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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동계 토왕성 빙폭 등반 보고서
원 종 민 1. 목 적 : 빙폭 등반 훈련의 효과 분석 및 토왕성 빙폭 등반에서의 문제점 연구 2. 기 간 : 1986년 1월 30일(목) - 2월 3일(월) 4박 5일 3. 대 원 등반대장 : 현 명 식(57년 6월 6일생)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신장 427-68 4. 등반개요
(1)등반조장비
매치매치바 4, 곶감 6, 쥐포 4, 크랙카 200그램,젤리 8개, 양갱 4, 치즈 100그램, 땅콩 50그램, 복숭아 통조림 1, 귤 2 (2)전체장비(1과중복되는것은제외)
6. 식 량
7. 등반일지 (86년 1월 30일, 목요일 밤늦게 눈) 설악 파크 호텔 앞을 지날 때 토왕폭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룡교앞 가게에 식량 박스와 내짐 일부를 내려놓고 토왕골로 접어든다. 비룡폭 통제소 통과 문제를 걱정하였으나 뜻밖에도 통제소는 허물어져 있었다. 비룡폭 트레버스 길에 올라서자 토왕폭 상단이 보였고 천리안 병모씨만 빼고는 모두 상단에 등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으나 동굴이었다. 캠프터에 도착하자 계속 뒤쳐져 오던 석근이가 주저앉았다. 짐을 무겁게 맨 건 사실이었다. 모두 아이젠을 신고 토왕폭 하단으로 가보았다. 직벽을 제외하고 모두 눈이 많이 쌓여있다. 처음 보는 하단은 구곡보다 길지만 쉬워 보였다. 명식형, 종관형이 픽켈로 찍어 보고 얼음 질이 좋다면 기뻐한다. 처음에 정한 캠프터는 1년전 토왕폭 단독 등반자 고 이태식씨가 눈사태를 맞은 곳 같아 우리는 안전한 밑으로 옮기기로 하였으나 철암 팀은 그대로 있기로 한다. 운회씨와 내가 밑에 있는 식량박스를 가져오기 위해 다시 뛰어 내려간다. 내려가며 어마어마하게만 보이는 토왕폭 상단이 자꾸 떠오른다. 다시 올라오는 사이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짐도 가벼운데 다리가 몹시 피곤하다. 장비와 캠프사이트 정리가 안돼 늦게 식사를 마치고 종관형, 병모씨 모두 텐트 안에 모여 인천교대 산악부에서 자일 없이 11시간만에 단독 등반한 이야기 등을 듣는다. 구곡폭에 있을 때 며칠간 인천교대 팀 훈련하는 것을 봐왔다. 그 친구는 아마 파트너가 없이 단독등반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단독등반, 자일 없는 단독 등반, 시간단축 등 토왕폭 등반의 새로운 기록들은 계속 탄생되고 있다. 종관형, 병모씨는 하루에 2번 등반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성공할 것이다. 살살 내리는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걱정이다. 빙질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다. 위 철암 텐트에 혼자 있던 병모씨는 사각사각 내리는 눈에 정신착란 초기증세(?)같은 표정으로 눈사태 공포에 질려 다시 우리 텐트로 온다. (86년 1월 31일, 금요일 눈. 흐림) 오늘 전 대원이 토왕폭 하단을 등반하기로 하고 11시가 넘어서 하단으로 향한다. 눈은 그쳤지만 가스는 꽉 차있다. 하단입구 3미터 폭포에서 명식형의 캐신 아이스 바일이 부러졌다. 눈앞에 있는 하단을 눈에 푹푹 빠지며 힘들게 도착한다. 줄줄 물이 흐르는 폭포에 눈이 달라붙어 얼음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 오른쪽 동굴은 얼음이 없어 등반 불가능이고 왼쪽 끝이 그런대로 좋고 중앙은 푸석푸석한 고드름으로 이어져 있었다. 명식형의 빅버드가 첫 스윙을 하고 드디어 청악은 토왕에 신고를 마쳤다. 왼쪽 끝으로 스타트하라고 하였지만 중앙으로 오른다. 햄머를 여러 번 던졌지만 박히지 않는다. 명식형 답지 않게 고전한다. 3개밖에 없는 스나그가 모자라는 듯 싶었는지 스나그를 더 달라고 해 던져서 전해준다. 불량한 얼음에 어렵게 스나그를 설치하고 왼쪽으로 향하며 오른다. 가끔씩 중단에서 눈더미가 떨어져 작은 눈사태를 일으킨다. 동대 테라스에 도착하기 전에 스나그를 하나 더 박았다. 가스가 꽉 차 동대 테라스에 있는 명식형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후 동대 테라스를 지나고 있는 명식형이 보였고 조금 올라가 스나그를 설치한다. 그리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계속 올라가던 자일이 약 5미터 정도 남기고 멈추었다. 완료된 것 같은데 호루라기 교신이 오지 않는다. 불러도 대답 없지만 자일을 따라 운회씨가 스타트한다. 톱이 출발한지 '1시간 30분'이 지난 후였다. 종관형과 병모씨가 궁금한지 왔다 간다. 운회씨가 다 오르고 40미터 자일을 2동 연결하여 석근이가 출발한다. 올해 처음 빙벽등반을 시작하여 구곡폭에서 열심히 훈련한 덕분에 잘 오른다. 그러나 힘찬 스윙과 자신감 있는 자세가 아쉽다. 열심히 석근이 등반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청주사대 팀이 도착해 등반하기 시작한다. 드메종 햄머에 긴 픽켈을 가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세로 오른다. 찍지 않고 걸기만 하며 오른다. 위에서 자일이 내려오고 내가 출발한다. 물이 줄줄 흐르는 왼쪽 끝으로 힘차게 찍으며 청주사대 팀을 앞지르기 위해 뛰어 오른다. 새로 구입한 신슐레이트 가죽장갑이 드디어 말썽을 부린다. 완전히 흠뻑 젖어 동대 테라스도 못미처 손이 동태가 되어 버렸다. 통증을 견디지 못해 잠깐 손목을 풀어보지만 허사다. 스피드도 떨어지고 감각이 없는 손 때문에 스윙이 엉망이 되고 자세도 흐트러졌다. 정신없이 오르자 우리 팀이 보였고 청주사대 톱은 어느새 확보를 마치고 있었다. 회수하는 것도 없이 곧장 올랐는데 다른 팀 톱과 비슷한 시간에 오른 것이 창피하였다. 손 시려움은 극에 달해 확보조차 운회씨가 해주어야만 했다. 한동안 멍한 상태에서 악을 쓰며 고통을 참아야 했다. 눈물까지 흘린 후에 손이 겨우 풀렸다. 오버미튼을 끼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시간을 물어보니 30여분. 석근이보다 늦게 올랐다고 한다. 안자일렌하여 중단을 거쳐 우측 길로 향하였다. 위험한 곳과 하강 길에는 삼천포 팀에서 고정시킨 8밀리미터의 줄이 있었으나 푸르지크 매듭도 이끌리는 형편이었고, 하강기만 사용하려고 해도 미끄러운 외줄이어서 유마르까지 같이 사용하여 내려온다. 하단 밑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급사면을 통과하여 캠프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 철암 팀에서는 일찍 올 사람들이 오지 않아 걱정했다며 저녁식사 준비를 마쳐 놓았다. 눈 때문에 밤을 새다시피 한 철암은 텐트를 우리 쪽으로 옮겨 놓았다. (86년 2월 1일, 토요일 맑음) 계곡을 꺾어 하단을 향하니 종관형은 중간에 스나그 하나를 박고 하단을 끝내고 병모씨가 스타트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청주사대 팀 톱이 확보물을 설치하지 않고 70미터 끊어 테라스에 도착하였다. 사진을 찍어가며 휙스자일을 유마링해 중단 설사면에 도착하니 청주사대 여자대원이 혼자 지원하고 있었다. 철암은 휴식도 하지 않고 계속 상단으로 진출하고 청주사대도 뒤따랐다. 눈굴자리를 넓게 다져놓고 라면을 끊여 먹으며 사진을 찍는다. 종관형은 2개의 스나그를 설치하고 75미터 지점 테라스에 확보한다. 병모씨도 날 듯이 테라스로 향하였고 청주사대 팀도 같은 테라스에 확보한다. 중단에서 보는 상단은 캠프에 보는 상단과 다르다. 그 엄청난 높이와 수직의 각은 모두 약해 보인다. 높이만 높지 구곡보다 쉬워 보인다. 저 정도면 지치지 않고 오를 자신감이 생긴다. 12시가 못 되어서 철암 팀이 완료했고 조금 뒤에 청주사대 팀도 완료했다. 철암 팀 3시간 30분, 청주사대 3시간 51분이란 기록들이 탄생되었다. 청주사대 팀의 톱은 이제 빙벽등반을 시작한지 2년째이었고 잦은 바윗골과 형제폭에서 훈련했다 한다. 라스트는 올해 처음 빙벽등반을 시작했다 하니 놀랍다. 용기와 정신력이 뛰어나다고 해야할지 겁 없다고 해야할지? 어찌됐든 잘 오른다. 하단으로 내려오는데 하단에는 두 팀이 등반하고 있었다. 하단 밑 계곡삼거리에서 라면을 끓여놓고 철암을 기다렸다. 1시간 30여분 후에 도착했으나 입맛이 없다며 라면을 사양하고 또다시 하단을 향해 올라간다. 한번 등반하고 내려와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정신력은 높이 살만하다. 라면대신 스프같은 것을 준비할 것 하는 안쓰러움에 캠프로 돌아온다. 명식형과 석근이는 어느새 굵은 통나무를 여러 개 구해왔다. 바짝 마른 통나무를 버너 예열기로 불을 붙이니 활활 타오른다. 망원경으로 철암 팀과 또 다른 팀의 등반모습을 관찰하며 젖은 장비들을 말린다. 특히 장갑류를 열심히 말려 여러 켈레를 잘 보관해 놓는다. 커다란 천막까지 동원해 쵸오유 등반 훈련을 한다는 삼천포 팀은 보름째 토왕골에 있었으나 토왕폭을 미등한 채 많은 대원이 철수하고 일부가 남아 다시 식량을 져 올리고 있다. 내일은 토왕을 등반한다. 한달 동안 3명의 대원이 훈련해 왔으나 등반은 2명만 해야 한다. 3명이 같이 등반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처음 등반이라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등반은 명식형과 내가 하기로 이미 결정 나있었다. 훈련은 운회씨가 제일 열심히 했는데 운회씨 자신도 이미 마음속의 각오가 되었겠지만 명식형과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렵게 등반대원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연히 선배님들이 등반해야죠"하는 말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건네주고 우리가 사용할 장갑을 연기가 매운 것도 잊은 채 열심히 말려준다. 운회씨가 곁에 있는 것이 그렇게 믿음직할 수 없다. 6시가 가까울 때 쯤 드디어 철암 팀은 상단을 넘어서 토왕폭 최단시간 등반과 하루 2회 등반이란 기록을 만들어 냈다. 수직 빙벽길이만 해도 210미터가 되는 토왕폭을 2명이 3시간 30분에 등반했다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스피드이다. 내일 상하단 등반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자야한다. 철암 팀과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김치볶음밥을 준비한다. 아직 상단에 붙어있는 팀의 톱은 3분의2 지점의 테라스를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20여미터를 오르고 있었다. 조금 있다 다시 올려다보니 테라스 위 30미터 지점쯤에 있어야 할 톱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넘어설 수는 절대 없다.