상횡령 외 6건 ; 각하,
※최종 다시 부산고등법원의 재정신청 기각으로 재차 마산지청의 종결 통지서 받음.
무고죄란~?
형법 제156조에 의하면,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공무소 또는 공무원에 대하여 허위의 사실을 신고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공소시효는 10년. 허위 사실 신고로 나라의 경찰, 검찰 업무를 무고 사건으로 쓸데없는 과중(짐)을 지웠기에 벌이 엄청 무겁다. 데나까나(방언) 고소 고발하지 말라는 뜻이다.
상기의 사이비 3인방은 종중을 설립하여 위토를 찾아 모우고, 종중의 있는 돈 없는 돈 다 끍어모아 오피스텔 3개를 매입하여 종중의 수입을 증대하고, 자비를 대납해 가며 비가 새는 경충재 재실의 지붕을 개량하는 등 등 공로가 지대한 사람에게 이간질, 모함, 음해, 명예훼손, 무고까지 했다. 종중에 기부한 찬조금액도 작지만 500만원이 넘는다.
본인에 대한 무고내용 7가지을 기록으로 남긴다.
횡령
자격모용 사문서 작성
자격모용 작성 사문서 행사
사기
배임
명예훼손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주동자 사이비 3인방은 부화내동자 4인을 끌어들여 나를 고소 고발하여 종권을 탈취한 이유는 윗대 7기 분묘보상금 24,025,300원을 손에 쥘러는 의도였다. 2,400원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조사해야 할 것이다. 윗대의 조상 3대 7기 분묘에 대한 위선사업을 한 것은 2016년 현재 아무 것도 없다. 민형사상 책임이 따른다. 돈을 쥐고 요리한 자는 사이비 3인방이다.
사이비 3인방은 7기의 분묘 보상금 24,025,300원을 손에 쥘려고 2013.11.17 가을 묘사 후 경충재 추담 사건을 일으키고, 본인이 족보를 연구하여 찾아 낸 동촌리 선산 내의 49기 조상 분묘 보상금 151,429,600원(당시 지연이자 포함시 ; 약 1억6천만원)을 행정소송마져 지연시키고 방해하였다.
본인은 사이비 3인방과 멋 모르고 부화뇌동한 4인으로 인하여 모든 증거서류를 준비했는데 포기했다. 4인은 부화뇌동으로 인하여 사이비 3인방을 옳다고 응원한 꼴(셈)이 되었다.
동촌리 선산은 수재공 정구룡이 임진란에 1598.9.28(주부 정공순절사적 기록) 순절하여 뭍힌 곳으로 지금으로 부터 418년 전에 나라로 부터 받은 선산이다. 그런 선산 내의 선산 분묘 49기를 찾는데 힘을 모아 도우기는 커녕 방해한 사이비 3인방이다.
구개지고 훼손이 심한 산소 관련 송사 고문서 2장(진주 국제대학 근무 후손 정영철 소지한)을 펴서 표구까지 한 후, 진주 경상대학 한문학과 부설 남명학연구소 허권수 교수에 부탁하여 번역까지 하였다.
1장은 1898(조선 고종 35년, 대한제국 광무 2년) 음력 7월로 함안 군수 판결문이고, 다른 1장은 1899년(고종 36년, 광무 3년) 음력 1월 26일 경상관찰사(현, 남북도 도지사 통합)의 묘지 관련 판결문이다. 동촌 선산에 투장된 타성 묘지는 즉각 다 파 내라는 판결문이다. 이 고문서 2장 증거면 찾을 수 있다.
