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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을 계산해 본다면
에리히 프롬의 명저 ‘사랑의 기술’에 보면, 부모의 사랑에 대한 내용이 곳곳에 나온다. 특히 임상학적으로 그릇된 유형에 대한 몇 가지 예를 든 부분이 있다. 다시 말해 부모로부터 왜곡된 사랑이 전이되는 경우이다.
일단 프롬에 따르자면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사랑은 서로 다르다. 거두절미하고 약식으로 정리하자면 전자는 절대적 사랑인 데에 반해 후자는 조건부 사랑에 해당하겠는데, 물론 지금의 논지에 있어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 기준에 따라서 형성되는 왜곡된 인간상의 유형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겠다.
1. 어머니의 사랑이 과잉인 유형
2. 아버지의 사랑이 과잉인 유형
3. 어머니의 사랑이 과소인 유형
4. 아버지의 사랑이 과소인 유형
5. 둘 다 과잉인 유형
6. 둘 다 과소인 유형
7. 어머니의 사랑이 과잉인 반면 아버지의 사랑이 과소인 유형
8. 아버지의 사랑이 과잉인 반면 어머니의 사랑이 과소인 유형
이들 유형에 따르는 인간의 왜곡은 제각각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만일 정상적인 인간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둘 다 적당한 유형’으로 하나라고 한다면, 왜곡된 인간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여덟이 된다. 경우의 수로 따지고 본다면 일단 우리가 정상적인 인간상으로 성장할 확률은 굉장히 낮아진다.
여기에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가 있다. 그것은 각 유형의 절대적 수치이다. 아무리 경우의 수가 여덟 가지로 많다고 하더라도 저런 사람들의 숫자가 적다면 일단은 안심할 수 있다. 절대치로 따졌을 때, 정상적인 부모의 아래에서 정상적인 자녀로 성장하는 쪽의 수가 더 많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 역시 절대치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정상적인 인간과 왜곡된 인간이 서로 부모로 만났을 경우에, 그 자식이 정상적인 인간이 되느냐 왜곡된 인간이 되느냐의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위에 든 예에서 1번부터 4번까지는 모두 이 경우에 해당한다. 곧, 부모 중 어느 한쪽이라도 그릇된 사랑을 내포한 인물일 경우 그 자녀는 마찬가지로 왜곡된 인간상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아무리 정상적인 부모 아래에서 성장할 가능성이 절대치 상으로 많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이러한 확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계산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과연-에리히 프롬식으로 설명하는 경우- 정상적인 사랑을 지닌 부모의 절대치는 그렇지 않는 부모에 비해 오늘날 많을까, 아니면 적을까?
나의 경험담
어렸을 적에는 부산에서 유명한 산동네인 문현 안동네에서 전세를 들어 살 정도로 가난한 집안이었다. 집 대문을 뛰쳐 나오면 여섯 살배기의 뜀박질 보폭으로 10걸음이면 산이 나왔다. 그 산에서 방아깨비를 잡고 아이들과 비석치기를 하면서 놀던 시절에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몰랐다.
중학생이 되고 이사를 나오고 난 뒤부터 나는 아버지가 술을 너무 자주 많이 하고 그로 인해 어머니와 싸움이 잦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싯적의 상처에 대한 왜곡된 나의 기억을 맹신한다면, 이틀 내지 사흘에 한 번 꼴로 다툼이 있었다. 아버지가 가족들을 때리거나 물건을 부수는 짓을 하지 않은 건 천만 다행인 일이다. 운동을 많이 한 분이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떤 비극이 이루어졌을지 알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걸 고등학교 때까지 쭉 봐왔다. 몇 년을 참아온 것을, 고등학교 1학년 때인지 2학년 때인지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하루를 견디지 못했다. 어느날 새벽 잠에서 깨어난 순간 부모님의 방에서 들려오는 험한 소리들에 나는 불현듯 배개에 고개를 처박고 미친 듯이 울어대었다. 그날 아침, 두 분에게 그만 싸우셨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편지를 워드 프로그램으로 작성해 출력하여 각각 전해 드리고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내가 보는 앞에서 편지를 찢어서 뿌리고는 ‘집이 싫으면 니가 나가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로부터 며칠 뒤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분이 이혼하신 건 내가 군에 입대한 이후였다. 꽤 오래 별거 생활을 하셨는데, 소식을 전해들은 건 큰누나를 통해서였다. 공중전화로 연락을 했고, 그때 큰누나가 “엄마랑 아빠 이혼했다”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큰누나에게 “잘 됐네.”라고 말했다. 진심이었고, 진심이다.