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분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테라스 40여미터 아래에 점이 보였다. 급히 망원경으로 살피니 꿈틀거리는 것이 위에 있던 톱이 추락한 것이다. 아찔하다. 70미터를 추락하다니. 자일도 끊어지지 않았고 확보물이 무사한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에 앞서 추락자의 부상정도가 걱정되었다. 이미 상단에 올라선 철암 팀이 이 사고를 안다면 구조가 쉬워지겠으나 벌써 내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명식형과 운회씨가 급히 장비와 비상식량을 챙겨 구조 준비를 하는데 사고를 당한 안양공전 팀에서 도움을 요청해 왔고 밑에 있는 청주사대 팀에서도 한 명이 올라왔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좌측계곡으로 해서 상단에 오르는 것보다 중단에서 추락자까지 등반하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해 중단을 향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 허연 얼음 기둥은 더욱 음산하고 살벌하게만 보였다. 테라스에 희미한 불빛은 분명 두 개이었다. 망원경을 가져온 것이 천만다행이다. 철암 팀이 테라스에 내려온 것이다. 희미하게 "종관형"이란 외침만이 확인되고 수없이 애절한 고함소리만이 토왕단애에서 떨어져 오고 있다. 명식형과 운회씨도 식사를 안 했지만 종관형과 병모씨는 하루종일 힘든 등반을 하고 또 구조를 하고 있는데 몹시 걱정된다. 상단에는 불빛이 몇 개가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70미터 추락하고 추위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을 추락자가 제일 걱정된다. 망원경으로 관찰해보니 상단 빙벽에는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중단에만 불빛이 몇 개 있고 어떻게 된 것일까. 궁금증과 초조, 긴장으로 목이 탈 지경이다. 매달려 있을 사람들을 위해 모닥불을 더욱 환하게 지핀다. 불빛을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면 좋으련만. 절규와 고함이 뒤범벅되어 메아리치던 토왕폭이 조용해 졌다. 더욱 궁금하다. 한참후 10시반쯤에 위에서 2명이 모닥불로 오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내가 떨어졌던 사람이라고 말을 하니 깜짝 놀랬다. 이렇게 빨리 구조되다니 다친 곳은 없나 살펴보고 물어보니 찰과상도 없이 깨끗했다. 기적이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며 물을 찾는 두 사람에게 음식을 권하니 간식을 먹어 괜찮다고 한다. 자초지종 물으니 두 사람은 10시쯤에 40미터 자일로 등반을 시작해 줄줄 흐르는 물 때문에 손이 시려 고생을 하며 상단 테라스에 도착, 철암 팀은 불안한 두 사람에게 쉬운 왼쪽으로 오르라고 충고했으나 왼쪽은 물이 흘렸고, 오른쪽은 물이 흐르지 않았으나 찍으면 박히지 않고 깨지는 얼음이었다. 결국 물이 무서워 오른쪽으로 올랐으나 왼쪽 허밍버드 아이스 햄머가 빠지며 추락했고 빌레이 보던 세컨드는 손목이 자일에 감겨 딸려 들어갔다. 2개 설치한 바트혹이 하나는 빠지고 하나는 반쯤 뽑혀 있었다. 추락자는 한참 떨어지는데 "앙카"를 외치지 않은 것 같아 "앙카"를 외치고 또 한참 떨어지더란다. 조금 후에 철암 팀과 우리 팀 모두 무사히 도착하여 식사를 마친 후 그 엄청난 구조이야기를 들었다. 안양공전 팀은 중단에서부터 선배란 친구가 철암 팀보고 잘 봐달라고 부탁하였다고, 올해 처음 구곡폭을 몇 번 오르고 잦은 바윗골 100미터 폭을 등반한 톱은 등반하는 것도 불안하려니와 바트혹을 설치하고도 픽켈에 매달려 빌레이 할 정도였다. 먼저 등반을 완료한 철암은 안양공전 팀과 같이 하산하려고 기다렸으나 시간이 꽤 지나도 톱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아 누군가 소나무에 준비해 둔 약 200미터의 원정용 휙스로프로 종관형이 하강해 보았으나 톱은 보이지 않고 공포에 질린 세컨드만이 있어 톱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추락했어요"라고 한다. 기가 믹힐 노릇이다. 추락자는 춥고 무섭다며 빨리 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냐고 물으니 다친 곳은 없다고 한다. 종관형은 재빨리 스나그를 설치하고 휙스로프를 추락자에게 내려보낸 다음 끌어올려 묶여버린 세컨드의 손을 풀어주었다. 추락자를 중단에 내리고 세컨드도 중단으로 하강시킨 다음 종관형은 유마링해 상단으로 올라갔다. 중단에서 추락자를 받은 우리 팀, 청주사대 팀은 하단 위 나무에 확보하고 추락자를 80미터 자일로 내리려고 하니 겁에 질린 추락자가 안 내려 갈려고 해 호통을 치고 내려보냈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80미터자일 2동으로 하단을 하강 내려왔다고 한다. 엄청난 상황에서 무사히 구조를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 국내에서 70미터를 자유낙하하고도 멀쩡한 사람과 자일은 처음일 것이다. 그 사람 올림픽 복권 사 볼만하다. (상단에 있던 200미터 휙스로프는 노자일 단독 등반한 인천교대 팀에서 비치해 둔 것이었음.) (86년 2월 2일, 흐림 약간 눈) 일찍 일어나 식사준비를 한다. 하단은 내가 선등하고 상단은 명식형이 선등하기로 했다. 날이 밝기 전에 기활형, 형수님, 상국형, 종선 형과 많은 회원들이 도착했다. 승용차와 봉고를 동원, 밤새 달려온 것이다. 정말 가슴 뿌듯하다. 적막감이 돌던 토왕골이 떠들썩하다. 소고기국으로 아침식사를 하지만 입맛이 없다. 등반장비와 지원장비를 챙기지만 부산하고 들뜬 마음에 빠진 것들이 없는지 모르겠다. 토왕을 위해 구입한 콘택트 렌즈가 눈에 들어가지 않으니 20여분 씨름하다 실패하고 안경을 벗고 등반하기로 한다. 지원조인 운회씨와 석근이는 먼저 출발한다. 같이 출발할 경우 중단에 등반조 보다 늦게 도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활 형님이 빨리 내려오란 말씀에 천천히 하겠어요 라고 대답한다. 어제의 사고가 마음에 걸렸다. 명식 형과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천천히 하기로 약속을 했다. 철암 팀은 얼은 자일에 패츨 유마르는 미끄러진다고 성능이 우수한 보나티 유마르를 빌려준다. 너무나 고맙다. 형님들과 회원들의 격려를 뒤로하고 서둘러 오른다. 숨이 차도록 하단에 도착하니 삼천포 팀이 80미터 원정용 가느다란 휙스 자일로 지금 막 스타트하였다. 왼쪽 끝으로 붙어 오르기 시작한다. 물이 약간 흐르고 있어 잘 박혀준다. 오늘은 목장갑에 오버미튼을 사용하니 손 시려운 것을 못 느낀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오르며 형님들과 회원들이 우측 길로 오르는 것도 보았다. 몸이 풀리지 않아 조금 힘이 드나 어느새 동대 테라스 위치까지 올라 왔다. 동대 테라스로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보다 바로 스나그를 설치하는 것이 훨씬 빠르므로 스나그 하나를 설치한다. 그 위 몇 미터는 아래보다 각이 조금 섰다. 조금 더 오른 뒤 그냥 오를까 하다 하나 더 박는다. 이젠 경사가 많이 죽고 빙질도 깨끗하다. 부지런히 찍고 올라 하단이 끝나는 곳에 스나그를 설치하고 완료 신호를 보낸다. 덥다! 재빨리 자일을 올리고 유마르로 빌레이한다. 우측 길에서 응원을 보내는 회원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한다. 정말 든든하다. 자일은 빨리 올라오고 있다. 명식형이 고정신호를 보내기 전에 스나그에 도착한 것을 느낀다. 우측 길에 있는 동건이가 텐트에 있는 기활 형에게 "기활형 나와? 오바"라고 소리친다. 동건이와 함께 있으면 항상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명식형의 빨간 헬?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명식형" 명식형은 웃음으로 대답한다. 한시간 10분 걸려 하단을 완료하고 명식형은 곧장 중단 지원조로 향한다. 스나그를 회수하고 뒤따른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러셀하며 지원조 가까이 가니 땅콩차 냄새, 소시지 냄새가 가득하다. 트렌시버로 기활 형님과 교신하며 생강차까지 곁들인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상단을 향할 무렵 삼천포 팀의 톱이 하단을 끝내고 후등자를 확보하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상단 스타트 지점은 꽤 멀었다. 눈 덮인 완경사를 삐올레 빤느망쉬, 트르와지엠 등 온갖 것을 다하며 오른다. 직벽이 시작되는 곳 오른쪽 볼트에 확보하고 선등하는 명식형을 하강기로 빌레이 한다. 바로 밑에 와 보니 더 쉬어 보인다. 가운데로 스타트한다. 10미터도 오르지 않았는데 스나그를 설치한다. 웬일일까? 설치한 스나그가 그냥 빠져버린다. 다시 박지만 마찬가지. 주위 얼음이 모두 비어있다. 할 수 없이 대충 걸어놓고 오른다. 불안한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난 명식형을 믿는다. 마음도 편안하다. 자일이 40미터 빠져나갔을 때 두 번째 스나그를 설치한다. 또 엉성하게 박힌다. 그냥 오르며 왼쪽으로 간다. 3번째 스나그는 든든히 박힌다. 차츰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한참 후에 자일이 몇 미터 남았냐고 운회씨를 통해 물어본다. 8미터 정도 남았다. 조금 후에 완료신호가 왔다. 테라스까지 도착했다면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위는 쉬우니까 재빨리 출발신호를 보내고 스타트했는데 삼천포 팀이 밑에 와서 톱에게 오른쪽으로 가 달라고 한다. 자신들이 왼쪽으로 등반해야 하는데 낙빙 때문에 부탁한다고 "글쎄요" 자일이 바짝바짝 당겨진다. 첫 번째 스나그를 손으로 회수하고 미친 듯이 찍고 올라 두 번째 스나그를 회수한다. 합승이가 만든 스나그 회수기는 매우 편리하다. 왼쪽으로 트레바스하며 오르는데 빌레이가 느슨하다. 바짝 당기면 몸이 쏠려 밸런스가 나빠지기 때문인데 명식형의 완벽한 빌레이다. 얼음질이 상당히 나쁘다. 손가락을 수없이 부닥치지만 통증을 느낄 여유도 없다. 찍고 오르기를 지겹도록 하자. 명식형의 웃는 모습이 보였다. 손도 시럽지 않고 힘도 들지 않는다. 두 개의 스나그에 매달려 담배를 피운다. 어느새 눈발이 내리고 있다. 우측 길에는 아직도 회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왼쪽으로 명식형은 출발했다. 20여미터 오르고 스나그를 설치하며 손 시럽다고 한참동안 손을 푼다. 조금 오른 뒤 스나그를 더 설치하고 넘었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다. 