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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편
의지는 소멸할 수 없음을 설명하고, 아울러 사후에 반드시 천당과 지옥의
상벌로써 세인들이 행한 선악에 응보가 있음을 논함
第六篇 : 釋解意不可滅, 幷論死後必有天堂地獄之賞罰以報世人所爲善惡
장정란 역
6-1 ◈ 중국 선비가 말한다.
承敎
승교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一則崇上帝爲萬尊之至尊 一則貴人品爲之尊之次
일칙숭상제위만존지지존 일칙귀인품위지존지차
하나는 하느님을 모든 귀한 존재 중에 가장 지존한 존재로 숭배하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인간을 지존한 하느님의 버금으로 귀하게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但以天堂地獄爲言 恐未或天主之敎也
단이천당지옥위언 공미혹천주지교야
그러나 천당과 지옥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은 아마도 천주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닌 듯합니다.
夫因趣利避害之故 爲善禁惡 是乃善利惡害 非善善惡惡正志也
부인취리피해지고 위선금악 시내선리악해 비선선악악정지야
무릇 이로운 데로 나아가고 해로움을 피하려는 이유 때문에 선을 행하고 악행을 그만둔다면 이것은 바로 이로움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는 공리타산이요,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바른 뜻이 아닙니다.
吾古聖賢敎世 弗言利 惟言仁義耳
오고성현교세 불언리 유언인의이
우리 중국의 옛 성현들이 이 세상을 가르침에는 이로움의 취득을 말하지 않았고 오직 仁義만을 말했을 뿐입니다.
君子爲善無意 況 有利害之意耶?
군자위선무의 황 유리해지의야?
군자가 선을 행함에는 아무런 다른 의도가 없는 것입니다. 하물며 이해를 따지는 의도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吾先答子之末語 然後答子之本問 彼滅意之說 固異端之詞 非儒人之本論也
오선답자지말어 연후답자지본문 피멸의지설 고이단지사 비유인지본론야
저는 선비님의 나중 질문에 먼저 답하고 그 다음 본래의 물음에 대답하겠습니다. 그 ‘의를 없애라(滅義)’라는 이론은 진실로 이단(즉, 불교나 도교)의 말(즉, 空이나 無)이며 유교 선비들의 본연의 논의가 아닙니다.
儒者 以 誠意 爲 正心
유자 이 성의 위 정심
유교 선비들은 ‘이지를 성실히 함(誠意)’으로써 ‘마음을 바르게(正心)’합니다.
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根基 何能無意乎?
수신제가치국평천하지근기 하능무의호?
바른 마음이 자신을 수양하여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나라를 다스려서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뿌리와 바탕이라 했으니 어찌 인간의 의지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高臺無堅基 不克起 儒學無誠意 不能立矣
고대무견기 불극기 유학무성의 불능립의
높다란 누각이란 단단한 기반이 없이는 세울 수 없듯이 유교의 학문은 성실한 의지가 없으면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設自正心之平天下 凡所行事 皆不得有意 則奚論 其意誠乎 虛乎?
설자정심지평천하 범소행사 개부득유의 칙해론 기의성호 허호?
만약 ‘마음을 바로 잡음(正心)’으로부터 ‘천하의 태평을 이룸(平天下)’에 이르기까지 무릇 실행하는 일들에 우리 모두의 의지를 가질 수 없게 한다면 어떻게 그 의지가 ‘진실된지(誠)’ ‘허탄한지(虛)’ 따질 수 있겠습니까?
譬有琴於市 使吾不宜奏 何以售之?
비유금어시 사오부의주 하이수지?
비유하자면 시장에 가야금이 있는데 우리들로 하여금 그것을 자유롭게 연주해 보지 못하게 한다면 어떻게 그것이 팔려 나갈 수 있겠습니까?
何拘其古琴今琴與?
하구기고금금금여?
자유롭게 연주를 해 보게만 한다면 그것이 옛날 헌 가야금이든 지금의 새 가야금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且意非有體之類 乃心之用耳 用方爲意 卽有邪正
차의비유체지류 내심지용이 용방위의 즉유사정
또한 의지란 형체가 있는 부류가 아니고 마음의 쓰임새일 따름입니다. 마음을 써야 의지가 바로 ‘그르게도(邪)’ ‘바르게도(正)’되는 것입니다.
若令君子畢竟無意 不知何時誠乎!
약령군자필경무의 부지하시성호!
만약 올바른 선비로 하여금 끝내 의지를 갖지 못하게 한다면 그 마음이 언제 성실하게 될지 알 길이 없습니다!
大學言 齊 治 均平 必以意誠爲要 不誠則無物矣
대학언 제 치 균평 필이의성위요 불성칙무물의
대학에서 말하는 “집을 가지런히 함(齊), 나라를 다스림(治), 세상에 균등하게 태평을 이룸(均平”은 반드시 의지의 성실함을 요체로 삼고 있습니다. 의지의 “성실함이 없으면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意於心 如視於目 木不可郤視 則心不可除意也
의어심 여시어목 목불가극시 즉심불가제의야
의지와 마음의 관계는 마치 시력과 눈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눈은 도리어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마음은 의지를 없앨 수 없습니다.
君子所謂無意者 虛意 私意 邪意也
군자소위무의자 허의 사의 사의야
군자가 ‘없애야할 의지(無意)’는 내용 없는 허망한 의지(虛意), 사사로운 의지(私意), 비뚤어진 의지(邪意)를 말합니다.
如云 滅意 是不達儒者之學 不知善惡之原也
여운 멸의 시불달유자지학 부지선악지원야
만약 올바른 ‘의지를 없애라(滅意)’고 말한다면 그것은 유교라는 학문을 통달하지 못한 것이요, 의지가 선과 악의 근원임을 모르는 것입니다.
善惡德慝 俱由意之正邪 無意則無善惡 無君子小人之辨矣
선악덕특 구유의지정사 무의칙무선악 무군자소인지변의
선과 악, 덕과 부덕은 모두 의지의 바름과 그름에서 유래합니다. 의지가 없다면 선과 악이 없으며, 군자와 소인의 구별도 없습니다.
6-2 ◈ 중국 선비가 말한다.
毋意 毋善 無惡 世儒固有其說
무의 무선 무악 세유고유기설
그러나 “인위적 의도를 하지 말라(毋意)!, 반드시 선하다고 고집하지 말라!, 반드시 나쁘다고 단정하지 말라!”고 공자가 말씀하셨으니 세상에 유교는 진실로 그런 의론(즉, 毋意)을 가지고 있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此學欲人爲土石者耳 謂上帝宗義 有是哉?
차학욕인위토석자이 위상제종의 유시재?
그런 학문은 사람을 자유 의지가 없는 흙이나 돌멩이처럼 만들고자 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으뜸가는 교의가 이런 것일 수 있겠습니까?
若上帝無意無善 亦將等之乎土石也 謂之理學 悲哉 悲哉!
약상제무의무선 역장등지호토석야 위지리학 비재 비재!
만약 하느님이 의지도 없고 선도 없는 존재라면 또한 그를 흙이나 돌과 똑같은 것으로 보는 셈입니다. 이런 것을 도리가 있는 학문이라고 말한다면 슬프고 슬픈 일입니다.
昔老莊亦有 勿爲 勿意 勿辯 之語
석노장역유 물위 물의 물변 지어
옛날 노자와 장자에 또한 의도적으로 “하지도 말고, 생각도 말고, 논변하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然己所著經書 其從者所爲註解 意固欲易天下 而僉從此一端
연기소저경서 기종자소위주해 의고욕역천하 이첨종차일단
그러나 자기들이 經, 즉 道德經과 책(莊子)을 저술하였고, 그 추종자들이 그것을 주석한 것은 진실로 천하의 도리를 바꾸어 모두 이 道家의 도리 한 가지만을 따르게 하려고 의도한 것입니다.
夫著書 獨非爲乎? 爲易天下 獨非意乎?
부저서 독비위호? 위역천하 독비의호?
유독 책을 쓰는 것만은 의도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까? 오로지 천하의 도리를 바꾸려고 의도한 것만은 의도적인 것이 아니란 것입니까?
卽 不可辯是非 又何辯 辯是非者乎?
즉 불가변시비 우하변 변시비자호?
저들이 일단 사태의 “옳고 그름이란 판별될 수 없다”고 한다면 또한 어찌 “옳고 그름(是非)을 변별”하는 논변을 하는 것입니까?
辯天下명理 獨非辯乎?
변천하명리 독비변호?
도가에서 세상의 이름(名)과 이치(理)를 변별하는 것만은 유독 논변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까?
則卽已者相戾矣 而欲師萬世也 雖哉
칙즉이자상려의 이욕사만세야 수재
그렇다면 이들 道家는 이미 스스로 이론과 행동이 서로 모순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萬世의 스승이 되려고 한다면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吾觀世人爲事 如射焉 中的則謂善 不中則爲惡
오관세인위사 여사언 중적칙위선 부중칙위악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은 저는 활을 쏘는 일과 같다고 봅니다. 과녁에 적중하면 “잘했다(善)”고 하고 적중하지 못하면 “나쁘다(惡)”고 합니다.
天主者自然中于的者也 有至純之善 無纖芥之惡 其德之也
천주자자연중우적자야 유지순지선 무직개지악 기덕지야
천주께서는 저절로 과녁을 적중시키는 분이십니다. 지극히 순수한 선만을 가지고 있으며, 털끝만한 악도 없으니 그 덕은 지극합니다.
吾儕則有中 有不中矣 其所修之德有限
오제즉유중 유불중의 기소수지덕유한
우리들이라면 적중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수련한 그 공덕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故德有不到 卽行事有所不中 而善惡參焉
고덕유부도 즉행사유소부중 이선악참언
따라서 닦은 덕이 이르지 못함이 있으면 일을 행함에 적중하지 못하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게 됩니다.
爲善禁惡 縱有意 猶恐不及 況 無意 乎?
위선금악 종유의 유공불급 황 무의 호?
선을 행하고 악을 금하는 일에 강력한 의지를 갖는다고 하여도 오히려 미치지 못할까 두려운데 하물며 의지를 없애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其餘無意之物 如金石草木類 然後無德無慝 無善無惡
기여무의지물 여금석초목류 연후무덕무특 무선무악
그 밖에 의지가 없는 존재는 예를 들어 쇠붙이, 돌멩이, 풀, 나무 같은 종류들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나중에라도 덕이 있는 것도 부덕한 것도,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없습니다.
如以無意 無善惡爲道 是金石草木之而後 成其道耳
여이무의 무선악위도 시금석초목지이후 성기도이
만약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의지를 없이 하고 선행과 악행도 없는 것을 도리로 삼게 한다면 그것은 우리 인간들을 우선 쇠붙이, 돌, 풀, 나무처럼 되게 한 다음에 그것들의 도리를 이루게 할 뿐인 것입니다.
6-3 ◈ 중국 선비가 말한다.
老莊之徒 只欲全其天年 故屛意其善惡 以絶心之累也
노장지도 지욕전기천년 고병의기선악 이절심지누야
노자와 장자의 무리는 단지 그들이 타고난 자연의 생명을 온전히 누리려고 할 뿐이기 때문에 의지를 물리치고 선과 악을 버림으로써 마음의 얽매임을 끊어버리려는 것입니다.
二帝 三王 周公 孔子 皆苦心極力 修德於己 以施及於民 非止于至善 不敢息
이제 삼왕 주공 공자 개약심극력 수덕어기 이시급어민 비정우지선 불감식
요임금, 순임금과, 우왕, 탕왕, 문왕과 주공과 공자는 자신의 덕을 닦음으로써 백성에게 베풀어 미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지극한 선에 이르지 않으면 감히 쉬지 못했습니다.
惟有 務全身 滅意逍遙 以充其百歲之數者哉?
유유 무전신 멸의소요 이충기백세지수자재?
이들 중에 몸만 온전히 하고 의지를 없애고 노니는데 힘써 백 살이라는 나이를 채원 자가 누가 있었겠습니까?
縱充其百歲之壽 亦不能及一龜一朽樹之壽也
종충기백세지수 역불능급이구일후수지수야
설령 백세의 수를 채웠을지라도 하나의 거북이나 하나의 썩은 나무의 수명에는 미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而徒以加三旬之暫 於此穢身 竟何儕哉?
이도이가삼순지잠 어차예신 경하제재?
그런데 헛되이 2, 30년 이라는 짧은 시간을 더러운 육신에 더 보탠다 한들 마침내 무엇을 건져 낼 수 있겠습니까?
然二氏無足詆
연이씨무족저
그러니 이 두 사람(노자와 장자) 은 비판할 만한 가치조차 없습니다.
所言德慝善惡 俱由意 其詳何如?
소언덕특선악 구유의 기상하여?
다만 선생께서 덕과 부덕, 선과 악 모두가 사람의 의지로부터 연유됨을 말씀하셨습니다. 상세하게 말씀해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聞 夫順理者 卽爲善 而稱之德行 犯理者卽爲惡 而稱之不才
문 부순리자 즉위선 이칭지덕행 범리자즉위악 이칭지부재
“무릇 도리에 순응하는 것이 바로 선이요 그것을 덕행이라 말하고, 도리를 어기는 것이 바로 악이 되니 못난이라고 불린다.”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則顧行事如何 於意似無相屬
즉고행사여하 어의사무상속
그렇다면 행하는 일이 어떠한가를 되돌아보는 일이지, 인가의 의지와는 아마도 별 상관이 없는 듯해 보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理易解也
이이해야
이런 도리는 쉽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凡世物旣有其意 又有能縱止其意者 然後有德有慝有善有惡焉
범세물기유기의 우유능종지기의자 연후유덕유특유선유악언
무릇 세상의 사물이 일단 자기의 의지를 가지고 있고 또한 그 의지를 따를 수도 있어야 그 다음에 덕도 부덕도, 선도 악도 있게 됩니다.
