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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조국 이야기 제2편
보수 양당구도가 유지되는 비결
구형구
일찍이 칼 맑스가 ‘완벽하고 이상적인 현대 국가의 모델’이라 평했던 미국은 오늘날에는 정치 후진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와 산업화 역사를 가진 나라 중에 하나지만 진보정당 없는 보수양당 구도가 고착되었다. 유럽의 선진자본주의국가들과 비교하자면 확실히 후진국이라 말할 수 있다.
이번 호에는 미국의 보수양당 구도에 대해 살펴보고 이런 구도가 유지되는 비결을 알아본다.
양당의 성격과 차이
공화당과 민주당은 계급적 성격에서 차이가 없다. 자본(특히 거대 독점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이다. 정치적 입장에서 다소 경향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화당은 (일부 극우파를 포함한) 강경우파 성향이고 민주당은 (일부 중도좌파를 포함한) 중도우파 성향이다. 한국의 보수양당 구도와 비슷하다.
미국은 로비가 합법화되어있다. 어느 기업이 어느 당을 지원하는지 공개된다. 또한 그 반대급부로서 어느 정당이 어느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지도 비밀이거나 범죄가 아니다. 정치자금 모금과 사용도 ‘사실상’ 무제한이다. 정경유착이라는 말은 아예 쓰지 않는다. 정경일체라고 말해야 어울릴 것이다. 그래서 지원하는 기업의 이해관계가 그 정당의 정책을 규정한다.
전쟁을 선호하는 이유
대표적인 경우가 외교안보정책이다. 공화당을 지원하는 기업들 중에 Big3가 있다. 군수, 석유, 건설 3개 업종을 말한다. 그들은 전쟁을 해야 돈을 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군수산업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전쟁으로 때려 부숴야 건설 수주가 늘어난다.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오르고 중동지역에 대한 패권이 확고할수록 석유산업의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고르게 작용한 것이 이라크 전쟁이다. 미국제 무기로 때려 부수고 재건을 위한 수주는 미국 건설업체 벡텔과 핼리버튼이 따냈으며 석유 이권도 챙길 수 있었다. 그래서 공화당은 전쟁을 선호한다. 전쟁까지는 아니더라도 긴장 관계가 조성되어야 유리하다.
반면에 민주당을 지원하는 기업들은 주로 시장 확대를 선호하는 업종들이다. 긴장보다는 우호적인 정세가 유리하다.
이러한 구분은 단순하게 도식화한 것이다.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다. 민주당이 전쟁보다 평화를 선호하거나 온건하다는 뜻이 아니다. 공화당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강경할 뿐이다. 실제로는 민주당 정권에서 시작해서 공화당 정권에서 끝난 전쟁이 많다.
이라크 전쟁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 아래서 부통령을 지낸 딕 체니. 그가 경영하던 핼리버튼 기업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엄청난 이권을 챙겼다.
자본에 대한 철저한 보답
그밖에도 노골적인 사례는 무수히 많다. 군수산업과 마찬가지로 총기업체도 공화당을 지원한다. 총기 사고에 대한 대책으로 민주당은 총기 규제를 주장하는 반면에 공화당은 총기 소유를 옹호하며 헐리웃 영화의 폭력성에 책임을 돌린다. 영화산업은 주로 민주당 편이기 때문이다. 담배산업도 공화당을 지원하기 때문에 민주당은 담배 규제에 적극적이고 공화당은 소극적이다. 공화당을 지원하는 펩시콜라는 닉슨 정권 때 소련 시장에 진출했고 민주당을 지원하는 코카콜라는 카터 정권 때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가장 재밌는 경우는 한국의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삽질이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무역 현안에서 양대 쟁점은 쇠고기와 자동차 시장이다. 이명박 정권은 출범 초기인 2008년에 부시 정권에게 쇠고기 시장을 크게 열어줘 촛불저항을 초래했다. 공화당이 축산업자들 이익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이듬해 오바마 정권이 출범하자 디트로이트 자동차노조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 정권에게 자동차 시장을 내줘야 했다. 미국 정권교체 와중에서 각각의 정권에게 양대 시장을 모두 내준 셈이다.
참고로 미국 노동조합운동은 오랜 역사적 전통과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가졌으나 자본의 이익에 포섭되어있다.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하고 지원한다. 그래서 한국 노동운동은 미국 노동운동을 우습게 봐왔으나, 최근에는 미국 노동조합이 차라리 이익단체로서의 역할은 유능하게 수행한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서글픈 일이다.
어쨌거나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의 보수 양당은 지원하는 업종에 따라 경향성과 정책 차이가 있을 뿐 총자본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계급적 성격은 다를 바 없다.
