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 (2010)
The Yellow Sea
- 감독
- 나홍진
- 출연
- 하정우, 김윤석, 조성하, 이철민, 곽도원
- 정보
- 스릴러 | 한국 | 156 분 | 2010-12-22
나홍진 감독이 돌아왔다. ‘추격자’와 꼭 같은 배우들을 데리고서.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추격자’의 충격 때문에 ‘황해’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아주 높았다.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식의 평가가 줄을 이었다. 거기에 덧붙은 다수의 평 하나. “너무 잔인해요!” 기대와 고심 사이에서 방황하다 본 ‘황해’는 잔인했다. 그런데, 잔인하다기보다는 처절하다고 해야겠다. 그렇기 때문에 ‘추격자’와는 아예 다르게 놓고 보아야 할 영화이다.
우선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합격점을 줄 만하다. 인물들 사이의 갈등 구도가 절묘하다. ‘추격자’가 모든 판을 다 보여주고 두 사람 사이의 대결을 보여준 형식이었다면, ‘황해’는 계속적으로 의외의 상황이 펼쳐진다. 교수를 죽이러 온 사람이 구남 말고 두 사람이 더 있고, 운전수까지도 있다. 운전수가 면가를 불러서 교수를 죽인 것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면가와 연결된 이는 또 따로 있다. 그리고 이 인물에는 다시 배후가 있다. 이런 식으로 ‘황해’는 극이 흘러감에 따라 천천히 배후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다.
배후뿐만이 아니다. 이야기 자체가 이후 펼쳐질 판을 예측할 수 없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것들이 절묘하게 맞물려 들어간다. 면가와 김태원의 대결 구도는 다시 면가와 구남의 대결 구도로 바뀌고, 이것이 다시 면가와 김태원의 구도로 바뀐다. 그 동안 구남은 탈출, 면가와의 대결, 배후를 찾아 가는 싸움으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탄다. 모두가 잇속을 따라 움직이는 비열한 캐릭터이기에 관계가 끊임없이 엎치락뒷치락하게 되고, 이것이 작품의 느와르적 속성을 극대화한다.
‘추격자’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오로지 대결 그 자체만이 존재했기 때문에 상당한 속도감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황해’는 장편소설 한 권은 뽑아낼 만한 이야기구도를 지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 긴박감만으로 두 영화를 비교한다면 ‘황해’가 지는 판인 건 당연하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은 건 역시 두 배우의 연기가 아닐까. 최근 가장 고품격 배우라고 생각되는 김윤석의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고, 산에서 우는 하정우의 연기 또한 소름끼친다. ‘추격자’ 때와 양상은 김윤석이 강자, 하정우가 약자로 동일한데 선악은 반대로 간다. 그것이 오히려 더욱 재미있다.
하지만 구남이라는 캐릭터는 좀 아쉽다. 택시 운전을 하고 사는 허접한 건달치고는 갑자기 너무 막강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누구든 1대1로 만났다 하면 다 싸워서 이겨 버리니까. 반대로 면가는 카메라 밖에서는 절대 강자의 느낌을 주지만, 카메라가 그의 싸움을 잡을 동안에는 엎치락뒤치락하는 판으로 간다. 혼자서 열댓 명을 모조리 때려눕히고도 얼마 다치지 않던 면가가 가장 싸울 줄 모르는 김태원을 상대로 그렇게 고전하는 모습을 보는 건 아귀가 맞지 않는구나 싶다. 그래도 면가와 김태원과의 싸움으로 끝을 맺은 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구남과 면가의 싸움 구도로 갔다면 너무 뻔한 판이 되었을 테니까.
감독의 연출력은 놀랄 노자였다. 사실상 내가 이 영화에서 최고로 보는 건 이 연출력의 측면이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담은 우리나라의 모습은 모두 많이 잡아야 90년대 중반도 채 지나지 않았을 법한 풍경들이다. 나오는 숙소들은 모조리 다 여인숙이다.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고속도로 위에 있는 차들도 대개 트럭이든지 다들 아주 예스럽게 보인다. 낮은 낮대로, 밤은 밤대로 채도 낮은 화면들은 도시의 습한 질감을 생생하게 채워넣는다. 아무리 뒷골목 이야기라도 이렇게 음습한 공간만을 철저하게 잡아낼 수 있을까. 그나마 가장 현대적으로 보이는 서울역 건물조차도 원경으로 잡아서 신식의 느낌을 완벽하게 배제시켰다.