意者心之發也 金石草木無心 則無意 故鏌鎁傷人 復讐者不折鏌鎁
의자심지발야 금석초목무심 칙무의 고막야상인 복수자부절막야
의지는 마음에서 발동하는 것입니다. 쇠나 돌이나 초목들은 마음이 없으니 의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막야(鏌鎁: 중국 고대의 명검)가 사람을 해쳤어도 북수하려는 사람은 ‘막야’를 부러뜨리지 않습니다.
飄瓦損人首 忮心者 不怨飄瓦
표와손인수 기심자 불원표와
바람에 날리는 기와가 사람의 머리를 다치게 했다 해도 원통한 사람은 날아온 기와에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然! 鏌鎁截斷 無與其功者 瓦蔽風雨 民無酬謝
연! 막야절단 무여기공자 와폐풍우 민무주사
그렇습니다. 막야가 자르고 절단 한다고 해서 그것에 공로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와가 바람을 막아주어도 사람들은 그것에 보답하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所爲 無心無意 是以無德無慝 無善無惡 而無可以賞罰之
소위 무심무의 시이무덕무특 무선무악 이무가이상벌지
한 일이 마음에서도 의지에서도 우러나온 바가 없기 때문에 덕도 부덕도 없고 선도 악도 없어서 이들을 상줄 수도 발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若禽獸者 可謂有禽獸之心與意矣
약금수자 가위유금수지심여의의
짐승이라면 짐승의 마음과 의지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但無靈心以辯可否 隨所感觸任意速發 不能以理爲之節制
단무영심이변가부 수소감觸임의속발 불능이리위지절제
그러나 옳은지 그른지를 변별할 수 있는 이성이 없으니 느낀 바에 따라서 멋대로 즉시 반응하는 것이며 이치를 따져서 자기가 할 바를 절제하지 못합니다.
其所爲 是禮非禮 不但不得已 且亦不自知 有何善惡之可論乎?
기소위 시례비례 부단부득이 차역부자지 유하선악지가론호?
자기들이 한 짓이 옳은 예이든 옳은 예가 아니든 어찌할 수 없어서 할 뿐만 아니라 도한 역시 스스로 알 턱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 선인지 악인지를 따지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是以天下諸邦 所制法律 有無刑禽獸之慝 賞禽獸之德者
시이천하제방 소제법률 유무형금수지특 상금수지덕자
이렇기 때문에 세상의 여러 나라에서 제정한 법률에는 짐승의 부덕함에 벌을 주거나 짐승의 덕행에 상을 주는 일은 없습니다.
惟人不然 行事在外 理心在內 是非當否 嘗能知覺 兼能縱止
유인불연 행사재외 이심재내 시비당부 상능지각 겸능종지
오직 사람만은 그와 같지 않아서 밖으로 일을 거행하고 안으로는 마음을 다스려서 옳은지, 그른지, 합당한지, 아니한지를 지각할 수 있고 그에 따라서 그 일을 할 수도 그만 둘 수도 있습니다.
雖有獸心之欲 若能理心爲主 獸心豈能爲我主心之命?
수유수심지욕 약능리심위주 수심개능위아주심지명?
비록 짐승의 마음이 있다 해도 이치로 마음을 주재하면 짐승의 마음이 어찌 우리들이 주도하는 마음(즉 이성)의 명령을 어길 수가 있겠습니까?
故吾發意從理 卽爲德行君子 天主祐之
고오발의종리 즉위덕행군자 천주우지
따라서 우리가 도리에 따라서 의지를 발동하면 곧 덕을 행하는 군자가 되는 것이니, 천주께서는 그런 사람을 도우십니다.
吾溺意獸心 卽爲犯罪小人 天主且棄之矣
오익의수심 즉위범죄소인 천주차기지의
우리의 의지가 짐승의 마음에 빠져 들어 바로 죄짓는 소인이 되면 천주께서는 또한 이들을 내쳐버립니다.
嬰兒擊母 無以咎之 其未有以儉己意也
영아격모 무이구지 기미유이검기의야
어린 애기가 어머니를 때려도 이를 나무랄 수 없는 것은 그 아이가 아직 자기의 의지를 살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及其壯 而能識可否 則何待于擊? 稍逆其親 卽加不孝之罪矣
급기장 이능식가부 칙하대우격? 초역기친 즉가불효지죄의
그러나 그 아이가 장성하여 옳고 그름을 인식할 수 인식할 수 있을 때에 이르면 어찌 그 때리는 것을 기다리겠습니까? 조금 자기 부모를 거슬려도 곧 불효의 죄가 부가될 것입니다.
昔有二弓士 一之山野 見叢有伏者如虎 慮將傷人 因射之 偶誤中人
석유이궁사 일지산야 견총유복자여호 려장상인 인사지 우오중인
옛날에 활 써는 사람 둘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산과 들로 갔는데 관목아래 엎드린 사람을 호랑이로 잘못 생각하여 그 호랑이가 장차 사람을 해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활로 쏘았는데 도리어 우연하게 사람을 맞추는 잘못을 했습니다.
一登樹林 恍惚傍視 行動如人 亦射刺之 而寔乃鹿也
일등수림 광홀방시 행동여인 역사자지 이식내녹야
다른 한 사람은 나무 숲속에 올라가서 얼핏 곁을 보니 마치 사람처럼 움직이는 것이 있어서 역시 그것을 활로 쏘고 칼로 찔렀는데 실제로는 사슴이었습니다.
彼前一人 果殺人者 然而意在射虎 斷當褒
피전일인 과살인자 연이의재사호 단당포
그 먼저 사람은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였으나 의지는 호랑이를 쏘는 데 이었으니 판결은 마땅히 포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後一人雖殺野鹿 而意在刺人 斷當貶
후일인수살야녹 이의재자인 단당폄
나중 사람은 비록 야생 사슴을 죽였으나 그 의지는 사람을 찌르는데 있었으니 판결은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奚由焉? 由意之美醜異也 則意爲善惡之原明著矣
해유언? 유의지미추이야 즉의위선악지원명저의
어떤 이유 때문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의지의 아름답고 추함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렇다면 의지가 선과 악의 근원임이 명백히 드러난 셈입니다.
6-4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子爲兩親行盜 其意善矣 而不免于法 何如?
자위양친행도 기의선의 이불면우법 하여?
자식이 부모를 공양하기 위하여 도둑질을 한다면 그 의지는 좋은 것이지만 그런데도 법의 처벌을 면하지 못하니 어찌된 것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吾西國有公論曰 善者成乎全 惡者成于一 試言其故
오서국유공론왈 선자성호전 악자성우일 시언기고
우리 서양 나라의 도덕 공리에 “선은 완전함에서 이루어지고, 악은 아주 작은 잘못 하나만으로도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를 말해 보겠습니다.
人旣爲盜 雖其餘行悉義 但乎爲惡 不可稱善
인기위도 수기여행실의 단호위악 불가칭선
사람이 일단 도둑질을 했으면 비록 그 나머지 행실이 모두 의롭다고 해도 다만 나쁜 짓을 했다고 하지 착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所謂 西子蒙不潔 則人皆掩非而過之
소위 서자몽불결 칙인개엄비이과지
이른바 “서시(西施)라고 해도 불결한 것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지나갑니다.”
譬如水甕 週圍後堅 惟氐有一罅 水從此淚 此瓮決 爲無用碎瓦
비여수옹 주위후견 유저유일하 수종차루 차옹결 위무용쇄와
또 비유하자면 물독의 둘레 모두가 두껍고 단단해도 오직 바닥에 틈새 하나라도 있으면 물이 그곳으로부터 샐 것입니다. 이런 항아리는 빠개져서 쓸모없는 조각난 질그릇이 될 것입니다.
惡之爲情 訝毒也
악지위정 심독야
악이란 사실 매우 지독한 것입니다.
捨己之財 善濟貧乏 以竊善聲 而得非所得之位 所爲雖當 其意實枉
사기지재 선제빈핍 이절선성 이득비소득지위 소위수당 기의실왕
누가 자기의 재물을 희사하여 가난과 궁핍을 널리 구제하였고 그럼으로써 좋은 명성을 훔쳐내어 평소 가질 수 없는 지위를 얻었다면 비록 행동한 것이 마땅하다고 해도, 그 의지의 지향은 실로 비뚤어진 것입니다.
則其事盡爲不直
즉기사진위불직
그렇다면 그가 행한 일들은 모두 다 곧지 못한 것입니다.
盖醜意汚其善行也
개추의오기선행야
대개 추한 의지는 그 사람의 선행까지도 더럽히는 법입니다.
子爲親 竊人財物 其事旣惡 何有善意?
자위친 절인재물 기사기악 하유선의?
자식이 부모를 위하여 남의 재물을 훔친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나쁜 것인데 어찌 좋은 의지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吾言 正意爲爲善之本 惟謂行吾正 勿行吾邪!
오언 정의위위선지본 유위행오정 물행오사!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바른 의지(正意)’란 선행을 실천하는 근본이니 오직 우리들의 올바름(正)만을 실천하고 우리들의 그릇됨(邪)은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偸盜之事固邪也 雖襲之以義意 불爲正矣
투도지사고사야 수습지이의의 불의정의
도둑질은 진실로 그릇된 것입니다. 비록 의로운 뜻을 우연하게 취할 수는 있다 해도 결코 올바름이 될 수 없습니다.
爲纖微之不善 可以捄天下萬民 猶且不可爲 矧以育二三口乎?
위섬미지불선 가이구천하만민 유차불가위 신이육이삼구호?
실 날처럼 아주 작은 불선을 하여 온 세상의 만민을 다 구제해 낼 수 있다고 하도라도 오히려 우리는 또한 그렇게 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하물며 도둑질을 하여 두세 식구를 먹여 살리는 일 때문이겠습니까?
爲善正意 惟行當行之事
위선정의 유행당행지사
선을 행하는 바른 의지란 마땅히 실천해야 할 일만 하는 것입니다.
故意益高 則善益精 若意益陋 則善益粗
고의익고 칙선익정 약의익누 칙선익조
따라서 하려는 의지가 더욱 고상해지면 선 또한 더욱더 정일해 집니다. 만약 하려는 의지가 더욱 비루해지면 선 또한 더욱더 조잡해 집니다.
是故意宜養宜誠也 何滅之有哉?
시고의의양의성야 하멸지유재?
그렇기 때문에 의지는 마땅히 잘 길러져야만 하고 마땅히 성실해져야 합니다. 그것을 없애야 할 무슨 이유가 있단 말입니까?
6-5 ◈ 중국 선비가 말한다.
聖人之敎 縱不滅矣 而其意不在功效 只在修德
성인지교 종불멸의 이기의부재공효 지재수덕
중국 성인들의 가르침이 설령 의지를 없애라고 한 것은 아닐지라도 자기의 의지를 일의 이점이나 결과에 두지 말고, 오로지 덕을 닦는 데만 두라고 했습니다.
故勸善而能德之美 不指賞 沮惡而言惡之罪 不言罰
고권선이능덕지미 불지상 저악이언악지죄 불언벌
그러므로 선을 권면하면서 덕의 아름다움만을 말할 뿐 그 선에 대한 보상을 논하지 않습니다. 악을 막으려고 악의 잘못된 점沮(罪)을 말할 뿐, 그것에 대한 징벌은 말하지 않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聖人之敎 在經典 其勸善必以賞 其沮惡必以徵矣 舜典曰 象以典刑 流宥五刑!
성인지교 재경전 기권선필이상 기저악필이징의 순전왈 상이전형 류유오형!
중국 성인의 가르침은 유교의 경전들에 있습니다. 그것도 선을 권면함에는 반드시 상으로써 하였고, 악을 막는 데는 반드시 징벌로써 하였습니다. 상서(尙書)의 순전(舜典)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법으로써 일정한 형벌을 정하되, 五刑은 유배시키는 것으로 완화 하여라!”
又曰 三載考績 三考 黜陟幽明 庶績咸熙 分北三苗
우왈 삼재고적 삼고 출척유명 서적함희 분북삼묘
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삼 년 동안 신하들의 성적을 고찰하라! 그것을 세 번 고찰하여 공덕이 밝은 자는 직위를 올리고 어두운 자는 내쫓아라! 이 결과 여러 공적들이 모두 밝게 빛나게 되었고 삼묘를 분산하여 패배시켰다.”
皐陶謨曰 天命有德 五服五章哉 天討有罪 五刑五用哉
고요모왈 천명유덕 오복오장재 천토유죄 오형오용재
현명한 신하 고요는 순임금께 이렇게 사뢰어 말했습니다. “하늘이 덕이 있는 이에게 명을 내리신 것이니 다섯 가지 복식으로 천하의 등급을 다섯 가지로 나타내십시오! 하늘은 죄 있는 사람을 내리치니 五刑을 다섯 가지 경우에 적절히 쓰십시오.”
益稷謨曰 帝曰 迪脫德 時乃功 惟敘 皐陶方祗厥敘 方施象刑 惟明
익직모왈 제왈 적탈덕 시내공 유서 고요방시궐서 방시상형 유명
익직이 사뢰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 천하가 짐의 덕을 따르는 것, 그것은 그대의 공로요, 오직 그것을 펼치는 것이네. 하고 순임금께 말씀하셨습니다. 고요는 단지 사방으로 펼치는 것이고, 사방으로 형법을 실행하여 오직 형벌의 마땅함을 밝히는 것뿐입니다.”
