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의 평화관광
화천은 아주 고요한 고장입니다. 산과 물이 어우러져 평화롭게 사계절이 지나고 있지요. 그러나 화천은 북한과 비무장지대를 사이에 둔 남북접경지대입니다. 게다가 6.25한국전쟁 때는 전쟁의 중심지역에 놓여 있어 포탄이 터지는 화염에 쌓여 있었습니다. 광복이후 수복하기까지 무려 8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인공의 통치를 받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북 평화 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기원하는 평화의 땅이 되었답니다. 화천의 평화관광은 그런 의미에서 보람 있습니다.
<파로호 주변> 오늘은 춘설이 세차게 내리는 날입니다. 벌써 4월 초입인데 이렇게 눈이 세차게 내리네요. 춘설을 맞아 희미하게 위용을 드러내는 파로호가 몹시 고혹적입니다. 호수는 고요한데 주변 풍광을 하얀 눈이 모두 삼켜버렸답니다. 언제 한국전쟁이 있었으며, 수많은 청년병사들이 한 떨기 꽃처럼 떨어져 이곳에 수장됐는지를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멋진 호수에 어떻게 그런 슬픈 사연이 담겼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슬픈 역사의 흔적들만 자리하고 있음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답니다. 큼지막하게 한자로 파로호(破虜湖)라 새겨진 두 개의 돌 비석, 언제나 마른 꽃다발이 놓인 자유수호희생자위령탑, 학도병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자유수호탑, 화천발전소 탈환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전공비, 수리봉에 세워진 643고지 전투전적비, 6.25한국전쟁을 알리기 위해 건립한 파로호안보전시관 등이 커다랗게 눈에 들어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화천댐에 오르면 일본인이 세운 대명제(大䳟堤)표석에는 총탄의 흔적도 발견됩니다.
낭만적인 물빛누리호가 파로호의 물살을 가르고, 배 위에서는 음악회가 열려 아름다운 선율이 호수 위로 퍼져 나갑니다. 그렇게 낭만적인 호수의 이름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인 파로호랍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휘호를 해서 내린 것이지요. 어쩌면 전쟁의 상흔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가 있을까요. 게다가 파로호비는 화천댐 옆 대붕정(大鵬亭) 앞에 하나가 있고, 또 하나는 파로호안보전시관 뒤에 있는 파로호 전망대 옆에 있습니다.
파로호 주변의 전투는 군인들만 참가한 것이 아니랍니다. 세상의 물정도 모르는 젊은 학도병도 조국의 부름을 받고 총칼을 들고 전장에 나갔습니다. 자유수호탑에는 “조국과 자유를 지킨 곳”이란 글이 쓰여 있고, “길손이여 자유민에게 전해다오. 우리는 겨레의 명령에 복종하여 이곳에 누웠노라.”라는 가슴 뭉클하게 하는 문장이 있습니다. 소나무와 함께 고요한 파로호를 보며 자유수호탑은 말없이 서 있습니다.
파로호안보전시관 아래에는 자유수호희생위령탑(自由守護犧牲慰靈塔)이 있습니다. 매년 10월 30일이 되면 화천군에서 위령제를 지내고 있지요. 이 탑은 화천에 살던 민간인들이 전쟁 중에 치안대를 결성하여 전쟁에 참여하다가 죽고, 또 국군의 작전을 돕다가 죽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요. 저녁 어스름 매봉산 아래 우뚝 솟은 탑이 슬프기만 합니다.
언덕을 내려가면 발전소 앞 작은 공원에는 돌로 된 비석이 있습니다. 비에는 한자로 전공비(戰功碑)라 썼는데요. 화천발전소 직원들이 발전소 탈환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랍니다. 소나무가 울창한 속에 외롭게 서 있답니다.
643고지 전투전적비 앞, 몹시 추운 12월 초순 어느 날 감, 바나나, 배, 감귤이 꽁꽁 언 채 놓여 있었습니다. 수리봉 전투에서 전사한 병사의 후손이 놓고 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그리워하는 마음 달랠 수 없어서였을 겁니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 21,550명이 죽고, 2,617명을 아군이 생포하였답니다. 얼마나 큰 전투였는지 알 수 있지요. 전적비 앞에 앉아 앞을 보니 강을 가로지르는 꺼먹다리만이 역사를 품고 서 있을 뿐이네요.
화천의 지난 사진을 살피다 보니 화천댐도 미군폭격기에 의해 무참하게 폭격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검은 연기 사이로 깨어진 화천댐이 파편으로 흩어지더군요. 이제는 말끔히 단장되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대붕제다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파로호 안보전시관> 세 번의 발걸음 끝에 파로호안보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었답니다. 2007년 겨울에는 관람시간이 지나서 헛걸음을 했고, 2012년 3월에는 화요일 휴관일이라서 헛걸음을 했지요. 월요일에만 휴관하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 큰 맘 먹고 찾아서 관람을 했습니다. 바람이 아주 세차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전시관 마당에 전시돼 있는 야포와 장갑차는 이곳이 전쟁과 관련한 곳임을 벌써 짐작케 하였습니다. 전시관은 2층 건물인데, 1층은 전시실이고 2층은 화천 홍보실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전시관으로 들어서자 백발의 노인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추운 기운을 덜고자 전기난로를 켜놓고 있었고요. 바람이 몹시 분다고 혼잣말을 하였지요.