자일이 빨리 빠져나간다.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후에 다시 빠져나가다 멈춘다. 담배를 꺼내 피우고 있는 중일 것이다. 햄머에 확보하고 스나그를 회수한다. 다시 자일이 당겨진다. 스타트한다. 쉽게 오른다. 2번째 스나그를 회수하자 경사가 많이 줄었다. 뛰어 오른다. 한참 뛰는데 왼발이 이상하다. 자동차 헛바퀴 돌 듯 헛발질을 한다. 아이젠이 벗겨진 것이다. 쉽게 벗겨진 로우 아이젠을 쉽게 다시 신는다. 소나무가 보이자 수년동안 토왕폭을 생각하며 꿈꾸던 벅찬 감동을 느끼고 싶다. 지난여름 이곳에 왔을 때는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는데 막상 담담하기만 하다. 억지로 들뜬 감정을 연출해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 이런 순간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느껴질 뿐이다. 명식형과 굳은 악수를 하며 서로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형님들의 못다 이룬 뜻과 아낌없는 지원의 성과이지만 특히 명식형의 빙벽에 대한 집념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비석쪽으로 나있는 길로 가 보았으나 누군가 되돌아 왔다. 왼쪽 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제 저녁 철암 팀이 하산한 흔적은 바람에 없어졌다. 계곡위로 올라가다 왼쪽 안부로 꺾어졌다. 나뭇가지 흔적 등을 살피며 눈에 빠지지 않게 길을 찾아낸다. 여름에 보았던 협곡인데 눈에 덮여 매끈하다. 그리세이딩을 하는데 명식형은 위험하다며 걸어가자고 한다. 그러나 눈의 상태, 각도 등을 봐서 절대 안전하다. 결국 명식형도 타고 내려온다. 약 25미터의 폭포를 자일 하강하여 계속 내려가니 희미하게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CA"로 응답하니 마지막 짧은 폭포 밑에 형님들과 회원들이 마중 나와 있다. 몇 시간만에 다시 보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기활 형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형님들, 회원들이 너무 수고 많이 했다고 축하를 해주니 몸들 바를 모르겠다. 종관형, 병모씨도 축하를 해준다. 등반이 끝나자마자 전 회원이 바로 하산하기 위해 봉고차를 가져왔으나 우리는 내일 운회씨와 석근이가 토왕폭 등반을 다시 하기 위해 남아있기로 했다. 철암 팀도 우리가 졸라 같이 있기로 했다. 왠지 철암과 같이 있으면 든든하다. 짧은 기간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계속 내리는 눈 속에 형님들과 회원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하산을 했다. 석근이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 석근이가 못하면 명식형은 세컨드로 등반한다고 하나 내가 해야겠다. 눈보라 속의 삼천포 팀은 톱이 상단 테라스에 도착한 상태다. 2명이 테라스에 모였을 때 이미 날은 어두워 졌다. 조금 뒤 불빛 하나가 밑으로 내려가고 또 하나의 불빛이 내려가는 듯 했다. 망원경으로 살펴도 상단 빙벽에 불빛이 없다. 잠깐 중단 설사면에 불빛이 반짝인다. 삼천포 등반대장과 또 한 명이 다급히 우리 캠프를 찾아왔다. 삼천포의 등반대장은 텐트에서 식사준비를 하느라 등반자들이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알지 못했고 중단에서 지원을 하던 친구는 등반자들이 상단을 오른 뒤 좌측계곡으로 하산하겠으니 우측 길 휙스로프를 회수하여 좌측계곡으로 마중오라고 해 삼거리에서 몇 시간째 기다리고만 있었다. 즉, 그들은 등반자들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하강을 하여 중단에서 우측 길로 내려오고 있으니 그쪽으로 마중 가라 하고 종관형, 병모씨가 동행했다. 등반자들은 좌측길 하강하는 곳에서 자일이 없어 묶여 있다가 던져준 자일을 받아 하강, 무사히 돌아왔다. 등반자들이 아침에 하단에서 앞질러간 우리를 나쁘다고 하자 등반대장이 나무랐다고 한다. (86년 2월 3일, 맑음) 남은 석유도 안보이고 텐트 안에 들어가 보니 등반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대원 모두가 김이 빠진 것 같다. 목적했던 것은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려 버린 것이다. 아쉬워하는 운회씨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일주일 뒤 설날에 다시 와서 등반하기로 해 모두들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철수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햇빛이 토왕골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많은 식량이 남아 일주일 뒤에는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다. 식량과 약간의 장비를 데포 시킨다. 시진촬영을 마치고 하산한다. 뉴설악 파크 앞을 지날 때 보이는 토왕폭은 역시 어마어마하게 보인다. 터미널 대합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5일만에 세수도 한다. 버스 안에서 졸다 깨다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 이번 등반에서 형님들과 회원들이 바친 노력은 순수한 것이다. 모두의 아낌없는 지원, 구곡폭 훈련과 등반을 위해 잔일을 불평 없이 열심히 해준 석근이, 운회씨의 말없는 희생, 촬영을 담당한 용문형의 노고, 등반을 응원 격려하기 위해 밤새 차를 몰고 온 상국 형님, 종선 형님, 기활 형님의 보살핌, 새벽에 토왕골에 찾아든 회원들이 모두가 청악의 열화와 같은 팀웍이 아닌가. 또한 종관형, 병모씨와의 만남은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8. 토왕성 빙폭 개요 (1) 등반길이 토왕폭 전체의 수직 표고 차는 보통 320미터를 보고 있다. 그러나 상단, 중단, 하단으로 나누어져 있고, 완경사도 많기 때문에 실제 자일을 사용하여 삐올레 트락시옹(프론트 포인팅)을 하며 등반하는 곳은 이보다 작다. 즉, 이번 등반에서는 하단 70미터, 상단 140미터를 합하여 210미터이지만 적설량에 따라 다르다. 눈이 없거나 적어 중단이나 완경사의 얼음이 노출된다면 더 길어질 것이다. (2) 빙 질 토왕폭의 빙질은 우리나라 수빙폭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형태를 모두 갖추고 있다. 유리창 같은 청빙, 심한 고드름, 버섯형 얼음, 속이 빈 얼음. 썩은 얼음, 눈이 녹아 붙어 얼은 얼음, 얇게 층을 이루 고 있는 얼음 등등 경사와 바위형태, 수량, 기온, 바람, 습도 등의 인자들이 조합을 이뤄 각양각색의 빙질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등반에서 접하고 되는 어려움을 주는 빙질은 물이 흐르는 고드름이 주종을 이루며 매 끈한 얼음도 많지만 등반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등반을 준비하기 위해 대비한다면 고드름에 항상 물이 줄줄 흐른다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토왕폭의 빙질은 강원도 춘성군 구곡폭포의 빙질과 거의 같다고 인식되어진다. 그러나 많 은 부분들이 잦은 바윗골 100미터 폭과 유사하다. (3) 난이도 몇해전 "산"지에 실린 토왕폭의 전체 난이도는 6급 정도로 평가했으나 우리가 경험한 난이도는 5 급 정도였다. 빙벽의 난이도는 빙질과 경사도가 결정한다. 과거 여러 팀의 등반기에 보고된 경사도는 90도-95도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가 오 른 루트에서는 90도의 경사를 찾을 수 없었다. 모두 경사를 측정하는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감각 으로 보는 각도이지만 일반적으로 경사는 더 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등반 난이도라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빙질, 경사도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다. 등반길이와 어 프로치, 기후, 하산길 등 여러 가지 주변 상황 등이 그 요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렵다 쉽다 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다. 3시간에 등반하는 사람과 10시간이 넘어 랜턴을 키고 등반하는 사람이 평가하는 난이도는 분명 다른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 구곡폭과 비교를 한다면 어느 정도 자료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 을 것이다. 구곡폭은 50미터 정도의 등반 길이를 가지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매우 어려운 곳을 가지고 있다. 잘 아는 동굴 바로 위는 토왕의 어느 피치보다 어렵다. 따라서 나는 등반 기술 자체만으로 난이도 를 평가한다면 구곡폭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물론 구곡폭에도 토왕보다 쉬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곡폭 동굴쪽 같이 어려운 부분도 몇 미터에 그치고 그 부분만 넘으면 쉬워진다. 즉, 매우 어려워 체 력을 많이 소모했어도 잠깐이면 오르고 쉬어지는 곳에서 체력을 축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토왕폭은 수십 미터가 계속 직벽 상태이다. 비록 쉬운 루트를 택하여 오른다 해도 80도 정도의 경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소 모된 체력을 복구하지 못하고 계속 뺏기는 것이다. 때문에 열심히 운동하지 않은 사람들은 매우 힘 들게 등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곡폭을 평균 50회 등반 훈련했고 구곡폭을 계속해서 6번 오른 적 도 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토왕과 구곡을 비교한다면 다음과 같다. 토왕 상단은 구곡폭을 3회 연속 등반한 것과 비슷한 체력소모를 느꼈다. 9. 기 타
