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⑤
* 독도에 대하여
독도는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지증왕 13년(512)에 이사부를 통하여 우산국을 정벌했음과 세종실록지리지(1454) 등을 통해서 우리 영토임이 분명하였으나, 조선 초기에 유민을 막기 위해 울릉도민들을 본토에 옮겨 살게 하여 한때 정부의 관리가 소홀하였다. 그러나 우리 어민들은 고기잡이를 하는 거점으로 줄곧 활용해 왔다.
특히, 조선 숙종 때에는 동래에 살던 안용복은 1696년 독도에서 일본인을 내쫓고 일본막부에 항의하여 1697년 에도 막부는 울릉도에 출어를 금지시키겠다는 서신을 조정에 보내고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그 후에도 일본 어민의 침범이 계속되자, 19세기 말에 조선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울릉도 경영에 나서 주민의 이주를 장려하였고, 대한제국 때인 1900년 10월 25일 울릉도를 군으로 승격시켜 독도를 관할케 하였다(대한제국 정부 칙령 41호를 관보를 통해 공포).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77년 당시 일본 정부의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태정관이 <태정관 지령문>을 통해 울릉도와 이 섬을 조선 영토로 인정하였으나, 러ㆍ일 전쟁 중 자국 영토(시마네현)로 불법적으로 강제 편입하였다(1905.1).
이에 1906년 3월 울릉도 군수 심흥택이 독도가 일본 영토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독도가 울도군 관할이라는 보고를 올리자, 의정부 참정대신 박제순은 동년 5월 지령 제3호를 통해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을 부인하고 대한제국 영토임을 명백히 하였다.
다행히 1952년부터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독도 의용수비대장 홍순칠의 활약)하고 있으나, 일본은 자국 영토임을 부르짖으며 끈질기게 분쟁지역으로 몰아가고 있다.
① 몽고의 1차 침입이 끝나자 최씨 정권은 1232년 수도를 강화로 옮기고 항전하였다(~1270).
② 신유사옥(1801) 때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용의 형 정약전(1758~1816)은 그 지역의 어류를 조사한 ‘자산어보’를 저술하였다.
③ 네덜란드 상인 하멜 일행이 표류해 도착한 곳은 제주도이다(1653).
④ 병인양요(1866.9) 때에 양헌수가 거느린 군대는 강화도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