盤庚曰 有無遠邇 用罪 用德 彰厥善 邦之臧 惟汝衆 邦之不臧 惟予一人佚罰
반경왈 유무원이 용죄 용덕 창궐선 방지장 유여중 방지불장 유여일인일벌
은나라 임금 반경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혈연상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죄지으면 사형으로 벌줄 것이고, 덕이 있으면 그 선을 표창할 것이다. 나라가 좋아지는 것은 오직 그대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나라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짐 한 사람이 형벌을 잘못 준 때문이다.”
又曰 乃有不吉不迪 顚越不恭 暫遇奸究 我乃劓殄滅之 無遺育 無俾亦種于玆新邑
우왈 내유불길부적 전월불공 잠우간구 아내의진멸지 무유육 무비역종우자신읍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좋지도 않고 순종치도 않으면서 법규를 무너뜨리고 위반하며 윗사람에게 공손치 못하면서 틈만 나면 나쁜 짓을 한다면 짐은 이들을 모두 목을 베어 죽여서 그 후손들을 양육할 수 없게 할 것이며 그들의 씨가 새 도읍지에 옮겨 자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泰誓 武王曰 爾衆士! 其尙迪果殺 妊乃辟! 功多 有厚賞 部迪 有顯戮
태서 무왕왈 이중사! 기상적과살 이등내피! 공다 유후상 부적 유현륙
태서(泰誓)편에서 무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 여러 무사들이여! 과감하고 굳세게 진격하여 그대들의 임금의 업적을 이루어 주시오. 공이 많으면 후한 상이 있을 것이고, 진격하지 않으면 공개적으로 처형할 것입니다.”
又曰 爾所不勗 其于以躬有戮
우왈 이소불욱 기우이궁유륙
또한 목서(牧誓)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 무사들이여! 힘을 쓰지 않는다면 그대 자신들은 죽임을 당할 것이로다.”
康誥曰 乃其速有文王作罰 刑玆無赦
강고왈 내기속유문왕작벌 형자무사
강고(康誥)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는 빨리 문왕이 만드신 형벌에 따라서 이들에게 벌을 주어라! 형을 집행함에 용서는 있을 수 없다.”
多士曰 爾克敬 天惟畀矜爾 爾不克敬 爾不啻不有爾土 予亦致天之罰于爾躬
다사왈 이극경 천유비긍이 이불극경 이불시불유이토 여역치천지벌우이궁
다사(多士)편에서 주공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나라 원로들이여! 그대들이 만약 공경하게 되면 하늘은 그대들에게 자비를 베풀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공경하지 않으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영토를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짐 또한 그대들 몸에 하늘의 징벌을 내릴 것이다.”
多方 又曰 爾乃惟逸惟頗 大遠王命 則惟爾多方探天之威 我則致天之罰 離逖爾土
다방 우왈 이내유일유파 대원왕명 칙유이다방탐천지위 아칙치천지벌 이적이토
다방(多方)편에서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방일하며 편벽되어 크게 왕명을 어긴다면 그대들 사방의 나라 사람들은 하늘의 위엄을 거스르는 것이니 짐이 곧 하늘의 벌을 내리게 하여 그대들의 땅에서 떠나가도록 하겠다.”
此二帝三代之語 皆言賞罰 固皆倂利害言之
차이제삼대지어 개언상벌 고개병리해언지
이와 같이 두 임금(요제, 순제)과 삼대(하, 은, 주)의 말들은 모두 상과 벌을 언급했습니다. 진실로 모두 이로움과 해로움을 아울러서 말한 것입니다.
6-6 ◈ 중국 선비가 말한다.
春秋者 孔聖之親筆 言是非 不言利害也
춘추자 공성지친필 언시비 불언이해야
춘추는 성인 공자가 친히 집필하신 것이나, 사실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였지 이로움과 해로움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俗之利害有三等
속지이해유삼등
세속에서 말하는 利害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一曰 身之利害 此以肢體寧壽爲利 以危夭爲害
일왈 신지이해 차이지체녕수위이 이위요위해
첫째는 육신상의 이해입니다. 이것은 몸이 편안하게 오래 사는 것을 이로움으로 여기고 몸이 불편하여 일찍 죽는 것을 해롭다고 여깁니다.
二曰 財貨之利害 此以廣田畜 充金貝爲利 以減耗失之爲害
이왈 재화지이해 차이광전축 충금패위이 이감모실지위해
둘째는 재물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것은 전답과 재물을 늘리고 돈과 패물을 많이 갖는 것을 이로움으로 여기고, 그것들이 줄어들고 없어지는 것을 해로움으로 여깁니다.
三曰 名聲之利害 此以顯名休譽爲利 以譴斥毁汚爲害也
삼왈 명성지이해 차이현명휴예위이 이견소훼오언해야
셋째는 명예와 평판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것은 이름을 떨치고 아름다운 명예를 이롭게 여기고 꾸짖음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여 명성이 훼손되고 더럽혀지는 것을 해롭게 여깁니다.
春秋存其一 而不及其二者也
춘추존기일 이불급기이자야
춘추에서는 그 하나 즉 세 번째의 이해만 있지 다른 두 가지 즉 첫째와 둘째의 이해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然世俗大槩重名聲之利害 而輕身財之損益
연세속대개중명성지이해 이경신재지손익
그렇지만 세속에서도 대개 명예와 덕망의 득실을 중하게 여기고 개인적인 재물의 손익은 가볍게 여깁니다.
故謂 春秋成 亂臣賊子懼
고위 춘추성 난신적자구
때문에 맹자에서는 “춘추가 이루어지니 반역하는 신하들이나 부모에게 못된 자식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亂臣賊子奚懼焉? 非懼惡名之爲害不已乎?
난신적자해구언? 비구악명지위해불이호?
반역하는 신하와 못된 자식들이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악명의 폐해가 끝이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孟軻首以仁義爲題 厥後每會時君 勸行人政 猶以不王者未之有也 爲結語
맹가수이인의위제 궐후매회시군 권행인정 유이부왕자미지유야 위결어
맹자는 우선 仁義를 담론의 주제로 삼았으나 그 뒤 당시의 군주를 만날 때마다 그가 仁政을 베풀기를 권하고는 오히려 그렇게 하고서도 “천하를 통괄하는 왕이 되지 않은 일은 아직은 없었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王天下 顧非利哉?
왕천하 고비이재?
천하에 왕이 되는 일이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이겠습니까?
人執不悅利于朋友 利于親戚? 如利不可經心 則下以欲歸之于親乎?
인집불열이우붕우 이우친척? 여이불가경심 clr하이욕귀지우친호?
사람이라면 누가 친구들을 이롭게 하고 어버이와 인척들을 이롭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이득을 마음속에 떠올리지 않았다면 왜 그것을 친구나 어버이에게 주려고 하겠습니까?
仁之方曰 不欲諸己 勿加諸人
인지방왈 불욕제기 물가제인
仁을 실현하는 방도로서 논어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기에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旣不宜望利以爲己 猶必當廣利以爲人! 以是知利無所傷于德也
기불의망이이위기 유필당광이이위인! 이시지이무소상우덕야
자기를 위해서 이득을 바라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 해도, 이득을 넓혀서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오히려 꼭 합당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로써 우리는 이로움이 덕을 해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利所以不可言者 乃其僞 乃其悖義의耳
이소이불가언자 내기위 내기패의자이
이득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바로 그 이득이 거짓되었고 그것이 의로움에 위배되었기 때문입니다.
易曰 利者 義之和也
역왈 이자 의지화야
주역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로움은 의와 화합한다.”
又曰 利用安身 以崇德也
우왈 이용안신 이숭덕야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로움의 용도는 몸을 편안히 함으로써 덕을 높임에 있다.”
論利之大 雖至王天下 猶爲利之微
논이지대 수지왕천하 유위이지미
이득의 크기를 따지자면 비록 온 세상에 왕 노릇 하기에 이른다고 해도 오히려 이득으로는 미미한 편입니다.
況戰國之主 雖行仁政 未必能王
황전국지주 수행인정 미필능왕
하물며 서로 전쟁하는 나라들의 군주라면 비록 어진 정치를 베푼다고 할지라도 모두 다 반드시 왕이 될 수는 없습니다.
雖使能王 天下一君耳 不敢之此 不得予乎彼 夫世之利也 如是耳矣
수사능왕 천하일군이 불감지차 부득여호피 부세지리야 여시이의
비록 누가 왕이 될 수 있다 해도 그는 천하 속에 하나의 군주일 뿐입니다. 이것을 탈취하지 않고서는 저것에 보태줄 수 없는 것입니다. 무릇 세상의 이득이란 이와 같을 뿐입니다.
吾所指來世之利也 至大也至失也 而無相碍
오소지내세지이야 지대야지실야 이무상애
제가 가리키는 내세의 이득은 매우 크고 또한 매우 실질적입니다. 서로 방해가 될 수 없습니다.
縱盡人得之 莫相奪也
종진인득지 막상탈야
설사 사람들 모두가 그 이득을 다 갖게 된다고 할지라도 서로 빼앗을 것이 없습니다.
以此爲利 王欲利其國 大夫欲利其家 士庶欲利其身
이차위이 왕욕이기국 대부욕이기가 사서욕이기신
모두가 내세의 복락을 이득으로 여기게 되면 왕은 자기 나라를 이롭게 하려고 할 것이고 선비와 서민들은 자기 자신들을 이롭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上下爭先 天下方安方治矣
하하쟁선 천하방안방치의
위아래가 앞을 다투어 이롭게 하면 온 세상은 바야흐로 평안해지고 바야흐로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重來世之益者 必輕現世之利
중내세지익자 필경현세지리
내세의 이득을 중시하는 이는 반드시 현세의 이득을 경시합니다.
輕現世之利 而好犯上爭奪 弑父弑君 未之聞야
경현세지리 이호범상쟁탈 시부시군 미지문야
현세의 이득을 경시하면 윗사람을 범하고 뺏으려고 다투고, 아비를 죽이고, 군주를 시해하는 일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使民皆望後世之利爲政 何有?
사민개망후세지리위정 하유?
사람들로 하여금 내세의 이득을 바라게 하는 것이 정치를 함에 무슨 어려운 문제가 되겠습니까?
6-7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嘗聞之 何必勞神 慮未來? 惟管今日眠前事
상문지 하필노신 려미래? 유관금일면전사
“무엇 때문에 골치를 썩이며 오지도 않는 미래를 염려하느냐? 오직 오늘 눈앞의 일만 해라!”하는 말을 저는 일찍이 들었습니다.
此是實語 何論後世?
차시실어 하논후세?
이것은 참된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내세를 논하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陋哉! 使犬彘能言也 無異此矣
누재! 사견체능언야 무이차의
참으로 고루하십니다. 만약 개나 돼지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한다면 그 말씀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西域上古有一人立敎 專以快樂無憂爲務 彼時亦有從之者
서역상고유일인립교 전이쾌락무우위무 피시역유종지자
서양에서 옛날에 한 사람이 “걱정은 하지 말고 오로지 즐기기에만 힘을 써라!”라는 교설을 세웠습니다. 그 때에도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自題其墓碑曰 汝今當飮食懽戱! 死後無樂兮 諸有稱其門爲猪寮門也
자제기묘비왈 여금당음식환희! 사후무락혜 제유칭기문위저요문야
그는 스스로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들은 지금 당장 먹고 마시며 즐겁게 놀아라! 죽은 후에는 아무 낙도 없느니라.!” 여러 선비들이 이들을 돼지학파라고 불렀습니다.
詎貴邦有暗契之者 夫無遠慮 必有近患
거귀방유암계지자 부무원려 필유근환
어찌 선비님의 나라에도 이들과 암암리에 뜻이 통하는 자들이 있는 것입니까? 무릇 멀리에까지 염려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거리가 있게 되는 법입니다.
猷之不遠 詩人所刺
유지불원 시인소자
哲人의 도모함이 원대하지 못하면 시인들의 풍자를 받습니다.
吾視 人愈智 其思愈遐 人愈遇 其思愈邇
오시 인유지 기사유하 인유우 기사유이
제가 보니 사람이 지혜로울수록 그들의 생각은 그만큼 멀리에까지 미쳤고, 사람이 어리석을수록 그 생각은 그만큼 짧았습니다.
凡民之類 豈不可預防未來 先謀之逮者乎?
범민지류 개불가예방미래 선모지체자호?
무릇 사람의 부류라면 어찌 미래를 예비하지 않을 수 있으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을 도모하지 않겠습니까?
農夫耕稼於春 圖秋之穡
농부경가어춘 도추지색
농부가 봄에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가을의 수확을 도모하려는 것입니다.
松樹百年 始結者
송수백년 시결자
소나무는 심은 지 백 년이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습니다.
而有藝之 所謂 圃翁植樹爾 玄孫攀其子者
이유예지 소위 포옹식수이 현손반기자자
그러나 그것을 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른바 “농원의 주인이 지금 나무를 심을 뿐이요, 현손이 열매를 딴다.”는 뜻입니다.
行旅者 周沿江湖 冀老之居鄕土
행여자 주연강호 기노지거향토
여행자들이 산천 경계를 따라서 두루 다니는 것은 늙어서 고향에서 편안히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百工勸習其業 期獲所賴
백공권습기업 기획소뢰
많은 기술자들이 자기 직업을 부지런히 배우는 것은 그것으로 의지할 것을 얻고자 함입니다.
士髫丱勤苦博學 欲後輔國匡君
사초관근고박학 욕후보국광군
선비가 어린아이 시절부터 고달프지만 부지런히 폭넓게 공부하는 것은 훗날에 나라를 돕고 군주를 바르게 하려 함입니다.
