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井
수풍정(水風井). 우물(井)에서 그 의미를 가져온 괘이다. 상괘는 坎괘로 물이고, 하괘는 巽괘로 바람인데 여기서는 나무를 상징한다. 나무(두레박)가 물 아래로 들어가 물을 퍼올리는 상, 즉 우물을 긷는 형상이다.
집을 짓고 살려면 식수부터 확보해야 한다. 예전에는 마을에 공동우물이 있어서. 그 우물은 마을 생활의 중심이 되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관리하였다. 우물의 물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니어서 마치 공기처럼 써도 써도 없어지는 않는 공유재이다. 사람이 할 일은 물을 더럽히거나 우물이 무너져 흙으로 덮이지 않게 하는 것 뿐이다. 공유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괘라고 할 수 있다.
井 改邑 不改井 无喪无得 往來井井(정 개읍 불개정 무상무득 왕래정정)
汔至亦未繘井 羸其甁 凶(흘지역미율정 리기병 흉)
정괘는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꿀 수 없으니, 잃음도 없고 얻음도 없으며, 오고가는 이가 우물을 우물로 쓴다. 거의 이름(퍼올림)은 두레박줄이 우물에 닿지 못한 것과 같으니, 두레박이 깨지면 흉하다.
改邑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옮겨 가는 것, 不改井은 우물을 옮길 수는 없는 것이다. 공유재의 첫 번째 조건은 인간들이 만드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맘대로 좌지우지 할 수 없음을 말한다. 无는 無의 고대 표기법이고, 喪은 잃다는 뜻. 물을 계속 길어도 우물의 물이 없어지지 않음을 말한다. 无得은 꽉차지 않는 것이다. 물은 지면 가까이에 있지 우물 위쪽까지 올라와서 넘치는 법은 없다. 공유재의 두 번째 성질은 알아서 균형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펌프를 사용하면서 그 균형을 깰때는 물의 순환을 생각해서 보완책을 생각했어야 한다. 물이 공유재란 인식을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 井井은 우물을 우물로 쓴다는 것. 오고가는 이가 우물을 우물로 쓴다(往來井井)는 것은 누구나 오며가며 우물에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물의 세 번째 조건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열려있음이다. 이상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고 누구에게나 두루 쓰인다는 우물의 德을 말하고 있다. 단전에서 우물의 덕을 ‘생명을 길러주고 고갈되는 법이 없다(養而不窮)’고 하는데 이것이 공유재의 성격이다. 이 괘가 이런 항상성의 덕을 갖는 것은 상하괘 모두 가운데가 강이어서 굳셈이 크기 때문이라고 본다.
흘(汔)은 거의, 율(繘)은 두레박줄, 리(羸)는 여위다인데 여기서는 깨지다, 망가지다의 뜻으로 쓰였고, 병(甁)은 항아리, 두레박이다. 여기서부터는 공유재는 잘 사용해야함을 말한다. 汔至는 두레박에 물을 담아 올리는데 아직 끝까지 올리지는 못한 것이다. 亦은 또한 ~와 같다는 것이다. 未는 아직 ~하지 못하다는 부정어이다. 繘井은 두레박을 우물에 내리는데 바닥에 닿지 못해 물이 담기지 않은 것이다. 羸其甁은 두레박이 깨진 것이다. 즉 두레박에 물을 가득채워도 두레박이 깨져서 내 손에 오기도 전에 물이 새버리면, 물을 담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이 괘는 끝까지 길어올려야 효용이 있는 괘이다. 공유란 순환에 참여하는 일이므로 순환사이클 중간을 훼손하면 결국 순환 전체를 훼손하는 것이나 같다. 공유재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닌데, 워낙 선물처럼 주어진 것이라 신경써서 사용하지 않으므로써 결국은 모두에게 문제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물은 폐허가 된채 방치된 겉모습, 그 틀을 연상케하지만, 우물의 이미지는 겉모습+가득찬 물+길어올려서 먹을 수 있는 물까지를 떠올려야 한다.
初六 井泥不食 舊井无禽(초육 정니불식 구정무금)
초육효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않는다. 오래된 우물에 짐승이 없다.
초육은 가장 아래에 있어서 우물 바닥에 있는 진흙으로 나타내었다. 진흙이 있다는 것은 물이 마르거나 진흙물이어서 먹을 수 없음을 말한다. 초육은 陰柔로 능력이 모자라고 능력을 펼칠만한 위치가 아닌데다, 위로 도와줄 정응도 없어서 물이 길어올려지지 않고 진흙만 쌓인 것으로 나타내었다. 초육의 정니불식은 사용되지 않는 우물, 물 대신 진흙이 찬 우물로, 머리에 똥만 찬 사람처럼 외관이 그럴싸 해도 결국은 제 역할을 못하고 외면당한다.
九二 井谷 射鮒 甕敝漏(구이 정곡 사부 옹폐루)
구이효 골짜기와 같은 우물이라서 두꺼비에게만 물을 대고 동이가 깨져 물이 샌다.
