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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춘해 선생님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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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흐린 날씨 속에서 부산을 출발한 우리 일행(홍종
관, 배익천, 박선미)이 동대구에 도착하자 거짓말 같이 파란 봄
하늘이 기분 좋은 오후를 시작하게 해주었다. 천안에서 출발한
소중애 편집위원을 동대구역에서 만나 동북로 73길을 향했다.
흙의 시인 최춘해 선생님이 사시는 댁은 맹자 어머니가 봤다
면 당장 이사를 가고 싶도록 신성초등학교를 위시해서 중, 고등
학교가 집 주변을 둘러싸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처에 선열공원
이 있어 역사와 교육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명당에 자리 잡
고 있었다.
넥타이까지 하신 단정한 입음새로 골목 입구까지 나와 우리
를 기다리고 계신 선생님을 따라 대문을 들어서니 집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100년은 됨직한 귀한 라일락나무와 향나무가 우리
를 반겨주었다.
선생님의 시 ‘봄 들판’을 써 넣은 도자기가 장식되어 있는 거실
에는 사모님께서 미리 정성스럽게 다과상을 차려 놓으셨다.
라일락 향기와 더불어 사는 ‘흙의 시인’
최춘해 선생님
“아동문학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일이지요.
아동문학을 하면 욕심 없는 세상이 됩니다.”
대담: 배익천, 소중애, 홍종관 / 기록: 박선미
: 선생님, 반갑습니다. 좀 더 빨리 뵈러 왔
어야 하는데, 열린아동문학 시상식을 치르느라 바빠 시간을 내
기 어려웠습니다.
최춘해: 큰 행사 치르느라고 수고 많았습니다. 우리 아동문학
의 발전을 위해 애를 많이 쓰는데 못 가 봐서 미안합니다. 그리
고 그동안 내가 한 일이 없는데 이 자리에 서는 게 망설여집니
다.
: 아닙니다. 우리나라 동시문학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신 선생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선생님 얼굴이
참 맑아 보입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
는지요?
최춘해: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5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자는
데도 그 전에 눈이 떠지지요. 5시 반이면 테니스를 치러갑니다.
오고 갈 때는 자전거를 타고 가지요. 테니스는 교장으로 재직할
때 배웠는데 아주 좋은 운동입니다. 강의가 있을 때는 한 게임
을 하고 강의가 없는 날은 두 게임을 하고 오는데 집에 오면 씻
고 한숨 잡니다. 자는 시간은 15분 정도인데 아주 맛있게 단잠
을 자지요. 그리고 아침 일과를 보고 점심을 먹는데 점심을 먹
고 난 후에도 15분 정도 단잠을 잡니다. 비결이라면 그게 비결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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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은 드시지 않나요?
최춘해: 요즘 많이 마시지는 않지만 옛날에는 많이 마셨지요.
저는 신현득 선생과 친분이 두터운데 신현득 선생이 워낙 애주
가라서 선생이 학교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학교 근처 막걸리 집
에서 만나 막걸리를 먹으며 문학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일주일
에도 수차례 만났었는데. 우리가 만나면 가는 집이 정해져 있었
어요. 염매시장 안에 돼지 국물 집, 학원서점 옆의 가보세 등이
지요. 가보세는 맥주나 양주를 파는 집이라서 술값이 비싸서 김
성도, 이재철 선생님 등 귀한 분을 모실 때만 가보세에 갔었어
요. 가보세는 외상술을 잘 주었거든요. (일동 웃음) 신현득 선생
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인데 한번은 향촌동 어느 술집
에서 행패를 부리는 두 청년을 봤는데 우리 둘이 거기에 끼어들
었어요. 신현득이 경우에 어긋난 사실을 따질 때 나도 신현득을
두둔했지요. 그랬더니 그 건장한 청년 둘이 우리들 목을 졸라
죽을 뻔하다 살았어요. 뒤에 알고 보니 그 청년은 향촌동의 유
명한 깡패라서 그만하기를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 동시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어떤 것이었습
니까?
최춘해: 내가 처음 발령받은 곳은 상주 사벌초등학교였어요.