夫均不以眠前今日之事爲急者也
부균불이면전금일지사위급자야
무릇 이 모두가 다 눈앞의 당장 오늘의 일들을 긴급한 것으로 보지 않는 것들입니다.
不肖子敗其先業
불초자패기선업
불초한 자식들이 조상들의 업적을 망칩니다.
虞公喪國 夏傑殷紂失天下 此非不慮悠遠 徒管今日眠前事者乎?
우공상국 하걸은주실천하 차비불려유원 도관금일면전사자호?
우공은 미련하여 나라를 잃었고, 하나라의 걸 임금과 은나라의 주임금은 멋대로 폭장을 하여 천하를 잃었습니다. 이것은 임금이 아주 멀리에까지 생각을 하지 않고 한갓 오늘 눈앞의 일만을 들본 탓이 아니겠습니까?
6-8 ◈ 중국 선비가 말한다.
然 但吾在今世 則所慮雖遠 止在本世耳 死後之事 似迂也
연 단오재금세 칙소려수원 지재본세이 사후지사 사우야
그 말씀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 염려하는 것이 비록 원대하다고 해도 현세에서 그칠 뿐입니다. 죽은 다음의 일은 아무래도 우원한 듯싶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仲尼作春秋 其孫著中庸 厥慮俱在萬世之後
중니작춘추 기손저중용 궐여구재만세지후
공자는 춘추를 지었고 그의 손자(자사)는 중용을 저술하였습니다. 이들은 모두 수만 세대 이후의 일을 염려한 것입니다.
夫慮爲他人 而諸君子不以爲迂
부려위타인 이제군자불이위우
무릇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염려를 하였지만 여러 올바른 선비들은 결코 우원하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吾慮爲己 惟及二世 而子以爲迂乎?
오려위기 유급이세 이자이위우호?
자신들의 영혼을 위하는 우리들의 염려가 현세와 내세라는 오직 두 세계에만 미칠 뿐인데 선비께서는 그것을 우원하다고 여기시는 것입니까?
童子圖旣老之事
동자도기노지사
어린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이미 늙었을 때의 일을 준비합니다.
未知厥能之壯否 而莫之謂遠也
미지궐능지장부 이막지위원야
그들이 성숙한 장연에 이를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아무도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미래를 염려하는 것을 우원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吾圖死後之事 或卽詰朝之事 而子以爲遠乎?
오도사후지사 혹즉힐조지사 이자이위원호?
우리들이 지금 도모하고 있는 사후의 일이 혹시 곧바로 내일 이른 아침의 일이 될 수도 있는데 선비께서는 그것을 우원한 일이라고 보시는 것입니까?
子之婚也 奚冀得子孫?
자지혼야 해기득자손?
그렇게 앞일을 못 믿으신다면 선비께서 결혼하시어 어떻게 나중에 자손들 얻기를 바라실 수 있겠습니까?
6-9 ◈ 중국 선비가 말한다.
以有治喪葬墳墓祭祀之事也
이유치상장분묘제사지사야
사람이 죽은 뒤에는 장례를 치러주고 봉분을 만들어 주며 제사 지내는 일이 있다고 봅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然 是亦死後之事矣
연 시역사후지사의
그렇습니다. 그것들 역시 후사의 일입니다.
吾旣死 所留者二 不能朽者精神 速腐者髑髏
오기사 소류자이 불능후자정신 속부자촉루
우리들이 일단 죽고 나면 남는 것은 둘입니다. 불멸하는 정신과 속히 썩어버리는 육신.
我以不能朽者爲切 子尙以速腐者爲慮 可謂我迂乎?
아이불능후자위절 자상이속부자위려 가위아우호?
저는 불멸하는 것(정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데 선비께서는 속히 썩어버리는 것(육신)을 아직도 염려하시면서 도리어 저의 생각이 우원하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6-10 ◈ 중국 선비가 말한다.
行善以致現世之利 遠現世之害 君子且非之 來世之利害 又何足論歟?
행선이치지세지이 원현세지해 군자차비지 내세지이해 우하족논여?
선행을 하여 이로움을 취하고 현세의 해로움을 멀리 하려는 것도 올바른 선비들은 또한 그르다고 봅니다. 하물며 내세에서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또한 어찌 현세에서 논할 수 있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來世之利害甚眞大 非今世之可非也
내세지이해심진대 비금세지가비야
내세에서의 이로움과 해로움은 지극히 참되고 커서 이 세상의 그것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吾今所見者 利害之影耳 故今世之事 或凶或吉 俱不足言也
오금소견자 이해지영이 고금세지사 혹흉혹길 구부족언야
제게 지금 보이려는 것은 내세에서의 이로움과 해로움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일은 혹 흉하기도 하고 혹 길하기도 하지만 내세에서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吾聞 師之喩曰
오문 사지유왈
저는 일찍이 저의 스승이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人生世間 女俳優在戱場
인생세간 여배우재희장
“사람들이 세상에 사는 것은 마치 연극배우들이 극장에 있는 것과 같다.
所爲俗業 如搬演雜劇
소위속업 여반연잡극
세속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란 잡다한 연극들을 해내는 연기와도 같다.
諸帝王宰官士人 奴隸后妃婢媵 皆一時粧飾之耳
제제왕재관사인 여겸후비비잉 개일시장사지이
여러 사람, 임금, 재상, 관리, 선비, 노예, 왕후, 비빈, 계집종과 첩 등은 모두 한때의 분장일 뿐이다.
則其所衣衣 非其衣 所逢利害 不及其躬
칙기소의의 비기의 소봉이해 불급기궁
그렇다면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그들의 진짜 옷이 아니다. 그들이 만난 이로움과 해로움은 진정으로 자기 자신에 미치는 것이 아니다.
搬演旣畢 海去粧飾 漫然不復相關
반연기필 해거장식 만연불복상관
연기가 일단 끝나서 분장을 벗어버리면 가뿐하게 다시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이다.
故俳優不以分位高卑長短爲憂喜 惟扮所承脚色
고배우불이분위고비장단위우희 유분소승각색
그러므로 배우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배역의 높음과 천함, 오램과 짧음을 근심이나 기쁨으로 여기지 않고 오직 맡은 역할만을 연출할 뿐이다.
雖丐子亦眞切爲之 以中主人之意已耳
수개자역진절위지 이중주인지의이이
비록 거지의 역할이라도 역시 참되고 절절하게 함으로써 연극 감독의 뜻에 맞게 할 따름이다.
蓋分位在他 充位在我
개분위재타 충위재아
대개 배역을 분담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감독)에게 있고 배역을 충실히 해내는 일은 나에게 있는 것이다.”
吾曺在于玆世 雖百歲之久 較之後世萬祀之無窮 烏足以當冬之一日乎?
오조재우자세 수백세지구 교지후세만사지무궁 오족이당동지일일호?
우리들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비록 백 년 동안이라고 할지라도 내세에서의 만 년의 무궁함과 비교한다면 어찌 겨울철의 짧은 하루에라도 해당될 수 있겠습니까?
所得才物 假貸爲用 非我爲之眞主 何徒以增而悅 以減而愁?
소득재물 가대위용 비아위지진주 하도이증이열 이감이수?
우리들이 얻은 재물은 빌려 쓴 것이니 우리가 그것들의 진정한 주인이 아닙니다. 어찌 그 재물이 늘어난다고 기뻐하고 줄어든다고 해서 슬퍼만 해야 합니까?
不論君子小人 咸赤身空出 赤身空返
불논군자소인 함적신공출 적신공반
군자나 소인을 막론하고 모두 알몸과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알몸과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臨終以去 雖貴金千笈 積在庫內 不帶一毫 何必以是爲留意哉?
임종이거 수귀금천급 적재고내 불대일호 하필이시위류의재?
임종하여 세상을 떠날 때에 비록 남은 황금 천 상자가 창고 안에 쌓여있다고 해도 터럭 만큼도 갖고 갈 수는 없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런 것들에 마음을 두려고 하십니까?
今世僞事已終 卽後世之眞情起意 而後乃各取其所宜之貴賤也
금세위사이종 즉후세지진정기의 이후내각취기소의지귀천야
이 세상의 가짜 일들이 일단 끝나게 되면 곧 내세의 진짜 실상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런 뒤에 바로 각각 자기에게 합당한 귀함과 천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若以今世利害爲眞 何異乎? 蠢民看戱 以粧帝王者爲眞貴人 以粧奴隸者爲眞下人乎?
약이금세이해위진 하이호? 준민간희 이장제왕자위진귀인 이장노예자위진하인호?
만약 이 세상에서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진짜로 여긴다면 이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연극을 보고서 황제로 분장한 이를 진짜 귀인으로 여기고 노예로 분장한 이를 진짜 하인으로 여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意之爲情 精粗不齊
의지위정 정조부제
사람들의 의지(Will)라는 것에는 세련됨과 거침이 있어 고르지 않습니다.
負敎世之責者 執先布其麤 而後不闡其精?
부교세지책자 집선포기추 이후불천기정?
세상의 교화를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어찌 먼저 개략적인 것을 말하고 나중에 핵심을 밝혀 나가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일단 대충 자르고 쪼은 후에야 세밀하게 갈고 닦는 것입니다.
需醫者 惟病者 非謂廖者也
수의자 유질자 비위료자야
의사가 필요한 사람은 오직 병자일 뿐이요, 병이 치료된 사람이 아닙니다.
需吾敎者 惟小人耳已 君子固自知之 故敎宜曲就小人之意也
수오교자 유소인이이 군자고자지지 고교의곡취소인지의야
우리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필요한 사람은 오직 불초한 소인들일 뿐입니다. 현명한 군자들은 진실로 스스로 터득할 줄 압니다. 따라서 가르침은 마땅히 소인들의 의지의 의향에 따라서 맞추어야 합니다.
孔子之衛 見民衆 欲先富而後敎之 詎不之敎爲滋重乎? 但小民利而後 可迪乎義耳
공자지위 견민중 욕선부이후교지 거불지교위자중호? 단소민이이후 가적호의이
공자가 위나라에 이르러 백성이 많음을 보고는 먼저 부유하게 한 후에 이들을 가르치려고 하였습니다. 어찌 가르치는 것이 부유하게 함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몰랐겠습니까? 이는 단지 소인들과 같은 백성들은 먼저 이롭게 해 준 뒤에야 그들의 의로움에로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犯行善者 有正意三狀 下曰 因登天堂 免地獄之意 中曰 因報答所重蒙天主恩德之意
범행선자 유정의삼상 하왈 인등천당 면지옥지의 중왈 인보답소중몽천주은덕지의
上曰 因翕順天主聖旨之意也
상왈 인흠순천주성지지의야
무릇 선행을 행하는 삶들은 올바른 의지의 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급은 천당에 오르고 지옥의 고통을 면하려는 의지입니다. 중급은 천주의 은덕을 두텁게 입은 것에 보답하려는 의지입니다. 상급은 천주의 성스러운 뜻에 화합하여 순명하려는 의지입니다.
敎之所望乎學者 在其成就耳 不獲已 而先指其端焉 民溺于利久矣
교지소망호학자 재기성취이 불획이 이선지기단언 민익우이구의
가르침이 배우려는 이들에게 바라는 바는 그들이 배운 것을 이루어 냄에 있을 따름입니다. 이들이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먼저 그 실마리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백성들이 이로움의 추구에 빠져 있은 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不以利迪之 害駭之 莫之引領也 然上意至 則何意無所容而去矣 如縫錦繡之衣 必用絲線
불이이적지 해해지 막지인령야 연상의지 칙하의무소용이거의 여봉금숙지의 필용사선
그들을 이로움으로 이끌고 해로움으로 겁을 주지 않고서는 선행으로 이끌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상급의 의지에 이르게 되면 하급의 의지는 수용되지 못하고 떠나버립니다. 이는 마치 수놓은 비단옷을 바느질하자면 반드시 실을 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但無鐵鍼 線不能入 然而其鍼一進卽過 所庸有於衣裳者 絲線耳已
단무철침 선불능입 연이기침일진즉과 소용유어의상자 사선이이
다만 쇠바늘이 없으면 실이 들어갈 수 없으나 그 바늘이 한 번 들어갔다 바로 통과하고 나면 옷에 남는 것은 실뿐입니다.
吾欲引人歸德 若但擧其德之美 夫人已昧於私欲 何以覺之乎? 言不入其心
오욕인인귀덕 약단거기덕지미 부인이매어사욕 하이각지호 언불입기심
卽不願德聽而去
즉불원덕청이거
우리가 사람들을 이끌어 덕행으로 인도하려고 하면서 만약 단지 덕성의 장점만을 열거한다면 무릇 이 사람들이 이미 사욕에 눈이 멀어 있다고 한다면 무엇으로써 이들을 깨우칠 수 있겠습니까? 좋은 말씀은 그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니 곧 듣기를 원하지도 않게 되어서 떠나가 버릴 것입니다.
