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전강해(9) 복음을 전하는 목적
본문 : 살전 2:9-12
바울은 앞서 자신이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할 때,
어떤 마음의 자세와 동기로 전했는지를 강조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려 하려는
순수한 동기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4절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6절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탁받았다는
확실한 소명을 가지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려는
유일한 동기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그 어떤 대가나 호의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만 구했습니다.
바울의 그러한 태도는 주어에서도 나타납니다.
“나” 대신 “우리”라고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혼자 전도한 것이 아닙니다.
‘실라’와 함께 했고, ‘디모데’도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는 말을 주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9절, 10절, 11절에서도
모두 바울은 철저히 “우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동역을 귀하게 여긴다는 뜻과 더불어....
자신의 공로만을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혹시나 자신으로
인하여 복음이 훼손되거나 방해받는 것을 대단히
조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아무에게도 자신으로 인하여
폐를 끼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앞서 7절에서 바울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고백한 바 있습니다.
7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으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바울이 말하는 권리가 무엇인지
오늘 본문 9절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9절a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
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수고하고 애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도로써, 영적 스승으로써
섬김과 물질적 후원을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9~14>에 그것을 자세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9절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신25:4)
10절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절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절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절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그는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9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9절b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
그들이 아직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수준이었기에
부담을 갖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유모의 마음으로 그들의 연약함을 품어주신 것입니다.
보다 성숙한 교회와 성도들로부터는 물질적
후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감옥에서 고생하는 바울을
물질로 도왔습니다(빌 4:15~20).
부탁이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헌금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감사와 감격의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것이 빌립보서입니다.
그러나 초창기 교회와 성도들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이 연약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9절c)고 말씀합니다.
그는 그 자신이 천막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습니다(자비량 선교).
행18:3(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와 함께)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행20:34-35
34절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절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오늘날에도 복음을 전하는 자는 바울의
이러한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대우를
요구하거나 부담을 지우거나 폐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혹시나 자신으로 인하여
복음이 훼손되거나 방해받는 것을 대단히 조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아무에게도 자신으로 인하여
폐를 끼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둘째, 자신의 행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될까 염려하였습니다.
10절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바울은 좋은 메신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메시지보다 중요한 것은 메신저 자신입니다.
수돗물은 수도관을 통해서 전달됩니다.
그런데 수도관이 녹슬거나 오염되면 ....
아무리 수돗물 원수가 깨끗하다 하더라도
오염된 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에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 녹슬고
오염된 파이프를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수돗물을 받으려면 오래되고
낡은 상수도관을 교체해야 하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파이프도 청소하거나
교체해 주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복음이 전달되는 것도
수돗물이 전달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전도자(설교자)인 사람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 뿐 아니라 행실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활의 모든 면에서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모범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그대로 자신이 먼저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예, 바리새인들의 표리부동한 위선을 싫어하셨습니다.
말은 바로 하는데 행위는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 하셨고,
‘회칠한 무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책망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서 거룩한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수치가 돌아감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에나, 행동에서나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처한 자리에서 모범되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시라도 전도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모든 것을 삼가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그 내용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아무에게도 자신으로 인하여
폐를 끼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둘째, 자신의 행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될까 염려하였습니다.
셋째, 아버지의 마음으로 권면하고 경계하였습니다.
11절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영적 스승이요 복음을 전한 사람으로서 바울은
때로는 잘못된 것에 대해 책망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치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한 사람들에게 대하여
거룩한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15절에 보아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사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아버지’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영국 시인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한 명의 아버지가 백 명의 스승보다 귀중하다.”
아버지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부양의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아버지라면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면 못 본 척 할 수 없습니다
바쁘다고, 귀찮다고, 분위기가 안 좋다고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
앞서 7절에서와 같이 유모와 같이 사랑으로
품을 때도 있지만,....
아버지와 같이 때로는 엄하게 경계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방법은 다양하더라도).
그가 바로 자신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철저히 자신이 사랑의 동기에서
때로 책망하는 것이니 .....
받는 사람들이 그 마음을 알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책망 받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으로
책망을 받는다고 믿고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히12:6-8>
6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절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 것은.....
아버지의 마음, 곧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달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특히 “너희 각 사람에게”에게 라는 말씀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교회를 무리로 생각하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주목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무리로 서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으로 섭니다. 신앙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임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각기 달라서 어떤 이는 권면과 격려를,
어떤 이는 위로를, 또 어떤 이는 경계를 필요로 합니다.
<맺는 말씀 - 복음을 전하는 목적>
사랑하는 성도님들 !
바울이 아무에게도 자신으로 인하여 폐를
끼치지 않기를 원했던 것도.....
자신의 생활의 모든 면에서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모범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했던 것도,...
아버지의 마음으로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는 것은 다 이것을 위함이었습니다.
12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전도의 목적, 목회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1) 죄인의 자리에서 부르고,....
2)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고....
3)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도....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빌1:27)고 했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도....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엡4:1)고 권면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부르신 목적입니다.
우리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성도님들이 !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우리의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금산교회 김화준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