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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강해 욥기 4장 1절-21절
친구의 권면 욥 4:1-6
서론
충고나 권면은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특히 친구의 올바른 권면과 충고 및 책망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잠언기자는 말하기를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 6:23) 하였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생명을 위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이 없느니라(요 15:13).” ................................................데만사람 엘리바스는 친구 욥을 위하여 권면을 하였습니다.
1. 권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2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몸이 아픈 병증)이 나겠느냐 날지라도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하였습니다. 이는 욥이 친구의 권면을 들을 때에 몸에 염증이 생겨서 고통을 느끼는 것 같은 아픔이 있어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이것을 감안하고 욥의 이해를 구하면서 권면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권면은 죄의 유혹으로 강팍하게 되는 것을 면하는 비결입니다(히 3:13).그래서 시편기자는 "나를 책망하는 자가 원수가 아니라"(시 55:12) 하였고 책망으로 인하여 기도하겠다고 하였습니다(시 141:5). 그래서 엘리바스는 권면하는 것은 사랑해서이고 그 권면으로 유익을 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권면한다는 것입니다.
2. 권면 이전에 칭찬을 하였습니다.
본문 3-4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하였습니다. 이는 욥의 선행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였을까요. 의도적으로 책망하는 것이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잘 받아지게 하는 것입니다. 책망부터 하면 마음문을 닫아 놓고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칭찬을 하면 마음의 문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받아들이기가 쉬운 심리적인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도 성도들을 칭찬하였습니다(고전 11:2). 예수님께서도 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를 위하여 칭찬을 하고 그 후에 책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칭찬 받을 수 없는 교회는 칭찬하지·아니하셨습니다. 또한 책망할 것이 없는 곳에는 책망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점은 참 잘하셨습니다. 다만 이런 점은 이렇게 하였으면 좋을뻔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3.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5-6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하였습니다. 엘리바스가 현재 힘을 잃고 있는 욥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너는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위로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런데 너는 왜 이기지 못하고 풀이 죽어있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말은 틀리지 아니한데 엘리바스는 욥의 고통을 조금도 이해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일이 아닐 때는 말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자기가 당하고 보면 처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 의미는 욥이 당하는 것은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출 23:25-26)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원리를 적용시켜서 하는 말입니다.
여하간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는 책망이 욥에게는 큰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
엘리바스는 외적인 상태만을 가지고 욥을 판단하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물론 욥이 전혀 잘못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은 죄보다는 마귀의 시기 때문이라는 것도 참작을 했으면 더욱 좋은 권면이 되었겠다는 아쉬움이 남는 것입니다. 권면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방법에 있어서 내용을 깊이 파악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론과 실체 욥 4:7-11
서론
엘리바스의 이론은 죄 없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죄가 있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잘못 전개된 논리가 아니고 올바른 논리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병들고 재산의 손해를 입고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은 꼭 죄 때문이라는 논리는 잘못된 것입니다.
욥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욥의 신앙을 칭찬하시고 난 후에 당하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론과 실체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1. 죄 없으면 망하지 않는다.
본문 7 "생각(기억)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있는가." 이는 죄가 없으면 망하지 않는다는 말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죄가 없으면 망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적인 면에서 볼 때에 죄없는 자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죄 없는 자는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롬 3:10) 만약에 죄가 없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 속에 예수가 없는 사람이라 하였습니다(요1서 1:8). 정도가 문제인데 욥이 지금 당하는 것은 큰 죄를 범하여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을 하지만 실제적으로 보면 그렇지 아니한 것이라 그말입니다. 물죄를 범하면 그 죄가 누적되어 있다가 점차적으로 벌을 받는 수도 있고 당장에 받는 수도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러나 이론과 실제가 안 맞는 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죄의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서 문제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볼 때는 의인인데 하나님께서 볼 때는 죄인이라 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과 실제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2. 죄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8-9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하였습니다. 죄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말은 맞는데 실제는 십자가의 강도가 죄가 없어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니고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구원얻는 사람들이 죄가 없어서가 아니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망한다는 것이 이론이고 실제적인 면에서는 예수로 통하여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엘리바스가 하는 말은 욥이 받고 있는 어려운 일들이 죄 때문이라는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면에서는 사단의 장난이요 갑절로 복을 더 받을 수 있는 과정입니다. 일종의 시험입니다. 인내로서 잘 참기만 하면 갑절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3. 죄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0-11 "사자의 우는 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산속의 사자 같이 되어서 그를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렘 12:8). 이는 사자처럼 강팍하게 죄를 짓고 고집이 센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즉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었다고 하였습니다(요 5:24).