팸플릿을 먼저 챙기고 전시실로 들어섰습니다. 갖가지 모형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장 먼저 전시된 것은 ‘하나의 땅 두 개의 나라’라 하고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 사진, 그리고 분단의 현실을 기록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많이 낯익은 장면이었지요. 그런데 그 앞에 있는 감자(주먹밥)를 먹는 밀랍인형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아기를 업고 있는 여자와 감자를 먹는 두 남자는 심각한 인상을 하고 있었거든요. 반대편에는 전투를 하는 인민군을 만들어 놓았고 탱크의 모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꽹과리를 치며 걷는 힘없는 중공군은 너무나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맞은편으로 눈길을 돌리자 수류탄을 던지는 국군의 모습과 흥남철수 및 1.4후퇴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중공군 개입 및 유엔군 참전, 화천지구전투, 사창리전투, 643고지전투, 파로호전투, 안보의 중요성을 설명해 놓았습니다. 인민군과 국군의 복장도 전시돼 있었지요.
전시관은 크지 않지만 6.25한국전쟁의 실상을 압축해서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전시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전시실을 나오자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고 있었습니다.
<평화의 댐 주변> 금강산댐(임남댐)이 무너지면 서울 사람들이 모두 물속에 묻힌다고 해서 만들어진 댐이 화천에 있는 평화의 댐이잖아요. 그때 코흘리개까지 모금함에 오백 원짜리 동전을 넣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문에 북한의 무시무시한 수공(水攻)이 멈췄는지 모르겠습니다.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어요.
참 많이 가 보았습니다. 대구에 살던 장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옛날 군 생활하던 곳을 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가기도 했답니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입니다. 계속 새롭게 변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평화의 댐에 도착해 보면 뭔가 일상적인 댐과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물이 차지 않은 댐, 앙상하게 콘크리트로 된 2단 댐,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댐, 텅 빈 DMZ아카데미 건물, 비목공원 등이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눈을 돌리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눈물겹도록 간절하게 배어있음을 알 수 있지요. 세계 평화의 종 공원, 비목공원, 염원의 종 공원이 우뚝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를 반기고 있습니다.
댐 아래에는 염원의 종 공원이 있습니다. 일명 침묵의 종이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재질이 나무로 돼 있어서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남북분단의 현실을 비유했다고 하네요. 우리의 염원인 통일이 되면 침묵을 깨고 세계만방에 울려 퍼질 거라 합니다. 가까운 날에 침묵의 종이 울리기를 기대해 봅니다.
댐 위에는 세계평화의 종공원이 있습니다. 이 종은 세계 각지의 탄피를 모아서 만들었습니다. 탄피는 총을 쏘고 난 다음에 총알은 빠지고 남은 껍질이지요. 어디론가 날아간 총알은 생명을 앗아간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 총알을 감싸고 있던 탄피를 모아서 평화의 종을 만들었어요. 짜릿한 감흥이 몸으로 전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화천군의 뜻에 동참을 해서 기꺼이 많은 탄피를 보내주었답니다. 평화의 종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한쪽 날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완의 종이지요. 그 조각은 남북통일이 된 날 붙여서 종을 완성하겠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종을 쳐보면 슬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아차, 종에만 눈이 가 있었군요. 종 옆에 보니 낯익은 사람들이 우리를 반기며 악수를 청하고 있군요. 그동안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들의 흉상이랍니다. 그들이 남긴 평화의 메시지까지 있네요. 그러고 보니 평화의 종 준공식에 옛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도 왔었군요. 공원 난간에는 예쁜 장난감 종도 매달려 있고요. 그곳에는 각자의 소원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도 각자 평화의 염원을 나타낸 것이겠지요.
평화는 평화의 댐 상류 비무장지대를 향하는 곳에도 있답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아 평화롭게 살고 있는 동식물들이지요. 북한은 임남댐을 만들어서 그 물을 원산으로 돌렸습니다. 그 때문에 남한으로는 물이 흐르지 않아요. 사람들은 물길이 막혔다고 해서 댐 상류지역을 불임의 땅이라고 부른답니다. 언젠가 우리가 북한에서 필요한 전기를 공급해 줄 테니 물을 달라고 한 적도 있답니다. 그러나 끝내 북한은 남한으로 물을 흘러 보내지 않았어요. 양의대 습지는 이렇게 해서 생긴 것이랍니다. 양의대 습지에는 야생 동식물의 보고가 되었지만요.
평화의 댐에는 전망대가 있는 데요. 댐 위의 산에 있는 헬기장을 말합니다. 이 전망대는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한 것이랍니다. 댐이 준공 되고 난 후 당시 대통령이 이곳에 내려 평화의 댐을 보려고 했으나 바람이 몹시 불고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서 실패를 했다나요. (<스토리텔링이 있는 화천여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