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9장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을 고쳐 주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을 말하게 하시는 내용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에 대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고 하였습니다. 이는 요한복음 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기록 목적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신 것은 단지 육신적인 질병에서 치유함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죄사함을 주시고 영혼의 구원받도록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마태복음 9장에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누여 예수님께로 데려져 왔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는 일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중풍병자에게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서기관들이 속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죄사함은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시기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말이 쉽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당연히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말이 쉽습니다. 왜냐하면 죄사함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 가라 하는 말은 반드시 그가 걸어야 하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자 그가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7). 그로인해 예수님께서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본 사람들은 비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8).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열 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던 여인을 고치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말 못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심으로 죄사함을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죄사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심으로 죄사함의 권세가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 대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사람을 받았느니라”(엡1:7)고 하였고,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에 대해 “이는 하나님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13).
둘째, 예수님께 나아왔던 사람들입니다.
중풍병자는 들것에 실려 사람들에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고, 열 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고 던 여인은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예수님께 나아왔고, 사람이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맹인과 말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고 예수님께 나아와 고침을 받았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도 예수님께 나아오면 반드시 고침을 받습니다.
셋째,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수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부족하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