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준다고 해 밖으로 나가자 바로 죽여”
4.3연구소. 구술집 5.6권 펴내
"군인·경찰.민보 단원들이 굴 안으로 들어오자 난 숨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살려주겠다'고 해서 다들 밖으로 나갔고요. 그런데 굴 밖으로 나가자마자 바로 죽였지요"
"가서 보니까 사람들을 죽인 뒤 스물다섯구를 흙으로 덮는 시늉만 내놨어. 어떤 사람은
얼굴이 나와 있고 어떤 사람은 팔도 나와 있고. 그걸 봐서 그냥 올 수가 없었어. 벌어진
박세기(깨진 바가지)로 흙을 지쳤어(덮었어)"
제주 4 · 3 사건이 한창이던 1949년 1월16일 제주시 애월읍 빌레못굴에서 있었던 '믿기
어려운' 사실들이 기억의 복원을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빌레못골,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아내의 이름을, 딸의 이름을 절규하듯 부르던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수십년 세월이 지난
뒤 되살아났다.
제주4 . 3연구소가 31일 ‘제주 4 · 3 구술자료 총서, 5·6권으로 펴낸 <다시 하귀중학원을
기억하며>와 <빌레못골,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서출판 한울)에는 애월읍 주민들의
체험담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5권에는 당시 하귀중학원을 중심으로 애월읍 동부지역 주민 13명의 증언이, 6권에는
빌레못굴에서 벌어진 양민학살을 중심으로 18명의 증언이 담겼다.
구술집의 정리· 편집은 연구소의 김창후 소장과 허영선 이사가 맡았다. 이 구술 채록집은
연구소의 구술채록팀(팀장 김은히)이 2004~08년 수행한 ‘1000인 증언 채록사업’의 후속
조처로 이뤄진 ‘구술자료 재정리와 대중화 작업’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민간연구소가
1000여명에 이르는 주민의 구술을 채록한 것은 국내에서 매우 드물다.
김창후 소장은 “많은 증언자들이 묻어뒀던 아픈 기억을 더듬느라 힘들어했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책을 엮는 사이에도 돌아가신 분들이있어 작업의 시급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허영선 이사는 “그 참흑했던 광풍 속에서 고문당하고,죽임을 당하고, 도망다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내내 가슴이 저렸다”고 말했다.제주4 · 3연구소는 제주4 · 3평화재단의
후원으로 구술자료 총서를 펴내고 있다. 제주/허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