惟先怵惕之以地獄之苦 誘導之以天堂之樂 將必傾而欲聽 而漸就乎善善惡惡之成旨
유선출척지이지옥지고 유도지이천당지락 장필수이욕청 이참취호선선악악지성지
오직 먼저 지옥의 고통으로써 겁을 주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하고, 이들을 천당의 즐거움으로써 유도하여야만 바야흐로 반드시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선을 선 그 자체 때문에 좋아하고 악을 악 그 자체 때문에 싫어하는 뜻을 이루는 데로 점차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成者之 則缺者化去 而獨其成就恒存焉 故曰 惡者惡惡 因懼刑也 善者惡惡 人愛德也
성자지 칙결자화거 이독기성취항존언 고왈 악자악악 인구형야 선자악악 인애덕야
이러한 뜻의 성취에 도달하게 되면 결점은 없어져 버리고 홀로 그 성취된 것만이 항상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악을 싫어하는 것은 형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선한 사람이 악을 싫어하는 것은 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往時敝邑出一名聖神 今人稱爲拂郞祭斯穀 首立一會 其規戒精密 而廉爲尙
왕시폐읍출일명성신 금인칭위불랑제사곡 수립일회 기규계정밀 이렴위상
今從者數萬友 皆成德之士也
금종자수만우 개성덕지사야
옛날 저희 고향에서 성인 한 분이 나왔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그를 프란치스코라고 부릅니다. 그는 우선 한 수도회를 창립 했습니다. 그 회의 규율은 세밀하고 뛰어났으나 청렴을 제일 숭상하였습니다. 지금 수도자가 수만 명이 되었으며 모두 덕을 이룬 수사들입니다.
初有親炙一友 名曰 如泥伯陸
초유친자일우 명왈 여니백육
일찍이 (프란치스코가) 친히 가르친 수사 한 분이 있었는데 루니버루(Juniperus)라고 이름 했습니다.
會中無與此者 其學豁然 日增無息
회중무여차자 기학할연 일증무식
수도회 중에 그에게 비견될 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는 학문에 훤히 통달하였으며 날마다 발전하여 쉼이 없었습니다.
有一邪鬼 憎妬欲沮之 僞化天神 旁射輝光 野見於聖神私居曰
유일사귀 증투욕저지 위화천신 방사휘광 야견어성신사거왈
한 사악한 마귀가 있어서 그를 미워하고 질투하여 그를 저지하려고 천신으로 가장하여 몸에서 밝은 빛을 밖으로 뿜어내며, 밤에 성인(프란치스코)의 거처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天神諭爾 如泥伯陸 德誠隆也 雖然終不得躋天堂 必墮地獄 天主嚴命已定 不可易也
천신유이 여니백육 덕성륭야 수연종부득제천당 필타지옥 천주엄명기정 불가역야
“천신이 너에게 알리노니 주니퍼의 덕은 진실로 크다. 그러나 끝내 천당에 가지 못하고 틀림없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천주의 엄명이 이미 정해졌으니 바꾸지 못한다.”
言訖不見 拂郞祭斯穀 秘不敢洩
언흘불견 拂郞祭斯穀 비불감설
말이 끝나자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매우 놀랐으나 이 비밀을 감히 누설할 수 없었습니다.
而心深痛惜 每見如泥伯陸 不覺涕淚
이심심통석 매견여니백육 불각체루
그러나 마음으로는 심히 애통하여 매번 주니퍼를 볼 때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女泥伯陸 屢見而疑之 已齋宿 赴師坐 問曰
여니백육 누견이의지 이재숙 부사좌 문왈
주니퍼도 이를 어려 번 보고는 의아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재계하고 하룻밤을 지낸 후 스승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某他日孜孜守戒 奉敬天主 幸在憫敎
모타일자자수계 봉경천주 행재민교
“저는 날마다 부지런히 계율을 지키고 천주를 공경하고 받들어서 다행스럽게도 스승님의 애틋한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邇日以來 覺先生目有異也 何以數涕屢于第子
이일이래 각선생목유이야 가이수체루우제자
요즘 며칠 이래로 선생님께서 저를 보시는 눈빛이 다르심을 느꼈습니다. 이 불초한 제자에게 어인 일로 자주 눈물을 흘리시는 것입니까?
拂郞祭斯穀初不肯露
불랑제사곡초불긍로
프란치스코는 처음에는 밝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再三懇請 盡述向所見聞 如泥伯陸 怡然曰
재삼간청 진술향소견문 여니백육 이연왈
(주니퍼가) 두 번, 세 번 간청하니, 일전에 듣고 본 바를 모두 말하였습니다. 주니퍼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是何足憂乎? 天主主宰人物 惟其旨所置之
시하족우호? 천주주재인물 유기지소치지
“이것이 어찌 근심할 일이겠습니까? 천주께서는 인간과 사물을 주재하시니 오직 그 뜻이 전하신 대로 이루어집니다.
上天下之 吾傺無不奉焉
상천하지 오제무불봉언
위에 있는 하늘이나 아래에 있는 땅이거나 그 사이에 있는 우리 인간들 모두가 천주를 받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吾所爲敬愛之者 非爲天堂地獄 爲其之尊之善
오소위경애지자 비위전당지옥 위기지존지선
제가 천주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천당이나 지옥 때문이 아니고 그분이 지극히 존귀하고 지극히 선하기 때문입니다.
自當敬 自當愛耳!
자당경 자당애이!
저는 스스로 천주를 마땅히 공경하고 스스로 마땅히 천주를 사랑할 뿐입니다.
今雖棄我 何敢毫髮懈惰? 惟益加敬愼事之
금수기아 하감호발해유? 유익가경신사지
지금 비록 저를 버린다 할지라도 제가 어찌 감히 터럭만큼이라도 게으를 수 있겠습니까? 더욱더 천주를 공경하고 삼가 섬기기를 더할 것입니다.
恐 在地獄時 卽欲奉事 而不可及矣
공 재지옥시 즉욕봉사 이불가급의
다만 지옥에 있게 될 때에 곧바로 천주를 섬기려 하여도 그렇게 되지 못할까 두려울 따름입니다.
拂郞祭斯穀覩其容也 聽其語也 恍然悟而嘆曰
불랑지사곡도기용야 청기어야 황연오이탄왈
프란치스코는 그 얼굴을 보고, 그 말을 듣고는 홀연히 깨닫고는 이렇게 감탄하였습니다.
悞哉 前者所聞! 有學道如社 而應受地獄殃者乎?
오재 전자소문! 유학도여사 이응수지옥앙자호?
“내가 앞서 들은바가 틀렸도다! 도리를 배움이 이와 같으면서 지옥의 재앙을 받는 일이 어찌 응당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천주께서는 반드시 너를 천당으로 올리실 것이로다!”
夫此天堂地獄 其在成德之士 少借意以取樂而免苦也 多以修其仁義而已矣
부차천당지옥 기재성덕지사 소석의이취락이면고야 다이수기인의이이의
무릇 이런 천당이나 지옥의 의미는 덕성을 이루려는 선비들에게 있어서는 즐거움이나 취하고 고통을 면하기 위하여 천당과 지옥의 의미를 빌리는 일은 드물며 그들의 인자함과 의로움의 도덕성을 닦기 위하여 빌려 오는 일이 많을 뿐입니다.
何者? 天堂非他 乃古今仁義之人所聚 光明之宇
하자? 천당비타 내고금인의지인소취 광명지우
왜냐구요? 천당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옛날과 지금의 인자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광명한 곳입니다.
地獄亦非他 乃古今罪惡之人所流 穢汚之域
지옥역비타 내고금죄악지인소류 예오지역
지옥 또한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옛날과 지금의 죄인과 악인들이 유배를 받는 지독히 더러운 지역입니다.
升天堂者 已安其心乎善 不能易也 其落地獄者 已定其心乎惡 不克改也
승천당자 이안기심호선 불능이야 기락지옥자 이정기심호악 불극개야
천당에 올라가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선에 두어 이미 편안하여 바뀔 수 없으며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악에 이미 고정시켜서 고질 수가 없습니다.
吾願定心於德 勿移于不善 吾願長近仁義之君子 永離罪惡之小人
오원정심어덕 물이우불선 오원장근인의지군자 영이죄악지소인
우리들은 덕성의 추구에로 마음을 결정하여 불선한 데로 옮겨 자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인자하고 의로운 군자들을 오래도록 가까이하고 죄악에 물든 소인배들과는 영원히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誰云 以利害分志 而在正道之外乎? 儒者攻天堂地獄之說 是未察此理耳已
수운 이이해분지 이재정도지외호? 유자공천당지옥지설 시미찰차리이이
“이로움과 해로움을 따짐으로써 의지를 결정하는 것이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라고 누가 말하였습니까? 유교의 선비들이 천당 지옥설을 공격하는 것은 이러한 이치를 이미 살피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6-11 ◈ 중국 선비가 말한다.
玆與浮屠勸世輪廻禽獸之設 何殊?
자여부도권세윤회금수지설 하수?
이런 것은 불교가 세상 사람들을 권면하기 위하여 윤회하여 짐승으로 변한다는 설법과 무엇이 다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遠矣 彼用虛無者 僞詞 吾用實有者 至理 彼言輪廻往生 止于言理
원의 피용허무자 위사 오용실유자 지리 피언윤회왕생 지우언리
매우 다릅니다. 그들이 쓰는 허망한 무존재(虛無)는 잘못된 개념입니다. 저희들이 쓰는 실재하는 존재(實有)는 지극한 이치입니다. 저들(불교)이 말하는 윤회와 왕생은 이로움만을 말하는데 그칠 뿐입니다.
吾言天堂地獄 利害明擖 利以引人于義
오언천당지옥 이해명갈 이이인인우의
저희(그리스도교)가 말하는 천당과 지옥(의 설법)은 이로움과 해로움의 의미를 명백히 드러내어서 사람들을 의로움에로 이끄는데 이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豈無辯乎? 且夫賢者修德 雖無天堂地獄 不敢自已 況實有之?
개무변호? 차부현자수덕 수무천당지옥 불감자이 황실유지?
(우리의 천당 지옥설과 불교의; 윤회 설법 사이에) 어찌 구별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무릇 현명한 이들은 비록 천당과 지옥이 없더라도 덕을 닦는데 스스로 그
만 두지 못합니다.
6-12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善惡有報 但云 必在本世 或不於本身 必於子孫耳 不必言天堂地獄
선악유보 단운 필재본세 혹불어본신 필어자손이 불필언천당지옥
선과 악에는 응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국인들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있는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혹시 자신에게가 아니라면 반드시 자손에게 있을 따름입니다. 사후의 천당과 지옥을 말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本世之報微矣 不足以充人心之欲 又不滿誠德之功 不足現上帝賞善之力量也
본세지보미의 부족이충인심지욕 우불만성덕지공 부족현상제상선지역량야
현세에서의 보답은 미미하여 사람 마음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도 부족합니다. 그것은 또한 성심으로 덕을 닦은 공로에 대한 보답을 채워줄 수 없으며 하느님이 선을 상 주시는 역량을 나타내기에도 부족합니다.
公相之位 極重之酬矣 若以償德之價 萬不償一矣 天下固無可以償德之價者也
공상지위 극중지수의 약이상덕지가 만불상일의 천하고무가이상덕지가자야
공작이나 재상의 지위는 지극히 막중한 보답이지만 만약 덕성에 보답하는 값으로 치면 만분의 일도 갚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에 덕의 값어치를 보상할 수 있는 것은 진실로 없습니다.
修德者 雖不望報 上帝之尊 豈有不服之盡滿者乎?
수덕자 수불망보 상제지존 개유불복지진만자호?
덕을 닦는 이들이 비록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고 해도 지존하신 하느님은 이들을 다 만족하게끔 보답하려고 하시지 않겠습니까?
王者酬臣之功 賞以三公足矣 上帝之酬而於是乎止乎? 人之短于量也 如是
왕자수신지공 상이삼공족의 상제지수이어시호지호? 인지단우량야 여시
임금이 신하의 공을 갚는 것은 삼공의 직위로써 상주면 족합니다. 하느님의 갚으심이 어찌 이런 것들에 그치겠습니까? 사람들이 제대로 헤아리지 못함이 이와 같을 뿐입니다.
夫世之仁者 不仁者 豈屢有無嗣者 其善惡 何如報也?
부세지인자 불인자 개누유무사자 기선악 하여보야?
무릇 세상의 어진 이나 어질지 않은 이나 모두 자손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들의 선행과 악행을 어떻게 보답하겠습니까?
我自爲我 子孫者爲子孫 夫我所親行善惡 盡以還之子孫 其可爲公乎?
아자위아 자손자위자손 부아소친행선악 진이환지자손 기가위공호?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이며 자손들은 스스로 자손들입니다. 무릇 내가 몸소 행한 선과 악이 모두 자손들에게 돌아간다면 그것을 공정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且問 天主旣能報人善惡 何有能報其子孫 而不能報及其躬
차문 천주기능보인선악 하유능보기자손 이불능보급기궁
또 묻겠습니다. “천주께서 이미 사람들의 선악을 보답할 수 있는데 어찌 그 자손에게는 그것을 보답할 수 있으면서 그 본인들에게는 직접 보답하지 못한단 말입니까?
苟能報及其躬 何以捨此而遠俟其子孫乎? 且其子孫又有子孫之善惡 何以爲報?
구능보급기궁 하이사차이원사기자손호? 차기자손우유자손지선악 하이위보?
그 본인들에게 보답할 수 있다면 어찌 이것을 제쳐 두고 멀리 그 자손을 기다리겠습니까? 그 자손들은 그 자손들 자체의 선악이 있는데 또한 어떻게 갚겠습니까?
亦將俟其子孫之子孫以酬之歟?
역장사기자손지자손이수지여?
역시 장차 그 자손들을 기다려서 갚겠습니까?
爾爲善 子孫爲惡 則將擧爾所當亨之賞 而盡加諸其爲惡之身乎?
이위선 자손위악 칙장거이손당형지상 이진가제기위악지신호?
선비께서 선행을 하였고 자손이 악행을 했다면 장차 선비께서 누려야할 상을 악행을 한 자손의 몸에 다 보태 주어야 합니까?
可謂義乎?
가위의호?
이것이 의롭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爾爲惡 子孫爲善 則將擧爾所當受之刑 而盡置諸其爲善之躬乎? 可謂仁乎?
이위악 자손위선 칙장거이소당수지형 이진치제기위선지궁호? 가위인호?
