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1:23절)
요즘은 나라의 사정 때문에 하루에 몇 번씩 눈물을 흘리고 교회로
인해 속이 상해 망연자실합니다. 로마서라는 기독교를 세계화한 복음의
교과서가 있어도 그 좌측엔 고린도교회가 있고 우측엔 갈라디아교회가 있습니다.
엄밀히 보면 둘 다 로마서적인 구원을 모르는 교회들입니다. 복음이라고는 하지만
그 모습은 타다 남은 부지깽이 정도이거나 뒤집지 않는 호떡 같은 상태들입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가 설교 중에 소크라테스가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한 말에 자극을 받았노라고 말하고는 성경에 우리는 다 그릇행하여 각기 제 갈 길을
갔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성찰을 해야만 성도답게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리곤 전도운동에 한창 열을 올리다가 지금은 그 정체성이 희한하게 된 단체의
대표의 문제가 어느 방송에서 방영된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의 추함과 고급시계
등의 사례를 끄집어내서 한참 비판을 하다가 그것마저 성찰 안한 탓으로 돌리더군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소크라테스의 성찰이란 말이 왜 거기서 나옵니까?
성찰하고 회개하라는 말입니까? 각성하라는 말입니까? 절제하라는 말입니까?
물과 성령으로 나서 십자가의 도를 지닌 사람이라면 성찰이라는 말은 하지 못합니다.
시계 8억 원어치 가진 목사나 옷 한 벌 더 욕심내는 목사나 율법으로 치면 같습니다.
이런 걸 보면 세상으로 기울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는
좌파 교회인 고린도교회와 같은 유형이나 속에는 욕심이 있지만 성찰의 브레이크를
잡고 육체의 모양을 내는 우파 교회인 갈라디아 같은 교회나 도긴개긴일 뿐입니다.
지금 나라의 우파의 정치인들이나 좌파의 정치인들의 성향이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 쪽은 점잔을 빼가며 체면치레라도 하지만 다른 쪽은 사생결단 각자의 배를 채웁니다.
교회도 한 쪽은 지성적인 경건주의를 내세우고 다른 쪽은 감성적인 열광주의로 갑니다.
이스라엘이 성전이라는 간판은 걸고 있으나 그건 주님의 눈에는 강도의 소굴이었습니다.
강도는 칼 들고 돈 뺏는 자만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에는 관심 없이 가진 것만 취하고자
하면 바로 강도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삯군 목자는 이리가 오면 양을 버리고
꽁무니를 내 뺀다고 말씀하십니다(요10:12)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양을 사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와는 전혀 딴 판입니다.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다.
진리의 성령은 세상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받지 못합니다(요14:17) 진리의 성령이
없는 교회가 세상에 속한 교회입니다. 진리가 없으면 성찰만 할 뿐 회개가 안 됩니다.
그건 그리스도 안에 소속이 되어 하나님을 향하는 성향이 아니기 때문에 되돌아갈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찰에서 성찰로 끝납니다. 이게 바로 인문학입니다. 바울이 왜 철학을
헛된 속임수라고 말할까요?(골2:8)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잘못을 성찰만 할 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생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으며 그 자리에 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이나 철학자들은 거짓말쟁이며 나아가서 마귀의 자녀들이 되는 겁니다.
육신의 생각만 하므로 하나님의 원수노릇을 하기 때문입니다(롬8:7) 따라서 육신으로
행하는 일은 열매라 하지 않고 육체의 일이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인간의 모든 육체는
세상과 어둠 가운데에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이란 뻔한 것일 뿐입니다(갈5:19)
그 짓을 하는 자나 비방하는 자나 피장파장일 뿐입니다. 잘 나도 세상이요 못 나도
세상이며 잘 하나 못 하나 영으로 난 것은 영이나 육으로 난 건 육일뿐입니다(요3:6)
거듭남이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믿어 순종하여
그리스도 안으로 돌아오는 회개와 자백이 있어야 영에 속한 자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에는 진리의 성령을 주시지 않고 세상을 위해서 기도도 안하십니다(요17:9)
세상은 진리의 성령이 없기 때문에 거룩함도 이룰 수가 없고(요17:17) 거룩함이 없으므로
영광을 얻지도 못합니다(요17:22)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됨을 이루지 못해
결국 사랑에 이르지 못합니다(요17:23-26) 따라서 죽은 다음에 영화롭게 된다는 신학교수는
진리의 성령을 받지 못한 자로서 세상과 육신에 속하여 인문학을 가르친 선생일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신학교에 이와 같은 교수들이 존경을 받고 있다니 기절초풍할 일입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인자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후 승천하시고 보좌에
앉으신 다음 약속대로 진리의 성령이 우리 가운데에 계십니다. 우리는 회개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세례를 통해 죄 사함을 받고 그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행2:38)
천상교회에 진리의 성령으로 접속이 된 지상교회가 되었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므로 그 충만한 데서 은혜 위에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요1:16)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좌파 교회도 아니고 육체에 속한 우파교회도 아닌 보좌에 앉으신
주님의 그 충만하심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교회가 진짜 교회인 겁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