당시 상주에서는 글짓기회가 있었는데, 회원들이 글짓기 지도를
활발히 해서 상주 아이들의 글이 신문이나 잡지에 쉼 없이 발표
선생님처럼 싱그러운 향기 그득한 라일락과 향나무가 있는 정원에서 활짝 웃으며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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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었고 백일장이나 현상모집에서도 많이 입상되었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글짓기 지도를 하다가 나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 상주글짓기회는 누가 먼저 만들었나요?
최춘해: 김종상 선생이 먼저 시작한 걸로 기억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상주읍에서 글짓기 회원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나는 상주읍에서 8km 떨어진 사벌에서 한 번도 모임에 빠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이 모자라 두세 번을 만나야 될 만큼 회원들이 보고 싶었어요. 친형제보다 더 친했지요.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제가 부친상을 당했을 때 회원들 모두 30리 길을 걸어와서 조문을 했을 정도였어요.
신현득, 김종상, 권태문, 이천규, 이무일, 강세준, 이오덕 등 지금은 모두가 유수한 문학인들이지요. 상주글짓기회에서는 아이들 작품을 모아 <동시의 마을>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동시의 마을’이라는 제호는 윤석중 선생이 붙여 주셨습니다. 상주글짓기회가 확대되어 상주아동문학인회가 조직되었지요.
그 무렵에 또 '교단아동문학동인회'라는 것이 만들어졌어요. 교단에 있는 사람으로서 동시나 동화를 쓰는 사람의 모임이었는데. 내가 간사를 맡았지요. 이 회에는 회장도 없고 간사가 모든 일을 맡아서 했었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작품을 회원 수만큼 등사해서 간사한테 보내면 간사는 회원 수만큼 <은방울>이라는 작품집을 만들어 회원에게 우송을 했어요. 전 달의 작품에 대한 평을 함께 실었는데. 21호(1965년 7월 1일 발행)와 28호(1965년 12월 1일 발행)는 인쇄판으로 내었어요. 이원수, 윤석중 선생이 고문이셨지요. 상주글짓기 회원과 교단아동문학동인회 회원을 만난 것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등단을 하게 된 동기와 시기는 어떻게 되는지요?
최춘해: 아동문학가로 데뷔하는 것만이 내 꿈이었습니다. 이
도자기에 쓰인 ‘봄 들판’의 한 시구처럼 새싹이 움트는 소리가 방안에서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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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 윤석중, 한정동, 김영일, 박홍근, 박목월, 김성도 등 아동문학가들이 여간 존경스럽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도 이원수 선생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는데,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담임선생님의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하듯이 이원수 선생의 모든 것을 다 닮고 싶었지요.
당시에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사람이 적었습니다. 1959년, 1960년에 신현득과 김종상 선생이 신춘문예로 등단을 해서 나도 신춘문예로 등단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문에 신춘문예 광고가 나면 마음이 들떠 있었지요. 한두 번 떨어졌을 때는 섭섭하기는 해도 태연한 척 할 수 있었으나 몇 차례 떨어지고 나니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내가 당선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아직도 당선될 만한 작품을 못 썼다. 당선 작품이 나오기까지 더 노력을 해야 한다. 내 스스로 더 다부지게 다짐을 하고 선배들의 시집, 신춘문예 당선 작품집, 평론집 등을 열심히 읽으면서 작품 쓰는 일에 정성을 모았어요. 그러다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게 되었지요. 말할 수 없이 기뻤지요. : 대구아동문학회와 선생님의 관계는 어떠한지요?
최춘해: 1967년에는 대구시가 경상북도에 합쳐져 있을 때였어요. 전 도에서 아동문학에 등단을 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의 숫자밖에 되지 않았지요. 신현득, 김종상, 허동인, 강청삼, 권태문, 김한규 등이었고, 문학 단체로는 1957년에 창립된 대구아동문학회 하나뿐이었습니다. 이응창, 김성도, 김진태, 윤운강, 여영택, 이민영, 신송민, 정휘창, 서월파, 윤혜승, 서광민, 박인술 등이 창립회원이었지요.
