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外來語)와 외국어(外國語)는 다르다
요즘 들어 한글맞춤법을 무시하고, 또 한글맞춤법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한글맞춤법도 하나의 법이므로 우리말을 쓸 때는 지켜야 한다.
2009년 10월 22일 조선일보 37면에 <영어 표기법 개선해야 한다>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많이 안타까웠다. 곧, 외래어와 외국어를 구별하지도 못하면서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글을 쓴 사람은 모 대학의 영문학과 명예교수였다. 그 정도의 직함이라면 충분히 알만한데 말이다. 게다가 외래어가 어떻게 규정되고 쓰이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보도매체와 지식인들을 “올바로 배운 사람을 당혹시키면서, 바보로 만드는 부정적 역할을 한다.”고 싸잡아 탓했다. 이것은 보도매체와 지식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보도매체와 지식인들은 모두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다만, 글을 쓴 당사자만 모를 뿐이다.
왜 영어는 철자나 문법이 틀리면 안 되고, 우리말글은 틀려도 되는 것일까? 그 사람은 외국인이 세종대왕을 ‘새존되안’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무식하다고 경멸할 것이고, 그의 잘못된 교육을 비난하려 할 것이다.”고 하였다. 그것은 절대 아니다. 외국인이 그렇게 잘못 쓰면 따뜻한 마음으로 제대로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런 식으로 경멸하고 비난한다면 그는 바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다. 외국인이 우리말을 잘못 쓴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어가 우리말글이 아니기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고 무식한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말을 제대로 못할 때도 그런 표현은 쓰지 않는다. 그런데 어찌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를 못한다고 외국인이 우리를 경멸하고 무식하다고 할 것인가.
먼저 우리말을 쓸 때 외국어를 섞어 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자사용은 필요에 따라 제한된 상용한자를 혼용할 수 있으나, 한글표기를 원칙으로 하였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영문자나 한글소실문자는 사용할 수 없다. 외국인을 위해서는 로마자 표기를 두었다. 반대로 생각해 보라. 영어를 쓰면서 우리말을 섞어 쓰면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중국어에 우리말을 섞어 쓰면 중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 따라서 영어를 쓸 때 우리말을 섞어 쓰면 안 되듯이, 우리말을 쓸 때 외국어를 섞어 쓰면 안 된다. 우리는 분명히 주권 국가이지 영국이나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를 무시하거나, 일부러 어기는 사례들을 많이 본다.
10월 2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낸 전자편지에 “‘쥬니어 건강 in’의 얼굴을 찾습니다”라고 제목을 붙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모두 이 전자편지를 받아 보았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외래어표기법이 틀리고, 외국어를 섞어 써서 맞춤법을 어겼다. 이른바 ‘외계어’라는 것이다. 아주 창피한 노릇이다. 그것도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공기업에서 말이다. 정신건강이 몹시 의심스럽다.
다음으로 외래어는 우리말이고, 외국어는 남의 말임을 알아야 한다. 외래어는 외국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널리 쓰이다가 우리말로 굳어진 것이나, 우리말에 해당하는 말이 없을 때 우리식으로 빌려 쓰는 말이다. 이에 혼동이 있을까봐 따로 규정을 해서 쓰는 것이다. 당연히 외국어 발음과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도 사진기를 원음대로 ‘캐머러’(Camera)라고 발음하고 표기하는 우리나라 사람은 없다. ‘카메라’라고 하는 것은 'Camera'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말로 굳어질 때 ‘카메라’로 되었기 때문이다. 외래어는 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를 영어로 쓸 때는 당연히 ‘캐머러’라고 발음해야 맞다. 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영어학습자는 아무도 없다.
또한 외래어 표기법과 영한사전이 잘못되어 배움과 삶을 이원화 한다고 했는데, 이 사람은 무엇이 외국어 발음이고 무엇이 외래어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괴변을 늘여놓고 있다.
우리는 분명히 세계 여러 나라에 자랑할 우리말글인 한글을 갖고 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이 국제화 시대에 아무리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우리말을 파괴하고 버리면서까지 영어를 써야 하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