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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1. 삶의 길목에서
부서장이 되고나서 자리를 옮기거나 처음 임용되어 오는 직원들과의 첫 만남인 삶의 길목에서 빼놓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는 나 자신이 10년전 까지 등에 대었던 똥 장군 이야기 이다. 요즘 입사하는 직원들은 생소하겠지만 내 연배에는 흔한 일이었다. 똥 장군은 일부러 가득 채우지 않고 어느 정도의 여유를 두고 채운다. 가득 채우지 않는 이유는 가득 채웠다간 지고 갈 때 넘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유의해야 하는 것은 똥 장군을 지고 갈라치면 내용물이 약간 출렁이므로 그 출렁거림과 발걸음을 맞추지 않으면 장군은 그대로 지게에서 나가떨어진다. 또 지게를 등에 딱 붙이지 않으면 그 또한 장군은 내동맹이 치기 십상이다. 이렇게 똥 장군 이야기를 한 다음 이야기의 배경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똥 장군을 가득 채우지 않고 여유를 두듯이 모든 것을 갖겠다고 생각지 말고 어느 정도의 부족함의 미덕을 말하고자 함이고, 다음 똥 장군의 출렁거림과 발걸음의 조화는 조직 구성원들이 서로간의 개성만을 주장하지 않고 조직의 화음을 위하여 협력의 필요성을 말하고자 함이며, 지게를 등에 붙여야 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함에 있어 지게를 등에 붙이듯이 일도 딱 몸에 붙여서 해달라는 말을 하고자 함이라고 하고는 이야기를 맺는다.
다음은 꿈꾸지 않으면 어느 것 하나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사람이 무엇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러나 그런 꿈을 갖지 않으면 이루려고 하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무엇을 이루기 위한 꿈도 그것을 해내기 위한 노력도 하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다.
세 번째는 사물을 봄에 있어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하라고 말한다. 오늘날과 같은 평등의 세상을 이루게 된 배경에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그것을 바꾸려는 무한한 노력을 한 선각자들의 피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이유 있는 부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살면서 얻은 결론은 부정적인 시각은 스스로를 힘들게 한다. 동료와의 관계도 삐걱거리게 만든다. 그리고 때론 문제아로 전락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그러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이는 젊은 시절 대인관계 적응에 서투른 나에게 충고한 나의 인척의 충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직장이란 일터이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장소는 아니다. 그것이 목적이면 사회사상가가 돼라.”
2. 가족해체
어느 날 아침에 라디오 청취 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10년 전에는 1,400여명에 불가하던 초등학교의 중도 탈락생이 10년이 지난 현재 그 10배인 14,000여명이란다. 그 원인은 부부의 이혼에 의한 경우와 자녀의 조기 유학을 위하여 어머니가 자녀를 데리고 해외로 가는 경우라고 한다. 두 가지의 원인은 매우 극단적이다. 하나는 무책임의 극치이고 하나는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아닌가 한다. 자녀를 서양사람 만들어서 어쩌겠다는 것일까? 전자는 대단한 불행이고 후자는 너무나 극성스러움이 문제가 아닌가 한다. 사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이 안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은 서구의 문물을 닮는 것이 곳 선진화라는 잘못된 개념이 정립되면서 이혼율이 30%를 훌쩍 뛰어 넘었다. 이혼을 죄악시만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때로는 이혼도 선택일 수는 있겠지만 부부가 갈라서는 것은 두 사람은 물론 두 집안간의 원한이 맺히게 되고 두 사람 사이에서 난 자녀가 있다면 그들에겐 도리 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서구를 닮을 것은 닮고 닮지 않을 것은 닮지 않아야 하는데 이러다간 미국사람 똥까지 수입하지나 안을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사람 하나하나가 가족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다. 교육이 바로서지 않는 한 우리사회가 바로서기 어렵고 가정이 해체되는 한에서 우리가 수만 불의 소득을 갖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3. 어른공경 꼴찌 나라
너무나 극단적인 표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상당부분 현실인 한에선 부끄럽고 불행한 일이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의 어른 공경자세가 아시아에서 꼴찌라고 한다. 어쩌다 "동방예의지국"이라던 나라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이러한 것은 지나친 아이의 氣 살리기에 나선 우리의 젊은 여인들의 공적(?)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 어느 때 업보가 되어 돌아왔을 때는 후회하게 되겠지만. 어린애들의 氣를 살린다고는 지하철에서 뛰어놀다 다른 사람의 발을 밟는 사태가 와도 음식점에서 뛰어놀다 옆 손님의 물그릇을 꺼 엎어도 아이를 나무라지도 상대방에 대한 사과의 자세도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아들만 생각하다보니 애들은 버릇없이 자랐고 그 업보를 언젠가 걔들이 자란다음에 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싶다.