미국 대통령을 밀착 수행하는 군사보좌관은 언제나 핵무기 발사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가방을 지참한다. 미국 대통령의 명령은 수많은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 있다
독특한 연방제 선거제도
미국에는 왜 유의미한 진보정당이 없을까? 왜 노동운동이 독자적 정치세력화하지 못했을까? 이 주제를 갖고도 능히 책 한권은 나올 것이다. 지면상 여기서는 소수정당 성장을 제약하는 독특한 선거제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맑스가 호평했듯이 미국 정치제도는 연방제를 유지하기에 나름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독립 당시에 13개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50개에 달하는 각 주는 주권국가에 버금가는 규모와 권한을 갖는다. 그래서 연방정부는 국민 각자의 의사와 각 주의 대표성을 고르게 반영하여 구성할 필요가 있었다. 연방의회의 상하 양원이 각각 이를 반영한다. 하원의원은 인구비례로 획정한 소선거구에서 1인씩 선출한다. 상원의원은 인구와 무관하게 모든 주가 똑같이 2인씩 선출하여 100인으로 구성한다. 하원 구성은 국민 개인의 의사를, 상원 구성은 각 주의 대표성을 각각 반영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제도는 그 두 가지를 절충한 방식이다. 우선 각 주의 선거인단은 그 주의 연방 하원의원과 연방 상원의원을 합한 숫자만큼 배정한다. 인구비례와 주 대표성을 절충한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는 간선제로 알려졌지만 투표 절차는 직선이며 그 결과를 반영하는 방식이 간선이다. 즉 유권자 각자는 선거인단에게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 본인들에게 투표한다. 그 결과 각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한다. 그래서 확보한 선거인단 숫자에 따라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철저히 연방주의를 반영한다. 각 주는 독립적 주체이기 때문에 그 주의 선거 결과는 주 전체의 의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거인단 전원은 개인 의사가 아니라 그 주의 의사를 대표하여 승리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부 주에서 득표율에 따라 선거인단을 배분하는 제도를 도입했으나 아직은 큰 의미가 없다. 대부분 선거인단은 승자독식으로 결정한다.
연방제 나름의 합리성과 허점
이 같은 제도는 주권국가에 준하는 권리를 가진 각각의 주들이 연방정부를 함께 구성한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합리성이 있다. 인구가 각자 다르기 때문에 각 주의 동등한 대표성과 인구에 따른 표의 등가성을 절충하다 보면 그 이상의 합의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현실에서는 이 제도를 더 이상 합리적이라 볼 순 없다. 주권국가에 준하는 주들이 모여 느슨한 연방을 구성한다면 합리적일 수 있겠으나, 오늘날 미국 연방정부의 권한은 너무나 막강하다. 미국 대통령과 연방의회의 결정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명령 한마디로 수많은 사람의 생사를 결정할 수도 있다. 이처럼 엄청난 권력을 선출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선 승자독식에 의한 간선제 때문에 득표율과 선거인단 숫자가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이 간혹 있었는데, 최근의 사례는 2000년 대선에서 발생했다. 직선 득표에서는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앞섰으나, 선거인단 숫자는 공화당 조지 부시 후보가 더 많이 확보해서 당선된 것이다.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받은 후보와 당선자가 다르게 나오는 중대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제도로서 치명적인 허점이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각 주별 선거인단 확보 결과. 녹색당 랠프 네이더 후보는 2.7% 득표하여 선전했으나 승자독식 제도 때문에 선거인단은 하나도 확보하지 못했다.
소수정당 진출을 봉쇄하는 제도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위의 선거제도가 소수정당 진출을 봉쇄한다는 점이다. 하원의원은 모두 소선거구에서 선출하고 비례대표도 없다. 상원의원은 각 주에서 2인씩 선출하지만 2인을 동시에 선출하지는 않는다. 상원의원 임기는 6년인데, 몇 년의 간격을 두고 1인씩 선출한다. 상원의원도 소선거구 선출인 것이다.
이러한 전면 소선거구 제도에서 소수정당이 진출하기 어렵다는 점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소선거구 제도에서도 소수정당이 유의미하게 성장한 사례는 있다. 영국 노동당은 소선거구 아래서 보수당과 자유당 양당 구도를 돌파하여 집권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영국과 같은 내각책임제와 미국과 같은 대통령 중심제는 정당 구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내각제에서는 소수정당을 포함한 연립정부 등 여러 변수들이 작용할 수 있다. 반면에 대통령제에서는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 거대정당 중심으로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
위에서 언급한 어떠한 원인보다도 치명적인 장애물이 있다. 승자독식에 의한 선거인단 배분 방식이다. 사례를 들어 설명해본다.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랠프 네이더 후보가 2.7% 득표했다. 미국 대선에서 소수정당 후보로서는 선전한 셈이다. 양대 정당의 치열한 접전 속에서 2.7% 득표는 무시하지 못할 숫자다. 한국이라면 차기 총선에서 원내 진출도 노려 볼만한 결과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2.7%를 득표했으나 어느 주에서도 1위를 하지 못했기에 선거인단 확보는 제로였다. 대선 결과로 나타나는 숫자는 2.7%가 아니라 0인 것이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되는 것이다.
이런 제도 아래서 소수정당이 성장한다면 기적일 것이다.
정당 구도와 제도에 관해서는 여기서 줄인다. 한 나라를 움직이는 요소는 정치만이 아니다. 다음 호에서는 미국을 움직이는 몇 가지 힘에 관해서 알아본다.
*천조국 이야기 제1편(3월호) http://cafe.daum.net/npyo/72u6/326
*천조국 이야기 제3편(5월호) http://cafe.daum.net/npyo/72u6/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