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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11:31-35(215) 탐욕의 무덤(기브롯 핫다아와) 2026/ 3/ 1
역사가로 알려진 헤로도투스(Ἡρόδοτος ὁ, B.C. 484~425)는 서양 문화에서 그는‘역사학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역사가입니다. 기원전 440년에 <역사>라는 책을 집필하였는데, 이 책에서 오늘날 역사(라틴어 historia)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여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로 인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결과 헤로도토스가 쓴 《역사》는 서양 최초의 역사책으로 여겨지면서 헤로도투스를 역사학의 아버지로 존중합니다.
이 책에 보면, 엄청난 부함이 재앙이 된 고대 사례를 언급하고 있는데, 고대 리디아 왕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크로이소스(Croesus, BC 595~546)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크로이소스왕은 세계 최초로 표준화된 금화와 은화(일렉트럼)를 발행하였고 제도화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은 부(富)의 대명사로 남아‘크로이소스만큼 부자(rich as Croesus)’라는 관용구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서양인들은 막대한 부를 가진 사람에게 ‘크로이소스 같은 부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렇게 막대한 부함을 가졌던 크로이소스 왕은 당대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로 불렸지만, 오만과 과신에 빠져서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게 멸망당해 버립니다. 너무나 허무하게 멸망해 버린 크로이소스 왕을 두고 그리스의 현자 솔론은 ‘복은 준비된 인격 위에 있을 때 축복이 되지만, 준비되지 않은 마음 위에 있을 때 재앙이 된다.’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아무리 부와 명성을 가졌어도 그것을 누릴만한 자격이 되지 못한다면, 그 부귀와 명성은 도리어 화근이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주는 말입니다.
성경 중에도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을 인간이 올바르게 누리지 못하거나 정당하지 못하게 사용할 때, 주어진 복이 도리어 화로 변하여 재앙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민수기 11장의 내용 역시 ‘주어진 복이 도리어 화가 되는 사건’이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민수기 11장은 어떤 내용인가 하면, 하나님의 인도로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향하여 광야 생활을 하고 있던 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출애굽 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섞여서 애굽을 탈출한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의 사람들이 광야 생활을 하는 중, 불평불만을 가지고서 악한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동하기 시작합니다.
그 선동의 내용은‘에굽에서는 생선도 먹고,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고서 우리의 기력이 강해졌었다. 그런데, 지금은 원기도 북돋아 주지 못하는 만나 외에는 우리 앞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은근히 애굽 생활을 사모하게 만들면서 백성들을 선동합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굽 땅에서 휴가 즐기면서 휴양생활을 한 것이 아닙니다. 에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면서 죽을 고생 하고, 개 돼지처럼 학대 받던 시절이 불과 며칠 전입니다.
자신들이 노력해서 400년 노예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 받고 에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에굽에서 탈출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합니다.
비록 물 한 모금 먹을 수도 없고 풀 한포기 나지 아니하는 광야 사막을 통과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알뜰살뜰 챙겨 줍니다. 반석을 통해서 시원한 생수를 주십니다. 애쓰고 수고하며 고생할 필요도 없이,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어 먹거리를 해결하게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베푸심과 챙겨 주시는 은혜는 싸그리 잊어버리고 불평과 불만을 쏟어 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불평과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백성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면서 선동질 합니다.‘광야 생활보다 애굽의 생활이 그립고,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보다는 에굽에서 먹던 세상 음식이 더 좋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반기를 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불평과 불만은 소리 소문 없이 사람들 사이에 쉽게 퍼지게 됩니다. 온전하게 감사하는 사람들을 쉽게 감염시켜서 불평과 불만의 자리로 이끌어 내립니다.
1. 불평과 불만은 하나님의 뜻을 절대 이루지 못합니다.