대구아동문학회는 창주 이응창 선생이 경북문화상을 받은 상금으로 시작했는데 오랜 역사를 가졌지요. 이응창 선생은 아동문학에 기여한 바가 커서, 선생의 이름으로 ‘창주문학상’이 제정되어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지요. ‘창주문학상‘ 출신 작가들 중 아동문학 문단에서 맹활약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구아동문학회에서는 동인지도 발간했는데, 당시 이 회에 들어가서 동인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었어요. 회원은 원화여중고와 계성고등학교 교사가 대부분이었
단출한 방문이 죄송스러웠으나, 살갑게 반겨주신 선생님 덕분에 오붓한 만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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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송민, 신현득, 김선주, 허동인 등 초등학교 교사들도 함께 활동했습니다.
나는 1997년 6대 회장을 맡았는데 이례적으로 3번이나 연임을 해서 6년의 임기를 보냈지요. 내가 나이치고는 컴퓨터를 일찍 배웠는데 재임 시절 회원들의 모임 활성화를 위해 대구아동문학회 홈페이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 선생님을 떠올리면 연작시 ‘흙’이 생각납니다. ‘흙’을 소재로 연작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최춘해: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고, 농촌에서 자랐기에 흙은 자연을 대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봄에 밖에 나가보면 흙이 있는 데는 어디든지 목숨의 싹이 돋아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어
스승의 날에 찾아온 제자들과 함께.
머니가 아들딸을 사랑하듯이 흙은 모든 생물을 감싸 안아 줍니다. 그 많은 생물들이 자라고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먹을 것을 다 대 주지요. 또 흙은 정직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는 팥이 나지 절대로 콩이 나지 않습니다. 부지런한 농부한테는 풍성한 곡식을 거둬들이게 하고 게으른 사람한테는 절대로 곡식이 잘 되게 하지 않지요. 이 세상 모든 생물들이 흙의 한 부분이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흙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아가지요.
나는 자연이 곧 동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고 유치한 것이 동심이 아니고 물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것처럼 자연의 이치, 동식물을 인격체로 보고, 흙을 인격체로 보는 것이 동심이지요. 자연은 우리들에게 말없이 수많은 이치를 끝없이 가르쳐 주지요. 자연에서 아름다움을 배우고 슬기를 얻고 바르게 사는 방법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을 배웁니다. 그래서 흙이라고 한 것은 흙 한 가지만이 아니라, 자연 모두를 통틀어 말한 것인데, 그 가운데 대표되는 것이 흙이란 뜻입니다. : 지금까지 몇 편 정도 쓰셨는지요?
최춘해: ‘흙’을 소재로 84편을 썼는데 주제별로 분류해서 2009년 팔공산 온천에서 가졌던 한국동시문학회 세미나에서 발표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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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2)
흙은 너무 지쳐서/겨우내 잠을 잔다./북풍이 몰아쳐도/곤하게 잠을 잔다.//살갗은 얼어도/품속 개구리 씨앗들을/제 체온으로 다독인다./잠 속에서도 다독이는 건/흙의 버릇이다./풀뿌리 하나라도/감기 들까 걱정이다.//입춘 무렵 흙은/잠이 깨어도/자는 척 누워 있다./품속 어린것들/선잠 깰까 봐. :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동기로 개설하게 되었는지요?
최춘해: 교직에 40여 년을 근무하고 퇴직을 하면서 내가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고 봉사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문학이라는 생각을 했지요.
처음에 이 강좌를 개설하기 위해서 여러 곳에 자리를 찾아 봤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내가 돈이 많다면 비싼 세를 주고 장소를 구할 수 있겠지만 무료로 강의를 하는데 돈을 많이 주고 장소를 구할 형편이 못 되어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강의 장소를 물색했는데,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고 그루출판사 이은재 사장이 그루사 사무실에 와서 강의를 하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은재 사장은 충청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혼자 집에서 뛰어나와 끼니를 굶기도 하고 남의 집 헛간에서 자기도 하면서 숫한 고생 끝에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돈이 많아야 남을 돕는 것은 아니란 걸 이은재 사장을 보면 느끼지요. 이 사장님은 남들이 겪지 못하는 쓰라린 고생을 해 봤고, 못 배운 것에 한이 맺혀 배우려고 하는 사람을 위해 도와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장소는 마련되었지만 수강할 사람이 얼마나 모일 것인가 걱정이 되었지요. 문화방송, 경북대학교 등에서 아동문학 강좌를 개설했다가 수강생이 10명도 안 차서 폐강을 했고, 기타 개인으로 아동문학 강좌를 개설했다가 그만 둔 예를 보아 왔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조선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구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등에 보도 자료를 메일로 보내고 전화를 해서 보도를 부탁했지요. 다행하게도 조선일보, 매일신문, 영남일보, 대구일보 등은 보도를 자세히 해 주어 수강 신청이 많이 들어왔었어요. 오전, 오후반 합쳐서 평
교단아동문학동인회 회보 ‘은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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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 약 25명쯤 수료를 했으니 8년 동안 대략 200명이 넘는 제자가 나온 셈이네요. : 강의 교재는 직접 만드십니까?