아버지는 만년대리였다. 돈벌이도 사실 잘 하는 편이 아니었던 데다가 술에 절어서 반지하인 집으로 들어오는 계단을 굴러 들어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듯이 보였는데, 지금은 사실 확답은 못 하겠다. 이후에 알게 된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지면에 솔솔이 다 밝힐 정도로 좋은 이야기는 못 된다. 다만, 내가 학창 시절에 생각했던 두 분의 다툼의 책임은 아버지(의 음주)였단 것이고,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절에 알게 된 사실은 성격 차이가 더 컸다는 것이다.
이런 집에서 자라면서 우리 삼남매의 성격이 갖추어졌다. 흐트러진 집안 분위기 속에서 큰누나는 가장의 성격을 가지게 되며 어머니에 못지 않게 엄하고 억센 여성이 되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싸움에 지쳐버린 작은누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해졌다. 나도 그와 비슷했는데, 남자라는 이유로 내게 걸린 기대 때문에 나에게는 외면으로는 순종적이고 내면으로는 반항적인 캐릭터가 형성되었다. 우리 세 남매는 서로 참 달랐지만, 그래도 한 가지의 공통점은 생겼다. 독립심이 아주 강해졌다는 것.
관계가 역전된 건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난 이후부터였다. 어머니는 재혼한 새남편에게 인성 상의 문제가 있어 재차 이혼한 뒤 홀로 남게 되었다. 별거 이후 거의 연락이 되지 않던 아버지와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정식 혼인은 하지 않은 채로 동거 중인 분이 있으셨다. 우리 남매는 그 분을 모두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지낸다. 친어머니와 아버지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생겼다. 우리 삼남매에게 이전과는 달리 매달리게 되었다는 점. 어머니는 혼자가 된 이후로 우리에게 했던 지난날들을 많이 후회하면서 다시 연락이 서로 통하기를 바라신다. 아버지는 몇 년간 얼굴도 못 봐서 ‘나한테는 자식도 없다’고 말하고 다녔던 분인데, 어느 날 갑자기 삼남매가 나타났으니 없던 자식이 생긴 것에 애절해지셨다.
이게 문제이다. 우리 삼남매는 독립심이 강해질 대로 강해졌는데, 옛날에는 우리가 어떤 심정이든 한껏 싸우던 두 분이 이제는 우리에게 매달린다는 것. 관계는 역전되었는데, 이 양자는 서로 원하는 것을 절대로 충분히 주고받을 수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다. 앞으로?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겠지만, 어느 한쪽이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아무 것도 더 나아질 수 없으리라는 비극적 전망을 내리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불효자 콤플렉스
내가 이, 위에 쓴 내용으로는 약식의 약식도 못 되는 사연을 실제 사례와 더불어 장황하게 이야기하면 나와 가까운 친구는 나에게 말한다.
“잘 해 드려라. 아무리 그래도 네 부모님이다.”
잘 아는 이야기이다. 자식은 부모에게 잘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효도라는 것. 내 부모님이 우리 남매를 미워하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들은 우리 남매를 사랑하고 있다. 그게 눈에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부모님을 사랑하기가 너무도 어렵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꽤 자주 절감하는 편인데, 그 중 하나가 내 친구들의 경우이다. 나와 가까이 지내던 친구들은 부모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많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에게는 일련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위로하기 위해서 우리는 밖으로 나와 친구들끼리 의지했다. 그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그 시절에 나는 어떻게 견뎌냈을지 실로 의문스럽다.
또 한 가지 경우는 교사일을 할 때였다. 4년간 기간제 국어교사로 사립 여자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내게 상담을 받으러 온 태반의 아이들이 가정사의 고통으로 속앓이를 하는 이들이었다. 심지어는 국어 과목 학습법을 물어보러 온 아이조차도 가정사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학생들의 앞에서 지나가는 식으로 부모님 이혼에 대한 말을 꺼낸 탓도 아마 있겠지만, 확실히 분위기 상으로 통하는 게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의 가정 환경은 나은 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들의 삶을 나보다 불행한 것으로 매도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다. 원래 나의 사고방식은 ‘내가 겪은 삶의 고통이란 유치원생이 땅바닥에 사탕을 떨어뜨려서 우는 슬픔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쪽이다. 단지, 내가 위에서 추려 쓴 나의 과거사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이야기하려는 것뿐이다.
나의 누나들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직도 그 과거의 아픔을 온전히 다 씻어내지 못했다. 많이 초연해졌다고는 하지만, 가끔 어머니의 연락을 받을 때에도,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아버지의 술주정을 들을 때에도 분노와 죄책감이 동시에 든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시달리고 있겠는가. 내가 비교적 초연해진 나이가 이십대 중후반이 되어서였다. 이제 이십대에 올라가거나, 아직 십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또 얼마나 더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인가.
