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교회 출신 최병선 장로의 믿음이야기(간증)
필자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구암리 310번지에 태어나 젊은 시절에 덕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6.25 동란 전에 박윤영 목사님께 세례를 받고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원으로 열심이 봉사하며 1951년에 이영순과 결혼하고 농사하며 미래의 꿈을 키워갔다. 그러다가 결국 1969년에는 고향 완주를 뒤로 하고 상경하여 첫 보금자리를 성동구 옥수동에서 시작하고 금호제일교회에 출석하였다.
2 년 후 1971년 5월에는 은평구 진관동으로 이사하여 대한예수교장로회 구파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거기서 4남 3녀의 자녀 등 대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고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사는 동안 경제적으로는 다소 안정이 되었으나 가정에 우환의 시련이 찾아왔다. 서울로 이사 온 뒤부터 혹독한 시집살이와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로 아내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 화병이 깊어지게 되었다.
1980년부터 아내 이영순 권사가 잦은 입원과 퇴원이 일상이 되어 한의원에서부터 종합병원을 두루 다니며 치료했으나 효험은 나타나지 아니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노라 했는데 하나님은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는가 하고 생각하니 하나님께 대한 회의와 절망감을 느끼기까지 하게 되었다. 수 년 동안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며 고통을 참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연히 현신애 권사님의 제단을 들어 알게 되었다. 너무 반가워서 가족들은 모두 이 기도 제단이 아내의 병을 고치는 마지막 병원이 되기를 염원했다. 그리고 온 가족은 현신애 권사님을 찾아가 이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애원을 했다. 그때 현 권사님은 흔쾌히 기도 부탁을 받아주시며 말씀하시기를 “사형선고를 받고 왔으나 믿으면 살고 믿지 않으면 죽는다.”하시 뜨겁게 기도해주셨다.
감사하게도 현 권사님은 다른 환자들보다 두 배 이상으로 심혈을 기우려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에 우리 가족들도 모두 감동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현 권사님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증조를 보여주셨다. 아내가 기도를 받는 중에 뱃속에서 무언가 암 같은 덩어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질병이 떠나간 것이다. 몸이 가뿐해지고 고통이 사라졌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살려주셨다.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온 가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하게 되었고 감사하며 전부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사랑하셔서 우환을 통하여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게 하셨다. 옛 믿음이 회복되자 가정이 살고 신앙생활이 활기를 얻게 되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교인들도 이를 인정하여 1955년에는 안수집사로 3년 뒤 1988년에는 장로로 선출해주시고 임직하여 주셨다.
1999년 12월에 은퇴하고 2008년 6월에 은평 뉴타운으로 처음 아파트라는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간 7남매의 자녀들도 성가하여 모두 흩어져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감사한 것은 막내아들 최강신이 목사가 되어 경기 중앙교회에서 10여 년간 부목으로 섬기다가 그 교회의 도움으로 2012년 6월에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에 안양노히 소속으로 비젼중앙교회를 개척하여 열심히 목회하고 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아닌 것이 없다. 하나님은 여러모로 단련하시고 그때마다 좋은 교회, 좋은 목회자, 좋은 이웃을 만나게 해주셔서 복된 인생으로 살도록 동행해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그리고 필자가 뿌리 내리고 자라났던 내 고향 전북완주 덕천교회는 영원히 잊지 못할 나의 자랑이요 자부심이다. 그곳이 내 생명, 내 믿음, 내 희망, 내 사랑, 내 기쁨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2013년 정월에
서울 구파발교회 은퇴장로 최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