선비께서 악행을 하였고 자손이 선행을 하였다면 장차 선비께서 마땅히 받아야할 형벌을 선행을 한 자손의 몸에 부과해야 합니까? 이것이 어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非但王者 卽覇王之法 罪不及冑 天主捨其本身 而有冑是報耶?
비단왕자 즉패왕지법 죄불급위 천주사기본신 이유주시보야?
다만 왕의 법도뿐 아니라 패자의 법도에도 죄는 자손에게는 미치지 않습니다. 천주께서 그 본인을 제쳐두고 오직 그 자손에게만 보답하신다는 것입니까?
更善惡之報於他人之身 紊宇內之恒理 而俾民疑上帝諸仁義 無所益於爲政
경선악지보어타인지신 문우내지항리 이비민의상제제인의 무소익어위정
선악의 보답을 사람의 몸에로 옮긴다는 것은 우주 안의 변함없는 이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어짐과 의로움을 의심하게 하는 것이니 정치를 하는 데에 유익한 바가 없습니다.
不如各任其報耳
불여각임기보이
각자 자기 보답을 받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6-13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先生會見有天堂地獄 而決曰 有?
선생회견유천당지옥 이결왈 유?
선생께서는 일찍이 천당과 지옥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그것들이 있다고 판결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吾子已見無天堂地獄 而決曰 武?
오자이견무천당지옥 이결왈 무?
선비께서도 천당과 지옥이 없다는 것을 보고서 없다고 판결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何不其前所云乎?
하불기전소운호?
어찌하여 앞에서 말씀드린 것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智者 不必以肉眼所見之事 方信其有
지자 불필이육안소견지사 방신기유
지혜로운 이는 육안으로 본 것이라고 해도 반드시 그것이 있다고 바로 믿지 않습니다.
理之所見者 眞于肉眼 夫耳目之覺 或常有差 理之所是 必無謬也
이지소견자 진우육안 부이목지각 혹상유차 이지소시 필무류야
이치로 보는 것이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더욱 참됩니다. 무릇 귀와 눈의 지각은 언제나 착오가 있으나 이치가 옳다고 하는 것에는 반드시 오류가 없습니다.
6-14 ◈ 중국 선비가 말한다.
願聞此理
원문차리
그 이치를 듣고 싶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一曰 凡物類 各有本性所向 必至是而定止焉
일왈 범물류 각유본성소향 필지시이정지언
1) 첫째는, 무릇 사물의 부류는 각각 본성에 따라 목적이 있어서 목적에 이르게 되면 반드시 안정되어 멈추게 됩니다.
得此 則無復他望矣
득차 즉무복타망의
그 목적을 얻게 되면 다른 소망들은 없어지게 됩니다.
人類亦必有止
인류역필유지
사람들 또한 반드시 멈출 곳이 있습니다.
然 觀人之常情 未有以本世之事爲足者
연 관인지상정 미유이본세지사위족자
그런데 사람들의 변함없는 실상(常情)을 보게 되면 이 세상에서의 일로써 만족하는 사람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則其心之所止 不在本世 明也
칙기심지소지 부재본세 명야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이 멈출 곳은 이 세상에 있지 않음이 자명합니다.
不在本世 非在後世天堂歟?
부재본세 비재후세천당여?
이 세상에 있지 않다면 내세의 천당에 있지 않겠습니까?
盖人心之所向 惟在全福 衆福備處 乃謂天堂 是以 人情未迄于是 未免有冀焉
개인심지소향 유재전복 중복비처 내위천당 시이 인정미흘우시 미면유기언
대개 사람의 마음이 지향하는 것은 오직 온전한 복락을 얻음에 있을 뿐입니다. 많은 복이 갖추어진 곳이 바로 천당인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사람의 정서는 그 곳에 이르지 못하면 소망을 갖게 됨을 면하지 못합니다.
全福之內 含壽無疆
전복지내 함수무강
완전한 복 안에는 무수한 수명이 포함됩니다.
人世之壽 雖欲信天地人三皇 及楚之冥靈 上古代椿 其壽終有界限 則現世悉有缺也
인세지수 수욕신천지인삼황 급초지명령 상고대춘 기수종유계한 칙현세실유결야
인간의 세상에서 수명은 비록 天, 地, 삼황과 초나라의 冥靈이나 먼 옛날의 대춘 나무의 수명을 믿는다고 할지라도 그 수명에는 마침내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세에서의 모든 것은 부족함이 있는 것입니다.
世間無全福 彼善於此 則有之 至于天堂 則止 弗可尙 人性于是止耳
세간무전복 피선어차 칙유지 지우천당 칙지 불가상 인성우시지이
이른바 이 세상에는 완전한 행복은 없습니다. 저 행복이 이 행복보다 낫다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만 있는 것입니다. 천당에 이르게 되면 소망은 멈추게 되고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됩니다. 사람의 본성은 이것에 이르러서야 그칠 뿐입니다.
二曰 人之所願 乃知無窮之眞 乃好無量之乎 今之世也 眞有窮 好有量矣
이왈 인지소원 내지무궁지진 내호무량지호 금지세야 진유궁 호유량의
(2) 둘째는, 사람이 바라는 것은 바로 무궁한 진리를 알려는 것이요, 무제한으로 좋은 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진리를 터득함에도 한계가 있고, 좋은 것에도 한량이 있는 것입니다.
則於是不得盡其性矣
즉어시부득진기성의
그렇다면 현세에서는 자기의 본성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夫性是天主所賦 豈徒然賦之? 必將充之 亦必於來世盡充之
부성시천주소부 개도연부지? 필장충지 역필어내세진충지
무릇 본성은 천주께서 부여한 것인데 어찌 공연히 주시기만 한 것이겠습니까? 반드시 그것을 다 채워 주실 것입니다. 역시 내세에서 반드시 그것을 다 채워 주실 것입니다.
三曰 德于此無價也 雖擧天下萬國 而市之 未足以還德支所値
삼왈 덕우차무가야 수거천하만국 이시지 미족이환덕지소치
(3) 셋째는, 덕은 이 세상에서는 가격을 매길 수가 없습니다. 비록 온 천하만국을 다 들어서 그것과 바꾼다 하여도 덕의 값어치를 상환하기에는 충족하지 않습니다.
苟不以天堂報之 則有德者不得其報稱矣
구불이천당보지 즉유덕자부득기보칭의
천당으로써 그것을 보답하지 않는다면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기가 받을 보상이 걸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得罪上帝 其罪不勝重 雖以天下之極刑誅之 不滿其咎
득죄상제 기죄불승중 수이천하지극형주지 불만기구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그 죄는 다 잴 수 없습니다. 비록 천하의 극형으로써 그를 죽인다 해도 그의 잘못은 다 메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苟不以地獄 永永殃之 則有罪者不得其報稱矣
구불이지옥 영영앙지 즉유죄자부득기보칭의
만약 지옥으로써 그를 영원토록 벌주지 않는다면 죄 있는 자에게 그 보응이 걸맞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天主掌握天下人所行 而德罪無報稱 未之有也
천주장악천하인소행 이덕죄무보칭 미지유야
천주께서는 세상 인간들의 소행을 장악하고 계시니 사람이 지은 덕과 죄에 대한 응보가 걸맞지 않았던 일이란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습니다.
四曰 上帝報應無私 善者必賞 惡者必罰
사왈 상제보응무사 선자필상 악자필벌
(4) 넷째는, 하느님께서는 응보에 사사로움이 없으십니다. 선한 자는 반드시 상주고 악한 자는 반드시 벌하십니다.
如今世之人 亦有爲惡而富貴安樂 爲善而貧賤苦難者
여금세지인 역유위악이부귀안락 위선이빈천고난자
이 세상사람 중에는 악한 짓을 하고서도 부귀하고 안락하며, 선한 일을 하고도 빈천하고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上帝固待其人之旣死 然後取其善者之魂 而天堂福之 審其惡者之魂 而地獄刑之
상제고대기인지기사 연후취기선자지혼 이천당복지 심기악자지혼 이지옥형지
하느님은 진실로 그 사람이 일단 죽는 것을 기다린 다음에 그 선한 이의 영혼을 거두어 천당의 복을 주시고, 악한 자의 혼은 심판하여 지옥의 형벌을 주십니다.
不然 何以明至公至審乎?
불연 하이명지공지심호?
그렇지 않다면 하느님께서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잘 살피고 계심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6-15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善惡之報 亦有現世 何如?
선악지보 역유현세 하여?
그렇다면 선악의 응보가 또한 현세에도 있는 것은 어찌된 것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設令仙樂之報 咸待于來世 則愚人不知來世之應者 何以驗天上之有主者?
설령선악지보 함대우내세 칙우인부지내세지응자 하이험천상지유주자?
만약 선악의 응보를 모두 내세를 기다려서 한다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내세의 응보를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니 무엇으로써 하늘 위에 천주가 계신 것을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將益放恣無忌 故犯彛者 時愚饑荒之灾 以徵其前 而戒其後
장익방자무기 고범이자 시우기황지재 이징기전 이계기후
그들은 장차 더욱 방자하고 거리낌이 없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인륜을 어긴 사람은 때로 기근을 만나게 함으로써 그의 앞선 잘못을 징계하고 그의 장래를 경계시키는 것입니다.
順理者蒙吉福之降 而酬于往 而勸其來也
순리자몽길복지강 이수우왕 이권기래야
도리를 좇고 있는 사람에게는 때때로 행복한 복락의 강복을 입게 하여서 지나간 것에 대하여 보상해 주고 그의 장래를 권장하는 것입니다.
然 天主至公 無不盡賞之善 無不盡罰之惡
연 천주지공 무불진상지선 무불진벌지악
그러나 천주께서는 지극히 공평하시기 때문에 다 상주지 않는 법이 없고 악을 다 벌주지 않는 법이 없습니다.
故終身爲善 不易其心 則應登天堂 亨大福樂而賞之
고종신위선 불역기심 칙응등천당 형대복락이상지
그러므로 평생 선행을 하여 그 마음을 바꾸지 않았으면 응당 천당에 올려서 큰 복과 낙을 누리도록 상을 줍니다.
終身爲惡 至死不悛 則宜墮地獄 受重禍灾而罰之
종신위악 지사불전 칙의타지옥 수중화재이벌지
평생 나쁜 짓을 하여 죽을 때까지 고치지 않으면 마땅히 지옥에 떨어뜨려서 무거운 화와 재앙을 받도록 벌주십니다.
其有爲善而貧賤者 或因爲善之中有小過惡焉 故上帝以是現報之
기유위선이빈천자 혹인위선지중유소과악언 고상제이시현보지
착한 일을 하고도 가난하고 천한 사람은 혹 선한 중에도 작은 허물이나 악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천함으로써 현재에서 그 허물을 갚도록 합니다.
至於歿後 旣無所欠 則人全福之域 永亨常樂矣
지어몰후 기무소흠 칙인전복지역 영형상락의
죽은 후에는 이미 결함이 없으니 완전한 복이 있는 곳에 들어가 불변의 낙을 영원히 누립니다.
亦有爲惡而富貴者 乃行惡之際 並有微善存焉 故上帝而是償之
역유위악이부귀자 내행악지제 병유미선존언 고상제이시상지
악한 일을 하고도 부귀한 사람은 악을 행하는 때에도 아울러 미미한 선이 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부귀함으로써 그 미미한 선을 보상하십니다.
急機死後 旣無可擧 則陷深陰之獄 永受罪苦矣
급기사후 기무가거 칙함심음지옥 영수죄고의
그의 사후에는 이미 내세울 것이 없으니 깊고 음침한 지옥에 빠져 죄의 고통을 영원히 받습니다.
夫宇宙內外 灾祥由天主歟? 由命歟? 天主令外 故無他命也
부우주내외 재상유천주여? 유명여? 천주령외 고무타명야
무릇 우주 안팎의 재앙과 상서로움이 천주로부터 말미암은 것입니까? 아니면 운명에 의해 말미암은 것입니까? 천주의 명령 외에는 진실로 다른 명령이란 없습니다.
6-16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儒者以聖人爲宗 聖人以經傳示敎
유자이성인위종 성인이경전시교
유교 선비들은 성인으로써 으뜸을 삼고 성인은 경전으로써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遍察吾經傳 通舞天堂地獄之說 豈聖人有未達此理乎?
편찰오경전 통무천당지옥지설 개성인유미달차리호?
우리 중국의 경전을 두루 살펴보아도 천당과 지옥의 설은 없으니 어찌 성인이 이런 이치에 통달하지 못하였겠습니까? 어떻게 숨기고서 드러내지 않았겠습니까?
何以隱而未著?
하이은이미저?
어떻게 숨기고서 드러내지 않았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聖人傳敎 視世之能載 故有數傳不盡者 又或有面語而未悉錄于冊者
성인전교 시세지능재 고유수전불진자 우혹유면어이미실록우책자
성인의 가르침을 전할 때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살핍니다. 그러므로 여러 번 전하여도 다 전하지 못하는 것이 있고, 또 혹시 대면하여 이야기했어도 모두 책에 기록하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或已錄而後失者 或後頑史不信 因削去之者
혹이록이후실자 혹후완사불신 인삭거지자
혹 이미 기록은 되었으나 나중에 인멸된 것도 있고, 혹 나중에 어리석은 사관이 믿지 않아서 삭제하여 없앤 것도 있습니다.