특히 나를 자꾸만 괴롭히는 심정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불효자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물지 않는 고통 속에서 용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초인이리라. 그 초인에 적어도 나라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한 동안 지금의 내 고통에 대한 책망을 내 부모에게로 보낼 것이고, 그러는 동안에는 나는 불효자라는 비윤리적 인간의 틀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고통이 더한 고통을 부른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짚어가며, 어디로 짚어가야 할 것인가.
부모의 영향은 자녀에게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부모와 자녀의 사이에는 예속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곧, 부모는 자식이 이 사회에 배출되기 전까지 경제적 생산력을 갖추지 못한 자식들의 몫을 책임지게 된다. 책임을 지는 존재는 책임권역에 포함되는 존재보다 상위의 위계를 갖는다. 그리고 일반 윤리에 의거하자면 손아랫사람은 손윗사람을 따르도록 되어 있다. 사회적으로 완벽히 무관한 관계 속에서조차도 손아랫사람과 손윗사람 사이의 예절이 규정되어 있는데, 극단적 용어를 빌려 말해 관리자와 관리 대상 사이는 얼마나 엄격하겠는가.
이들 사이의 격식의 해체는 오로지 관리자의 재량과 아량에 달려 있다. 즉, 부모가 엄한 부모가 될 것인가 호혜적인 부모가 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식 쪽의 선택권이 부재한다. 당연하다. 책임은 부모가 지기 때문에, 책임을 지지 않는 관리 대상은 관리자에게 자신의 지체 여부를 온전히 위임해야 한다.
관리자로서의 부모가 관리 대상인 자식에게 복종을 요구하면 일반적으로 자식은 요구 사항에 따를 수밖에 없다. 따르지 않을 경우 각종 불이익이 이어지는데, 이들 중 일부는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손윗사람에 대한 불복종으로서 예의에 어긋나고, 경제적 지원이 끊길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내가, 내 어머니가 말한 “집이 싫으면 니가 나가라”라는 말에 정말로 집을 나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학교에서는 문제아가 되고, 사회에서는 가출청소년이 되며, 어머니에게는 불효자이자 동시에 반항아가 된다. 이러한 낙인은 그 원인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화가 나서 집을 나갔든 매질을 못 견뎌 집을 나갔든 가출청소년이라는 낙인이란 변화가 없다.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행위가 일반적으로는 부모의 권한에 의거한 명령 하에 수행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식의 행위의 정당성 여부는 부모의 권력 행사의 정당성 여부에 강하게 영향을 받는다. 쉽게 말해, 부모가 부적절한 지시를 내렸을 때 자식은 불복종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에게 불복종한다는 그릇된 행위 기준을 깨뜨릴 수 있을 정도로 부적절한 지시라면 자식의 불복종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의 지시의 적절성 여부는 파악하기 어려운 반면 자식의 불복종과 같은 외적 양상은 아주 쉽게 눈에 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부모의 지시에 대한 고증은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이는 집이라는 울타리에 그 원인을 둘 수 있겠다. 정확히는 집이라는 물리적 양상으로 대변되는 가족이라는 관계적 관념이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 존재하는 개체는 여럿이지만, 가족이라는 틀은 이들 각 개체를 ‘우리’라는 근접 영역으로 접근시키는 특징을 지닌다. 이 특징으로 인해 가족 구성원 사이에는 관심과 보호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관심은 내적인 측면이라면, 보호는 외적인 측면이다. 곧, 가족은 타자로 지칭되는 외부세계로부터 구성원들을 지켜내는 보호의 속성을 지닌다. 만일 타인들이 가족에 어떠한 형태로든 접근한다면 가족이라는 틀은 이 타인의 접근을 허용할 것인지 배척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이 결정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당연히 관리자인 부모에게 있다.
그래서 이러한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만일 누군가가 부모의 지시의 적절성을 파악하려 든다면 그 사람의 의도는 부모에 의해서 ‘가족이라는 틀을 와해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되기 쉽다. 그릇된 지시를 내리는 부모라면 당연히 자신에 대한 비판 의식이 부족한 상태이니, 타인의 비판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 이들 부모의 대답은 한결 같이 나온다. “남의 집안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라.” 배척된 타자들에게는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지시 불이행을 한 자식에게도 발언권은 없다. 판단과 발언, 지시의 모든 권리들을 부모는 독점한다. 이런 상태에서 부모에게 왜곡된 가치가 형성되어 있다면 전반적인 판단, 발언, 지시가 고의적으로 왜곡될 소지는 농후하다.