2013.11.21자 창원 법원 앞에 소재한 창원법무법인 모든(대표자 ; 권영준), 법무법인 규로, 법무법인 해민, 조창래 법률사무소, 하나법률 남상업 등을 방문한 후 정재영 더러 선임 대리인을 선정하려 수차례 거듭 요청하니, 추담 사건 대표자를 사퇴한다 하고선 다시 번복(3번이나 번복)하고선 창원에 오지도 않았다,
수일 후 사이비 정해영, 정일권과 조종을 받아 사퇴를 번복하면서 의무를 저바린채 변호사 선임을 위하여 창원에도 오지 않더니 나중에 알고보니 2013.12.9자 7기 분묘보상금 2,400만원을 자기들 임의대로 사용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으로 판명났다. 알고보니 참 나쁜 자들이다.
부득이 소송을 진행하기 위하여 2013.12.21자 서울의 정창영 형님, 인천의 정병권 장조카를 내려오게 하여 혈곡의 정재영 집까지 3명이 방문하여 사퇴 할 것을 종용했으나 또 조종을 받았는지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았다. 무식 무지 그 자체였다.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을 모르는 사람(정재영)이다. 학벌과 지혜, 인품은 다를 수도 있다는 데 2개 모두가 역시나 동일하게 땅 바닥이었다.
창원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착착 진행 중인데 본인에 대한 사이비 3인방의 무고 고소 고발 사건으로 결과적으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런 무지한 사이비 때문에 의지, 의욕을 상실하였다. 분묘보상비 2,400만원에 눈 먼 자들이 일으킨 사건의 시말 전모이다.
함안이씨나 진주강씨는 300~400년 이상된 종중산의 분묘는 하나도 빠지없이 다 찾았다. 함안이씨의 경우 종중 선산 면적 보상과 분묘 보상 합계가 6~7억원으로 선산 내 분묘보상금이 3억여 원이 된다. 본인의 조상 분묘 찾기의 숨는 노력 뒤에서 고소 고발 등 사이비 3인방은 훼방이나 했지 무얼했는가? 가을에 묘사 차리는 것 만이 종사 일의 전부가 아니다. 사이비 3인방은 묘사만 차리면 된다고 알고 있었다. 무지한 자들이다.
이걸 볼때 사이비 3인방은 당 종중의 역적이라 할 수 있다. 사이비 3인방의 방해와 비협조로 동촌리 선산 분묘 49기의 유골은 의령 부림면 납골당에 무연고 유골로 안치되어 있다. 무연고 유골은 10여 년 안치하다가 한 곳에 옮겨 묻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다.
사이비 3인방의 종중 위토와 선산 25건, 창원의 오피스텔 4건의 대표자 명의 탈취 사건이 발생하였다.
도둑질 탈취 일자는 창원 오피스텔 4건은2014.7.11자이고, 함안 위토와 선산은 2014.8.8자 이다. 사이비 3인방이 이사회 회의록을 작성한 날은 2014.7.11자 이다. 서명자는 사이비 3인방을 비롯하여 서명 가담자는 기타 3인(정영상, 정영건, 정병우) 으로 제네들의 감사라는 월촌 정재영(1939, 78세)은 이 건 서명에는 빠졌다.
대표자 명의 변경(정봉영 ->사이비 혈곡 정재영)을 하려면 사이비 정재영과 인감증명서 제출 2명의 보증인(민형사적 책임)에는 주동자 정일권은 뒤로 빠지고 정해영과 도항리 정영상(당시 81세)가 가담했다. 정일권 대신 정영상을 끌어들인 장본인은 재종(6촌)되는 정재영(혈곡)과 정해영이다.
회의록 작성이 사이비 3인의 주동으로 6인(나머지 3인 정영상, 정영건, 정병우)이 서명 작성되었다 할지라도 감사라는 정재영(월촌)의 서명은 거부당했고, 당시의 현 대표자 정봉영이 빠졌기에 불법이다.
불법임을 알기에 함안이나 창원의 법무사가 대표자 변경 등기를 대행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함안의 아는 법무사 사무장에게 조언과 지도을 받아 '본인신청' 서류로 제출하였다. 자필자는 사이비 정해영이다. 이게 종중 대표자 명의 탈취 사건의 전모이다.