況事物之文 時有換易 不可以無其文卽云 無其事也
황사물지문 시유환역 불가이무기문즉운 무기사야
하물며 사건이나 사물을 기록한 문장들은 때때로 변하여 바뀌니 그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 사실은 없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今儒之謬政古書 不可勝言焉 急乎文 緩乎意 故今之文雖隆 今之行實衰
금유지류정고서 불가승언언 급호문 완호의 고금지문이융 금지행실쇠
오늘날의 선비가 옛날 책을 잘못 연구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문자의 풀이에 급급하여 의미의 풀이는 소홀합니다. 따라서 지금의 문장은 융숭하나 지금의 행동은 실로 빈약합니다
詩曰 文王在上 於 昭于天! 文王陟降 在帝左右
시왈 문왕재상 어 소우천! 문왕척강 재제좌우
시경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왕이 위에 계시니 아 하늘에서 아름답게 빛나도다! 문왕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하느님(상제)의 좌우에 계시도다!”
又曰 世有哲王 三后在天
우왈 세유철왕 삼후재천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대대로 명철한 임금이 있었다. 이들 돌아가신 세 임금이 하늘에 계시도다!”
召誥曰 天主假終大邦殷之命 玆殷多先哲王在天
소고왈 천주가종대방은지명 자은다선철왕재천
상서(尙書) 소고(召誥)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늘은 이미 큰 나라 殷의 명을 멀리 끊어버렸습니다. 이때 은나라의 많은 명철한 임금들이 하늘에 계셨습니다.”
夫在上 在天 在帝左右 非天堂之謂 其何歟?
부재상 재천 재제좌우 비천당지위 기하여?
무릇 “위에 계시도다!”, “하늘에 계셨습니다.”, “하느님 좌우에 계시도다!” 라는 것이 천당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6-17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察此經語 古之聖人 已信死後固有樂地 爲善者所居矣
찰차경어 고지성인 이신사후고유낙지 위선자소거의
이런 유교의 경전을 살펴보니 사후에 진실로 복락의 땅이 있어서 그 곳에 선행을 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을 옛 성인들은 이미 믿었습니다.
然 地獄之說 絶無可徵于經者
연 지옥지설 절무가징우경자
그러나 지옥의 설법은 절대로 유교의 경서로부터는 증명해 낼 수 없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有天堂 自有地獄 二者不能相無 其理一耳
유천당 자유지옥 이자불능상무 기이일이
천당이 있으면 지옥은 저절로 있는 것입니다. 이 둘은 서로 없을 수 없으니 그 이치가 하나일 뿐입니다.
如眞文王殷王周公在天堂上 則傑紂盜跖必在地獄下矣
여진문왕은왕주공재천당상 즉걸주도척필재지옥하의
이는 참으로 문왕, 은나라의 임금들과 주공이 모두 천당에 올라가 있다면 폭군인 걸 임금과, 주 임금과 도척은 반드시 지옥에 내려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行異則受不同 理之常 固不容疑也
행이칙수부동 이지상 고불용의야
행한 것이 다르니 받는 것도 같지 않다는 것은 불변의 이치이니 진실로 의심할 바 없습니다.
緣此人之臨終 滋賢者則滋舒泰 而畧無駭色焉
연차인지임종 자현자칙자서태 이략무해색언
이로 말미암아 사람이 죽을 때에는 현명한 사람이면 그럴수록 더욱더 여유가 있어서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滋不肖則滋遍迫 而以死爲痛苦 不幸之極焉 若以經書之未載爲非眞 且悞甚矣
자불초칙자편박 이이사위통고 불행지극언 약이경서지미재위비진 차오심의
못난 사람이면 그럴수록 더욱더 황급하여 죽음을 고통으로 여겨서 매우 불행한 것입니다. 만일 경서에 실려 있지 않기 때문에 참되지 않다고 한다면 그 잘못은 큽니다.
西庠論之訣曰
서상논지결왈
서양의 학교에서 논리의 공리는 이러합니다.
正書 可證其有 不可證其無
정서 가증기유 불가증기무
“올바른 책이라도 어떤 사실이 존재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있지만 어떤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음은 증명할 수 없는 법이다.”
吾西國古經 載昔天主開闢天地 卽生一南名曰 亞黨 一女名曰 阨襪 是爲世人之祖
오서국고경 재석천주개벽천지 즉생일남명왈 아당 일여명왈 액말 시위세인지조
우리 서양의 옛 경전에는 옛날 천주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아담이라는 한 남자와 이브라는 한 여자를 창생 하였으니 이들이 세상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而不書伏羲神農二帝
이불서복희신농이제
그러나 복희, 신농 두 임금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吾以此觀之 可證當時果有 亞黨 阨襪 二人 然而不可證其後之無伏羲神農二帝也
오이차관지 가증당시과유 아당 액말 이인 연이불가증기후지무복희신농이제야
우리가 이것으로써 본다면 당시에 정말 아담과 이브 두 사람이 있었던 것은 증명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 뒤에 복희, 신농 두 임금이 없었다는 것은 증명하지 못합니다.
若自中國之書觀之 可證古有伏羲神農于中國 而不可證無亞黨阨襪二祖也
약자중국지서관지 가증고유복희신농우중국 이불가증무아당액말이조야
만약 중국의 책으로써 이를 본다면 옛날에 복희, 신농이 중국에 있었던 것은 수 있지만 아담과 이브 두 조상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不然 禹蹟不寫大西諸國 可謂天下無大西諸國哉?
불연 우적불사대서제국 가위천하무대서제국재?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우 임금의 치수 업적에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세상에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故儒書雖未明辯天堂地獄之理 然不宜因而不信也
고유서수미명변천당지옥지리 연불의인이불신야
그러므로 유교의 서적에 비록 천당과 지옥의 이치를 분명히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로 말미암아 천당과 지옥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6-18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善者登天堂 惡者墮地獄 設有不善不惡之輩 死後當往何處?
선자등천당 악자타지옥 설유불선불악지배 사후당왕하처?
선한 사람이 천당에 오르고 악한 사람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무리들은 사후에 응당 어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善惡無間 非善卽惡 非惡卽善 惟善惡之中 有巨 微之別耳
선악무간 비선즉악 비악즉선 유선악지중 유거 미지별이
선과 악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선이 아니면 악이고, 악이 아니면 선입니다. 오직 선과 악에는 그것이 큰가, 미미하냐의 구별이 있을 뿐입니다.
善惡譬若生死 人不生則死 未死則生
선악비약생사 인불생즉사 미사즉생
선과 악은 비유컨대 삶과 죽음과 같아서 사람이 살아있지 않으면 죽은 것이고 죽지 않았으면 살아있는 것입니다. 진실로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6-19 ◈ 중국 선비가 말한다.
使有人先爲善 後變而爲惡 有先爲惡 後改而爲善 玆二人 身後何如?
사유인선위선 후변이위악 유선위악 후개이위선 자이인 신후하여?
가령 먼저 선하다가 후에 변해서 악하게 되고, 먼저 악하다가 후에 바뀌어 선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두 경우의 사람들은 죽은 후에 어떻게 됩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天主乃萬靈之父 限本世之界 以勸吾儕于德 必以瀕死之候爲定
천주내만령지부 한본세지계 이권오제우덕 필이빈사지후위정
천주께서는 모든 영혼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세상의 삶에 한정하여 우리가 덕을 쌓도록 권하시고 반드시 죽는 때를 기한으로 정하셨습니다.
故平生爲善 須奧變心向惡而死 便爲犯人 則受地獄常永之殃 其前善惟未滅耳
고평생위선 수오변심향악이사 변위범인 즉수지옥상영지앙 기전선유미멸의
그러므로 평생 선을 행하다가 잠시 마음이 변하여 악하게 죽으면 곧 죄를 범한 사람이 되어 지옥의 영원한 재앙을 받습니다. 그 이전의 선은 오직 벌을 조금 경감시켜 줄 뿐입니다.
平生爲惡 今日改心歸善而死 則天主必扶而宥之 免前罪 而授天堂萬年永常受福也
평생위악 금일개심귀선이사 즉천주필부이유지 면전죄 이수천당만년영상수복야
평생 악을 행하다가 오늘 개심하여 선에 귀의하고 죽으면 천주께서는 반드시 이들을 부축하여 용서하시고 전죄를 면해주시며 천당에서 만년토록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십니다.
6-20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如此則平生之惡 無報焉?
여차즉평생지악 무보언?
이와 같다면 평생의 악에는 응보가 없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人改惡之後 或自悔之深 或以苦勞本身 自懲于以求天主之宥 天主必且赦之
인개악지후 혹자회지심 혹이고노본신 자징우이구천주지유 천주필차사지
而死後卽可昇天也
이사후즉가승천야
천주의 경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악을 고친 후에 혹 스스로 뉘우침이 깊거나 혹 그 몸을 고통스럽게 하여 스스로 징계함으로써 천주의 용서하심을 구하면 천주께서는 반드시 또한 이를 용서하실 것이니, 죽은 후 즉시 하늘에 오를 수 있다.
倘悔不深 自苦不及前罪 則地獄之內 另有一處 以眞此等人
당회불심 자고불급전죄 즉지옥지내 령유일처 이진차등인
만약 뉘우침이 깊지 않고 스스로 고통스럽게 함이 앞서지은 죄(前罪)에 미흡하다면 지옥 안에 이러한 사람들을 두는 다른 한 곳(연옥)이 있다.
或受數日數年之殃 以補在世不滿之罪報也 報之盡 則亦攝天 其理如此
혹수수일수년지앙 이보재세불만지죄보야 보지진 칙역섭천 기리여차
그곳에서 혹 며칠이나 혹 몇 년 동안 벌을 받게 됨으로써 이 세상에서 다 채우지 못한 죄의 갚음을 보속하도록 하고 이것을 다하면 역시 하늘에 오를 수 있다.” 이치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6-21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心悟此理之是 第先賢之書云
심오차리지시 제선현지서운
이런 이치가 옳다는 것을 마음으로 깨우쳤습니다. 다만 선현들의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何必信天堂地獄? 如有天堂 君子必登之 如有地獄 小人必入之 吾當爲君子則已
하필신천당지옥? 여유천당 군자필등지 여유지옥 소인필입지 오당위군자칙이
“무엇 때문에 반드시 천당과 지옥을 믿으려 하는가? 천당이 있다면 군자는 반드시 그곳에 오를 것이요, 지옥이 있다면 소인은 반드시 그곳에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군자가 될 따름이다.”
此於庶幾得之
차어서기득지
이 선현들의 말씀은 거의 깨우침에 가까운 듯합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此語固失之 何以知其然乎? 有天堂 君子登之必也 但弗信天堂地獄之理 決非君子
차어고실지 하이지기연호? 유천당 군자등지필야 단불신천당지옥지리 결비군자
그 말은 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어찌 그것이 천당과 지옥의 이치를 알고서 한 말이겠습니까? 천당이 있으면 군자가 그곳에 올라가는 것은 필연입니다. 그러나 천당, 지옥의 이치를 믿지 않는다면 결코 군자일 수 없습니다.
6-22 ◈ 중국 선비가 말한다.
何也?
하야?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且問乎子 不信有上帝 其君子人歟? 否歟?
차문호자 불신유상제 기군자인여? 부여?
또한 선비님께 묻겠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군자입니까? 아닙니까?
6-23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否 詩曰 惟此文王 小心翼翼 昭事上帝 執謂君子 而弗信上帝者?
부 시왈 유차문왕 소심익익 소사상제 집위군자 이불신상제자?
아닙니다. 시경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문왕은 조심조심 삼가며 하느님을 밝은 마음으로 섬기셨다.” 누가 군자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믿지 않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不信上帝至仁至公 其君子人歟? 否歟?
불신상제지인지공 기군자인여? 부여?
하느님께서 지극히 인자하고 지극히 공정하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가 군자입니까? 아닙니까?
6-24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否 上帝爲仁之原也 萬物公主也
부 상제위인지원야 만물공주야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자함의 근원이고, 모든 존재의 공정한 주인이십니다.
執謂君子 而不信其至仁至公者耶?
집위군자 이불시기지인지공자야?
누가 군자라고 하면서 그의 지극한 인자함과 지극히 공정함을 믿지 않겠습니까?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仁者爲能愛人 能惡人
인자위능애인 능악인
어진 이는 사람을 사랑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苟上帝不予善人升天堂 何足云能愛人?
구상제불여선인승천당 하족운능애인?
만약 하느님이 선한 사람을 천당에 오르도록 하지 않고서 어찌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不迸惡人于地獄 何足云能惡人乎?
불병악인우지옥 하족운능악인호?
악인을 지옥에 보내지 않고서 어찌 사람을 미워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夫世之賞罰 大畧未能盡公 若不待身後以天堂地獄 還各行之當然 則不免乎私焉
부세지상벌 대략미능진공 약부대신후이천당지옥 환각행지당연 즉불면호사언
무릇 세상의 상벌은 대체로 공정함을 다하지 못합니다. 만약 죽은 후를 기다려 천당과 지옥으로써 각각의 행위에 마땅한 응보를 되돌려 주지 못한다면 하느님의 판결도 사사로움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弗信此 爲信上帝爲仁爲公哉?
불신차 위신상제위인위공재?
이것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느님이 인자하고 공정하심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且夫天堂地獄之報 中華佛老二氏信之 儒之智者 亦從之
차부천당지옥지보 중화불노이씨신지 유지지자 역종지
또한 무릇 천당과 지옥의 응보는 중국에서 불교와 도교, 두 종교에서도 이를 믿으며, 유가 중에 지혜로운 이들 역시 그것을 따릅니다.
泰東泰西 諸大邦無疑之天主聖經載之 吾前者擖明理而顯之 則拗亦者 必非君子也
태동태서 제대방무의지천주성겨재지 오전자갈명리이현지 칙요역자 필비군자야
동양과 서양의 큰 나라들이 이를 이심하지 않으며 천주의 성경에도 그것이 실려 있습니다. 제가 앞에서 이 명백한 이치를 드렁서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천당과 지옥의 도리를 왜곡학도 반대하는 이는 반드시 군자가 아닐 것입니다.