부모의 정당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합당한 이유 없이 무작정 불복종한다면, 이러한 자식이 심하게는 패륜아까지 불리는 것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이에 대해 분석하자면 사회 문화적인 영향까지 파고들어가야 하겠지만, 이 글에서는 부모의 영향에 집중하여 살펴볼 것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더 언급하지 않겠다. 반대로, 부모의 정당하지 못한 지시에 불복종하는 대가를 자식은 오랫동안 치러야 한다. 그 대가는 둘 중 한 가지 시점에서 끝난다. 하나는 부모가 완전히 용서하는 시점이고, 다른 하나는 둘 사이의 가족 관계가 해체되는 시점이다. 독립, 죽음(어느 쪽이든), 이혼이 후자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릇된 판단을 내리면서 내적인 비판은 고사하고 외적인 비판들도 모조리 배척해 버린 부모들 중에서 용서를 고려할 능력을 가진 이들의 수는 매우 적다. 그렇기 때문에 후자의 경우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요원하다. 부모로 인한 자식들의 트라우마는 평생을 갈 수밖에 없다. 독립할 때까지 고통이 지속되는 기간이 한두 해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죽음이나 이혼 등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형성한다. 오히려 죽음이나 이혼은 부모 중 한 쪽의 부재 양상이 되면서 자식에게 이중 삼중의 압박감을 부과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내가 내릴 수 있는 유일한 해답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모님 문제에 대한 상담을 해 보면 사실 답이 없다. 그들이 아무리 짙은 눈물을 상담 시간 내내 흘려댄다고 한들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위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나는 그들 가정에 있어 철저한 타인이다. 그나마도 내가 담임 교사라면 어느 정도 발언권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실상 부모님보다도 선생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환경 속에서는 학생에게 담임 교사란 부모에 필적하는 권한을 지닌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담임이 아니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 같이 교과목 담당 교사가 감히 말을 했다가는 당장에 욕을 먹게 되어 있다. 어디 남의 집안일에 담임도 아니면서 참견하느냐는 식으로.
그게 나만 욕을 먹고 끝나는 거면 다행이다. 그 학생은 집에 불려가서 ‘실토’에 대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가족의 틀이 ‘우리’로 엮여 있다 보니, 그들 내부의 일에 대해서는 비밀 엄수의 의무가 불문율로 정해져 있다. 가족은 구성원 개개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대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에 공개해도 되는 이야기는 오로지 가족 집단의 자부심을 올려줄 수 있는 자랑거리 뿐이다. 가정 내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행위는 가족 집단의 와해를 초래하는 부적절한 행위이다.(그러고 보면, 그들이 정말로 내적 비판 능력을 상실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만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알려지면 좋지 않은 평가를 받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모르고 하는 악행에는 개선이나 이해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알고도 행하는 악행에는 답이 없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나에게 가정사를 털어놓은 제자가 한 명 있었는데-이 제자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므로 이 글에 의하여 부모에게 압력을 받을 가능성도 적은 데다가, 익명으로 거론하기 때문에 일차적인 보호가 될 것으로 추정하여 거론한다- 그 제자가 이후에 내게 문자를 했다. 혹시 자신의 어머니에게 무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냐는 것이었다. 하늘에 맹세코, 그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며 학교 생활 중에 내게 말을 건 학부모는 내 고등학교 시절 친구의 동생 어머니밖에 없다. 사연인즉슨, 어머니가 학교에 선생님들을 뵈러 갔다가 돌아와서는 자신을 나무라더라는 것이다. 학교에 가서 집안의 시시콜콜한 문제를 다 털어놓고 다니느냐면서. 그 제자가 그런 이야기를 말한 대상은 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런 수준이니, 내가 감히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들의 사연과 눈물을 다 받아준 뒤에, 나는 그들에게 똑같은 조언을 늘 해 주었다. 조금만 참으라고. 경제적인 능력이 당장 사회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이 나라-물론 법적 취업 가능 연령은 만 15세 이상이지만 만 20세 미만에게는 아르바이트 이상 허용되지 않고 이들 아르바이트는 최저임금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조기 독립을 위해 이런 일에 종사하다가는 대학도 못간 사회 낙오자 취급을 받아 평생 가난하게 살기 딱 좋은 나라-에서는 어쨌든 반항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대학교에 올라가고, 독립을 하는 시기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때에 가면 지금의 괴로움을 조금 더 가볍게 떠올릴 수 있는 때가 온다고.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바로 그러했으니까.