제가 중부산노회의 미자립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미자립위원회는 노회 안에서 자립하지 못하여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와 목사님들에게 재정적 도움을 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중에 미자립교회 목사님들을 모시고 식사를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모임 중에 목사님 한 분이 유달리 불평과 불만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모든 분들이 다들 힘들게 목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목회학에서 ‘10명 교인이면 10명 시어머니고 100명 교인이면 100명 시어머니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 바라보면 실망하게 되고, 사람만 바라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불평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서재실로 돌아와서 불평과 불만의 전염에 대한 책을 읽어 보면서 제가 깨닫는 것이 많았습니다. 불평과 불만은 단순한 감정 표현처럼 보이지만, 관계와 공동체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일으킵니다. 불평과 불만이 왜 나쁜 것인지 일부의 내용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불평은 정서적 전염(Emotional Contagion)이 됩니다. 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불평하면 주변 사람들의 기분, 동기, 에너지 수준이 함께 낮아집니다. 그 결과 팀 분위기 침체, 집중력 저하, 생산성이 감소되면서 부정 언어 노출이 팀 성과를 떨어뜨린다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2) 불평은 신뢰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지속적 불만은 다음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달합니다. ‘이 환경은 잘못되었다.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피해자다.’이 태도가 반복되면, 리더에 대한 신뢰가 약화되고, 동료 간 의심이 증가하면서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 결과 결국 공동체의 심리적 안전감이 무너집니다.
교회의 어느 한 사람이 불평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소속된 전도회가 흔들립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흔들리는 모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 구성원 중 어느 한명이 지속적으로 불평과 불만을 드러내게 되면, 결국은 그 가장 전체가 손쉽게 무너지고 흔들리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3) 불평은 갈등을 증폭시키게 됩니다. 내가 힘들다고, 내가 어려움을 일방적으로 겪는다고 불평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불평은 문제 해결로 연결되지 않고, 편 가르기를 통해서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지게 됩니다.
역사적으로도 집단적 불만이 확산되면 작은 갈등이 구조적 위기로 확대됩니다. 이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이 속해져 있는 민수기 13–14장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은 ‘단순한 감정 표출을 넘어 공동체 전체를 광야 40년 형벌’이끌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앙생활에 불평은 결코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가정에서 불평은 가정공동체를 쉽게 무너뜨리는 핵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친구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불평과 불만을 자주 쏟아 내는 사람은 존중받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불평하기 보다는 감사하는 모습을 보이십시오.
여기서 중요한 균형을 드러내는 기준이 등장합니다. ‘모든 불만이 다 나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건설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위한 피드백을 보이면서 불의에 항거하는 모습은 성도로서 해야만 되는 행동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결을 향한 불만이 아니라 관계를 해치는 반복적 불평은 하지 말라’는 기준을 잊지 마십시오.
2.기브롯 핫다아와의 교훈을 기억합시다.
34절,‘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에굽에서 먹던 기름진 음식과 고기를 먹지 못해서 육신이 쇠약해 진다’고 계속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고기를 먹여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기를 주시되,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간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 까지 한 달 동안 먹여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0절, ‘냄새도 싫어하기 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에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하는 말은 ‘코에서 고기 냄새가 나서 고기란 것에 대하여 질리도록 먹게 하여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메추라기 떼를 불러 모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뿌립니다.
먹고 싶다는 고기를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도중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33절,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노예생활에서 탈출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리고 불평한 백성들입니다. 죽지 않고 살아 나온 것을 감사하지도 않으면서 고기 먹고 싶다고 투정 부리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 백성들입니다. 이렇게 감사는 다 땅에 쏟아 버리고 탐욕만 가득 채우면서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던 모든 자들이 다 죽임을 당합니다.
그 후 하나님의 심판하심 속에서도 긍휼로 살아남은 자들이, 죽은 사람들을 모아 장사를 지냅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을 함께 묻어 장사지낸 장소를 “탐욕의 무덤”이라는 뜻을 지닌 “기브롯 핫다아와” 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탐욕의 무덤이라는 기브롯 핫다아와는 우리가 가야할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탐욕의 무덤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탐욕의 무덤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장소로 가야 합니다. 찬양 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비록 내 현실이 어렵고 힘든 것이 있어서 순간순간 불평이 나오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내 불평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흔드는 헛된 행동은 해서 안 됩니다. 나의 불평과 불만을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성도들에게 전염시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안 됩니다.
탐욕의 무덤이 아니라 감사와 찬양의 자리는 늘 만들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길갈(Gilgal)’이라는 지명이 등장합니다. 길갈은 여호수아 4-5장에 그 내용이 등장합니다. 길갈에서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길갈은 순종의 시작점으로 소개된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건넌 후 처음 진 친 곳이 길갈입니다.