서양의 어느 나라에서 지하철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볼 수 있으며, 음식점에서 버릇없이 구는 얘들을 그대로 놓아두는 부모를 찾아 볼 수 있다던가
젊은 여인네여 아이들의 氣 살리는 것도 좋지만 남을 배려하는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는 자세부터 가르쳤으면 한다.
그래서 막말로 호로 자식은 이제 그만..........
4. 유지생각
우리는 지역의 유지라는 말을 잘 쓴다. 유지는 2가지의 종류가 있다. 有志와 油紙이다. 모두들 후자가 전자의 유지라고 착각하는데 문제가 있는가 싶다.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조금은 경청할만한 해석을 들었다. "有志는 베푸는 사람이어야지 거두어 들이는 사람이어선 안 된단다," 스스로를 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거두어들이는 사람이면 油紙가 될 것이다. 적어도 남의 앞에 서려는 사람들은 가만히 자기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5.농정과 농민의 대응
들판은 황금빛인데 농부는 기쁘지 않다. 정부에서는 WTO협정에 묶여 종전과 같은 매상을 해주지 못하고 곡가조절용으로 일정량을 사들이면서 차후에 정산하는 조건을 붙였으나 시장은 그것을 가격으로 받아들였다. 정부가 좀더 사려 깊었다면 예년의 수매가격을 생각하고 매입가격을 제시하는 현명함을 보였다면 올해와 같은 쌀값폭락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은 남는다. 정부는 기준값을 예시했고 일정차액에 대한 지원을 제시했기에 그 예산은 예상액을 훨씬 뛰어 넘을 것으로 보여 진다. 더 걱정되는 것은 차액보전과 같은 보조형태는 WTO가 한도를 정하고 있기도 해서 한계가 있다. 대만정부도 우리나라와 같은 정책변경과정에서 현재 우리가 겪는 농민들의 시위를 당했다고 하는데 왜 他山之石으로 삼지 못하고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말았을까? 2006년에는 국내 소비량의 10%에 달하는 양을 수입해야만 하는데 쌀값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태산이다. 이제 정부는 벼가 아닌 다른 작물을 심도록 유도하기 위한 고정직불금을 대폭 높여야 할 것이다.
출장길에 쌀값문제를 두고 농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부가 하고 싶어도 할 수없음을 설명했다. 그런다고 그 분들의 입장을 떠나 제3자가 되기는 어렵겠지. 그렇다고 앞뒤 돌아보지 않고 감산정책도 어려운 게 우리의 현실이긴 하다. 농가소득의 40%이상을 쌀이 차지하고 있다. 소득보전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고 최소한의 식량 자급도도 유지하여야 한다. 지금이야 쌀이 남는다고 야단들이지만 만에 하나 흉년이라도 들라면 우리는 쌀을 수입해야 한다. 식량은 수요의 탄력성이 크므로 흉년이 들면 아마도 몇 배나 비싼 돈을 주고사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흉년이 들었는데 국내 정치상황도 불안했다. 꽤 비싼 가격으로 쌀을 사온 것으로 기억 된다. 또한 농민들도 모든 책임을 정부에만 미루지 말고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외국산 농산물이 들어 왔을 때 소비자들이 외국산이 아닌 국내산 농산물을 선택하게 하는 차별화를 어떻게든 만들어 내어야 한다. 현재 지나치게 벼에 집중된 농사형태를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흉년에 대비한 보험제도도 도입되어야 한다. 이의 재원은 정부예산 지원과 농민부담으로 꾸려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쌀은 주식이므로 흉년이 들 때를 대비하여 지금과 같이 해가 지나면 급격하게 미질이 나빠지고 보관비가 많이 드는 벼 보관방법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는 어렵더라도 벼가 아닌 현미로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해저에 굴을 파서 보관하는 방안 등은 어떨지. 장기적 안목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6. 제 3의 대안은 없을까?