궁극적인 해결책은 결코 못된다. 결국 독립의 순간이 올 때까지는 계속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일반적으로 20세가 됨에 따라 독립이 곧바로 이루어지는 서구 문명권에 비해,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해서 어느 정도 자산이 모이기 전까지 독립이 유예되는-혹은 결혼 전까지 유예되거나, 심지어는 결혼 이후에도 예속되어야만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고통의 시간이 더욱 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건 엄밀히 말하면 해결이 아닌 도피이기 때문에 후유증은 고통의 시간만큼이나 오래 지속된다. ‘사람은 스무 살이 넘으면 변하지 않는다’는 나의 지론에 의거한다면 성장기에 이미 왜곡되어 버린 정서나 사상이 독립 이후에 회복될 것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래도, 적어도 고통의 시간이 끝나면 자신을 돌아볼 기회는 얻을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에 있다. 적어도 그 시기를 고통으로 받아들일 정도의 판단력이 있다면, 독립 이후 자신의 삶을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판단력도 기대해볼 수 있다는 데에 이 해결책의 의의가 있다.
가족의 관계는 영원하지 않다
가족이란 이행되는 형태의 공동체이다. 가족이라는 우리의 틀이란 영원하지 않다. 구성원들의 수명 차이로 인해 계속 변화하고 순환한다. 내 부모가 떠나는 순간 나는 독립 가족을 이루며, 이후 내가 결혼하면 부부로서 가족의 틀을 이루고, 자식이 생기면 이번에는 내게 부모의 역할이 전이된다. 즉, 가족 구성원 간의 ‘우리’라는 관념은 평생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관리자 휘하의 관리 대상이라는 지위를 벗어던지는 순간, 개개인은 인간으로서 동등해진다. 남는 관계라고는 손위아래에 따르는 사회적 예의와 더불어 가족이라는 고착된 관계에 따르는 예의범절 뿐이다. 이는 개개인의 의지에 따라 유지할 것인가 끊을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다.
군대에서 깨달은 깊은 진리 중의 하나가, 마지막에 가면 그 사람이 행한 대로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군대 선임 중에서 후임들을 무척 심하게 괴롭히던 이가 한 명 있었는데 이 선임이 전역하는 날이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아침 일찍부터 훈련이어서 모든 이들이 내무실을 텅텅 비워 버렸다. 바쁜 훈련 과정을 따라가다가 우연히 그 내무실에 들어갈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선임이 내무실 안에 홀로 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후임들이 내무실에 두고 간 물자들을 한쪽으로 정리하는 일이었다. 전역자 대접을 전혀 받지 못한 그의 모습이 얼마나 쓸쓸해 보이던지.
군대는 일종의 가족 형태와 유사하다. 심지어는 2년 2개월이던 나의 군생활 시절 당시 입대 시기가 1년 차이가 나는 선임은 아버지로, 2년 차이가 나는 선임은 할아버지로 부르기까지 했다. 입대하는 순간 나는 자식에 해당하는 위계로 군대에 들어간다. 그리고 군대에서 선임의 권한은 절대적이다. 그 절대적인 양상이 영원하지는 않다. 결국 이 선임도 전역하면서 군대에서의 모든 권한을 잃게 된다. 같이 있을 때에 권한을 마구잡이로 부린 이들은 결국 이 시기가 오면 자신이 한 만큼의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다. 그런 이들 중에 후환이 두려워 새벽 무렵 몰래 빠져나가는 이들도 많을 정도이니 말이다.
군대와 가족의 차이점이라면, 이 관리자와 관리대상의 유착 관계가 끝나는 이후에도 효라는 관념으로 지속성을 부여한다는 데에 있다. 이 효란 일종의 절대적 선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효의 절반 쯤의 속성은 자본주의적 교환 원칙에 맞닿아 있다. 이는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을 봉양하라’라는 데에 있다. 관계는 역전되었다. 부양하던 부모가 노년이 되면서 경제적 생산력을 상실한다. 그리고 자식에게는 경제적 생산력이 주어지면서 부양자가 된다. 관리자와 관리대상의 역전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역전을 막아주는 것이 효라는 관념의 역할이니까.
이러한 자본주의적 교환 원칙을 동등하게 대입시키는 것으로 가정해 보자.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데에는 ‘자식이 말을 듣지 않는다’라는 명분이 있다. 즉, 지시를 따르면 잘 해 주고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데에 있다(지시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이는 교환 원칙에 충실한 방식이다. 받았으니 주고, 받지 못했으면 안 준다는 식이다. 그 관계가 이후에 가서 부모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서 공식이 흐트러진다.
양익준 감독의 영화 ‘똥파리’에서 주인공 상훈이 일수 수금을 다니다가 아이들이 울면서 보는 앞에서 아내를 때리던 남자를 폭행하는 장면에서 하는 말은 이런 교환 원칙의 측면에서 아주 인상적이다.