사이비 3인방의 본인에 대한 고소 고발 사건 변호사 3인 수임 의뢰(정영건 수임료 650만원 인출일 ; 2014.10.8), 작성 완료(2014.11.30 묘사 때, 정영건 배부로 명예훼손)와 대표자 명의 불법 변경을 발견(정영건 중앙금속 사무실 방문, 2014.11.19)했다.
그후 본인은 이들 사이비의 고소 고발(2014.10.8)에 대응하여 제들의 불법에 대하여 2015.3.6자에 맞고소를 하였다. 사이비들의 고소 고발보다 5개월이 늦다. 피의자는 사이비 3인 외에 인감증명 보증인으로 서명 날인한 정영상은 연배가 많아 처음에는 제외시켰으나 피의자 요건의 보증인 서명자 이기에 부득이 추가로 포함시켰다.
함안경찰서 수사과정에 피의자 중의 정영상이 갑짜기 별세하여 수사가 지지부진해졌다. 수사과정의 보증인 피의자 3명 중 1인이 작고하는 바람에 본인의 고소사건은 그로 인하여 사이비 3인방의 죄과의 면피, 면제부가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일사천리로 기술하다 보니 정영상 작고 건은 상기에도 언급했다.
건강하여 장수할 수 있는 당시 81세 노인 정영상을 단명으로 몰고 간 주범은 사이비 3인방이다. 이 점 확실히 밝혀둔다. 인감도장을 꼬셔서(꾀어서) 찍게한 장본인이 3인방이기 때문이다.
항간에는 정봉영이 고소 탓(수사중 사람이 죽는)이라고 잘 못 전해졌지만, 미안하지만 본인은 제들 사이비 3인방의 본인에 대한 고소 고발(2014.10.8)에 대한 맞고소는 5개월 후(2015.3.6)에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증거 불충분으로 창원검찰청의 종결에서 재정신청을 안 하고 접었다. 민형사상 책임은 나머지 사이비 3인방에 증거를 보충(추가)하여 재고소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
사이비 3인방은 또 창원의 오피스텔 탈취 2개 중, 1014호 1개는 2015.1.26자로 보증금 1,000원, 차임(월세) 40만원으로 계약되어 있는데(임차인 ; 진권형), 사이비 3인방이 탈취하기 위하여 진권형을 직접 찾아가서 사이비 정재영이 종중 대표자라며, 진권형에게 종중의 돈 1,000만원을 임시로 맡긴 후(임시 차용해준 자 ; 정영건, 2015.7.13자) 하루만에 다시 송금받은 식(2015.7.14자)으로 2중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하여, 상식에 어긋나는 희한한 범죄를 저질렸다.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건낸 후 다시 돌려받으며 2중계약서를 쓰는 사기죄를 범한 것이다. 상식을 벗어난 기상천외의 미친자 형태를 보였다.
이런 것 외에도 열거하려면 사이비의 상식과 도의, 법률, 인륜에 어긋나는 행위는 부지기수여서 다 적을 수가 없다. 지면상 열거는 뒤로 미룬다. 무례 무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옆에서 잘 한다고 부화뇌동 박수친 주변의 책임도 막중한다.
사이비의 형태가 이런 데도 사이비 3인방 중의 총무인 정일권의 동생 2인( 정병근, 정병열)은 형의 사이비적 형태를 몰랐을 수도 있으나 2015.11.22 경충재의 가을 묘사 때, 1차 2013.11.17 묘사 때처럼 투표융지를 들고서 제2차 추땀 소동을 벌였다. 제 형이 사이비 짓을 계속 하라고 연임운동 소동 추태를 보인 것이다. 미친 놈들의 형태를 연출했다.
종인들에게 나중에 그 2명이 정일권의 동생들이라 전하니, 그런 줄(동생들인 줄) 몰랐다며 감짝 놀라는 이가 많았다. 묘사 후 그런 추태를 보였기에 사실 증거 기록을 남겨서 영구적인 대대손손 훈계로 삼고자 한다.