이번 등반에서 계획했던 목적은 빙폭 등반 훈련의 효과 분석 및 토왕성 빙폭 등반에서의 문제점 연구이었다. 한달간의 구곡폭 훈련에서는 실제 토왕폭 등반에서 발생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설정하여 훈 련에 임하였으나 그 훈련 내용이 치밀하거나 완벽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훈련기간 중 이룩한 기술적, 체력적 성과와 장비의 선택과 사용 등은 가치있는 것이었다. 이런 점들은 앞에서 보고된 바 있고, 그것들은 토왕폭 등반에 바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계획을 세울 당시만 해도 우리에게 있어서 토왕폭이란 존재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토왕폭이 몇 십 차례 등정되고 단독등반이 나오고 해도 우리에게는 높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단지 오른다는 그 자체의 곤란성보다는 만약의 사태에 따른 그 주변 상황에 대한 조심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눈사태에 대한 대책, 체력안배를 고려해 한 피치를 40미터, 핏치당 확보물 수를 3개 이상, 등반후 하산 루트 문제, 정상 비박 장비 지원, 지원 루트의 고정자일 설치, 조난시 대책 등의 계획들은 훈련 과정에서 많은 수정과 보완을 했다. 또한 토왕골에 캠프를 설치하고 상황에 따라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없에거나 변경을 했다. (2) 캠프 생활 사실 이번 등반에서는 아늑한 캠프생활을 못했다. 겨울등반에서 아늑한 캠프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이제까지 우리의 어떤 겨울캠프보다는 불편했던 것이다. 계획했던 2-3동의 텐트 설치는 무게 때문에 1동으로 줄었고, 눈사태에 대비해 높은 나무와 텐트를 자일로 연결한다는 계획도 안전한 지대를 택했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다. 4명의 대원과 많은 장비가 있는데 한 동의 텐트밖에 설치하지 못했고 따라서 많은 장비와 식량들이 계속 내리는 눈 속에 범벅이 되었다. 눈 위에서 텐트 자리를 다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단하게 오랫동안 다져야 장기간의 텐트생활에도 옴폭 들어가는 곳 없이 평탄하고도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텐트는 급하게 적당 눈을 다져 설치해 자주 사용하는 중앙 부분만 옴폭 들어가 양쪽이 경사가 져 4명이 누워도 비좁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2동의 텐트를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설치하고 한 동은 취침용, 한 동은 식당 및 창고용으로 사용했다면 얼음과 눈을 녹이는 불편도 없고 설거지도 깨끗이 하고 밖에서 떨며 취사하지 않고 눈에 범벅이 되는 장비도 없이 겨울 캠프생활의 정취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장비의 정리이다. 개인의 장비는 잡주머니 등을 이용해 여기저기 뒹구는 것 없이 정리하고 공동 장비 또한 알뜰히 정리해야 하고 사용후 반드시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 텐트 안과 밖에서 구분없이 이것저것 뒹굴고 사용후 원위치 되지 않아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해 온 캠프를 뒤지는 일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런 이런 점들은 관심밖에 것들이 되기 쉬우나 사실 등반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 팀웍 등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3) 장 비 장비에 대해서는 상세히 보고된 바 있으므로 등반자일에 관해서만 보고하겠다. 계획안배를 감안한 것이었다. 80미터 자일을 사용할 경우 80미터를 계속 치고 오를 체력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80미터 자일의 사용이 시간적, 체력적인 면에서 훨씬 유리한 것이다. 40미터를 사용할 경우 총 6피치를 끊어야 하므로 그만큼 확보물 설치 회수가 늘고 직벽에 매달려 빌레이 보는 회수와 시간도 많아지게 되므로 전체적인 시간과 체력의 낭비가 심한 것이다. 80미터를 사용하므로서 총 3피치에 좋은 테라스를 이용해 매달려 빌레이를 보는 어려움 없이 등반을 할 수 있었다. (4) 하산 루트 동계 토왕폭 정상의 어프로치는 좌측 계곡이 가장 편리할 것이다. 하계때 본 좌측 계곡은 심한 경사의 협곡으로 많은 돌 사태의 위험을 안고 있어 통과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동계에는 눈이 험한 계곡을 미끄럽게 덮어 주므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토왕폭을 등정후 하산할때는 완만한 계곡 상류 쪽으로 200여미터를 오르며 왼쪽 능선이 완만해지는 안부로 꺾어져 계곡으로 내려가면 계곡 눈 사면을 글리세이딩하며 내려갈 수 있다. 물론 적설량에 따라 빙폭 노출이 되는 곳도 있다. 중간지점쯤에 약 25미터에 70도 정도의 빙폭이 나오는데 자일 하강을 하면 된다. 계곡을 다 빠져 나와서 마지막 작은 폭포가 있는데 픽켈과 햄머를 찍으며 내려올 수 있다. 하산시간은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또한 이 계곡을 통해 상단 정상에도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이다. 10. 토왕폭과 조난 토왕폭이 초등 된지도 10년째가 됐다. 초등당시 14일이라는 등반기간이 해를 거듭 할수록 단축되었고 장비의 발전과 더불어 좀더 새롭고 수준 높은 등반형태가 발전되어 왔다. 십여번 등반 될 때까지만 해도 그 기록들이 정리되었지만 이제는 몇 팀이 등반했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을 만큼 많은 팀이 등반했다. 추측컨대 100회 이상 등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토왕성 빙폭 등반이란 기치도 차츰 격하되어지는 것 같다. 지금의 토왕폭이 초등 당시의 토왕폭에 비해 경사가 약해 졌거나 길이가 짧아진 것도 아닌데 여성이 올랐다해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고 당연한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토왕성 빙폭 등반을 토왕성 빙폭 훈련이라 명명한 팀은 없는 듯 싶다. 등반과 훈련의 경계와 한계는 이렇다 하고 정의 내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토왕성 빙폭 등반이라고 그 타이틀을 정하는 것은 토왕성 빙폭을 오르기 위해 훈련을 한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훈련 등반을 위해 훈련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토왕폭을 단독 등반하고 2-3번 서너 시간에 오른 클라이머들도 토왕폭을 오르기 위해서는 운동을 하고 연구를 하고 장비를 점검하는 등의 준비에 소홀하지 않은 것이다. 등반의 진정한 가치도 바로 그런 행위에 있는 것이다. 남들은 쉽게 오르는데 나는 못할 것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즉흥적인 등반욕에만 빠져 운동, 연구 준비, 치밀한 계획 등을 소홀히 한다면 어쩌다 등반했다고 해도 스스로의 만족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점들이 좀더 완벽한 등반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승화됨으로써 등반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의 이번 등반기간 중 여러 팀의 등반 모습을 보아왔다. 그 중에는 이제까지의 어떤 토왕성 빙폭 등반보다는 앞선 등반을 보여준 팀이 있는가하면 추락과 조난이란 상황에 빠져 다른 팀들에 의해 구조를 받는 팀들도 있었다. 그 조난 상황은 앞서 보고된 바가 있고 여기서는 그 직접적인 원인들과 직접 조난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거나 무사히 빠른 시간에 오른 팀의 등반 스타일에서 조난의 숨겨져 있는 요소들을 순서 없이 열거해 본다. 테크닉이 부족하다. 비상용 아이스 햄머 없이 오른다. 장비를 잘못 사용한다. 8밀리미터 고정용 로프로 토왕폭을 등반하러 한다. 기록에만 너무 집착한다. 동계등반 경험이 부족하다. 비상 자일이나 식량도 없이 등반한다. 늦은 시간에 등반을 시작한다. 필승의 자세가 없다. 상황판단 능력이 부족하다. 그 원인과 조난 요소들을 상세히 살피자면 끝이 없다. 깨끗이 등반을 성공하는 팀들은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조난을 당한 팀들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11. 결 론 토왕폭 등반을 마치고 이반 슈나드의 "아이스 클라이밍"을 열심히 읽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90년대에 유럽 알피니스트들의 꿈은 알프스 3대 북벽을 오르거나 그 중에 하나만이라도 등반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북미의 클라이머들에게는 알프스의 3대 북벽과 같은 의미의 존재가 그랜드 티튼이었다. 등반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는 슈나드에게도 그랜드 티튼을 반드시 오르겠다는 꿈이 있었다. 마침내 1958년 파트너와 함께 그랜드 티튼을 수시간내에 그것도 너무 쉽게 해치우고야 말았다. 며칠 뒤 슈나드는 책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일전 그랜드 티튼을 속공 등반한 클라이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자기 꿈이 실현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오랜 꿈이던 그랜드 티튼은 그렇게 높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시시할 정도의 등반 이였기에 그는 그 등반을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후 슈나드는 춥고 눈보라 치는 그랜드 티튼을 찾아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비박을 하며 처참할 정도로 힘들게 올랐다. 12. 소요 경비 수 입 : 회비-672,600, 서원교-34,000, 남동건-45,000, 대원-80,000, 기타-32,000, 계-863,600