길갈에서 400년 에굽 종살이동안 하지 못하였던 ‘할례를 회복’합니다. 길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올바르게 살고 순종하겠다고 다짐하던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길갈의 의미는 ‘에굽의 수치를 굴려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길갈은 욕망의 폭발이 아니라 언약의 회복이 있었던 자리입니다.
<기브롯 핫다아와>와 <길갈>의 두 장소에 대한 구분을 하면 이런 도표가 등장합니다.
기브롯 핫다아와:‘탐욕 → 심판 → 죽음’// 길갈: ‘순종 → 정결 → 새 출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탐욕에서 심판으로 이어지고, 결국 이 심판은 죽음으로 종결되는 <기브롯 핫다아와>의 길로 걸어가는 성도가 되지 맙시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순종의 증표로 돌을 쌓고, 정결함을 드러내면서 새 출발의 장소로 명명된 <길갈>의 자리로 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 소망합니다. 3월의 모든 시간이 불평과 불만에 의한 탐욕으로 무너지는 시간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세워지고 은혜의 자리로 세워지는 모든 시간이 되길 축복합니다.
매년 12월 초가 되면 강화도 최북단에 있는 조그만 봉우리에 성탄 트리가 점화되어 한 달동안 어두운 북녁 땅에 복음의 빛을 밝히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애기봉”이라는 곳입니다. 이곳 역시 얽힌 사연이 있으나, 그 내역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아니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린아이를 표시하는 “애기”가 아닙니다. “애기봉”이라고 말하는 애기의 한자를 풀이하면, 사랑 愛자와 기생 妓자를 쓰고 있습니다. 즉 “사랑스러운 기생 봉우리”라는 것입니다. 왜 이런 흔치 아니하는 이름을 그 경치 좋은 곳에다가 붙였을까요?
그것은 한 기생이 자신과 약속한 약조를 이행하느라, 자신의 정절을 지키고 돌아오지 아니하는 남정네를 기다리느라, 바다가 보이는 봉우리에서 죽었다는 슬픈 사연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훗날에 그 기생을 기리느라고 그곳의 이름을 애기봉, “사랑스러운 기생봉우리”라는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슬픈 내용이지만 사랑에 목숨을 바쳤던 여인을 기리는 장소였습니다.
비록 “탐욕의 무덤”이라는 무서운 뜻을 가진 “기브롯 핫다아와”지명이지만, 이 지명 속에는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놀라운 사랑이 있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31절,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 내리게 한지라’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두 가지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1)‘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서 바다에서 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하고 있는 진으로 임하게 했다’
중동지역 조류에 대해 연구하는 많은 조류학자들은 ‘이 메추라기들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동하였다면, 절대로 이스라엘 백성이 거하고 있는 이 광야 사막에 올 수 없다’고 합니다. 오늘날에도‘메추라기들은 봄에 아프리카 내륙에서 출발하여 매우 큰 떼를 이루어 북쪽으로 무리지어 날아가는 것이 정상적인 이동 경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사 바람의 방향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 결과 메추라기들이 날라 와서 백성들이 거주하고 있던 주거지 전역에 쏟아져 내립니다.
2)너무나 많이 쏟아져 내린 메추라기입니다. 31절 하반절에‘두 규빗(3 feet,90CM)높이’라고 말합니다. 32절 하반절 ‘적게 모은 사람도 하루에 10 호멜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호멜이란 단어는 구약에 사용된 부피를 측량할 때 사용하는 명칭인데, 10 호멜을 오늘 날의 무게로 환산하여 보면, 10호멜은 10호멜은 약 22말, 4가마니나 되는 엄청난 양입니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이 거둔 메추라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인을 위하여 나누어 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보관하여 자기만을 위해 두고 두고 먹으려고 메추라기 고기를 텐트 사면에 널어 말리는 탐욕을 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마 6:25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해결책과 행동 방법은 무엇일까요? 마 6:31절,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기도가 있습니다. 내게 없는 것 불평하지 말고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도록 합시다. 내 것 지키려고 욕심 부리면서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외면하지 맙시다.
이제 봄이 다가오는 3월의 시간에 우리는 머물고 있습니다. 춘삼월 3월이라는 말만으로도 훈훈해지는 계절입니다. 불평하지 말고 탐욕 부리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는 3월의 모든 시간이 되길 축원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