이 기록은 영구히 보존할 것이다. 스마트시대의 포탈 SNS 글의 게재는 신문 이상의 전달 효과가 있다. 이것이 없었다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2016.8.28(일) 3인방의 혈곡리와 파수리 선산 하단부의 벌초 안 한 현황은 다음과 같다.
파수리 선산 하단
춘강공 정배민 배위 경주김씨 쌍분
계암공 정연일 배위 밀양박씨 단분
혈곡리(대추나무밭골) 선산 하단 단분
계암공 정연일
사이비들 8.28(일) 벌초를 하지 않아
9.10(토) 현지 확인차 답사 후, 파수리 거주 박점수씨에 위탁 9.11(일) 2곳 벌초 깨끗하게 완료했다.
벌초 안한 혈곡리 사진 2장, 파수리 사진 4장(9.10 촬영) 참조 바란다. 혈곡리 정일권 조상 묘는 벌초가 되었기 대조적으로 상부에 1장을 첨부한다.
고문서 2장은 동촌리 선산의 타성 토장 묘를 파 내라는 함안군수와 경상관찰사의 판결문이다. 번역 내용은 2013.11.17 묘사 때 배부하였다.
맨 아래 사진 차에 실린 용두머리 거북등 비석은 중국에서 수입하기에 진주 지수면 계룡종합석재(055 - 753 2852)에 의하면, 석재값은 크기에 따라 400~500만원 내외라 한다. 400여 년 분묘보상금 2,400만원에 대한 추모기 대비로 게재한다. 하기 사진에서 보듯이 정일권의 5대조 정연민에 셋방살이로 되어 있다. 기가 차고 통탄 할 일이다. 정일권은 족보상 종손의 명예를 완전 상실했다. 추방 축출 제명 감이다.
족보상 종손인 정일권의 6대조 되는 정동우는 선무원종1등공신인 정구룡의 적통 7대 종손인 정인한에 대(자식)가 없자, 정구룡의 3명 손자 정이황, 정이청, 정이순 중 제3 순위인 정이순의 가닥 후손인 정동우(정이순의 6대손)가 13촌 숙뻘(아저씨 뻘)되는 정인한에 건너온(대를 단) 정동우의 6대손이 정일권이다.
정인한은 3형제로 2명의 동생 정용한, 정응한이 있었지만 각 각 아들이 1명이어서 자식이 없는 정인한에 양자를 주지 못하고 종손을 비워두었는데 그 시대에 족보를 하면서 임란공신의 종손을 탐내어 13촌 먼족에 종손 이름을 단 것이 정동우이다.
자식이 없는 정인한을 비워두면 자동으로 정인한의 바로 밑 동생인 정용한의 직계 후손이, 정용한이 후손이 없으면 그 다음의 정응한의 후손 가닥이(세계도) 종손이 되는 것이다.
정일권은 13촌에 이름을 단(족보 양자) 정동우의 6대손이 된다. 족보대로 그것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정동우 - 정연민 - 정방익 - 정문규 - 정현두로 이어지다가 정현두의 자식은 정우영(작고), 정재영(81세로 생존 ; 김해 진영 거주 정재영으로 동명이인이다), 정차영(작고) 3형제가 있다.
정일권의 부(아버지) 정포영은 정현두의 자식이 아니고, 정현두의 동생되는 정현석의 자식으로 또 백부인 정현두의 자식 3명(정우영, 정재영, 정차영)을 제키고 종손이 되었다. 정포영의 자가 종손 격인 정일권이다.
정동우는 13촌 먼족으로 건너왔고, 정일권의 부되는 정포영은 큰집의 사촌 동생 3명(정우영, 정재영, 정차영)을 제키고 백부(큰 아버지)에 이름을 달았다. 정일권이 정포영의 자식이니, 옛날 유교전통으로 봐도 정일권은 적통 종손도 아니다. 적통 종손은 정현두 - 정우영 - 정병갑으로 정병갑이 종손이다.