기 타 원래 대원 3명으로 등반 완료시까지의 경비를 742,100원으로 계획하였으나 도중에 대원 1명이 추가되었으며 또한 2차 등반대가 편성되므로서 전체 경비는 863,600원이 소요되었다. 하나 계획시부터 식량 장비 등 많은 부분을 회원 부담 원칙으로 하였기에 수치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많다. 매주 토요일마다 구곡폭으로 수송되었던 쌀과 부식(간식)은 회원들의 정성 어린것들이었으며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것들이 무상으로 보급되었으니 토왕폭 등반 자체는 회원 모두의 것이었다. 또한 등반 대원용 장비를 포함한 기타 지원 등반 장비 약1,000,000원이 회원 부담으로 소요되었으나 상기 경비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등반 당일 지원대의 경비121,700원까지 포함하면 실제 총 소요경비는 약2,000,000원이 넘는 것이니 청악으로서는 벅찬 등반 규모였음에 틀림없으리라. | |||||||||||||||||||||||||||||||||||||||||||||||||||||||||||||||||||||||||||||||||||||||||||||||||||||||||||||||||||||||||||||||||||||||||||||||||||||||||||||||||||||||||||||||||||||||||||||||||||||
'86 동계 토왕성 빙폭 등반 보고서 원 종 민 1. 목 적 : 빙폭 등반 훈련의 효과 분석 및 토왕성 빙폭 등반에서의 문제점 연구 2. 기 간 : 1986년 1월 30일(목) - 2월 3일(월) 4박 5일 3. 대 원 등반대장 : 현 명 식(57년 6월 6일생)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신장 427-68 4. 등반개요
(1)등반조장비
매치매치바 4, 곶감 6, 쥐포 4, 크랙카 200그램,젤리 8개, 양갱 4, 치즈 100그램, 땅콩 50그램, 복숭아 통조림 1, 귤 2 (2)전체장비(1과중복되는것은제외)
6. 식 량
7. 등반일지 (86년 1월 30일, 목요일 밤늦게 눈) 설악 파크 호텔 앞을 지날 때 토왕폭이 우릴 내려다보고 있었다. 비룡교앞 가게에 식량 박스와 내짐 일부를 내려놓고 토왕골로 접어든다. 비룡폭 통제소 통과 문제를 걱정하였으나 뜻밖에도 통제소는 허물어져 있었다. 비룡폭 트레버스 길에 올라서자 토왕폭 상단이 보였고 천리안 병모씨만 빼고는 모두 상단에 등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으나 동굴이었다. 캠프터에 도착하자 계속 뒤쳐져 오던 석근이가 주저앉았다. 짐을 무겁게 맨 건 사실이었다. 모두 아이젠을 신고 토왕폭 하단으로 가보았다. 직벽을 제외하고 모두 눈이 많이 쌓여있다. 처음 보는 하단은 구곡보다 길지만 쉬워 보였다. 명식형, 종관형이 픽켈로 찍어 보고 얼음 질이 좋다면 기뻐한다. 처음에 정한 캠프터는 1년전 토왕폭 단독 등반자 고 이태식씨가 눈사태를 맞은 곳 같아 우리는 안전한 밑으로 옮기기로 하였으나 철암 팀은 그대로 있기로 한다. 운회씨와 내가 밑에 있는 식량박스를 가져오기 위해 다시 뛰어 내려간다. 내려가며 어마어마하게만 보이는 토왕폭 상단이 자꾸 떠오른다. 다시 올라오는 사이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짐도 가벼운데 다리가 몹시 피곤하다. 장비와 캠프사이트 정리가 안돼 늦게 식사를 마치고 종관형, 병모씨 모두 텐트 안에 모여 인천교대 산악부에서 자일 없이 11시간만에 단독 등반한 이야기 등을 듣는다. 구곡폭에 있을 때 며칠간 인천교대 팀 훈련하는 것을 봐왔다. 그 친구는 아마 파트너가 없이 단독등반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단독등반, 자일 없는 단독 등반, 시간단축 등 토왕폭 등반의 새로운 기록들은 계속 탄생되고 있다. 종관형, 병모씨는 하루에 2번 등반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성공할 것이다. 살살 내리는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걱정이다. 빙질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다. 위 철암 텐트에 혼자 있던 병모씨는 사각사각 내리는 눈에 정신착란 초기증세(?)같은 표정으로 눈사태 공포에 질려 다시 우리 텐트로 온다. (86년 1월 31일, 금요일 눈. 흐림) 오늘 전 대원이 토왕폭 하단을 등반하기로 하고 11시가 넘어서 하단으로 향한다. 눈은 그쳤지만 가스는 꽉 차있다. 하단입구 3미터 폭포에서 명식형의 캐신 아이스 바일이 부러졌다. 눈앞에 있는 하단을 눈에 푹푹 빠지며 힘들게 도착한다. 줄줄 물이 흐르는 폭포에 눈이 달라붙어 얼음 상태가 몹시 좋지 않았다. 오른쪽 동굴은 얼음이 없어 등반 불가능이고 왼쪽 끝이 그런대로 좋고 중앙은 푸석푸석한 고드름으로 이어져 있었다. 명식형의 빅버드가 첫 스윙을 하고 드디어 청악은 토왕에 신고를 마쳤다. 왼쪽 끝으로 스타트하라고 하였지만 중앙으로 오른다. 햄머를 여러 번 던졌지만 박히지 않는다. 명식형 답지 않게 고전한다. 3개밖에 없는 스나그가 모자라는 듯 싶었는지 스나그를 더 달라고 해 던져서 전해준다. 불량한 얼음에 어렵게 스나그를 설치하고 왼쪽으로 향하며 오른다. 가끔씩 중단에서 눈더미가 떨어져 작은 눈사태를 일으킨다. 동대 테라스에 도착하기 전에 스나그를 하나 더 박았다. 가스가 꽉 차 동대 테라스에 있는 명식형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후 동대 테라스를 지나고 있는 명식형이 보였고 조금 올라가 스나그를 설치한다. 그리고 시야에서 사라졌다. 계속 올라가던 자일이 약 5미터 정도 남기고 멈추었다. 완료된 것 같은데 호루라기 교신이 오지 않는다. 불러도 대답 없지만 자일을 따라 운회씨가 스타트한다. 톱이 출발한지 '1시간 30분'이 지난 후였다. 종관형과 병모씨가 궁금한지 왔다 간다. 운회씨가 다 오르고 40미터 자일을 2동 연결하여 석근이가 출발한다. 올해 처음 빙벽등반을 시작하여 구곡폭에서 열심히 훈련한 덕분에 잘 오른다. 그러나 힘찬 스윙과 자신감 있는 자세가 아쉽다. 열심히 석근이 등반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청주사대 팀이 도착해 등반하기 시작한다. 드메종 햄머에 긴 픽켈을 가지고 다듬어지지 않은 자세로 오른다. 찍지 않고 걸기만 하며 오른다. 위에서 자일이 내려오고 내가 출발한다. 물이 줄줄 흐르는 왼쪽 끝으로 힘차게 찍으며 청주사대 팀을 앞지르기 위해 뛰어 오른다. 새로 구입한 신슐레이트 가죽장갑이 드디어 말썽을 부린다. 완전히 흠뻑 젖어 동대 테라스도 못미처 손이 동태가 되어 버렸다. 통증을 견디지 못해 잠깐 손목을 풀어보지만 허사다. 스피드도 떨어지고 감각이 없는 손 때문에 스윙이 엉망이 되고 자세도 흐트러졌다. 정신없이 오르자 우리 팀이 보였고 청주사대 톱은 어느새 확보를 마치고 있었다. 회수하는 것도 없이 곧장 올랐는데 다른 팀 톱과 비슷한 시간에 오른 것이 창피하였다. 손 시려움은 극에 달해 확보조차 운회씨가 해주어야만 했다. 한동안 멍한 상태에서 악을 쓰며 고통을 참아야 했다. 눈물까지 흘린 후에 손이 겨우 풀렸다. 오버미튼을 끼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시간을 물어보니 30여분. 석근이보다 늦게 올랐다고 한다. 안자일렌하여 중단을 거쳐 우측 길로 향하였다. 위험한 곳과 하강 길에는 삼천포 팀에서 고정시킨 8밀리미터의 줄이 있었으나 푸르지크 매듭도 이끌리는 형편이었고, 하강기만 사용하려고 해도 미끄러운 외줄이어서 유마르까지 같이 사용하여 내려온다. 하단 밑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급사면을 통과하여 캠프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 철암 팀에서는 일찍 올 사람들이 오지 않아 걱정했다며 저녁식사 준비를 마쳐 놓았다. 눈 때문에 밤을 새다시피 한 철암은 텐트를 우리 쪽으로 옮겨 놓았다. (86년 2월 1일, 토요일 맑음) 계곡을 꺾어 하단을 향하니 종관형은 중간에 스나그 하나를 박고 하단을 끝내고 병모씨가 스타트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청주사대 팀 톱이 확보물을 설치하지 않고 70미터 끊어 테라스에 도착하였다. 사진을 찍어가며 휙스자일을 유마링해 중단 설사면에 도착하니 청주사대 여자대원이 혼자 지원하고 있었다. 철암은 휴식도 하지 않고 계속 상단으로 진출하고 청주사대도 뒤따랐다. 눈굴자리를 넓게 다져놓고 라면을 끊여 먹으며 사진을 찍는다. 종관형은 2개의 스나그를 설치하고 75미터 지점 테라스에 확보한다. 병모씨도 날 듯이 테라스로 향하였고 청주사대 팀도 같은 테라스에 확보한다. 중단에서 보는 상단은 캠프에 보는 상단과 다르다. 그 엄청난 높이와 수직의 각은 모두 약해 보인다. 높이만 높지 구곡보다 쉬워 보인다. 저 정도면 지치지 않고 오를 자신감이 생긴다. 12시가 못 되어서 철암 팀이 완료했고 조금 뒤에 청주사대 팀도 완료했다. 철암 팀 3시간 30분, 청주사대 3시간 51분이란 기록들이 탄생되었다. 청주사대 팀의 톱은 이제 빙벽등반을 시작한지 2년째이었고 잦은 바윗골과 형제폭에서 훈련했다 한다. 라스트는 올해 처음 빙벽등반을 시작했다 하니 놀랍다. 용기와 정신력이 뛰어나다고 해야할지 겁 없다고 해야할지? 어찌됐든 잘 오른다. 하단으로 내려오는데 하단에는 두 팀이 등반하고 있었다. 하단 밑 계곡삼거리에서 라면을 끓여놓고 철암을 기다렸다. 1시간 30여분 후에 도착했으나 입맛이 없다며 라면을 사양하고 또다시 하단을 향해 올라간다. 한번 등반하고 내려와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정신력은 높이 살만하다. 라면대신 스프같은 것을 준비할 것 하는 안쓰러움에 캠프로 돌아온다. 명식형과 석근이는 어느새 굵은 통나무를 여러 개 구해왔다. 바짝 마른 통나무를 버너 예열기로 불을 붙이니 활활 타오른다. 망원경으로 철암 팀과 또 다른 팀의 등반모습을 관찰하며 젖은 장비들을 말린다. 특히 장갑류를 열심히 말려 여러 켈레를 잘 보관해 놓는다. 커다란 천막까지 동원해 쵸오유 등반 훈련을 한다는 삼천포 팀은 보름째 토왕골에 있었으나 토왕폭을 미등한 채 많은 대원이 철수하고 일부가 남아 다시 식량을 져 올리고 있다. 내일은 토왕을 등반한다. 한달 동안 3명의 대원이 훈련해 왔으나 등반은 2명만 해야 한다. 3명이 같이 등반하는 것도 생각해 보았으나 처음 등반이라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등반은 명식형과 내가 하기로 이미 결정 나있었다. 훈련은 운회씨가 제일 열심히 했는데 운회씨 자신도 이미 마음속의 각오가 되었겠지만 명식형과 나는 미안한 마음에 어렵게 등반대원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알고 있었어요. 당연히 선배님들이 등반해야죠"하는 말을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건네주고 우리가 사용할 장갑을 연기가 매운 것도 잊은 채 열심히 말려준다. 운회씨가 곁에 있는 것이 그렇게 믿음직할 수 없다. 6시가 가까울 때 쯤 드디어 철암 팀은 상단을 넘어서 토왕폭 최단시간 등반과 하루 2회 등반이란 기록을 만들어 냈다. 수직 빙벽길이만 해도 210미터가 되는 토왕폭을 2명이 3시간 30분에 등반했다는 것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스피드이다. 내일 상하단 등반을 위해 오늘은 일찍 자야한다. 