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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열왕기하 2장 19-25절
제 목 엘리사를 조롱하다 죽은 사람들
세상에는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부끄러운 삶을 사는 자도 있고, 삶이 어려운데도 적은 소유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아야 올바른 삶을 산 것입니다.
믿음안에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열심히 살았다면 세상의 소유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능력 이상의 것을 취하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이 늘 불행한 것이고, 자기 자신에게 조차 당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기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면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최선을 다했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불행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내면을 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불행 속으로 끌어 내리고 있습니다.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은 지혜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을 학대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으면서까지 자신을 불행한 자리로 끌어내리는 것은 미련한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게 맞는 달란트를 허락하셨고,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명철을 허락하셨습니다.
자기의 달란트를 잘 알고, 잘 사용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달란트와 열매만 보면서 불평한다면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귀한 달란트를 사용하지도 못하고 뿌리까지 썩고 말 것입니다.
내 믿음안에서 지혜와 명철을 통해 세상을 바라봐야만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를 발견할 수 있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은 인내하지 못하고 모든 일에 불평을 합니다.
인생중에 만나는 환경이나 사람들을 자신을 괴롭히는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더 넓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스스로 빛으로 나가는 통로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불행한 사람의 고통은 타인이나 세상이 아니라 바로 자신입니다.
그의 불행은 바로 자신이 만든 것이며,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행복을 키워나가야 하고,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자신을 세워준다면 누구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잘 맺고 있는 자신 때문에 행복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그는 늘 밝게 웃을 수 있으며, 힘겨운 세상에서도 감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이런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며, 하늘의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결국 불행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것도 모두 자기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이 사실인지 한번 믿음으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경험해 본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불평하고 싶을 때 참아보고, 혈기가 날 때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고, 세상을 핑계로 삼아 스스로 실족하고 싶을 때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생각해 본다면 멋진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들겠다는 결단만 한다면 그 다음은 모두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실 것이며, 굳이 여러분이 세상을 직접 상대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과 여러분을 돕는 자와 동행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억울해도, 힘겨워도, 혈기가 나도, 직접 상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차라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과 동일하도록 노력한다면 하나님께서 더 큰 힘과 능력으로 상대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이 하나님께 받은 지혜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이 원수를 직접 상대하는 것이며, 지혜가 없을 때 화가 난 개의 귀를 잡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겨보려고 세상을 욕심껏 건드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검은 물이 묻기 때문에 눈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직 한 길로 간다면 여러분의 삶은 분명히 변화할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소망하는 영적인 욕심은 버리지 않았지만, 세상을 향한 분노와 헛된 마음은 모두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바로 승리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엘리사는 믿음으로 자기의 길을 간 사람입니다.
열왕기하 2장 1절 여호와께서 회리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에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로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살아있는 상태로 하늘로 올리시기 위해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엘리야를 길갈에서 벧엘로, 벧엘에서 여리고로, 여리고에서 요단으로 옮기시며 불수레와 불말과 회리바람으로 올리시기 위해서 인도하셨습니다.
선지자의 생도들은 먼 발치에서 엘리야를 바라보며 승천하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만류하는 엘리야의 말을 듣지 않고 끝까지 따라 갔기 때문에 엘리야의 승천을 직접 눈으로 보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는 성도는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욕심을 마음에서 밀어내고, 하나님을 향한 소원으로 가득 채운다면 틀림없이 놀라운 기적을 삶속에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였기 때문에 은혜안에서 승천하였고, 엘리사는 스승을 본받아 선지자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엘리야의 능력을 엘리사에게 칠배나 부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이제 엘리사의 인생중에 드러날 것입니다.
만약 엘리사가 생도들처럼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다면 그 역시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둠을 밝히는 조명처럼 그 아래 있는 사람이 더 빛이 나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던 엘리야가 승천하는 것을 눈으로 확실하게 보면서,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가진 엘리사는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 믿음이 엘리야의 승천을 의심하던 생도들을 담대하게 꾸짖게 하였고, 고통을 당하는 여리고에 기적을 베풀 수 있었습니다.