최춘해: 신현득 선생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신현득 선생은 대학에서 아동문학 강의를 오래 해 왔어요. 아동문학 강좌를 개설하고 강의를 하려고 하는데, 교재를 안내해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교재인 세계아동문학·아동도서사(신현득 엮음), 동화 작품집(신현득 엮음) 두 권을 선뜻 보내 주면서 동시 감상 교재는 직접 만들어 보라고 했었어요. 이 교재를 가지고 월별로 진도표를 작성했습니다. 이 교재에 더 보태진 내용은 한글 맞춤법, 문장부호, 교정부호, 수사법, 시점, 사전 찾기 공부, 동시 동화 창작 (작품 합평) 등입니다.
또 한 가지 아동문학 교실 강의를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카페 운영입니다. 카페를 통해서 교재와 과제 그리고 월별 계획을 전달합니다. 교재는 책이 있지만 책에는 구체적인 내용은 없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카페에 올려놓으면 수강생이 각자 집에서 출력을 해 오고. 또 과제도 올려놓으면 집에서 해 오지요. 만약 이 카페가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컴퓨터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지요. : 등단한 제자들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제자들이 있는지요?
최춘해: 등단을 한 사람만 60명 정도 되고, 등단을 한 이후에도 해양문학상, 푸른문학상, 대산장학 재단 지원금 수혜, 문예진흥위원회에서 주는 문예진흥기금 수혜자로 뽑히는 등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분이 있지요.
나는 등단하고 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등단은 늦을 수도 있고 이를 수도 있다. 수료를 한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언젠가는 등단할 수 있다. 등단보다도 값지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머리를 맞대고 1년간 함께 생각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 바른 인생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정으로 살아간다.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 계속하면 열매를 맺는다.’를 덕목으로 내세우지요.: 훌륭한 제자들이 많은데 선생님 이름으로 문학상을 제정하겠다는 제자는 없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하신지요?
최춘해: 아닙니다. 나는 그럴 재주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문학상은 기존 작가에게 주는 것보다 신인상을 주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아동문학이 발전하니까요.
아동문학교실은 98년에 퇴임하고 2003년 7월에 개설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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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이 지났네요. 나는 내 생애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 것은 상을 받은 것보다도, 교과서에 내 작품이 실리고 세계의 유수한 책에 내 작품이 번역되어 실린 것보다도 퇴임을 한 뒤에 아동문학 강좌를 무료로 개설하여 강의를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9기가 공부하고 있는데 10기까지 하고 그만 둘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혜암아동문학회는 아동문학교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요?
최춘해: 1년간 42주 과정을 마치면 수료를 하는데 ‘정다운 얼굴과 헤어지는 것이 아쉽다. 모임을 갖자’고 해서 만들어졌지요. 회원 중 서예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서예를 한 사람들은 선생님 호를 따서 모임 이름을 짓는다고 내 호를 따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 긴 시간 동안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 동시인, 동화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최춘해: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동심이란 작은 생명도 귀하게 여기고, 나와 같은 친구로 생각해서 함께 놀고 싶어 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을 보고는 그냥 못 지나치는 마음이지요. 동심은 지금 당장 자기한테 필요한 만큼만 가지려고 하지, 쌓아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나친 욕심이 없지요. 새는 이틀 사흘 먹을 것을 저축하려고 욕심내지 않지요. 또 동심은 정직하지요. 이것이 사람이나 생명체의 원초적인 마음입니다.