구이도 초육처럼 아래에 있고 위로 정응이 없어 우물의 효용을 다하지 못한다. 그러나 강(양)이어서 물이 마른 것은 아니고 골짜기의 흐르는 물과 같다. 이는 아래에 있는 음인 초육에 응함을 말한다. 사(射)는 물을 대다, 물 흐르다(注)는 뜻이고, 부(鮒)는 두꺼비로 초육을 상징하고, 옹(甕)은 동이, 항아리다. 정곡사부는 옹폐루와 같다는 뜻이다. 우물의 효용은 물이 위로 차오르고, 위로 길어 오르는데 있는데, 아래로 내려감은 우물의 도를 다하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초육보다는 낫지만, 위로 올라가 쓰이는 효용이 아닌, 어중간한 효용은 여전히 공유재의 가치를 다하지 못한다.
九三 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 並受其福
(구삼 정설불식 위아심측 가용급 왕명 병수기복)
구삼효 우물을 준설하여 물이 깨끗한데도 먹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다. 물을 길을 수 있으니 왕이 현명하면 함께 그 복을 받는다.
渫은 강바닥을 치우는 준설작업이다. 井渫은 더러워서 먹지 못하던 우물을 청소한 것이다. 爲은 ~해지다의 피동조동사, 惻은 마음이 슬픔이다. 爲我心惻은 우물을 깨끗하게 했는데도 사용하지 않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汲은 물길을 급. 可用汲은 언제든 물을 길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並은 더불어 병.
우물이 버려졌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고 우물 아래에 물이 없는 것도 아니니 깨끗하게 청소만 하면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다. 공유재란 너무 늦지만 않으면 복원시킬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마음, 슬픔, 밝음 등이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늦지 않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인식과 자각에 달려있음을 나타낸다. 왕이 현명하다는 것은 공유재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자각을 의미한다. 그러니 사실 준설도 그 공동체가 해야 할 것이다. 준설만 하면 사용할 수 있는 우물, 영구폐기하지 않아도 되는 우물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위기라고 말하면서 마치 영구폐기할 듯 여기는 태도에 대한 경계라고 할 수 있다. 될
구삼은 陽剛으로 양의 자리에 와서 바른 자리에 있고 상육과 정응이므로 우물의 덕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정응인 상육이 미약하여 당장은 크게 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왕이 현명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은 것이다. 그 효용가치야 말해 무얼하겠는가. 공동체의 모두가 복을 받는다니 말이다.
六四 井甃 无咎(육사 정추 무구)
육사효 우물에 벽돌을 쌓으면 허물이 없다.
추(甃)는 벽돌, 벽돌담이다. 정추(井甃)는 우물에 벽돌을 쌓아 수리하는 것이다. 육사는 陰柔로 정응이 없어서 우물의 물의 효용이 거의 없다. 그러나 바른 자리에 있고, 정응은 아니지만 위로 구오에 응하므로 우물을 지킬 수는 있는 걸로 본다. 그러므로 우물을 수리하고 관리하여 능력 있는 자가 쓸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에 맞게 대비하면 허물이 없다.
九五 井洌 寒泉食(구오 정렬한천식)
구오효 우물물이 맑으니 시원한 샘물을 먹는다.
렬(洌)은 물이 맑다, 차다는 뜻. 井洌은 우물물의 최선의 상태이다. 구오는 陽剛中正(양이고, 양으로 양의 자리, 중의 자리)하므로 맑은 우물물이 된다. 구오를 우물로 보면 맑은 물이고, 사람으로 치면 깨끗한 샘물을 먹는 것과 같다. 또는 우물물은 어느 정도 고인 물인데도 흐르는 샘물처럼 깨끗하여 먹을 수 있는 상태로 보아도 된다. 어쨌든 구오효는 우물의 덕에 지극히 부합하여 먹어도 탈이 없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 비결은 치우침없이 고결한 양강중정에 있다.
上六 井收勿幕 有孚元吉(상육 정수물막 유부 원길)
상육효 우물물을 길어 얻고 나서 덮지 않으니 변하지 않는 믿음이 있어 크게 좋고 길하다.
井收는 우물물을 거둬들인 것이고, 막(幕)은 가리개로 덮는다는 의미로 정수물막(井收勿幕)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얻고 나서 우물을 덮지 않고 두는 것이다. 이는 혼자 전용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물을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부(孚)는 항상 그렇게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안심하고 우물을 사용하는 믿음이다. 누구나 우물물을 먹을 수 있고, 거기에 가면 항상 그 물을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 더 바랄게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게 좋고 길하다고 하였다. 상육은 井괘의 끝으로 위로 올라와야 하는 우물의 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보통은 마지막 상효를 괘가 변하는 지점으로 보아 안좋은 경우가 많은데, 井괘의 상효는 예외가 되는 드문 경우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