“누굴 때리는 ×새끼 있잖아, 그 새끼는 지가 안 맞을 줄 알거든? 근데 그 ×새끼가 언젠가 ×나게 맞는 날이 있어. 근데 그 날이 × 같이도 오늘이고, 때리는 새끼가 × 같은 새끼네.”
‘똥파리’와 ‘가족의 탄생’, 그리고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
말이 나온 김에 영화 ‘똥파리’를 생각해 보자. 이 영화는 가족 관계가 지닌 폭력성을 보여준다. 상훈은 아버지의 만행으로 여동생과 어머니를 동시에 잃은 과거를 지녔다. 성장한 이후 아버지에게 과거에 대한 복수로 폭력을 일삼는다. 연희 또한 월남전 참전 이후 신체적으로 불구가 되면서 피해의식이 정신병적으로 생긴 아버지와, 그런 가정에서 비뚤어진 남동생을 끌어안고 힘들게 살아간다. 연희의 어머니는 포장마차를 철거하던 철거 용역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이들은 불구의 가족에서 성장하고 있다. 연희가 아직 자식으로서 고통받는 단계를 보여준다면 상훈은 관계가 역전된 이후의 양상을 보여준다. 연희의 동생 영재의 캐릭터로 넘어가는 폭력의 전이도 흥미롭지만, 이 글에서는 상훈에게 초점을 더 두고 싶다.
출소한 아버지를 골방에 데려다놓고 수시로 가서 폭행을 일삼는 상훈. 그것은 아버지가 과거 가족을 잃게 만든 데에 대한 복수이며,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망가뜨린 데에 대한 복수이다. 그렇다면 상훈에게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어쩌면 없다고도 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이미 감정은 애증이 되어 버렸다. ‘정’까지는 어쩌지 못하더라도 ‘애’는 분명 남았다. 아버지의 골방 문을 열었을 때 쓰러져 죽어가던 아버지를 병원으로 업고 달려가면서 그는 죽지 말라고 몇 번이고 외친다. 병원에서도 자기 피를 다 뽑아주라고 절규한다. 그리고 연희를 만나서 그 무릎을 베고 누워, 영화 내내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흘리고야 만다. 관계가 전이된 것으로 고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부모와 자식이라는 이름으로의 사랑이 남아 있는 한, 고통은 영원히 끝날 수가 없다.
틀로 규정된 ‘가족’이 고통일 수밖에 없다면, 그 틀에서 벗어남으로써 비로소 가족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대안 가족을 제시한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 영화로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과,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을 예로 들어볼 수 있겠다.
먼저 ‘가족의 탄생’을 생각해 보자. 이 영화에서 혈연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와 고통을 준다. 그 상처와 고통은 애정이 있기 때문에 성립한다. 미라는 떠났던 동생 형철이 돌아옴에 기뻐 반기지만, 형철이 데려온 또 다른 가족인 무신과 채현을 대면하면서 상처를 받는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처남댁 무신은, 형철이 다시 달아남으로써 그곳에 남는다. 혈연인 존재는 떠나가 버리고, 미라와 무신은 사랑했던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공통 분모를 지닌 존재로서 다시 한 가족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가족에 이후 경석이 구성원으로 합류한다. 물론 경석은 외적으로 합류를 거부하지만, 그는 이미 이들 가족의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이 구성원을 보라. 미라와 무신은 처남댁과 형님의 관계로 비혈연이다. 무신이 데려온 채현도 사실 무신의 친딸은 아니다. 그리고 채현이 이후 데려온 경석까지. 이들 사이에 혈연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딸이 데려온 남자친구에게 치근덕거리기도 하고, 미라가 외려 무신을 할머니 취급하기도 한다. 가족이면서 친구인, 남이자 우리인 관계.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바로 결말이다. 내가 처음에 가족이란 관계의 물리적 양상이 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경석은 채현과 헤어졌다. 그 사실을 미라와 무신에게 분명히 밝혔지만, 미라와 무신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경석을 대문 안으로 들인다. 한편, 미라의 혈육인 형철이 또 다른 여자를 데려왔을 때, 이번엔 미라는 형철과 그가 데려온 여자를 대문 밖으로 내몰고서 문을 닫아 버린다. 혈연이라는 명분으로 고통만을 전가하는 가족 관계에 대해 엄징한 단절을 가져온다. 가족이라는 테두리가 집으로 대변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집 안에 발을 디딘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 가족으로 허락받지 못한 존재는 집 안으로 들일 수가 없다. 이러한 가족은 내면적으로(=집안에서) 정에 근거한 관계이고, 외면적으로(=집안과 밖의 구분을 통해) 수용 허가에 근거한 관계이다. 무조건적으로 가족의 지위를 붙이며 관계를 규정지어 버리는 일반적인 가족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대안 ‘가족의 탄생’이 이루어진 것이다.
