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둔터니' 마을로 온 이래, 그러니까 닷새 만에 흙집 내 방에서 잠을 잤는데, 처음으로 잘 잤다고 볼 수 있다.
상범은 밤 11 시가 되도록 집요하게 보일러에 매달려 있었지만, 끝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방은 어제 저녁 무렵에 내가 불을 지펴놓았었기 때문에 자는 데는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을 때고 처음 몇 시간은 덤덤하던 방이, 조금씩 미지근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더니... 한 번 달궈진 구들장은 새벽녘에도 그 열기가 식지 않았다.
그러니까 보일러를 놓으면서 보일러 호스 두께 만큼 방바닥이 더 두꺼워져서, 한 번 뜨거워지는 게 시간이 걸린 것처럼 식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방이 돼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비록 위풍은 셌지만, 불땐 방에서 개운하게 잠을 잘 잤던 것인데,
그것 만도 어딘지......
게다가 오늘은 날이 좋았다.
특히 오전에 날씨가 좋으니 어제까지 질퍽거렸던 마당의 흙이 조금씩 말라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햇볕의 힘이 그리 셀 줄은 몰랐다.
생흙으로 덮어놓은 이 집의 마당이 한 나절의 햇볕에 고실고실해진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기만 했던 것으로, 그것 역시 시골에 와서 느껴보는 ‘자연’에 대한 신비함이거나 힘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희망적이었다.
결국 오늘에야 흙집의 방에 보일러도 작동했고, 여지껏 풀지 못했던 짐을 풀 기분이 생겼다.
어쨌거나 내일 쯤엔 마루에 있는 책상이 방으로 들어오고, 다른 것들도 제 자리에 배치를 하면 된다.
며칠간 보일러 때문에 고생했던 상범은, 다소 안심을 하고는 돌아갔다.
그러니 이제 나 혼자다.
드디어, 나 혼자 사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절박한 느낌도 없지 않다.
요 며칠 동안은 서울의 구 병태도 함께 있었고, 이 집 주인 유 상범과도 함께 했는데,
이제부터는 이렇게 나 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침묵.
침묵?
어디선가 약하나마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곤 이따금 바람에 펄럭거리는 옆집의 찢어진 천막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여기의 침묵은 서울과는 다르다.
바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물소리 새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사람 소리가 나면 짖어대는 마을의 개들 소리는, 이쯤엔 잠잠하기만 하다.
TV도 없고 컴퓨터도 없어서, 이런 시골의 밤은 길 것만 같다.
근데, 내 홈페이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내 책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 일과는 전혀 무관하게 며칠을 보낼 수밖에 없다 보니,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리고 이제 시골로 왔으니, 또 내 작업을 해야만 한다.
어쩌면, 내일?
내 짐이 풀어지면, 나는 작업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서울의 이 씨에겐 전화를 걸어 내 컴퓨터 하드를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다.
일단 컴퓨터가 와야 내 일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이제 수돗물이 나오고, 컴퓨터 인터넷만 된다면... 나는 여기서도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3 . 2
난방이 해결되면서 다소 안정을 찾자, 기로는 편지글 작업도 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편지도 등장하게 되는데,
앞에 언급했던 대로 이 '몽상별곡(夢想別曲)'은 기로의 홈페이지 '화가의 일기'에 나오는 글들이 근간이기 때문에,
홈페이지에서 그대로 가져와 이어지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두 축인 일기와 편지를 구분하기 위해, 일기 앞에는 * 표시를, 편지 앞에는 # 표시를 하는 걸로 하겠다.
# 첫 밤
여기로 이사 온지 엿새째가 됩니다.
그 사이 방에 난방이 되질 않아,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은 정읍의 김 선생님 댁까지 잠자리를 옮겨 다니기도 했고, 또 일을 하다가 늦어진 친구와 같이 하는 수 없이 통나무집에서 전기장판을 깔고 잔 밤도 있었습니다.