21절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찌니라 하셨느니라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물고 있을 때 엘리사의 능력을 알고 온 여리고 사람들이 여리고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물이 좋지 못해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하소연 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능력으로 물을 치료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 말을 우리의 신앙에 대입해 보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물이 좋지 않아 열매가 없다고 한 외식적인 신앙은 세상적으로 잘 살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성령의 역사 혹은 말씀이 없기 때문에 죽은 열매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고, 재물이 많아도 하나님께 드릴 열매가 없다면 믿음으로 살아내지 못한 그의 삶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감사하지 못하는 신앙은 진리로 거듭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엘리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소금을 물 근원에 곧바로 던지고 나서 하나님께서 이 물을 고치셨기 때문에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않고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위로 해 주었습니다.
물이 좋지 못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던 여리고는 엘리사의 능력으로 인해 좋은 물을 받게 되었고, 엘리사는 여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과 영광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는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고, 엘리사를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여리고 사람들처럼 복을 받은 성도입니다.
죄인들의 심령 한 가운데 예수님께서 진리의 소금을 던지시므로 우리가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영혼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야만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열매를 남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사단의 방해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인내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므로 세상의 매듭이 자연스럽게 풀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감당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죽음에 빠진 심령을 치료하는 길은 진리의 소금뿐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소금을 변질 된 물의 근원에 던질 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믿고 나아갈 때 예수님처럼 죽은 영혼을 살리는 귀한 역사가 일어날 것이며, 실제로 사단의 영역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24절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었더라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젊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따라다니며 대머리라고 조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구절로 보아서 엘리사는 자연스럽게 탈모가 된 대머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젊은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조롱하면서 쫓아다니자 가던 길을 돌이켜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 하였습니다.
하늘로 승천하는 엘리야를 보았고, 여리고성에서 나쁜 물의 근원을 치료한 엘리사는 지금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입니다.
그런 엘리사가 가던 길을 돌이켰다는 것은 아이들의 조롱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대머리여 올라가라는 말은 엘리야의 승천을 비꼬는 말이라고 주석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자기의 스승과 그를 부르신 하나님을 조롱하는 세상사람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머리카락이 있는 것이 정상이지만 대머리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머리카락이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 부족해 보이는 것처럼 세상이 성도를 바라볼 때는 늘 대머리처럼 무엇인가 부족하게 봅니다.
욕심껏 세상과 경쟁하지도 않고, 보이지 않는 신을 믿는다고 자기의 목숨까지 드리는 성도들이 어리석어 보일 것입니다.
지금 엘리사가 얼마나 충만한 상태인지, 그 충만함이 창조주로부터 온다는 것을 세상은 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세상적인 부족함만 보고 조롱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엘리사는 아마 자기만 조롱했다면 참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엘리야를 조롱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과 엘리야를 함께 조롱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기 때문에 가던 길을 돌이킨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것은 곧 그 성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도 이웃이 하나님을 섬기며 안연히 살아가고 있거든 절대로 그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성도를 아무리 비판해도 그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도리어 성도를 정죄한 죄를 물어 하나님께 책망을 받기 때문입니다.
엘리사가 가던 길을 돌이켜 젊은 아이들을 저주하자 수풀에 있던 암콤 둘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서 조롱하던 아이들 중에 사십 이명을 찢어 죽이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을 정죄하고 조롱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심판의 손을 드시도록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여러분은 암콤이 나와서 사람을 죽인 것을 보고 끔찍하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성도를 어떻게 보호하시는지 그 방법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조롱하던 사람들중에 사십이명이 죽었다면 엘리사를 따라 다녔던 젊은 아이들이 훨씬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하던 42명이 죽었다는 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하던 사람들은 암콤이 나와서 42명을 죽일 때 분명히 두려움을 크게 느꼈을 것입니다.
엘리사의 저주로 죽은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은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돌이키지 못하면 그들에게는 영원히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엘리사는 그들에게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견디다 못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조롱하는 자들을 저주했을 뿐입니다.