그러면 동심은 어린이들만 가지고 있을까요? 어른이 되어도 사심 없이 순수하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은 동심을 잃지 않습니다. 아니 모든 사람에게 동심은 남아 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에 동심이 더 적게 남기도 하고 더 많이 남아 있기도 하겠지만,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동문학은 동심으로 돌아가는 일이지요. 아동문학을 하면
정말 환하게 잘 웃으시는 선생님과 서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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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없는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아동문학을 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후배 작가들도 동심을 잃지 않고 작품 창작에 매진하길 바랍니다.
선생님은 올해 여든, 산수의 나이가 되신 기념으로 산문집을 발간하신다고 하셨다. 고희 때 발간한‘동시와 동화를 보는 눈’에 이어 ‘동시와 동화를 보는 눈 2’라는 제목을 붙이셨다고 한다. 책이 출간되었는데 표지가 잘못되어 다시 인쇄하느라 우리 일행들에게 주지 못해 아쉬워 하셨다. 책은 받지 못해도 책을 통해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선생님의 마음은 넘치도록 받았다.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대구의 대표 먹거리 막창집을 찾았다. 그것도 대한민국 대표 막창집 ‘대한막창’.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많은 집이었다. 선생님은 많이 드시지도 않으시면서 먼 길 찾아온 자식에게 뭐라도 먹이고 싶은 어머니처럼 우리를 위해 일부러 앞장을 서신 것이었다.
맵싸하고 얼큰한 국물의 막창전골은 소주 안주에 그저 그만이었다. 소중애표 멋진 소주잔(소주병에 붙은 광고 모델 사진을 살짝 떼 내어 소주잔 밑바닥에 붙이면 잔을 기울일 때마다 예쁜 아가씨가 방긋 웃는 모습을 즐길 수 있다.)을 기울이며 웃으시는 선생님 얼굴이 참 해맑다. 올해 여든인데도 소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심을 가슴에 품고 ‘흙의 시인’으로 평생을 올곧게 살아오신 모습이 얼굴에 배어난 것이리라.
崔春海 연보
*학력
1932년 12월 6일 경북 상주에서 태어남.
1950년 상주중학교 4년 수료.
1951년 7월 상주중학 부설 초등교원 양성소 1년 수료.
1972년 1월 대구교대 교육원 2년 수료.
교직 생활1951년 10월 31일 사벌동부초등학교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뒤 사벌초등, 대구신천초등, 대구 종로초등, 상주 회상초등, 상주 상주초등에서 근무함.1980년 09월 01일 상주 은척초등 교감으로 발령을 받은 뒤 황룡, 함창 중앙초등에서 근무. 1986년 03월 01일 청송 광덕초등 교장으로 발령을 받은 뒤 의성 구계초등, 선산 구봉초등, 선산 고아초등, 구미 금포초등, 구미 인동초등 교장으로 근무. 1998년 02월 말일 정년 퇴임.
*저서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시계가 셈을 세면”(1967년), “생각이 열리는 나무”(1977년), “젖줄을 물린 흙”(1979년), “흙처럼 나무처럼”(1983년), “나무가 되고 싶은 아이들”(1984년), “운동 선수가 된 동원이”(1988년), “나도 언제 어른이 되나”(1991년), “뿌리 내리는 나무”(1992년), “나도 한 그루의 나무”(1995년), “아기곰을 기르는 들개”(98년), “흙의 향기”(2000년), “연오랑과 세오녀”(2002년), “울타리로 서 있는 옥수수나무”(2004년), “소나무야, 소나무야!”(2008년) 등이 있음.
산문집으로 “동시와 동화를 보는 눈”(2001년), “동시와 동화를 보는 눈 2” 등이 있음.
*문단 활동
1965년 상주아동문학회 회장, 1993년 경북아동문학회 회장, 1995년 구미문협회장
1997년 대구아동문학회 회장.
현재 경북아동문학회, 대구아동문학회, 여백문학회, 이후문학회, 대구펜문학회, 대구문인협회. 한국동시문학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한국펜클럽 회원.
2003년 최춘해 아동문학 교실을 개설하여 1년 과정으로 무료로 아동문학인을 양성하고 있음. 2011년 7월에 8기생 수료 예정(한 기 수료생이 평균 25명 정도).
*수상 경력
196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와 '한글문학'지 추천으로 문단에 나와서 한국아동문학상(1980년), 세종아동문학상(1984년), 방정환문학상(1993년), 경북문화상(문학부문)(1993년) 등을 받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