집 주인인 친구는 석유난로를 틀어놓고 전기장판에서도 잘 만 자던데, 나는 이런 곳에선 잠을 거의 자지 못하는 다소 예민하고 까다로운 체질이라... 고생이 더 심했습니다.
모처럼 홀로 된 데다가 침묵만 흐르는 공간.
오늘에야 진짜 내 방에서 첫 밤을 지내고 있습니다.
아직 일곱 시 오십 분인데, 여기는 시골이라... 마치 깊은 한밤중 같은 느낌입니다.
TV도 없고 인터넷도 안 되는 상황이라, 그리고 아직도 짐을 풀지 못해서 지금 이 순간 마땅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노트북이라도 있어서, 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득, 침묵만 흐르는 공간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서울과 다를 바 없을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원룸과는 달리 위풍이 세서 춥기도 하고 기분 역시 확연히 다릅니다.
이 방 벽은 초벌 한지로 간단하게 도배를 했고 천정 없이 서까래 사이사이에 흙을 바른 옛날 집 모습으로, 그 느낌이 퍽 생소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마저도 사뭇 다릅니다.
혼자 있는 무료함을 달래보려고 하모니카를 불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요 며칠 정신이 없어서 하모니카조차 입에 대지 못했더니, 입술에 닿는 감촉이 달라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모니카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악기인가 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 중에는(옆집 할머니는 귀가 먹어서 안 들릴 것이지만, 특히 제일 가까운 뒷집) 내가 이런 밤중에 부는 하모니카 소리에,
기괴하다거나 청승맞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호숫가의 조용한 마을에서 한밤중에 나는 하모니카 소리니, 분명 기이할 것 같긴 한데,
그렇지만, 그게 두려워 하모니카마저 자제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왜냐면 나도 맘먹고 이곳에 살려고 내려온 이상, 내 생활의 일부일 수 있는 하모니카를 안 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이웃이 된 이상, 그들도 나의 이런 행동에 조금은 익숙해져야할 지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벌써 졸립군요.
아직은 밤이랄 것도 없는 초저녁인데......
사실, 오늘 낮에도 전기톱을 들고 땔감을 정리하느라 힘든 일을 제법 했거든요.
그리고 문득, 여기저기 전활 걸어서 나의 이 상황을 알리고 싶은 충동도 일었지만,
관둬야한다는 생각도 들어... 자제를 했습니다.
내일부터는 새 학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 월의 첫 월요일이라,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일정에 맞춰 삶의 계획을 세우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인데,
이렇게 유유자적 놀고(?) 있는 모습으로,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나는 지금 고생이라고 여기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 얘길 들으면 그렇게 바라보지 않을 터라...) 얘길 지껄이는 것은 그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판단으로,
'가급적 조용히 내 삶을 살아가는 게 좋을 듯싶다.' 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그들 중, 그래도 내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다면, 이따금 전화라도 걸어줄 테고,
그러다 시간이 맞으면 한 번쯤 여기에 놀러올 수도 있을 테니까요.
어차피 여기는 도심과는 많은 차이가 있고 또 그들에겐 그만큼 매력도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조금은 설레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절박한 심정(어떤 식으로든 이런 삶을 유지하거나 조금은 생소한 삶을 개척해야하기 때문에)으로 나는 아랫목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3 . 2
# 몽상(夢想)?
이 자리를 '몽상(夢想)'이라고 이름 지을 생각입니다.
내가 거창하고 멋지게 새로 지은 집에 사는 게 아닌, 그저 한시적으로 나에게 살아갈 기회를 제공한 친구 소유의 한 옛집에 불과하지만,
어쩐지 내가 사는 동안만큼은 이 집에도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내가 스페인에서 살 때 이름 붙였던 '침묵의 집'이나, 서울로 돌아와 이혼한 뒤 새 원룸에 들어가면서 '내 자리'라고 이름을 붙였던 것처럼... 여기서도 그러고 싶어서랍니다.
