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딛1:15)
'깨끗한 자'란 누구인가?
본문에 '깨끗한 자'의 반대개념으로 '더럽고 믿지 않는 자'라고 언급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삼단논법에 의해 '깨끗한 자'는 '믿는 자'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깨끗한 자는 곧 믿는 자다>라는 정의에 정말 고개가 마구마구 끄덕여집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속에 계신 것을 확실하게 믿는 자는 결코 마음과 양심을 아무렇게나 방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양심이 죄로 인해 오염되고 더럽혀지는 이유는, 거룩함에 깨어있는 의지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죄가 들어오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깨어있음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내주하시고 내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가장 기본적인 구원의 진리를 믿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믿어도 가슴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이 마음 속에 안 계신 것처럼 아무렇게나 마음을 죄가운데 방치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자(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5:8)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시24:3-4)
깨끗한 자(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만이 하나님을 밝히 보고 거룩하신 여호와의 산에 올라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성령의 음성이 선명하게 들립니다. 움직이는 일상의 모든 삶의 현장들이 주님과의 교제장소가 됩니다. 바빠서 주님 만날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바쁘면 바쁜대로 주님과 함께 바쁘면서 24시간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몸이 아파서 주님의 일을 못한다고 핑계댈 수도 없습니다. 몸져 누워서도 옆에서 간호해주시는 주님과 끊임없는 마음의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아 주님의 보좌앞에 나아갈 힘이 없다는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상처를 통하여 주님의 더 깊은 위로와 사랑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주어진 모든 환경들, 관계들, 평범한 일상들이 놀라운 '기적'이 되어 다가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감탄사를 연발하며 마치 정신나간 사람처럼 자주 웃으면서 삽니다. 그의 눈에는 자신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 믿음으로 승화시키는 영적인 필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재앙과 같은 상황을 만나도 깨끗한 자들은 그것을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영적인 눈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최악의 재앙을 최선의 축복으로 바꾸면서 삽니다. 얼마나 멋지고 주님 보시기에 사랑스러운 삶인지... (내가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맨날 이뻐서 뽀뽀해 주고 싶습니다.)
깨끗한 자들이 퍼뜨리는 매우 강력한 전염성을 가진 몇가지 바이러스들이 있습니다. 감사 바이러스, 행복 바이러스, 기쁨 바이러스 등... 그들과 만나 교제하면 몇 분 안되어 마음이 밝아지고 문제의 해결책을 금방 찾게 되며 삶의 희망이 보입니다. 내 삶의 문제가 작아보이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시온의 대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길이 참으로 즐거워 보여서 함께 걸어가고 싶은 강한 충동이 생겨납니다. 아무리 마음이 굳어있는 사람도 깨끗한 자들을 만나면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녹아져 산산이 부서져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깨끗한 자, 곧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일들입니다.
<적용>
주님을 믿는 믿음이 머리에만 머물러 있는 영역들이 무엇인지 돌아보며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인정하는 믿음을 연습해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오늘 너무너무 사모가 되는 <깨끗한 자>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정말 이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와 만나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으로 인해 감사하고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고 싶습니다. 제 안에 더럽고 주님을 믿지 못하는 영역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마음이 변덕스러워서 믿다가도 쉽게 무디어지며 강퍅해 질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저에겐 주님이 필요합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살아가는 믿음이 실시간으로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주님, 오늘도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만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바라보고 주님처럼 행동하는 <작은 예수>로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