무라카미 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은 ‘가족의 탄생’과는 다른 의미에서 가족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가족의 탄생’이 비혈육간의 관계 재정립이라고 한다면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은 혈육 가족들이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작가가 제안하는 그 방법이란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들은 집을 떠남으로써 가족을 유지한다. 우치야마 가의 네 가족은 서로 한 집에 모여 살면서 끊임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위태롭게 흔들린다. 그러다가 모두들 각자 사회 속에서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아서 떠난 뒤 일정 시기를 정해 한 번씩 만나기로 합의를 본다. 마지막 장면에서, 개업 공사중인 자신의 커피숍에 아버지인 히데요시가 가족들을 데리고 왔을 때,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사람이 벌써 손님이 왔느냐고 물어본다. 이때 히데요시는 “우리 가족이야”라고 말한다. 이야기 내내 시종일관 고통스러워하던 히데요시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이 들뜬 목소리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대목이다.
집을 떠남으로써 그들은 구원받는다. 집을 떠난다는 말은 곧 가족이라는 전통적인 테두리를 벗어난다는 의미가 있다. 전통적으로 규정된 관계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가를 그는 소설에서 끈적하게 접근해 풀어낸다. 자신들을 얽어맨 관계의 속박을 풀어내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 이들 가족은 비록 한 집에서 살지는 않아도 가족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으로 간직하는 정도로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의 재규정 : 가족의 타자화
‘가족의 탄생’과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은 서로 완전히 반대되는 맥락에 결말을 내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속의 핵심에는 아주 중요한 맥락을 동시에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타자화이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가족은 타인과 대별되는 우리라는 관념을 지닌다. 타인은 기본적으로 존중의 대상인 데에 반해 나의 영역에 포함되는 우리는 이해와 수용을 강요받는 대상이 된다. 가족에 대응되는 관계는 대부분이 그러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고민 상담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 보자. 최근에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 보니 그런 사람들의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곤 한다. 대부분의 고민이란 타자로서의 내가 답을 내리기 어려운 사안들이어서 결국에는 위로밖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고작해야 ‘힘내라’,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로를 받으면 이 타인들은 나에게 무척 고마워 하고 또한 행복해 한다. 왜냐 하면, 내가 타인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들을 위로해 주거나 그들을 이해해 주어야 할 의무가 없는 남이다. 그런 내가 그들의 심정에 위로의 말을 건네는 행위는 그 말 한 마디로도 힘을 줄 수가 있는 베풂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범주로 접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구라면 자신을 충분히 받아주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도 이해해줄 수 있지만, 연인지간에는 저 사람이 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 곧장 상심하는 경우들이 많다. 연인지간도 또한 가족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범주에 해당한다(사실 연인이라는 관념이 예비 가족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서로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강요를 주고 받는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순간 갈등이 발생한다. 이건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힘내라’, ‘괜찮아질 거야’라는 위로가 말뿐인 위로로 수용되는 순간 관계는 위태로워진다.
바로 이 차이가 있다. ‘우리’라는 틀이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행하는 강요가 상처를 만들어낸다. 형철은 누나 미라에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한다. 히키고모리인 히데키를 어머니인 아키코는 무조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생각처럼 되지 않음에 둘 다 서로 고통받는다. 이것이 가족 관계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원리가 된다.
‘가족의 탄생’은 바로 이러한 타자들간의 존중에 기반한 가족 관계를 긍정한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집에서 벗어나 각자의 주체성을 가진 존재로 거듭날 때, 그리하여 서로를 타자로서 충분히 존중할 수 있는 선으로까지 물러섰을 때에 가족이 비로소 성립된다. ‘똥파리’에서 모두가 웃는 마지막 장면을 보라. 그곳에 한가족처럼 웃고 지내는 이들 속에 혈연 관계라고는 현서와 형인 뿐이다. 연희와 만식과 현서네, 그리고 상훈의 아버지는 서로 피붙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환하게 웃던 연희의 표정을 얼어붙게 만드는 건 피붙이인 영재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강요만 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지시에 따라야만 하고, 원하는 걸 받아들이기만 해야 하는 관계는 이미 폭력이 된다. 이들 작품이 정말로 그런 가족을 구성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건 아니다. 이건 상징일 뿐이다. 타자로 대변되는 거리감이야말로 상호 존중의 맥락을 지닌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타자의 거리감을 통해 시사되는 상호 존중이다. 친구가 소중한 이유가 무엇인가. 서로 남이면서 남의 선을 넘어서는 관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친구 관계가 깨어지는 건 언제인가. 타자로서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한쪽이 다른 한쪽을(혹은 쌍방이) 과도하게 우리, 혹은 나의 범주로 끌어들일 때이다.
