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설악 2차 훈련 등반 보고서
남 동 건
1월2일(일요일 맑음)
동마장 터미널(06:20) - (11:10) 물치 - (13:07)설악동 - (15:10) 잦은 바위골 입구
원래는 현명식 대원 가담하기로 되었으나 개인 사정으로 인하여 못가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2차 훈련대는 3명밖에 되질 않았다. 선발대와 도킹하기로 한 우리는 약속시간인 17:00보다 약 2시간이 이른 15:00에 잦은 바위골 입구에 도착했다. 지쳐있을 선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심, 서 두 대원은 텐트 칠 자리를 물색하고 모닥불을 지펴 놓았다. 그리고 남대원은 양폭으로 마중 나갔다. 계획대로 운행이 된다면 선발대는 16:00쯤 양폭산장에 도착했어야 했다. 그러나 18:00까지도 양폭에도 도착되질 않는다.
19:00가 넘어 마중을 나갔다 돌아온 남대원이 하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선발대로부터 거의 모든 장비를(버너, 코펠까지도)인수받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21:00가 되어서도 선발대가 도착하지 않으니 첫날부터 비상식을 깨트릴 수밖에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길이 미끄러워 양폭에서 1박하고 올 것으로 생각하며 첫날을 비박으로 결정했다.(22:30)
1월 3일(월요일) 쾌청
00:10, 잠결에 아련히 "CA" 하는 우리 서브가 귓전을 울린다. 약속 시간보다 약 7시간이 늦어서야 선발대가 도착한 것이다. 02:30에 식사를 마치는 모두들 골아 떨어져 버렸다. 어느 정도 지쳐있는지 감이 잡힌다. 07:00에 다시 기상하여 몇가지의 장비를 인수받은 다음 선발대와는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상경하는 선발대를 따라 남대원이 속초까지 따라 나가 부족한 부식과 연료를 형님들의 도움으로 보충해 가지고 왔다. 그 동안 심, 서 대원은 계곡 안쪽으로 모든 장비를 옮겨놓고 베이스를 설치하였다.(16:30) 내일부터의 등반에 대비하여 오늘은 일찍 취침에 들어갔다.(21:00)
1월 4일 (화요일) 흐림
06:00에 기상하여 보니 겨울 날씨 답지 않게 너무 따뜻했다. 러닝 셔츠만 입고 계곡물에 머리를 감을 수 있을 정도였다. 긴급 논의 끝에 이런 날씨로는 50미터폭 등반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하여 건폭으로 떠나기로 하였다. 간단히 장비를 꾸려 베이스를 출발(07:35)하여 양폭에 도착하니(08:45) 마찬가지로 영상의 기온이다. 날씨가 계속 이렇게 따뜻하다면 이번 훈련에 문제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건폭에 도착(09:40)하니, 역시 얼음은 별로 좋지 않았다.
다른 팀도 따라왔기 때문에 우리가 먼저 등반을 하기 위하여 바로 아이젠을 신고 등반을 시작하였다. 심대원이 톱으로 남, 서대원의 순서로 등반을 했다. 톱으로 오른 심대원이 마지막 피치에서 아찔한 순간을 넘겼을 뿐 모두 순조롭게 올랐다. 심대원의 말로는 처음 사용해 보는 허밍버드의 성능이 아주 우수하다고 칭찬한다. 이런 식으로 오른다면 중식후 한번 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심대원이 하강하면서 서대원한테 자일을 회수할 수 있게 풀어놓고 하강하라고 그렇게도 부탁했건만 묶어 둔 채 그냥 내려오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자일 회수를 위해 심대원은 불안한 상태에서 다시 올랐다. 뒤따라서 서대원도 올랐다. 남대원은 건너편에 있는 100미터폭만 오르락내리락하다 건폭에서의 시간을 다 보냈다. 16:00에 중식을 하고 16:20에 건폭을 출발한 후 뛰다시피 베이스에 도착하니 이미 설악의 밤은 시작되었다.
1월 5일(수요일) 맑음
모두 피곤하였는지 늦잠을 잤다.(09:00) 서둘러 아침을 먹고 50미터폭을 향해 베이스를 출발했다.(09:40) 10:50에 도착하여 얼음 상태를 보니 겉으로 물이 흐르고 있을 정도이다. 어제께 밤에 간간이 뿌린 비와 진눈깨비로 상태가 더 나빠진 모양이다. 좌측으로는 약간 덜 흐르는데 오른쪽은 거의 다 녹아내려 등반이 불가능할 것 같다. 중앙으로 오르기로 하고 스타트에 스크류를 박았으나 이네 헐거워져 흔들려 버렸다.
먼저 심대원이 올랐다. 가운데 얼음은 거의 계단식이었다. 그래서인지 함마는 찍을 때마다 손가락이 얼음에 먼저 닿아서 다 올랐을 때는 왼쪽 손가락 4개가 퉁퉁 부었다. 또 2/3지점서부터는 물이 더 많이 흘러내려 3명 모두가 흠뻑 젖어 버렸다. 완등후 뒤돌아 본 경사는 정말로 절경이었다.(차후에 들은 이야기이나 설악에서도 손꼽을 만한 것이란다.) 여기서 기념촬영을 하고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뒤 100미터로 다시 향하였다.(12:00) 예측대로 50미터폭 보다도 더 못했으며 상단부는 아예 얼음도 얼지 않은 상태고 그것마저 중간중간 구멍이 뚫려 있어 등반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였다.