여태까지 내가 몇 군데 이사 다니며 살아오긴 했지만, 결혼 생활을 할 때는 집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쨌거나 나 혼자 살아가는 집(家)에서는 그동안 죽 해왔던 일이니, 여기서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라는 거지요.
내가 사는 동안은 내 집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리고 여기는 시골집인데다가 주위엔, 친구가 땔감으로 쌓아 놓은 나무들 중 쓸만한 판이 보여서,
그 중 하나를 다듬어 조각칼로 '夢想'이란 글자를 새긴 다음 방 입구에 걸어볼 생각입니다.
그러면 '현판식'이 되는 건가요? 그런 것도 현판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비록, 아직 인터넷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다, 안 될 경우엔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제 겨우 난방이 해결된 방에서 첫 밤을 보내면서, 나 혼자 있는 폼 없는 폼 다 잡고 있습니다 그려......
사실, 생각은 여기 오기 전부터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름으로 할까?'
약 반 달 정도를 생각하다 보니, 몇 가지로 걸러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썩 맘에 들었던 건 아니었는데...
어제 친구와 차를 타고 오다, 얘기 끝에,
"그래, 나는 '몽상가(夢想家)'일지도 몰라!" 하다가 문득,
'그래! 바로, 그 이름이야!' 하고 정해버린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퍽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옛날 선인들이 그랬듯, 꼭 '00정(停)' 이라거나 ‘00루(樓)’, '00가(家)' 라거나... 그런 이름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재미있겠다 싶으면... 재미있게 살면서 인생을 즐겨보고 싶은 겁니다.
그 것 역시, 남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닐 것이니, 내 맘대로 한다고 뭐 별 일 있겠습니까?
그런 내 행위를 보고 남들이 웃으면요?
웃으라지요......
아무튼, 그래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 행동과도 어울리는 단어, '몽상(夢想)’.
썩 괜찮지 않습니까?
그런데, '몽상(夢想)'이란 단어의 뜻이 너무 부정적이라는데 약간의 망설임도 없지는 않았답니다. 그래서 일부러 찾아본 국어사전에는, ‘터무니 없다’거나 ‘현실성이 없는 생각’이라는 식으로 나오던데,
정말 그 뜻이 그런가요?
그렇다면 몽상가(夢想家)는 터무니없이 꿈속에서 비현실적인 생각만 품고 사는 사람이라는 건데,
전혀 가능성 없는 생각만을 하는 사람이라는 겁니까?
글쎄요.
나는 거기에 100% 동의하지는 않거든요......
비록 현실성은 없어도, 뭔가 아름답고 그 안에는 또 뭔가 재미있는 세계가 있는...
뭐, 그런 뜻도 담겨있는 단어 아닐까요?(너무 자화자찬하는 건 아닌지......)
그리고 또, 그런 게 두려워 ‘몽상(夢想)’이라고 정해놓고도, 아무 행동에도 옮기지 않는 건... 사전의 뜻과 일치될지도 모르지만,
직접 그 일을 실행에 옮기는 것도 '몽상'에 속할까요?
그래서 나는 그 단어의 ‘사전적인 뜻’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고, 모두 다 터무니없다고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좋습니다.
내 맘대로 입니다.
그래서 나는 '몽상(夢想)'에다 물음표 ‘?’를 달아볼 생각이랍니다.
그러니까, '몽상이라고?’ 하는 뜻이지요.
'몽상일까? 몽상이면 어때?' 하는 뜻이기도 하구요.
그 것 역시 내 맘대롭니다.
하 - 하 - 하 -
3 . 3 새벽
# 이사 떡
여기 ‘둔터니’ 마을로 이사 온 첫 번째 공식행사(?)인, 이사 떡을 돌리는 일을... 오늘 했습니다.
친구 집에 얹혀사는 주제에 무슨 ‘이사 떡’이냐구요?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은 했었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내 처지가 그렇더라도... 1 년은 살겠다고 내려왔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공식적인(?) 인사는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내가 여태까지(그러고 보니 벌써 40대 후반인데...) 어딘가에 이사를 한 뒤, 이웃에게 떡을 돌린 적이 있었던가요?
