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원숭이의 해, 열정과 지혜를 상징하는 만큼 새해에 대한 우리들의 기대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경제 침체가 예견되는 가운데 대학의 안위를 위협하는 구조 조정 압박도 만만치 않으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무쪼록 손오공 같은 원숭이의 묘법과 지혜를 빌려서라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잘 찾아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늘 그렇듯이, 해가 바뀌면 다양한 제도의 변화가 새롭게 모색되곤 합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과세와 세제, 법원, 법무, 검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된 제도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펴지던 바로 그 순간, 우리의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마실, 이쁘다, 찰지다, -고프다’ 등 네 항목이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고, ‘푸르르다, 꼬리연, 의론(議論), 이크, 잎새’ 등 다섯 개 항목이 별도의 표준어로 인정되는 한편, ‘말아, 말아라, 말아요’처럼 ‘말다’에 ‘-아(라)’가 결합할 때 ‘ㄹ’이 탈락하지 않는 활용형과 ‘노랗네, 동그랗네, 조그맣네’처럼 ㅎ불규칙용언에 어미 ‘-네’가 결합할 때 ‘ㅎ’이 탈락하지 않는 활용형 등의 항목이 표준형으로 인정되어 2016년 1월 1일 자로 『표준국어대사전』에 반영된 것이 그것입니다.
우선 복수 표준어로 인정된 네 개의 항목 ‘마실, 이쁘다, 찰지다, -고프다’ 등부터 살펴보면, 이들은 ‘마을, 예쁘다, 차지다, -고 싶다’ 등 기존의 표준어형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서의 지위를 얻은 것이 특징입니다.
새롭게 표준어의 지위를 얻게 된 ‘마실’은 기존의 표준어 ‘마을’이 지니고 있던 두 가지 의미, 곧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과 ‘여러 집이 모여 사는 곳’이라는 의미 가운데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이라는 의미의 표준어로 인정된 것입니다. 그동안 ‘이웃에 놀러 다니는 일’ 또는 ‘이웃에 놀러 다니다’라는 뜻의 표준어는 ‘마을’과 ‘마을(을) 가다’였습니다. 그 결과 ‘마실’ 또는 ‘마실(을) 가다’는 표준어가 아닌 방언으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가 이번을 기회로 복수 표준어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다음 문장들에서 보듯, ‘마을/마실’, ‘마을 가다/마실 가다’가 표준어로 자유롭게 선택될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⑴ㄱ. 김바우의 방에는 늘 밤이 이슥도록 마을 나온사람들로 왁자지껄했고, 웃음소리와 고성이 그치지 않았다.≪김원일, 불의 제전≫
ㄴ.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마도 사람이 그리워 마실을 갔을것이다.
‘예쁘다’와 함께 복수표준어로 인정을 받은 ‘이쁘다’는 어떤 면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언어 정책의 도입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쁘다’는 일정한 지역의 방언형이라기보다 발음상의 변이 또는 오류라고 해 오던 것을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쁘다’ 외에 ‘이쁘장스럽다, 이쁘장스레, 이쁘장하다, 이쁘디이쁘다’ 등도 표준어로 인정받게 되었으니, 국민 언어생활의 편의를 높이려는 취지하에 이루어진 이번 조치는 상당히 환영할 만할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편, 반죽이나 밥, 떡 등의 끈기가 많은 것을 의미하는 ‘찰지다’는 ‘차지다’의 원말로 인정을 받아 표준어가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차지다’만을 표준어로 삼았다가 ‘찰지다’의 사용 빈도가 적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여, ‘찰지다’를 ‘차지다’의 원말로 인정한 것이지요. 따라서 ‘차진’ 흙이나 밥 대신 ‘찰진’ 흙이나 밥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이 또한 환영할 만한 조치라고 할 것입니다.
끝으로, ‘-고프다’는 ‘-고 싶다’가 줄어든 말로 풀이되어 표준어로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언어적 사실에 기대어 보면, 한국의 대표적인 가곡 ‘가고파’만 하더라도 그동안 표준어가 아닌 비표준어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 싶다’의 준말로 ‘-고프다’가 인정을 받게 되는 순간, ‘가고파’는 비표준어라는 불명예를 벗어 던질 수 있게 되었으니, 여러 모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모두 탁상공론이 아닌 국민의 실제 언어생활을 토대로, 하나의 표준어가 아닌 둘 이상의 표준어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