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9장은 부림절일 제정되는 장입니다. 하만의 모략에 의해 12월 13일 모든 유다인이 죽게 되었지만 에스더의 기도와 왕의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아간 결과 오히려 12월 13일, 14일 이틀 동안 유다인을 죽이려고 하였던 사람들 약 7만 5천여명이 죽임을 당한 날을 기념하여 부림절을 지켰습니다. 부림절은 ‘주사위, 제비’를 의미하는 아람어 푸르에서 온 말입니다(24), 또한 히브리어 부림은 ‘파르’의 복수형으로 ‘파르’는 소, 혹은 <희생제물>이라는 뜻으로 아각 사람들이 희생제물이 되었다고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려고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막을 자가 없고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12월 13일 하루만 유다인의 원수들을 죽이려 하였지만 유다인을 죽이려 하였던 사람들이 7만명이 넘어 에스더가 다시 아하수에로 왕에게 요청하기를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있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아니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매달리니라”(13,15)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 규례를 세워 해마다 12월 14일과 15일 두 날에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였습니다(21,22).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부림절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된 날입니다.
22절에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로 하여금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게 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61:3)고 하였습니다.
둘째, 왕 앞에 나아갔던 에스더입니다.
25절에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에스더가 왕 앞에 함부로 나아가는 것은 죽는 것과 다름 없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자신의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마치려 함에는 자신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음으로 많은 열매를 얻을수 있었습니다(행20:24).
셋째, 에스더의 기도입니다.
31절에 “정한 기간에 이 부림절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가 명령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 말한 대로 왕궁에 있었기 때문에 유다인이 모두 죽을 때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유다민족의 죽음이 곧 자신의 죽음으로 여기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자신과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