미장센도 미장센이지만, 감독은 어떻게든 직접 설명을 배제하려 한다. 뭔가 배경 이야기가 나올 법한 장면은 늘 자르고 넘어가 버린다. 대중영화들 중에 이 정도로 상황과 장면으로 설명해내는 영화가 얼마나 있을까. 그 처리방식도 은근하다. ‘죽었다’라는 걸 이야기하기 위해서 죽이 맥을 재거나 하는 장면을 넣지 않고 바닷물에 시신을 던져넣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보는 이에 따라서 복잡하다거나 머리가 아프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렇지만 영화가 영상 예술이라는 점을 고려하자면 감독의 이와 같은 장면 위주 연출은 오히려 정석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영화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우연성이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그 전제가 우연으로 처리되어 버린다. 중요한 상황이 펼쳐지려고 하면 때마침 그 자리에 누가 가 있는 식이다. 저축은행에서 진짜 배후를 알게 되는 부분은 그 우연성의 절정이다. 그리고, 장면만으로 설명이 힘들었는지 김태원이 다 죽어가면서 중얼거리는 장면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운 느낌을 강하게 준다. 마치 이 내용에 대한 단서는 어떻게든 주어야 하겠는데 줄 방법이 마땅찮았던 것 같다. 면가가 다리뼈로 싸우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지만, 그 다리뼈에 대한 전제도 “좀 치우고 살지”라는 한 마디가 전부이다 보니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는 부분이 생긴다.
구남의 생명력은 비현실적인 요소임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구’자가 개를 떠올리게 하는 것에 면가가 개장수까지 하고 있는 부분을 본다면 상당히 상징적이다. 구남은 개처럼 헐떡이며 버텨낸다. 비현실적인 생명력으로까지 저항하는 구남의 사투이기에 처절한 것이다. 면가도 머리를 많이 쓰기보다는 정면으로 부딪치는 인물이기에 거칠고 역동적이다.
‘추격자’에서도 이미 도시의 음습함을 드러내는 데에 일가견을 보여준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도 주 무대인 도시 곳곳을 어둡게 묘사한다. 게다가 이번에는 캐릭터들까지 생생하다. 존경받는 교수이면서 룸싸롱을 7개나 돌리는 김승현, 자신도 바람을 피우면서 돈과 치정 관계로 동업자를 죽이려 하는 김태원, 그리고 교수의 아내, 이들이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결국 개와 다를 바가 없다. 끊임없이 발버둥치는 한국 사회의 개싸움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승부. ‘황해’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한가지의 포인트가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이 영화의 도입이 무척 좋다. 마작을 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아마 알아보기 어렵겠지만, 구남은 계속 면가에 의해 독박을 당하는 것이었다. 구남이 패를 놓을 때마다 면가가 그걸 가져가서 자기 패를 완성시킨다. 그러면 모든 돈을 구남이 혼자 지불해야만 한다. 이미 도입에서부터 면가와 구남의 관계가 그렇게 암시되어 있다. 더불어 구남의 나레이션. 어린시절 자기 집에서 키우던 개의 이야기. 개병이 돌아서 미쳐가지고는 아무나 다 물어죽이던 개를 사람들이 땅에 묻었는데, 그날 밤 그 개를 꺼내어서 먹어 버리더라는 이야기. 이 나레이션은 이 영화에서 가장 설명이 많은 장면이자, 동시에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나홍진 감독이 보여주는 느와르는 지금껏 우리나라 영화에서 나온 여타의 느와르 장르와는 다른 힘을 보여준다. 그 어떤 영화들보다 거칠고 투박하며,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리얼하게 느끼게 하는 역동성이 있다. 또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덜 신파적이다. 음악이나 영상으로 격정을 억지로 끌어올리려고 하지 않는다. 구남이 산에서 우는 장면은 결코 길게 나오지 않는다. 배에서 구남의 손에 들린 사진도 오래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가슴 깊이 끓어오르는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주 간단한 오해와 아주 단순한 증오가 빚어낸 처절한 비극. 이 정도 수준이라면 ‘추격자’의 그늘에 가려질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위치에 놓고서 보아야 할 걸작이 아닐까.
첫댓글 추격자와 전혀 다른 영화였고, 그 나름의 맛이 있었던 영화였죠. 그래도 쉐프님이 지적하신 부분들이 많이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지적하신부분들이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고는 볼 수 없다고 생각되거든요. 글 잘 읽었고, 그때의 느낌을 잠시 떠올려 봤습니다.^^
제 생각은 오히려, 그 부분들의 아쉬움을 눌러버릴 만큼 훌륭한 연출과 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매듬새가 참 꼼꼼한 영화로는 근래 한국 영화들의 전반적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해요. 뭐, 그것도 제 느낌이지만요. 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