철암 팀과 같이 식사를 하기 위해 김치볶음밥을 준비한다. 아직 상단에 붙어있는 팀의 톱은 3분의2 지점의 테라스를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20여미터를 오르고 있었다. 조금 있다 다시 올려다보니 테라스 위 30미터 지점쯤에 있어야 할 톱이 보이지 않는다. 벌써 넘어설 수는 절대 없다.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 분명히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테라스 40여미터 아래에 점이 보였다. 급히 망원경으로 살피니 꿈틀거리는 것이 위에 있던 톱이 추락한 것이다. 아찔하다. 70미터를 추락하다니. 자일도 끊어지지 않았고 확보물이 무사한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기에 앞서 추락자의 부상정도가 걱정되었다. 이미 상단에 올라선 철암 팀이 이 사고를 안다면 구조가 쉬워지겠으나 벌써 내려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명식형과 운회씨가 급히 장비와 비상식량을 챙겨 구조 준비를 하는데 사고를 당한 안양공전 팀에서 도움을 요청해 왔고 밑에 있는 청주사대 팀에서도 한 명이 올라왔다. 이미 날이 어두워져 좌측계곡으로 해서 상단에 오르는 것보다 중단에서 추락자까지 등반하는 것이 빠르다고 판단해 중단을 향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 허연 얼음 기둥은 더욱 음산하고 살벌하게만 보였다. 테라스에 희미한 불빛은 분명 두 개이었다. 망원경을 가져온 것이 천만다행이다. 철암 팀이 테라스에 내려온 것이다. 희미하게 "종관형"이란 외침만이 확인되고 수없이 애절한 고함소리만이 토왕단애에서 떨어져 오고 있다. 명식형과 운회씨도 식사를 안 했지만 종관형과 병모씨는 하루종일 힘든 등반을 하고 또 구조를 하고 있는데 몹시 걱정된다. 상단에는 불빛이 몇 개가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70미터 추락하고 추위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을 추락자가 제일 걱정된다. 망원경으로 관찰해보니 상단 빙벽에는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중단에만 불빛이 몇 개 있고 어떻게 된 것일까. 궁금증과 초조, 긴장으로 목이 탈 지경이다. 매달려 있을 사람들을 위해 모닥불을 더욱 환하게 지핀다. 불빛을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면 좋으련만. 절규와 고함이 뒤범벅되어 메아리치던 토왕폭이 조용해 졌다. 더욱 궁금하다. 한참후 10시반쯤에 위에서 2명이 모닥불로 오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내가 떨어졌던 사람이라고 말을 하니 깜짝 놀랬다. 이렇게 빨리 구조되다니 다친 곳은 없나 살펴보고 물어보니 찰과상도 없이 깨끗했다. 기적이다. 모닥불에 몸을 녹이며 물을 찾는 두 사람에게 음식을 권하니 간식을 먹어 괜찮다고 한다. 자초지종 물으니 두 사람은 10시쯤에 40미터 자일로 등반을 시작해 줄줄 흐르는 물 때문에 손이 시려 고생을 하며 상단 테라스에 도착, 철암 팀은 불안한 두 사람에게 쉬운 왼쪽으로 오르라고 충고했으나 왼쪽은 물이 흘렸고, 오른쪽은 물이 흐르지 않았으나 찍으면 박히지 않고 깨지는 얼음이었다. 결국 물이 무서워 오른쪽으로 올랐으나 왼쪽 허밍버드 아이스 햄머가 빠지며 추락했고 빌레이 보던 세컨드는 손목이 자일에 감겨 딸려 들어갔다. 2개 설치한 바트혹이 하나는 빠지고 하나는 반쯤 뽑혀 있었다. 추락자는 한참 떨어지는데 "앙카"를 외치지 않은 것 같아 "앙카"를 외치고 또 한참 떨어지더란다. 조금 후에 철암 팀과 우리 팀 모두 무사히 도착하여 식사를 마친 후 그 엄청난 구조이야기를 들었다. 안양공전 팀은 중단에서부터 선배란 친구가 철암 팀보고 잘 봐달라고 부탁하였다고, 올해 처음 구곡폭을 몇 번 오르고 잦은 바윗골 100미터 폭을 등반한 톱은 등반하는 것도 불안하려니와 바트혹을 설치하고도 픽켈에 매달려 빌레이 할 정도였다. 먼저 등반을 완료한 철암은 안양공전 팀과 같이 하산하려고 기다렸으나 시간이 꽤 지나도 톱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아 누군가 소나무에 준비해 둔 약 200미터의 원정용 휙스로프로 종관형이 하강해 보았으나 톱은 보이지 않고 공포에 질린 세컨드만이 있어 톱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추락했어요"라고 한다. 기가 믹힐 노릇이다. 추락자는 춥고 무섭다며 빨리 내려달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다친 곳은 없냐고 물으니 다친 곳은 없다고 한다. 종관형은 재빨리 스나그를 설치하고 휙스로프를 추락자에게 내려보낸 다음 끌어올려 묶여버린 세컨드의 손을 풀어주었다. 추락자를 중단에 내리고 세컨드도 중단으로 하강시킨 다음 종관형은 유마링해 상단으로 올라갔다. 중단에서 추락자를 받은 우리 팀, 청주사대 팀은 하단 위 나무에 확보하고 추락자를 80미터 자일로 내리려고 하니 겁에 질린 추락자가 안 내려 갈려고 해 호통을 치고 내려보냈단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80미터자일 2동으로 하단을 하강 내려왔다고 한다. 엄청난 상황에서 무사히 구조를 마치고 내려온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 국내에서 70미터를 자유낙하하고도 멀쩡한 사람과 자일은 처음일 것이다. 그 사람 올림픽 복권 사 볼만하다. (상단에 있던 200미터 휙스로프는 노자일 단독 등반한 인천교대 팀에서 비치해 둔 것이었음.) (86년 2월 2일, 흐림 약간 눈) 일찍 일어나 식사준비를 한다. 하단은 내가 선등하고 상단은 명식형이 선등하기로 했다. 날이 밝기 전에 기활형, 형수님, 상국형, 종선 형과 많은 회원들이 도착했다. 승용차와 봉고를 동원, 밤새 달려온 것이다. 정말 가슴 뿌듯하다. 적막감이 돌던 토왕골이 떠들썩하다. 소고기국으로 아침식사를 하지만 입맛이 없다. 등반장비와 지원장비를 챙기지만 부산하고 들뜬 마음에 빠진 것들이 없는지 모르겠다. 토왕을 위해 구입한 콘택트 렌즈가 눈에 들어가지 않으니 20여분 씨름하다 실패하고 안경을 벗고 등반하기로 한다. 지원조인 운회씨와 석근이는 먼저 출발한다. 같이 출발할 경우 중단에 등반조 보다 늦게 도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기활 형님이 빨리 내려오란 말씀에 천천히 하겠어요 라고 대답한다. 어제의 사고가 마음에 걸렸다. 명식 형과 서두르지 말고 안전하게 천천히 하기로 약속을 했다. 철암 팀은 얼은 자일에 패츨 유마르는 미끄러진다고 성능이 우수한 보나티 유마르를 빌려준다. 너무나 고맙다. 형님들과 회원들의 격려를 뒤로하고 서둘러 오른다. 숨이 차도록 하단에 도착하니 삼천포 팀이 80미터 원정용 가느다란 휙스 자일로 지금 막 스타트하였다. 왼쪽 끝으로 붙어 오르기 시작한다. 물이 약간 흐르고 있어 잘 박혀준다. 오늘은 목장갑에 오버미튼을 사용하니 손 시려운 것을 못 느낀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오르며 형님들과 회원들이 우측 길로 오르는 것도 보았다. 몸이 풀리지 않아 조금 힘이 드나 어느새 동대 테라스 위치까지 올라 왔다. 동대 테라스로 들어갔다 나오는 시간보다 바로 스나그를 설치하는 것이 훨씬 빠르므로 스나그 하나를 설치한다. 그 위 몇 미터는 아래보다 각이 조금 섰다. 조금 더 오른 뒤 그냥 오를까 하다 하나 더 박는다. 이젠 경사가 많이 죽고 빙질도 깨끗하다. 부지런히 찍고 올라 하단이 끝나는 곳에 스나그를 설치하고 완료 신호를 보낸다. 덥다! 재빨리 자일을 올리고 유마르로 빌레이한다. 우측 길에서 응원을 보내는 회원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한다. 정말 든든하다. 자일은 빨리 올라오고 있다. 명식형이 고정신호를 보내기 전에 스나그에 도착한 것을 느낀다. 우측 길에 있는 동건이가 텐트에 있는 기활 형에게 "기활형 나와? 오바"라고 소리친다. 동건이와 함께 있으면 항상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명식형의 빨간 헬?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명식형" 명식형은 웃음으로 대답한다. 한시간 10분 걸려 하단을 완료하고 명식형은 곧장 중단 지원조로 향한다. 스나그를 회수하고 뒤따른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러셀하며 지원조 가까이 가니 땅콩차 냄새, 소시지 냄새가 가득하다. 트렌시버로 기활 형님과 교신하며 생강차까지 곁들인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상단을 향할 무렵 삼천포 팀의 톱이 하단을 끝내고 후등자를 확보하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상단 스타트 지점은 꽤 멀었다. 눈 덮인 완경사를 삐올레 빤느망쉬, 트르와지엠 등 온갖 것을 다하며 오른다. 직벽이 시작되는 곳 오른쪽 볼트에 확보하고 선등하는 명식형을 하강기로 빌레이 한다. 바로 밑에 와 보니 더 쉬어 보인다. 가운데로 스타트한다. 10미터도 오르지 않았는데 스나그를 설치한다. 웬일일까? 설치한 스나그가 그냥 빠져버린다. 다시 박지만 마찬가지. 주위 얼음이 모두 비어있다. 할 수 없이 대충 걸어놓고 오른다. 불안한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난 명식형을 믿는다. 마음도 편안하다. 자일이 40미터 빠져나갔을 때 두 번째 스나그를 설치한다. 또 엉성하게 박힌다. 그냥 오르며 왼쪽으로 간다. 3번째 스나그는 든든히 박힌다. 차츰 시야에서 사라져 간다. 한참 후에 자일이 몇 미터 남았냐고 운회씨를 통해 물어본다. 8미터 정도 남았다. 조금 후에 완료신호가 왔다. 테라스까지 도착했다면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위는 쉬우니까 재빨리 출발신호를 보내고 스타트했는데 삼천포 팀이 밑에 와서 톱에게 오른쪽으로 가 달라고 한다. 자신들이 왼쪽으로 등반해야 하는데 낙빙 때문에 부탁한다고 "글쎄요" 자일이 바짝바짝 당겨진다. 첫 번째 스나그를 손으로 회수하고 미친 듯이 찍고 올라 두 번째 스나그를 회수한다. 합승이가 만든 스나그 회수기는 매우 편리하다. 왼쪽으로 트레바스하며 오르는데 빌레이가 느슨하다. 바짝 당기면 몸이 쏠려 밸런스가 나빠지기 때문인데 명식형의 완벽한 빌레이다. 얼음질이 상당히 나쁘다. 손가락을 수없이 부닥치지만 통증을 느낄 여유도 없다. 찍고 오르기를 지겹도록 하자. 명식형의 웃는 모습이 보였다. 손도 시럽지 않고 힘도 들지 않는다. 두 개의 스나그에 매달려 담배를 피운다. 어느새 눈발이 내리고 있다. 우측 길에는 아직도 회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왼쪽으로 명식형은 출발했다. 20여미터 오르고 스나그를 설치하며 손 시럽다고 한참동안 손을 푼다. 조금 오른 뒤 스나그를 더 설치하고 넘었을 때부터 보이지 않는다. 자일이 빨리 빠져나간다.