하단을 픽켈로 한번만 찍으면 식수를 구할 정도였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오늘은 베이스 캠프의 청소와 정리 문제로 일찍 하산하기로 했다.(14:10) 베이스에 거의 다 와서 서대원이 알코올을 습득하는 큰 수확을 올리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역시 식사 때마다 거르지 않고 해온 "고시래"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젖은 옷을 말리며 한잔 두잔 꺾어지는 술잔에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른다. 쉰길폭으로 베이스를 옮길까하는 계획을 세우며 하늘을 바라본다.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설악의 밤하늘을 수놓고 있구나.(22:40)
1월 6일 (목요일) 맑음
오늘 역시 50미터 훈련 등반 계획으로, 50미터로 향하였다.(08:00) 50미터에 도착하니 어저께 들어와서 비박한 팀이 3명 있었다. 빙벽은 어제보다 더 형편없어서 스크류를 박고 손으로 돌려 회수 할 정도였다. 심대원이 첫피치를 오르며 약간 내키지 않는 듯 망설였다. 그러나 우리 뒤로 또 한 팀이 올라와 있어서 그냥 오르기로 했다. 어느 면으로 보면 단단한 얼음보다 피켈과 함마 찍는데 훨씬 힘이 덜 드는 것 같다. 중간 부분에서는 피켈을 찍으면 그 자리서 물이 펑펑 솟았다.
이렇게 해서 3명이 모두 오르는데 불과 1시간밖에 소비되지 않았다.(10:30) 그래서 이번에는 다시 하강하여 좌측으로 올랐다. 비록 얼음은 얇았지만 직벽에 가까울 정도이다. 연속으로 세 번 등반하고 나니 저절로 얼음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는 듯 하다. 역시 빙벽 등반은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오늘 등반에 대한 큰 보람을 느끼며 하산하는 도중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계곡에서 나무를 해가기로 했다. 역시 그 방면도 서대원이 꽉 잡고 있어서 누구 하나 따를 자가 없다. 베이스에 도착하여 폭포로 떨어진 나무를 건져보니 5일 동안은 때고도 남을 정도의 양이었다. 석식을 마치고 불가에 둘러앉아 밀전을 부쳐먹는 동안 어느 대원인가가 설악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1월 7일 (금요일) 흐름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빙벽 등반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으나 쉰길폭으로 베이스를 옮기는 것도 역시 불가능했다. 오늘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아침 일찍부터(05:30) 김밥을 점심으로 만들어 대청을 다녀오기로 했다. 서대원은 베이스에 남아 있기로 하고 심, 남 두 대원만이 대청을 향해 출발했다.(07:30) 양폭에 도착하니 기온이 영상 4도나 되었다.(08:30) 휘운각에 오를 때 진눈깨비를 동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휘운각에서 싸가지고 온 김밥을 먹고 다시 출발했다.
소청을 못 가서부터 가스가 차기 시작하여, 소청에 올랐을 때는 옆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가스와 바람이 불어닥친다. 중청을 지나고 부터는 바람에 쌓인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곳도 있다. 진행하는 동안 계속해서 거센 바람이 얼음 알맹이와 함께 얼굴을 때린다. 앞으로 전진할수록 바람은 더 거세게 불어왔고 가스가 차 있어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때마다 나무에 핀 설화만이 바람에 흔들리며 손님을 유혹하는 술집아가씨 마냥 시야를 감미롭게 한다. 중청을 지나 얼마나 더 계속 능선을 따라 내려갔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있지 않은가! 심대원이 아무래도 대청을 그냥 지나친 듯 하다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가지고 온 초콜릿을 먹으며 현 위치를 생각해 보았으나 알 수 없었다. 만약 대청을 지나쳐 왔다면 다시 빽 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의 가스는 걷힐 줄 모르고 계속해서 바람은 거세게 불어 왔다. 중청을 지나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쳐 온 것만은 사실이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면서 대청 비슷한 완만한 능선을 오를 때 심대원이 1708미터의 팻말을 보고 뛰어 올라가 확인하려고 했으나, 검은 돌 위에 얼음만 덮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가 길을 잃지 않았나 하는 두려움과 귀신에 홀린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소청으로 되돌아서, 분명 대청쪽을 바라보았으나 짙은 가스 때문에 주위의 능선과 봉우리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심한 바람과 얼음 알맹이 때문에 얼굴조차 바로 들지도 못했다.
우린 분명히 대청봉을 지나 어느 이름모를 능선으로 내려갔다가 돌아 온 것으로 생각하며, 급히 하산을 시작했다. 베이스에 도착하여 지도를 펴 보니 아마도 대청을 지나 오색약수터쪽 능선으로 내려갔었던 것 같다. 아무튼 대청을 다녀와서 또 하나의 무엇인가를 우리는 배울 수 있었다.
1월 8일 (토요일) 맑음
이런 기후로는 더 이상 설악에서 머무를 수도,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1주일간의 동계 훈련 등반을 여기서 마치기로 하고 상경할 것을 결정했다. 일찍부터 베이스를 철수하기 시작하여 12:30에 설악을 빠져 나왔다. 속초행 버스에 오르자 차장 밖으로 토왕폭의 장엄함이 스쳐 지나간다.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속초에 도착하여 그 동안의 피로를 한잔의 술과 오징어 회로 풀어 버린다.
(등반이 끝난 후 서대원의 직장이 있는 울진에 들려 하루 묶고 심, 남 두 대원은 부산을 거쳐 거제도의 해금강을 찾았다. 은행 카드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하계 등반시 계획될 해벽 코스를 정찰하고 12일 상경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