족보 상, 호적부 상, 가족관계 증명서 상 정일권은 종손이 아니다. 정일권은 정우영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포영과 정일권은 종손이 아니고, 정우영과 정병갑이 적통 종손이다. 종인들은 족보에서 확인하기(찾아보기) 바란다.
적통이 아닐지라도 종사 일 분묘보상금 2,400만원을 제대로 사용하여 위선충효사업을 했다면 인정할 수 있겠으나(이 사건 이전에는 묘사 때 초헌 후손으로 인정 우대해 주기도 했다), 이번 분묘보상금이 제 통장(창원시의 족보상 종손에 지급하는 규정에 의하여) 3인방의 주모자로 가담하여 회장 정재영(혈곡 정재영이다. 당 중중에 정재영이 동명이명 3명이다)을 허수아비 핫바지 회장으로 만들면서 완전 농단했다.
2013.12.9 자 분묘보상금 2,400만원 수령 후 현 2016.11.13(묘사일)까지 3년이 지난도록 그렇다. 주변 방조한 자는 4인이다(이름은 자기들이 알기에 생략한다)
종권 탈취 사건의 전모가 이렇게 길다. 사이비들의 형태를 바로잡기 위하여 장문의 글이 되었다. 내용이 방만하여 기술이 중복된 것도 있지만 내용에는 하나의 거짓도 없는 사실 그대로이다. 종중에 돈이 조금 들어오니 이런 사이비들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이비 3인방의 작태를 기록에 남겨서 후손들에게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후세에 훈계를 삼기기 위함이다.
상기 글은 사이비 3인방의 볼썽사나운 사례를 일일이 찾아 사실에 근거하여 작성하였다. 하나의 틀림도 없다고 단언한다. 모든 것을 금전 장부에 날짜별 일기체로 기록해 왔다.
상기의 긴 장문의 글을 기록하게 된 것도 3인방 외 동조자들의 상식에도 어긋나고 황당무계한 일들이 군북 동촌리 부대 산 보상 건(2011.11.8) 이후 연속된 사건이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오피스텔 3건을 매수하고, 함안 파수리 산 26번지(8,986평) 중의 파수리 산 26 - 3(600평, 지목 ; 묘지)의 경남 제1호 자연장지 허가 취득과 유현리 경충재 재실 지붕 개량 건을 완수 종결하였다. 사이비 3인방의 본인에 대한 무고 사건과 종권탈취, 비협조와 방해로 동촌리 400여 년의 선산 안에 있는 조상 분묘 49기(1억 6,000만원)을 못 찾은 게(선산 내 타성 투장 분묘를 파내라는 고문서 2장도 있다)을 여한으로 남는다.
종인들은 조선시대의 나라로 비유했을 때 누가 충신, 공신이고, 누가 역적, 반란인지 상기의 글 전말을 끝까지 읽으시고 판단, 분간해 주기 바란다. 종중에 돈(개인 돈이 아닌 조상의 공적인 돈이다)이 좀 있으니 종중에 아무런 관심이 없던 자(분)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별의별 내용증명과 형사고소 사건이 연속되었다. 주모자는 종권 탈취(제대로 일한 것이 없는) 사이비 3인방(속칭 ; 개차반)이라 단언해 둔다.
작성 완료일 ; 2016.6.2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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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 추가 수록과 오타 등을 다듬고 있는 중입니다.
보완되면 카톡으로 가을 묘사 전에 공유, 공론화시켜 공지할 예정입니다.
복사도 하여 배분할 것입니다.
초계정씨의 2대 종헌(종훈)는 세습충효(대대로 충효사상을 답습하여 지킨다)
가전청백(집집마다 청백정신을 전수 계승한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