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 후에 다시 빠져나가다 멈춘다. 담배를 꺼내 피우고 있는 중일 것이다. 햄머에 확보하고 스나그를 회수한다. 다시 자일이 당겨진다. 스타트한다. 쉽게 오른다. 2번째 스나그를 회수하자 경사가 많이 줄었다. 뛰어 오른다. 한참 뛰는데 왼발이 이상하다. 자동차 헛바퀴 돌 듯 헛발질을 한다. 아이젠이 벗겨진 것이다. 쉽게 벗겨진 로우 아이젠을 쉽게 다시 신는다. 소나무가 보이자 수년동안 토왕폭을 생각하며 꿈꾸던 벅찬 감동을 느끼고 싶다. 지난여름 이곳에 왔을 때는 지금 이 순간을 생각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는데 막상 담담하기만 하다. 억지로 들뜬 감정을 연출해보려고 해도 잘되지 않는다. 이런 순간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느껴질 뿐이다. 명식형과 굳은 악수를 하며 서로 수고했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오늘이 있기까지는 형님들의 못다 이룬 뜻과 아낌없는 지원의 성과이지만 특히 명식형의 빙벽에 대한 집념이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다. 비석쪽으로 나있는 길로 가 보았으나 누군가 되돌아 왔다. 왼쪽 계곡으로 하산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제 저녁 철암 팀이 하산한 흔적은 바람에 없어졌다. 계곡위로 올라가다 왼쪽 안부로 꺾어졌다. 나뭇가지 흔적 등을 살피며 눈에 빠지지 않게 길을 찾아낸다. 여름에 보았던 협곡인데 눈에 덮여 매끈하다. 그리세이딩을 하는데 명식형은 위험하다며 걸어가자고 한다. 그러나 눈의 상태, 각도 등을 봐서 절대 안전하다. 결국 명식형도 타고 내려온다. 약 25미터의 폭포를 자일 하강하여 계속 내려가니 희미하게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CA"로 응답하니 마지막 짧은 폭포 밑에 형님들과 회원들이 마중 나와 있다. 몇 시간만에 다시 보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기활 형님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형님들, 회원들이 너무 수고 많이 했다고 축하를 해주니 몸들 바를 모르겠다. 종관형, 병모씨도 축하를 해준다. 등반이 끝나자마자 전 회원이 바로 하산하기 위해 봉고차를 가져왔으나 우리는 내일 운회씨와 석근이가 토왕폭 등반을 다시 하기 위해 남아있기로 했다. 철암 팀도 우리가 졸라 같이 있기로 했다. 왠지 철암과 같이 있으면 든든하다. 짧은 기간동안 정이 많이 들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다. 계속 내리는 눈 속에 형님들과 회원들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하산을 했다. 석근이가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다. 석근이가 못하면 명식형은 세컨드로 등반한다고 하나 내가 해야겠다. 눈보라 속의 삼천포 팀은 톱이 상단 테라스에 도착한 상태다. 2명이 테라스에 모였을 때 이미 날은 어두워 졌다. 조금 뒤 불빛 하나가 밑으로 내려가고 또 하나의 불빛이 내려가는 듯 했다. 망원경으로 살펴도 상단 빙벽에 불빛이 없다. 잠깐 중단 설사면에 불빛이 반짝인다. 삼천포 등반대장과 또 한 명이 다급히 우리 캠프를 찾아왔다. 삼천포의 등반대장은 텐트에서 식사준비를 하느라 등반자들이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 알지 못했고 중단에서 지원을 하던 친구는 등반자들이 상단을 오른 뒤 좌측계곡으로 하산하겠으니 우측 길 휙스로프를 회수하여 좌측계곡으로 마중오라고 해 삼거리에서 몇 시간째 기다리고만 있었다. 즉, 그들은 등반자들이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의 하강을 하여 중단에서 우측 길로 내려오고 있으니 그쪽으로 마중 가라 하고 종관형, 병모씨가 동행했다. 등반자들은 좌측길 하강하는 곳에서 자일이 없어 묶여 있다가 던져준 자일을 받아 하강, 무사히 돌아왔다. 등반자들이 아침에 하단에서 앞질러간 우리를 나쁘다고 하자 등반대장이 나무랐다고 한다. (86년 2월 3일, 맑음) 남은 석유도 안보이고 텐트 안에 들어가 보니 등반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대원 모두가 김이 빠진 것 같다. 목적했던 것은 마치고 나니 긴장이 풀려 버린 것이다. 아쉬워하는 운회씨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일주일 뒤 설날에 다시 와서 등반하기로 해 모두들 마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철수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햇빛이 토왕골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 많은 식량이 남아 일주일 뒤에는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다. 식량과 약간의 장비를 데포 시킨다. 시진촬영을 마치고 하산한다. 뉴설악 파크 앞을 지날 때 보이는 토왕폭은 역시 어마어마하게 보인다. 터미널 대합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5일만에 세수도 한다. 버스 안에서 졸다 깨다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 이번 등반에서 형님들과 회원들이 바친 노력은 순수한 것이다. 모두의 아낌없는 지원, 구곡폭 훈련과 등반을 위해 잔일을 불평 없이 열심히 해준 석근이, 운회씨의 말없는 희생, 촬영을 담당한 용문형의 노고, 등반을 응원 격려하기 위해 밤새 차를 몰고 온 상국 형님, 종선 형님, 기활 형님의 보살핌, 새벽에 토왕골에 찾아든 회원들이 모두가 청악의 열화와 같은 팀웍이 아닌가. 또한 종관형, 병모씨와의 만남은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8. 토왕성 빙폭 개요 (1) 등반길이 토왕폭 전체의 수직 표고 차는 보통 320미터를 보고 있다. 그러나 상단, 중단, 하단으로 나누어져 있고, 완경사도 많기 때문에 실제 자일을 사용하여 삐올레 트락시옹(프론트 포인팅)을 하며 등반하는 곳은 이보다 작다. 즉, 이번 등반에서는 하단 70미터, 상단 140미터를 합하여 210미터이지만 적설량에 따라 다르다. 눈이 없거나 적어 중단이나 완경사의 얼음이 노출된다면 더 길어질 것이다. (2) 빙 질 토왕폭의 빙질은 우리나라 수빙폭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형태를 모두 갖추고 있다. 유리창 같은 청빙, 심한 고드름, 버섯형 얼음, 속이 빈 얼음. 썩은 얼음, 눈이 녹아 붙어 얼은 얼음, 얇게 층을 이루 고 있는 얼음 등등 경사와 바위형태, 수량, 기온, 바람, 습도 등의 인자들이 조합을 이뤄 각양각색의 빙질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등반에서 접하고 되는 어려움을 주는 빙질은 물이 흐르는 고드름이 주종을 이루며 매 끈한 얼음도 많지만 등반에 어려움을 주지 않는다. 등반을 준비하기 위해 대비한다면 고드름에 항상 물이 줄줄 흐른다고 가정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토왕폭의 빙질은 강원도 춘성군 구곡폭포의 빙질과 거의 같다고 인식되어진다. 그러나 많 은 부분들이 잦은 바윗골 100미터 폭과 유사하다. (3) 난이도 몇해전 "산"지에 실린 토왕폭의 전체 난이도는 6급 정도로 평가했으나 우리가 경험한 난이도는 5 급 정도였다. 빙벽의 난이도는 빙질과 경사도가 결정한다. 과거 여러 팀의 등반기에 보고된 경사도는 90도-95도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우리가 오 른 루트에서는 90도의 경사를 찾을 수 없었다. 모두 경사를 측정하는 기구를 사용하지 않고 감각 으로 보는 각도이지만 일반적으로 경사는 더 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등반 난이도라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빙질, 경사도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다. 등반길이와 어 프로치, 기후, 하산길 등 여러 가지 주변 상황 등이 그 요소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렵다 쉽다 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것이다. 3시간에 등반하는 사람과 10시간이 넘어 랜턴을 키고 등반하는 사람이 평가하는 난이도는 분명 다른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평가를 하기 위해 구곡폭과 비교를 한다면 어느 정도 자료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 을 것이다. 구곡폭은 50미터 정도의 등반 길이를 가지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매우 어려운 곳을 가지고 있다. 잘 아는 동굴 바로 위는 토왕의 어느 피치보다 어렵다. 따라서 나는 등반 기술 자체만으로 난이도 를 평가한다면 구곡폭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물론 구곡폭에도 토왕보다 쉬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곡폭 동굴쪽 같이 어려운 부분도 몇 미터에 그치고 그 부분만 넘으면 쉬워진다. 즉, 매우 어려워 체 력을 많이 소모했어도 잠깐이면 오르고 쉬어지는 곳에서 체력을 축적시킬 수 있다. 그러나 토왕폭은 수십 미터가 계속 직벽 상태이다. 비록 쉬운 루트를 택하여 오른다 해도 80도 정도의 경사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소 모된 체력을 복구하지 못하고 계속 뺏기는 것이다. 때문에 열심히 운동하지 않은 사람들은 매우 힘 들게 등반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곡폭을 평균 50회 등반 훈련했고 구곡폭을 계속해서 6번 오른 적 도 있다. 그런 경험을 토대로 토왕과 구곡을 비교한다면 다음과 같다. 토왕 상단은 구곡폭을 3회 연속 등반한 것과 비슷한 체력소모를 느꼈다. 9. 기 타