내가 부모의 문제를 주로 잡고 들어간 이유는 상대적으로 부모들이 가족 관계에 있어서 관계 규정을 강요하는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라면 자신들의 행위가 자식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전이된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식을 사회화시키는 주체이다. 타자와의 관계에서 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면, 그것이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걸 무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부모의 그릇된 사랑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제일 처음에 충분히 언급했다고 생각한다.
처음 글을 시작하면서 가능성을 계산했다. 그릇된 사랑을 가진 부모들의 밑에서 그릇된 사랑을 가진 자식이 나올 가능성을. 그 자식들이 그걸 극복할 가능성에 대한 계산도 해 보고는 싶으나, 아직 내가 그런 연구를 접해본 적이 없다. 접해본 것이라고 해 봤자, ‘폭력 가정에서 자란 자녀는 커서 부모가 되어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음울한 전망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음울한 전망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이 심리학적 결과의 노예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운명론만큼이나 끔찍하고 비관적이다. 본문 중에서 이야기했듯, 폭력이 싫다는 걸 느껴본 사람은 그것을 행하지 않을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 가정 학대가 좋지 않다는 걸 경험한 사람은 자신이 부모가 되었을 때에 그것을 대물림하지 않게 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학습하는 동물이요, 생각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란, 그렇게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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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뭔가 위안이 되네요
^^ 위안이 되셨다니 마음이 놓이네요.
힘든거 같아요. 부모가 원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 사이에서의 고민. 물론 그것을 이겨보려(?)하지만 또 다시 미안함이 ...... 아버지의 모습들이 싫어 생각하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리고 그 모습 그대로 따라하는 것..그리고 끝없는 후회...-.-;;;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기를 거듭하고 반복하다 보면 분명 더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화이팅입니다.^^
우리에겐 모짐 불효자가 될 용기가 있어야 겠죠. 아니 전 제가 행복한게 효도라 생각하고 불효자가 되기라 마음 먹었습니다. 여친이 생기거나 아내가 생길때 전 무조건 여친이나 아내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오랜만에 긴 글을 꼼꼼히 읽었어요. 느끼면서도 뭐라 말하기 힘든 점들을 잘 분석하셨네요.. 여러 부분에서 공감했습니다
글이 길고 말이 딱딱해서 전달이 잘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공감해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쉐프의 이 글로, 쉐프라는 사람에게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군요.
호호. 그럼 전 기쁘죠.^^
이 글의 조회수가 다른 글에 비해서 많은 건 아마, 사람들이 가지는 가족에 대한 묘한 애증의 감정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가 어버이날 느꼈던 심정은 이 글의 논지와 많이 비슷한 것일 겁니다. 너무 길어서 다 읽진 않았네요.^^a 우리가 말하는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기가 실은 허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죠. 박완서 선생님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또 해봅니다. 민들레 모임에서도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해도 좋을 듯합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판타지는 다를 것이며 그 판타지의 충족을 위해 가족 구성원이 피해를 입거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건 아닌가 해서요. 가족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질문을 통해 그 불완전성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TV에 나오는 펄펙트한 가조이 없는게 오히려 더 정상이 아닌가.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소재는 좋은 성찰의 주제가 아닐까 싶네요.
무슨 칼럼쓰기를 이렇게 도배를 하시는 겁니까!! 다른 사람 기죽게....ㅎㅎ
전 기죽지 않고 이번 주제의 글만 짧게 올렸습니당. 5000자를 채우려니 억지로 늘여 쓰는게 될까 봐서요.ㅋㅋㅋ
아, 저는 전에 올렸던 칼럼 세 편을 이리로 옮겨온 것일 뿐입니다. 제가 쓴 글은 다 읽어보시면 느끼시겠지만 일단 가족 판타지의 지점은 아니고요. ㅎㅎㅎ 가족을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권력체계로 두었을 따름이랍니다. ㅎ 그리고 본의 아니게 도배가 되어 죄송합니다. 초반이라 제가 올릴 게 많네요. 허허.
도배 환영 환영입니다.^^ 다만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게 들통났네요.ㅠㅠ
넷상에서 긴글을 다 읽는게 힘들다보니.....ㅎㅎ
판타지라는 지점, 끊임없이 변해가고 질문을 던져야 하는 지점의 측면에서 언제 글을 쓸 날이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