세상이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절대로 믿음으로 살고 있는 성도들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은 성도에게 괴로움을 주는 것 같지만 도리어 하나님께 자기가 저주를 받는 어리석은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아이들이 엘리사를 조롱했을 때 그는 많은 생각을 것입니다.
많은 아이들이 조롱했지만 엘리사는 승천하는 엘리야를 보았고, 요단강을 가르는 기적을 행했기 때문에 굳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혈기를 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엘리사를 조롱하던 젊은 아이들과 같습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물 근원에 소금을 던졌던 자기가 이번에 그들을 향해 저주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저주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가 믿음안에서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믿음의 자녀가 능력으로 하는 말을 즉각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영혼구원을 위해서 끝까지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엘리사를 조롱하던 젊은 아이들도 세상이고, 조롱하던 아이들을 공격하던 암콤 두마리도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를 보호하시는 방법으로 짐승을 사용하신 것을 보면 성도를 공격하는 세상은 결국 세상의 정욕과 욕심때문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암콤의 공격에서 살아난 아이들은 죽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더 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사에게 용서를 구하는 지혜로운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성도를 공격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그들은 눈으로 직접 보았을 것이므로 한번 더 받은 기회를 소중하게 붙잡고 하나님을 영접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억울하고 혈기가 나도 원수를 직접 대적하지 않기 바랍니다.
원수를 직접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지 않는다는 뜻이므로 도리어 하나님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죄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 세상사람들만 짓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사랑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만약 엘리사가 혈기를 참지 못하고 그들에게 욕설을 퍼 부었다든지, 하나님께서 왜 나를 지켜주지 않느냐고 불평했다면 암콤이 나오는 기적도 볼 수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42명의 생명도 아끼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아이들이 조롱할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직 어려서 그렇겠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두려운 분인지 몰라서 그렇겠지, 저 젊은 아이들도 언젠가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나처럼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날이 오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참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엘리사의 연약함을 조롱하는 척 하면서 하나님과 엘리야를 조롱했을 때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하고 말았습니다.
끝까지 참았던 엘리사의 마음에서 그들을 놓아버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마음에서 놓아버린다는 것처럼 무서운 저주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룟유다를 놓아 버렸고, 여호수아도 아간을 놓아버렸습니다.
부모도 성년이 되어도 변하지 않는 자식을 놓아버리기도 하고, 스승이 아무리 가르쳐도 성장하지 않는 제자를 놓아버리기도 하며, 목회자가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고 하나님께 마음을 닫는 사람을 놓아버리기도 합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올바로 살 수 있도록 도와보지만 젊은 아이들처럼 악한자리를 떠나지 않을 때 결국 마음에서 놓아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자들을 도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꼭 교회에 나와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고 변명해도, 지금 나는 충분히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변명해도 믿음의 행함이 없다면 그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젊은 아이들이 조롱하는 것을 끝까지 참아주고 싶었던 것은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의 길을 방해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엘리사쪽에서 끊어버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한 것입니다.
가던 길을 돌이켜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한다는 것은 더 이상 악한 자들을 위해서 인내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젊은 아이들이 죽는 것을 보며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들이 끝까지 엘리사를 조롱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을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이 세상도 엘리사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충만한 성도들을 조롱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실 수 있도록 그들을 상관하지 말고 먼저 믿음으로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충만한 엘리사의 저주는 조롱하던 사람들의 최후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는 세상의 최후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다면 기회가 있을 때 지금 돌이켜야 하며, 세상에 가려진 영혼이 있거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암콤에 죽는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성도를 공격하는 죄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세상에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여러분을 공격하는 사람이 있거든 먼저 끝까지 인내하시고, 모든 근심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상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입에서 저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셨다는 듯이 암콤을 보내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곁에 늘 계시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믿음만 지키면 보호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데 왜 믿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사를 위해 암콤이 나온다는 것은 삶속에서 놀라운 기적이지만 믿음의 사람에게는 늘 일어날 수 있는 축복입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인내하시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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