그러므로 어떠한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만 보고 내부적인 면까지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이론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적인 면에서는 이론보다 다른 결과로 나타나는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지만 그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그에게 담당시켰기 때문에 실제 우리는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결론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이론과 실제가 맞지 아니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외부적인 것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삼가 조심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말씀을 들은 엘리바스 욥 4:12-16
서론
엘리바스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들려주신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받을 때와 받은 말씀의 내용과 듣고 난 후의 상태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1. 고요할 때에 들었습니다.
본문 13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 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하였습니다. 깊이 잠들 때는 세상에 복잡하고 혼란한 것들이 진정된 때, 다시 말하면 고요한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세상일로 인하여 염려와 흥분과 격동의 포로가 되는 동안에는 들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마음을 정리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사모할 때만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안정된 심령에 찾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지도자는 어려운 난제를 만나게 되면 "나로 하여금 하루밤을 잠자게 해 주시요"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내가 깨어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렘 31:26) 하였습니다. 여하간 하나님의 음성은 내 심령이 고요할 때에 바로 들을 수 있습니다.
2. 영음을 들었습니다.
본문 12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소리는 영음이기 때문에 심령이 복잡하고 하나님의 음성은 곧 세미한 소리를 말하는데 그 소리는 육체의 요란한 소리와 세상적인 소리가 끊어진 자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영음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강한 바람 가운데서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시고 지진 가운데서도 계시지 아니하시고 불가운데서도 계시지 아니하시고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시더라고 하였습니다(왕상 19:11-13).
혼란하면 들려지지 아니하는 영음인 것입니다.==== 영음은 육의 귀로 듣는 것이 아니요 영의 귀로 듣는 것입니다.
3. 듣고는 떨었습니다.
본문 14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듣지만 일단 듣고 나면 받은 자의 상태는 잠자는 자가 깨어난 것 같고 어두운데 있던 사람이 빛을 본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수일을 앓았다고 하였습니다(단 8:26-27).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고요한 상태가 아니고 움직이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하였습니다(행 2:37). 이렇게 마음의 번민과 요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을 때에는 에스겔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소리가 나고 움직이고 살이 오르고 힘줄이 생겨 군대를 이룬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받으면 번민도 생기고 자신의 죄가 드러나 괴로워하는 일도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마음이 안정되어야 들을 수 있고 영음은 영의 귀가 열려야만 들을 수 있으며
* 듣고 나면 마음의 요동이 생겨서 번민과 변화의 역사가 나타나 죽어 마른 뼈들이 일어나는 역사까지도 나타 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욥 4:15-21
서론
엘리바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그 내용을 알아보니 인생의 실체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깨끗하지 못한 더러운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1. 인생은 의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7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롬겠느냐 사람이 어찌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못하고 깨끗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깨끗하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으니까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창 15:6). 바올사도는 말하기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 1:17) 하였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의롬다 함을 받을 수 있고 주의 십자가의 피로써만 깨끗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2. 인생을 바로 아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9-20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인생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고 생기를 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는데 그 이유는 육과 영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범죄 이전에는 육신도 영원히 살 수 있게 지음을 받았으나 범죄 이후에는 그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도록 하셨습니다(창 3:19).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다가 구원 받지 못하고 죽어 간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생이 무엇인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잠언기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며 지혜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잠 1:7, 9:10).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게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믿지 않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21 "장막줄을 그들에게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하였습니다. 인생은 장막과 같은데 언제인가 그 장막은 무너질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지혜도 없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이 죽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죽는다는 말입니다. 잠언기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아니하고 믿지도 아니하다가 죽으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짐승처럼 본능대로 살다가 본능대로 죽어 갑니다.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알지 못하는 결과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로서 왔습니다(요 1:6).
그리고 사는 날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고(사 43:7) 찬송을 부르다가 죽어야 합니다(사 43:21).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아니하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은 죄를 범하여 자연인 그대로는 의로울 수 없으며·깨끗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것은 인생이 자신들에 대하여 바로 아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고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살다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리석은 인생들을 보시고 안타까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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