그런 기억도 없고, 그러니까 이 번이 처음이거든요.
어쨌거나 여기는 시골인데다 이사 왔다는 신고 절차가 필요할 것인데,
열한 명이 주민으로 그 중에 유일하게 열 살짜리 계집아이 하나를 빼고는 거의 다 노인들께 인사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아니, 나는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답니다.)...
예를 들어, 삼겹살이라도 구워 소주 한 잔씩이라도 대접해드리는 것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건 직장인들이 하는 ‘집 들이’ 같은 분위기일 것 같았고, 또 어른들이 많은 이 시골마을에서, 어른들을 오시라고 하는 것보다는 내 발로 직접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리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는 판단으로,
‘이사 떡’을 돌리는 것만큼 어울리고 또 정감이 넘치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답니다.
사실은 집에서 직접 시루에 떡을 해서 돌리는 게 더 좋겠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제 성의는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지요.
그래서 며칠 전 전주에 사는 친구 상범에게,
"여기 둔터니에 오는 길에 시장에서 ‘팥 떡’ 좀 사와라." 고 부탁을 했더니,
공교롭게도 오늘 따라 친구가 '오전에 일이 없었다'면서,
그리고 아직 이 집에 수리할 것도 산적해 있다 보니, 와야만 해서,
오전에(오전도 제법 이른 시각에) 떡을 사가지고 왔드라구요.
그런데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제가 '가능한 떡집에서 떡을 만들어 내놓는 시간에 맞춰 따끈한 것으로 가져오라.' 고 부탁을 했었는데,
전주에서 가져온 떡이었지만 아직은 그나마 따끈한 기가 남아있어서 기분이 더 살아나기도 했답니다.
그러다 보니,
내 생에 처음으로, 다소 들뜬 기분으로 ‘이사 떡’을 돌리러 이 마을 한 바퀴를 돈 꼴인데요,
근데요, 그 게, 별 거 아닌 것 같기도 한데...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어차피 내가 이 마을의 한 주민이 되었다는 신고이기도 했던 일이라, 정말... 이 마을의 정식(?) 주민이 된 기분이랄까요? 그런 새로운 느낌이 들어, 아닌 게 아니라 조금 설레는 건 물론,
어쩐지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기도 한, 희망적이거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해주는 일이기도 했답니다.
그러니까 서울에서는 느껴볼 수 없었던 일이기도 해서(서울에서도 그런 일을 하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확실히 신선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답니다.
허긴, 그깟 떡 사는 데, 몇 푼이나 들었겠습니까?
그래도 그 일을 하고 났더니, 내 마음이 퍽 풍요로워져 있는 느낌이었다니까요.
그러니, 여러 분들도, 이사할 일이 있을 경우엔...‘이사 떡’을 돌려 보세요.
하지 않는 것과는 너무 다른 감정이거든요?
어쨌거나 이로써 나는, 이 마을의 주민이 되었음을 마을 사람들께 신고를 한 편이랍니다.
근데요, 서울에서 했던 법적인 주민등록신고를 하는 것과는 다른, 그저 형식적으로 이 마을의 주민이 된 것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는데도,
저는 어쩐지 이 마을 주민이 돼 있는 기분이랍니다.
3 . 3
이렇듯,
여전히 '인터넷'이란 큰 걸림돌이 버티고 있었지만, 난방이 해결되는 기미가 보이면서 바로 기로는 이 마을과 마을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는 절차를 밟았던 것이다.