이번 등반에서 계획했던 목적은 빙폭 등반 훈련의 효과 분석 및 토왕성 빙폭 등반에서의 문제점 연구이었다. 한달간의 구곡폭 훈련에서는 실제 토왕폭 등반에서 발생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설정하여 훈 련에 임하였으나 그 훈련 내용이 치밀하거나 완벽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훈련기간 중 이룩한 기술적, 체력적 성과와 장비의 선택과 사용 등은 가치있는 것이었다. 이런 점들은 앞에서 보고된 바 있고, 그것들은 토왕폭 등반에 바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계획을 세울 당시만 해도 우리에게 있어서 토왕폭이란 존재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토왕폭이 몇 십 차례 등정되고 단독등반이 나오고 해도 우리에게는 높게만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단지 오른다는 그 자체의 곤란성보다는 만약의 사태에 따른 그 주변 상황에 대한 조심성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눈사태에 대한 대책, 체력안배를 고려해 한 피치를 40미터, 핏치당 확보물 수를 3개 이상, 등반후 하산 루트 문제, 정상 비박 장비 지원, 지원 루트의 고정자일 설치, 조난시 대책 등의 계획들은 훈련 과정에서 많은 수정과 보완을 했다. 또한 토왕골에 캠프를 설치하고 상황에 따라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은 없에거나 변경을 했다. (2) 캠프 생활 사실 이번 등반에서는 아늑한 캠프생활을 못했다. 겨울등반에서 아늑한 캠프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이제까지 우리의 어떤 겨울캠프보다는 불편했던 것이다. 계획했던 2-3동의 텐트 설치는 무게 때문에 1동으로 줄었고, 눈사태에 대비해 높은 나무와 텐트를 자일로 연결한다는 계획도 안전한 지대를 택했기 때문에 실행하지 않았다. 4명의 대원과 많은 장비가 있는데 한 동의 텐트밖에 설치하지 못했고 따라서 많은 장비와 식량들이 계속 내리는 눈 속에 범벅이 되었다. 눈 위에서 텐트 자리를 다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단단하게 오랫동안 다져야 장기간의 텐트생활에도 옴폭 들어가는 곳 없이 평탄하고도 넓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텐트는 급하게 적당 눈을 다져 설치해 자주 사용하는 중앙 부분만 옴폭 들어가 양쪽이 경사가 져 4명이 누워도 비좁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2동의 텐트를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설치하고 한 동은 취침용, 한 동은 식당 및 창고용으로 사용했다면 얼음과 눈을 녹이는 불편도 없고 설거지도 깨끗이 하고 밖에서 떨며 취사하지 않고 눈에 범벅이 되는 장비도 없이 겨울 캠프생활의 정취를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장비의 정리이다. 개인의 장비는 잡주머니 등을 이용해 여기저기 뒹구는 것 없이 정리하고 공동 장비 또한 알뜰히 정리해야 하고 사용후 반드시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 텐트 안과 밖에서 구분없이 이것저것 뒹굴고 사용후 원위치 되지 않아 필요한 것을 찾기 위해 온 캠프를 뒤지는 일이 발생되는 것이다. 이런 이런 점들은 관심밖에 것들이 되기 쉬우나 사실 등반에서 정신적인 스트레스, 팀웍 등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3) 장 비 장비에 대해서는 상세히 보고된 바 있으므로 등반자일에 관해서만 보고하겠다. 계획안배를 감안한 것이었다. 80미터 자일을 사용할 경우 80미터를 계속 치고 오를 체력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80미터 자일의 사용이 시간적, 체력적인 면에서 훨씬 유리한 것이다. 40미터를 사용할 경우 총 6피치를 끊어야 하므로 그만큼 확보물 설치 회수가 늘고 직벽에 매달려 빌레이 보는 회수와 시간도 많아지게 되므로 전체적인 시간과 체력의 낭비가 심한 것이다. 80미터를 사용하므로서 총 3피치에 좋은 테라스를 이용해 매달려 빌레이를 보는 어려움 없이 등반을 할 수 있었다. (4) 하산 루트 동계 토왕폭 정상의 어프로치는 좌측 계곡이 가장 편리할 것이다. 하계때 본 좌측 계곡은 심한 경사의 협곡으로 많은 돌 사태의 위험을 안고 있어 통과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러나 동계에는 눈이 험한 계곡을 미끄럽게 덮어 주므로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토왕폭을 등정후 하산할때는 완만한 계곡 상류 쪽으로 200여미터를 오르며 왼쪽 능선이 완만해지는 안부로 꺾어져 계곡으로 내려가면 계곡 눈 사면을 글리세이딩하며 내려갈 수 있다. 물론 적설량에 따라 빙폭 노출이 되는 곳도 있다. 중간지점쯤에 약 25미터에 70도 정도의 빙폭이 나오는데 자일 하강을 하면 된다. 계곡을 다 빠져 나와서 마지막 작은 폭포가 있는데 픽켈과 햄머를 찍으며 내려올 수 있다. 하산시간은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또한 이 계곡을 통해 상단 정상에도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는데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이다. 10. 토왕폭과 조난 토왕폭이 초등 된지도 10년째가 됐다. 초등당시 14일이라는 등반기간이 해를 거듭 할수록 단축되었고 장비의 발전과 더불어 좀더 새롭고 수준 높은 등반형태가 발전되어 왔다. 십여번 등반 될 때까지만 해도 그 기록들이 정리되었지만 이제는 몇 팀이 등반했는지 조차 확인되지 않을 만큼 많은 팀이 등반했다. 추측컨대 100회 이상 등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토왕성 빙폭 등반이란 기치도 차츰 격하되어지는 것 같다. 지금의 토왕폭이 초등 당시의 토왕폭에 비해 경사가 약해 졌거나 길이가 짧아진 것도 아닌데 여성이 올랐다해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고 당연한 흐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토왕성 빙폭 등반을 토왕성 빙폭 훈련이라 명명한 팀은 없는 듯 싶다. 등반과 훈련의 경계와 한계는 이렇다 하고 정의 내릴 수 없는 문제이지만 토왕성 빙폭 등반이라고 그 타이틀을 정하는 것은 토왕성 빙폭을 오르기 위해 훈련을 한다는 점에 있는 것이다. 훈련 등반을 위해 훈련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토왕폭을 단독 등반하고 2-3번 서너 시간에 오른 클라이머들도 토왕폭을 오르기 위해서는 운동을 하고 연구를 하고 장비를 점검하는 등의 준비에 소홀하지 않은 것이다. 등반의 진정한 가치도 바로 그런 행위에 있는 것이다. 남들은 쉽게 오르는데 나는 못할 것 없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즉흥적인 등반욕에만 빠져 운동, 연구 준비, 치밀한 계획 등을 소홀히 한다면 어쩌다 등반했다고 해도 스스로의 만족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점들이 좀더 완벽한 등반을 해야겠다는 의지로 승화됨으로써 등반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의 이번 등반기간 중 여러 팀의 등반 모습을 보아왔다. 그 중에는 이제까지의 어떤 토왕성 빙폭 등반보다는 앞선 등반을 보여준 팀이 있는가하면 추락과 조난이란 상황에 빠져 다른 팀들에 의해 구조를 받는 팀들도 있었다. 그 조난 상황은 앞서 보고된 바가 있고 여기서는 그 직접적인 원인들과 직접 조난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거나 무사히 빠른 시간에 오른 팀의 등반 스타일에서 조난의 숨겨져 있는 요소들을 순서 없이 열거해 본다. 테크닉이 부족하다. 비상용 아이스 햄머 없이 오른다. 장비를 잘못 사용한다. 8밀리미터 고정용 로프로 토왕폭을 등반하러 한다. 기록에만 너무 집착한다. 동계등반 경험이 부족하다. 비상 자일이나 식량도 없이 등반한다. 늦은 시간에 등반을 시작한다. 필승의 자세가 없다. 상황판단 능력이 부족하다. 그 원인과 조난 요소들을 상세히 살피자면 끝이 없다. 깨끗이 등반을 성공하는 팀들은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조난을 당한 팀들에게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11. 결 론 토왕폭 등반을 마치고 이반 슈나드의 "아이스 클라이밍"을 열심히 읽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90년대에 유럽 알피니스트들의 꿈은 알프스 3대 북벽을 오르거나 그 중에 하나만이라도 등반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 북미의 클라이머들에게는 알프스의 3대 북벽과 같은 의미의 존재가 그랜드 티튼이었다. 등반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는 슈나드에게도 그랜드 티튼을 반드시 오르겠다는 꿈이 있었다. 마침내 1958년 파트너와 함께 그랜드 티튼을 수시간내에 그것도 너무 쉽게 해치우고야 말았다. 며칠 뒤 슈나드는 책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일전 그랜드 티튼을 속공 등반한 클라이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자기 꿈이 실현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오랜 꿈이던 그랜드 티튼은 그렇게 높고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시시할 정도의 등반 이였기에 그는 그 등반을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후 슈나드는 춥고 눈보라 치는 그랜드 티튼을 찾아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비박을 하며 처참할 정도로 힘들게 올랐다. 12. 소요 경비 수 입 : 회비-672,600, 서원교-34,000, 남동건-45,000, 대원-80,000, 기타-32,000, 계-863,600
기 타 원래 대원 3명으로 등반 완료시까지의 경비를 742,100원으로 계획하였으나 도중에 대원 1명이 추가되었으며 또한 2차 등반대가 편성되므로서 전체 경비는 863,600원이 소요되었다. 하나 계획시부터 식량 장비 등 많은 부분을 회원 부담 원칙으로 하였기에 수치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 많다. 매주 토요일마다 구곡폭으로 수송되었던 쌀과 부식(간식)은 회원들의 정성 어린것들이었으며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것들이 무상으로 보급되었으니 토왕폭 등반 자체는 회원 모두의 것이었다. 또한 등반 대원용 장비를 포함한 기타 지원 등반 장비 약1,000,000원이 회원 부담으로 소요되었으나 상기 경비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등반 당일 지원대의 경비121,700원까지 포함하면 실제 총 소요경비는 약2,000,000원이 넘는 것이니 청악으로서는 벅찬 등반 규모였음에 틀림없으리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