6-25 ◈ 중국 선비가 말한다.
如此則固信之矣 然尙願聞其說
여차칙고신지의 연상원문기설
그와 같다면(저도 천당과 지옥을) 진실로 믿겠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더 듣고 싶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難言也 天主經中 特擧其槩 不詳傳之
난언야 천주경중 특거기기 불상전지
그것에 대해 말씀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천주의 경전에서 다만 그 대략만이 거론되었고 자세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然 夫地獄之刑 於今世之殃畧近 吾可借而比焉 彼天堂之快樂 何能言乎?
연 부지옥지형 어금세지앙략근 오가차이비언 피천당지쾌락 하능언호?
그러나 지옥의 형벌은 이 세상의 재앙과 거의 비슷해서 제가 그것을 빌려서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저 천당의 즐거움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夫本世之患 有息有終 地獄之苦 無間無窮
부본세지환 유식유종 지옥지고 무간무궁
무릇 이 세상의 환난은 쉼이 있고 끝이 있으나 지옥의 고통은 쉴 틈이 없고 끝도 없습니다.
聖賢論地獄 分其苦勞二般 或責其內中 或責其表外
성현논지옥 분기고노이반 혹책기내중 혹책기표외
성현이 지옥을 논할 때, 그 곳의 고통과 노고를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어느 것은 내적 마음 책임을, 어는 것은 외적 육체적 책임을 따지는 것입니다.
若凍熱之不勝 臭穢之難當 饑渴之至極 是外患也
약동열지불승 취예지난당 기갈지지극 시외환야
얼거나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는 것, 추악한 냄새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극한적인 배고픔과 갈증 같은 것은 외적인 환난입니다.
若戰慄視厲鬼魔威 恨妬膽天神福樂 愧悔無及憶己前行 乃乃禍也
약전률시려귀마위 한투담천신복락 괴회무급억기전행 내내화야
벌벌 떨며 사나운 마귀의 위협을 바라보고 천사들의 복락을 한탄하고 시샘하며 쳐다보면서 자기가 앞에 저지른 행실을 기억해도 이제는 수치심과 참회가 더 이상 못 미치는 것이 내적 마음의 불행입니다.
雖然 罪人所傷痛 莫深乎所失之巨福也 故常衰哭自悔曰
수연 죄인소상통 막심호소실지거복야 고상쇠곡자회왈
비록 그렇지만 죄인의 상처와 고통은 큰 복을 잃어버린 것보다 더 깊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슬프게 통곡하고 스스로 후회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悲哉! 吾生前爲淫樂之微 失無窮之福 而溺于此萬苦之聚谷乎!
비재! 오생전위음락지미 실무궁지복 이익우차만고지취곡호!
“슬프도다! 내 생전에 하찮은 음락을 위하여 무궁한 복을 잃고 이 만 가지 고통의 깊은 골짜기에 빠졌구나!
今欲改過免此而已遲 欲死而畢命以脫此而不得 盖此非改過之時!
금욕개과면차이이지 욕사이필명이탈차이부득 개차비개과지시!
이제 과오를 뉘우쳐 이를 면하고 싶어도 이미 늦었고, 죽어서 목숨이 다하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도다. 이제는 잘못을 고칠 때가 아니구나!”
天主公法所使 以刑具苦痛其人 不令毁滅其體 而以悠久受殃也
천주공법소사 이형구고통기인 불령훼멸기체 이이유구수앙야
천주께서는 공정한 법을 쓰십니다. 형구로써 그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나 그 몸을 훼손하고 없어지도록 하지는 않아서 영원토록 재앙을 받도록 하십니다.
夫不欲死後落地獄 全在生時思省 思其苦 思其勞
부부욕사후락지옥 전재생시사성 사기고 사기노
무릇 사후에 지옥에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면 생시에 온전하게 생각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 고통을 생각하고 그 노고를 생각해야 합니다.
思則戒 界則不爲陷溺之事 而地獄可免焉
사즉계 계즉불위함익지사 이지옥가면언
생각하면 경계할 것이고, 경계하면 악에 빠지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지옥을 면할 수 있습니다.
設地獄之嚴刑 不足人動爾心 天堂之福當必望之
설지옥지엄형 부족인동이심 천당지복당필망지
설령 지옥의 엄한 형벌이 그대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부족하다고 해도 천당의 복은 응당 반드시 그것을 바랄 것입니다.
經曰 天堂之樂 天主所備以待仁人者 目所未見 耳所未聞 人心所未及忖度者也
경왈 천당지락 천주소비이대인인자 목소미견 이소미문 인심소미급촌도자야
성경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당의 낙은 천주께서 갖추어 놓고 인자한 사람을 기다린다. 눈으로는 아직 보지 못했고, 귀로는 아직 듣지 못했으며, 사람의 마음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 없다.”
從是 可徵 其處爲衆吉所歸 諸兇之所遠焉
종시 가징 기처위중길소귀 제흉지소원언
이것에 따르면 그곳은 모든 상서로움이 모여들고 모든 흉측한 일들에서 멀리 있는 곳이라고 입증할 수 있겠습니다.
夫欲度天堂光景 且當縱目觀玆天地萬物
부욕도천당광경 차당종목관자천지만물
무릇 천당의 광경을 헤아려 보고자 하면 또한 눈에 보이는 대로 이 천지 만물을 관상해 보아야 합니다.
現在奇麗之景 多孺令人歎息無已者 而卽福推思
현재기려지경 다유영인탄식무이자 이즉복추사
지금 있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광경도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하여 마지않게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시 미루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此乃上帝設之 以爲人民鳥獸公用之具 爲善與作惡同寓之所 猶且制作成就如此!
차내상제설지 이위인민조수공용지구 위선여작악동우지소 유차제작성취여차!
“이 곳은 바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니 사람과 새와 짐승들이 함께 쓰는 도구로 보신 것이요, 선과 악이 함께 있는 곳으로 여기신 곳인데도 오히려 제작하고 성취하신 것이 이와 같도다!
若其獨爲善人 造作全福之處 更當何如哉!
약기독위선인 조작전복지처 경당하여재!
만약에 그 곳이 오로지 선한 사람들을 위하여 만든 완전한 복락소의 처소로 조성되었다면 또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必也常爲暄春 無寒暑之迭累 常見光明 無暮夜之屢更
필야상위훤춘 무한서지질누 상견광명 무모야지누경
반드시 항상 따뜻한 봄이어서 추위와 더위의 갈마듦이 없고, 항상 광명을 보며 어두운 밤으로 거듭 바뀜이 없을 것입니다.
其人常快樂 無憂怒衰哭之苦 常捨泰 無危險
기인상쾌락 무우노쇠곡지고 상사태 무위험
그 곳의 사람들은 항상 유쾌하고 즐거워하여 근심과 분노와 슬픔과 통곡의 고통이 없을 것이고, 항상 한가하고 평화로워 위험이 없을 것입니다.
韶華之容 常駐不變 世年來往 大壽無感 常生佛滅 周旋左右于上帝
소화지용 상주불변 세년래왕 대수무감 상생불멸 주선좌우우상제
아름다운 얼굴은 항상 그대로 있어 변하지 않고, 세월이 오가도 목숨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항상 죽지 않고 살면서 하느님의 곁에 있도록 할 것입니다.
世俗之人 烏能達之 烏能言釋之哉?
세속지인 오능달지 오능언석지재?
속세의 사람들이 어찌 이것을 말로 풀어 낼 수 있겠습니까?
夫衆福吉之溶泉 聖神所常嗜 所常食 嗜而未始乏 食而未始饜也
부중복길지용천 성신소상기 소상식 기이미시핍 식이미시염야
무릇 만복이 솟아나는 샘은 성인들이 항상 즐기는 것이요 항상 먹는 것이나, 즐기고 즐겨도 결코 모자라는 법이 없고, 먹고 먹어도 결코 물리는 법이 없습니다.
此其所亨不等 僉由生時所爲之善功有多寡 而亨福隨之 有無胥憎
차기소형불등 첨유생시소위지선공유다과 이형복수지 유무서증
이 곳에서 그들의 향락은 똑같지 않습니다. 모두 생전에 행한 선의 공덕이 많고 적음에 말미암아서, 누릴 수 있는 복이 따라서 나오는 것이기에 서로 싫어함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何者? 各萬其量也
하자? 각만기량야
어떻게 그럴까요? 각각 그 양에 마족하기 때문입니다.
譬長身者長衣 短身者短衣 長短各得其所欲 何憎之有?
비장신자장의 단신자단의 장단각득기소욕 하증지유?
비유하자면 키가 큰 사람은 긴 옷을, 키가 작은 사람은 짧은 옷을, 길고 짧은 대로 각각 얻었으니 어찌 싫어하겠습니까?
衆善爲侶 和順親愛 俯視地獄之苦 豈不更增快樂也乎?
중선위려 화순친애 부시지옥지고 개불경증쾌락야호?
모든 착한 이들이 벗이 되어서 화합하고 순명하며 친애하면서 아래로 지옥의 괴로움을 굽어보니 어찌 즐거움이 더욱 커지지 않겠습니까?
白者比黑而彌白 光者比暗而彌光也
백자비흑이미백 광자비암이미광야
흰 것을 검은 것에 비하면 더욱 희어지고, 빛을 어둠에 비하면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天主正敎 以此頒訓于世
천주정교 이차반훈우세
천주의 올바른 가르침은 이런 것들을 세상에 반포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而吾輩拘於目所恒覩 不明未見之理
이오배구어목소항도 불명미견지리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눈으로 항상 보는 것에만 얽매여서 아직 본적이 없는 도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比如因婦悔胎 産子暗獄 其子至長 而未知日月之光 山水人物之嘉
비여인부회태 산자암옥 기자지장 이미지일월지광 산수인물지가
비유하자면 옥에 갇힌 여인네가 잉태하여 어두운 감옥에서 자식을 낳았다면 그 자식은 클 때까지 해와 달의 빛, 산수와 인물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只以大燭爲日 小燭爲月 以獄內人물爲齊整 無以尙也
지이대촉위일 소촉위월 이옥내인물위제정 무이상야
다만 큰 촛불을 태양으로, 작은 촛불을 달로 여기면서 옥중의 인물들이 모두 가지런히 제대로 되어진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
則不覺獄中之苦 胎以爲樂 不思出矣
즉불각옥중지고 태이위락 불사출의
그렇다면 옥중의 괴로움을 깨닫지 못하고 거의 낙으로 삼아 감옥에서 빠져나갈 생각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若其母語之 以日月之光輝 貴顯之粧飾 天地境界之文章 廣大數萬里 高億萬丈
약기모어지 이일월지광휘 귀현지장식 천지경계지문장 광대수만리 고억만장
而後知容光地細 桎梏之苦 囹圄之窄穢
이후지용광지세 질곡지고 령어지착예
그의 어머니가 해와 달의 찬란한 빛, 높은 양반들의 화려한 장식, 넓기가 수 만 리요, 높이가 수억 길이나 되는 천지 사방의 찬연한 아름다움을 말해 준 다음에야 틈새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 손발에 채워진 수갑의 괴로움, 감옥의 비좁음과 더러움을 알게 됩니다.
則不肯復安爲家矣
칙불긍복안위가의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그 감옥을 다시는 편안한 짐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乃始晝夜圖脫其手足之桎梏 而出尋朋友親戚之樂矣
내시주야도탈기수족지질곡 이출심붕우친척지락의
이에 밤낮으로 그 손발이 묶인 것에서 벗어나서 감옥에서 나와 친구와 친척의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도모할 것입니다.
世人不信天堂地獄 或疑或誚 豈不悲哉?
세인불신천당지옥 혹의혹초 개불비재?
세상 사람들은 천당과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들을 의심하고 어떤 이는 꾸짖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6-26 ◈ 중국 선비가 말한다.
悲哉! 世人不爲二氏所誕 則蕩蕩如無牧之群
비재! 세인불위이씨소탄 즉탕탕여무목지군
슬픈 일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불교와 도교에 속임을 당하고 있지 않으면 그저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기만 하는 마치 목동 없는 양떼들과 같습니다.
以苦世爲樂地天堂耳
이고세위낙지천당이
그들은 다만 이 괴로운 세상을 천당 낙원으로 여길 뿐입니다.
玆語也 玆母之訓也 吾已知有本家 尙願習回家之路
자어야 자모지훈야 오이지유본가 상원습회가지로
이런 말씀들은 인자한 어머니의 교훈과 같습니다. 제가 이미 내세에 본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더욱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배우고 싶습니다.
◈ 서양 선비가 대답한다.
正路芧塞 邪路反闢
정로소쇄 사로반벽
바른 길은 띠풀들로 막혀 있지만 나쁜 길은 도리어 훤히 열려 있습니다.
固有不知其路 而妄爲引者
고유부지기로 이안위인자
세상에는 진실로 자기가 갈 길을 알지 못하면서도 망령되이 이끌어 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眞似僞也 僞近眞也 不可錯認也
진사위야 위근진야 불가착인야
어찌 보면 진짜는 가짜 같고, 가짜가 진짜 같으니 자기가 갈 길을 잘못 알게 되면 안 됩니다.
向萬福而卒至萬苦 罪彼行路 愼之哉!
향만복이졸지만고 죄피행로 신지재!
만 가지 복락(천당)으로 향하려다가 결국 만 가지 고통(지옥)에 이르렀다면 걸어온 그 길을 탓해야 할 것이니 자기가 가야할 길을 신중히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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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