산업혁명이 자본가의 부는 크게 늘려 주었으나 상대적으로 약자인 노동자의 가난은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노동의 강도는 높았다. 이에 정면으로 항거한 노동자의 러다이츠운동은 소득 없이 끝났다. 그러나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그러한 비참한 사회상을 보고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사상은 잉태하게 되었단다.
그 후 반세기 이상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 체제는 서로의 우월을 자랑하다가 "능력만큼 벌고 필요한 만큼 쓴다."는 원리에서 출발한 공산주의는 그 이상은 좋으나 그 내부의 모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걸었다. 반면 자본주의 진영은 어떤 면에서 공산주의는 소련에서 생기고 그 꽃은 미국에서 피었다고 하는 사례로 일컬어지는 GM 창업주가 자신의 보유주식 과반이상을 종업원 조직에 줌으로서 회사가 종업원들이 경영에 참여할 단계까지 넘어감으로서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이 번영을 구가하는 바탕의 이면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소련의 패망은 공산주의가 있음으로 하여 자본주의 스스로가 자신의 체제 모순을 시정해 갔으나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게 된 자본주의는 이제 신자유주의와 지식사회만이 최선인 것으로 끌어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종업원에 대한 배려로 차량 한대 출고 때 마다 1,800불이상이 종업원 후생비로 지출되는 GM은 자동차 생산의 1위 자리를 도요다에 내어주면서 3만 여명의 종업원을 해고하는 등 비틀거리고 있다. GM은 신자유주의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5%의 인구가 80%의 부를 가질 수 있는 체제로 가고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빈부간의 갈등은 증폭될 것이고 가진 소수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갖지 못한 다수는 어떠한 행동을 할 것인가 생각하기에 따라선 끔직한 결과가 오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표에 의해서 결정될 수밖에 없는데 오늘 우리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이 신자유주의 체제는 무언가 계도수정이 필요한 시점에 온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대안들은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오늘의 문제는 제3의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이를 찾아내는 것이 미래의 인류 평화를 구하는 학문이 되지 않을까 한다. 연구해 볼만한 분야가 아닐까?
7. 돈에 차등이 있을까?
이 지구상에서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기만하면 싹이 트는 땅은 생각처럼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같이 아무 곳이나 갈고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곡식이 자라는 땅에 사는 우리는 얼마나 천혜의 혜택을 받은 민족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산비탈을 헤매며 밤을 줍고 나면 허리도 다리도 손아귀도 아프니 천혜의 고마움도 잊게 된다. 다만, 고생만 뇌리에 남아 이 돈 같다면 친구와 술 한 잔 하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만이 뇌리에 남는다. 그러나 이렇게 남의 일 하면 그 품삯이 3 만원인데 남을 시키면 그것도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것은 남과 나를 차등화 하는 이중의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닐지?
돈에 차등이 어디 있으랴만 이렇게 힘들게 번 돈은 아무래도 흥청망청 쓸 수는 없을 테니 돈에도 차등이 있다고 해야지 않을 런지.........................
우리사회에서 날이면 날마다 불거지는 독직사건을 돈은 이렇게 버는 것이다 하고 현장감 있게 가르칠 방법은 없을까. 가능은 하겠지만 그런 생각은 아마도 세대차이라고 하는 말장난에 걸리겠지
아무래도 우리사회의 부패문제 치유는 잔머리 굴리는 첨단의 문명이 아니라 매끄럽지 못한 노동을 통한 투박함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쩜 이것도 젊은이의 눈에는 구시대인의 생각이라고 매도될지 모르지만.........
8. 지위와 인격
우리는 많은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오류는 지위가 곧 인격이라는 잘못된 함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세상이 바람직한 상태로 흘러간다면야 직위가 인격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마는 ...
혼탁한 여건에서는 직위가 인격이 되기는 성경에서 말하는"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는 형국이 되지 않을까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의 직위가 인격인양 으스대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을 모르는 당사자는 불쌍한 일이고 그 사회에서 그런 것이 아닌 줄 알면서 그 말이 맞은 양 사는 우리는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