물론 이사 오기 전부터 미리 생각해 두었던 일이긴 했는데,
그것 역시 시골 생활을 시작한다는 스스로의 동기부여로,
어차피 시골로 이사 온 것이니, 어릴 적 보기만 했지 평생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 절차도 해보면서 시골 생활에 임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것마저 즐기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점은, 호기심이 많은 상범이 슬그머니,
본인은 이 마을에 발을 들여놓은지 10 년 가까이 되는데도, 이런 생각조차 해 보지 못했다면서,
"나도 함께 갈까?" 하고 끼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기로는,
"그래도 안 될 거 없겠지만..." 하고 약간 난색을 표하면서, "근데... 나는 내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에 하는 거거든? 그러니, 미안하지만... 마을 사람들을 내가 직접, 혼자서 찾아가게 해 줘...... " 하고 상범에게 양해까지 구하면서, 마을 입구인 산장 집으로부터 떡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기로는 평상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적극성마저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만큼 이 시골 생활에 의욕적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을길에서 산장으로 들어가다 보니, 언덕 밭 구석에 ‘산장아저씨’ 박 만석이 뭔가를 날라 붓고 있었다. 아마 거름인가 보았다.
"안녕하세요? 산장 아저씨!" 하고 마치 어린 아이가 어른께 인사를 하듯, 밝고 큰 소리로 기로가 인사를 하자,
어쩌면 기로가 산장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박 만석은,
"예......" 하면서 모르고 있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며 고개를 들어 기로를 흘끗 바라보긴 했지만, 별 동요는 없는 듯했다.
만약에 상범이 인사를 했다면 당연히,
"응..." 이라고 했을 텐데,
아직 낯이 설어선지 다소 엉거주춤 대답을 하는 것이어서,
"말씀 낮추세요. 제 친구나 마찬가지로 대해 주셔도 되는데요......" 하면서, 역시 평소와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친근미를 내 보이자,
박 만석은, 약간 웃는 듯 마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다.
'허기야, 원래 저런 분이니까......' 하면서 기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식당 쪽 마당에서 식당으로 들어가려던 아주머니(김 순임)가 보여서,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하고 시선을 돌려 인사를 하자,
"예, 화가 선생님, 어서 오셔요! 우리 아저씨 헌티, 이사 오셨다는 말은 들었는디... 근디, 무슨 일로요?" 하고 물었다.
'응? 부부가, 내가 이사 왔다는 얘긴 했나보네?' 하면서도 기로는,
"예... 제가 이사 온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고 있는데요. 그동안은 이래저래, 아무 정신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제야 인사라도 드릴 겸, 떡 좀 가져 왔습니다." 하면서 떡 한 상자를 내놓자,
"아이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허셨디야?" 하면서도, "맛있게 생긴 팥떡이네! 저기 좀 앉으셔요. 내가 우리 아저씨 부를 팅게..." 하며 박 만석을 부를 자세를 취하는데,
"아닙니다. 관두세요. 지금 일 하시는데...... 그리고 조금 전에 인사는 드렸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다른 집도 들러야 하니, 오늘은 이렇게 간단하게 인사만 하는 걸로 하고, 다음에 오지요, 뭐......" 하자,
"아무튼 잘 먹을게요. 근디, 도시서 온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생각도 다 허시고... 호 호 호......" 김 순임의 다소 쾌활하게 웃는 소리를 들으며, 기로 역시 웃으면서 산장 집을 나왔다.
그런데 기로가 산장 집을 나오는데, 그 사이에 박 만석은 또 거름을 지게에 싣기 위해 갔는지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기로는 첫 집에 떡 돌린 건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허기야, 이 마을의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이 산장집 부부와는 구면이었기 때문에... 뭐 특별하거나 색다른 느낌은 없었다.
다만, 기로 딴에는 다소 친근미를 가지고 박 만석을 대하려고 하는데도, 무슨 일인지 그는 늘 그 타령이었다는 게 약간 불만이었지만.
그렇지만 기로는, 이제 마을길에서 위쪽에 있는 두 번째 집인 '산장 할머니(박 만석의 어머니)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엔 아무도 없었다.
"여보세요! 할머니, 안에 계세요?" 기로는 그 집엔 산장 집 할머니 혼자 산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부르며 문 앞에 섰다. 잠시 후,
"뉘기여유?" 하고 산장 할머니가, 다소 놀란 듯 그러면서도 웃으며 문을 열었다.
그렇게 한 집 한 집, 맨 끝에 있는 반장 집까지 이 둔터니 마을을 한 바퀴 다 도는 데 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물론 각 집마다 인사를 하느라 몇 마디씩이라도 나누다 보니, 다소 시간이 길어진 이유는 있었다.
그렇지만 만약 그냥 집만 돌았다면, 마을 한 바퀴를 다 돌아 집까지 돌아오는 데 20 여분이면 충분한 거리인 듯했다.
호수를 낀 도톰한 언덕에 있는 이 '둔터니' 마을엔 집이 여덟 채가 있었다.
새로 뚫린 호수 외곽도로에서 다소 급하게 꺾어져 내려가는 지형이었는데, 그 아스팔트(기로가 지난번에 여길 들렀을 땐 먼지만 날리는 자갈길이었다.)를 꺾으면 콘크리트로 포장된 길이 마을로 이어졌는데, 길을 꺽자마자 약 50 여 미터 쯤에서 오른쪽으로 급하게 꺾어 또 그만큼을 내려가는 곳에 마을의 첫 집이자 박 만석이 사장인 ‘산장 가든’이 위치하고 있었고,
거기서 마을길로 20 여 m 쯤 내려온 위쪽에 역시 번듯한 스레트의 마당 넓은 집은 ‘산장 가든’의 노모가 혼자 사는 집이고,
또 마을길을 따라 내리막에, 그러니까 마을길로는 조금 더 호수 쪽으로 내려간 제일 낮은 위치인 곳에, 다 쓰러겨가는 듯한 낡은 콘크리트와 옛 초가집을 개조한 스레트 집엔 한 8순의 노파가 홀로 살고 있고,
그 바로 옆 다소 높은 위치에 깔끔한 스레트 집이 바로 장 기로가 사는 '夢想?'인데,
이 집은 한 채가 아닌, 한 10여 m 조금 위쪽으로 통나무집이 한 채가 더 있는데,
거기가 바로 친구 상범이 쓰러져가는 초가를 개조해서 지어놓았던 집이었다.
그리고 그 바로 뒤에 ‘천석이네’(기로는 ‘뒷집’이라고 불렀다.) 집이 있고,
통나무집에서 약 10여 m 마을 길 뒤쪽, 그러니까 산장에서 보일락말락한 도톰하게 나온 모퉁이에 '키큰 아저씨' 부부가 사는 집이 있고,
그 안으로 500여 m 두어 구비를 돌아 들어간 이 마을의 끝에 '반장 집'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그 사이에 마을 수도를 관장하는 모터가 있는 벽돌 집 한 채가 더 있는데,
그러니까 이 마을엔 사람이 사는 집으론 산장집, 그 어머니 집, 홀로 사는 노파집, 기로가 기거하는 두 채의 집, 천석이네, 키큰 아저씨 집, 그리고 반장 집 등 일곱 가구에 열 한명이 전부였고,
두 채의 집이 더 있기는 했는데,
하나는 산장 집으로 들어가는 초엽과, 반장 집 전 약 100 m 전에 있는 폐가 두 채가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총 가호 수는 아홉이거나 열 채(아니 열 두세 채, 산장 집도 집은 세 채였고, 각 집집마다 집은 두 채 정도 되기도 하는 등) 정도인데,
사는 사람은 산장 집에 두 부부, 두 노파, 그리고 기로, 천석이네는 다소 애매한 가족(두 부부. 병석의 남편은 기로가 떡을 돌릴 때 방안에서 멀거니 기로를 바라보고 있어서, 단 한 번 얼굴만 본, 그렇지만 아들이 밤마다 들어왔다 나가는 등 다소 들쑥날쑥한 가족 관계), 그리고 키큰 아저씨 부부와 반장네 부부와 그 홀 어머니 그리고 반장의 열 살짜리 딸이 전부인, 기로가 둔터니로 이사한 뒤 떡을 돌리다 보니, 그 자신을 포함해서 총 열두 명이 사는 마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