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北海道)에서 하꼬네(箱根)까지
허 정
해외 여행은 될수록 자제한다는 다짐을 하면서도, 지우들의 권유가 마음을 움직여 유혹 속으로 빠져든다. 퇴임 후 소식이 단절되어 궁금하던 옛 동료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고, 가까
우면서도 가 보지 못한 홋카이도에 대한 동경이 겹쳐, 일석이조의 기회를 잡는다는 마음으로 여행에 참여하게 되니 마음이 기쁘고 그 기쁨이 몸을 가볍게 했다.
스승의날인 08.5.15. 06:00, 약간 설레는 감정으로 김해 공항을 향했다. 정해진 집합 시각인 7:00보다 10분 전에 공항 집합 장소에 도착하니 정다운 얼굴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출항 시간이 8:30분인 데도 회원 33명 중 29명이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평생을 정해진 규칙을 철저히 이행하며 살아온 준칙 의식이 그대로 생활 속에 젖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풍성한 기내식으로 포만감까지 느끼며 10시 50분, 예정대로 홋카이도 치토세항에 도착, 삿포로로 옮기니 그곳에서 또 점심을 준다. 입맛이 당기는 음식들이라 뱃속의 소화 기관들에겐 미안하지만 포만감 속에 한 그릇을 비웠다. 놀랍게도 우리 일행 거의가 남김없이 그릇을 비웠다.
삿포로란 지명은 ‘건조하고 광대한 땅’이란 아이누어이며, 그 밖에도 이곳의 많은 지명들이 아이누어에 유래하고 있다고 한다. 삿포로는 인구수가 170만명이 넘는 일본 5대 도시 중의 하나다. 1869년
홋카이도에 개척사를 두고 대규모 황무지 개발에 착수한 이래 급격히 팽창하였다. 특히, 많은 공원과 광활한 녹지대를 가지고 있으며, 바둑판 모양으로 정비된 거리이기에 소통도 원활하다. 삿포로의 상징적 건물이란 구 도청을 비롯, 오오도리 공원, 시계탑, 맥주 정원, 홋카이도 개척관 등을 둘러보고 서북쪽으로 한 시간 쯤 거리에 있는 오타르로 이동, 오타루 운하(小樽運河), 오르골당, 기타이찌 유리공방 등을 관람했으나, 관광 상품이라 내놓기엔 미흡하다는 느낌이 솔직한 감정이다.
오후 4시경 도야(洞爺,동야)로 이동하는 3시간 동안은 고도 1,000m가 넘는 산길을 달리면서, 고도가 높아질수록 5월 중순이란 계절 감각이 없어지고 초봄의 봄 내음이 물씬 풍기는 연초록의 잎새들과 가을 단풍으로 착각을 일어키게 하는 이름 모를 새 잎새들, 그리고 하얗게 덮인 설산 봉우리 등이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뽐내며 감탄과 흥분의 심연으로 빠져들게 한다. 도야는 칼데라 호수로 둘레가 천백 리, 수심이 179m나 되는 거대한 호수로, 남북으로 우스산(有珠)과 요대이잔(羊蹄山)이 둘러싸고
있고, 호수 가운데에 4개의 섬이 솟아 있어 관광 자원으로 널리 선전하고 있으며 수자원의 보고이기도하다. 호수 주변도 겹벚꽃이 만개 상태라, 우리 4월 중순의 생태계이고, 상식적으로 일본엔 벚꽃이 많을 것 같은데 일본 어느 지역에도 벚꽃이 우리 나라처럼 흔치 않다는 것이다.
여기엔 쇼와신잔(昭和新山)이란 활화산(402m)이 유명한데, 1943년 우즈산의 폭발로, 당시는 보리밭이었으나 융기하여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데, 지금도 가스는 계속 내뿜고 근처의 지표 온도도 300도c에 이른다. 여기서 3시간 반 거리의 하코다데(箱舘)로 갔다. 오늘 여정은 더욱 아름답다. 자작나무, 삼나무, 측백나무 숲, 그리고 멀리 고산 준봉을 하얗게 장식한 설의, 단풍을 닮은 새 잎새 등 이국 정취에 흠뻑 젖게 한다.
하꼬다데는 한여름 축 늘어진 소불알처럼 중간이 잘록한 작은 지협으로,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600m 정도의 산정이 명소이다. 대형차는 교차가 어려워 군데군데 안내자가 배치되어
소통을 시키는 험한 산길이다. 하지만 이 산길을 관광차는 쉴새없이 드나들며 성황을 이루나, 우리 고갈산이나 황령산에서 보는 야경보다는 황홀하지도, 호화롭지도, 예술적이지도 않아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관광객 수는 험준한 산길을 오르내리는 어려움에 역비례로 나타나는지 엄청 많아 보인다.
오늘은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우리 광안대교와 같은 공법으로 만들어졌다는 백조대교(1,389m, 구상에만 40년, 공사 기간 14년)를 지나 지큐미사키(지구곶)로 갔다. 120m의 ‘아버지의 절벽’이란 곳에
서 태평양을 보는 절경을 자랑하며, 일본곶도 아닌 지구곶이란 거창한 이름을 붙여 선전하는데, 우리 태종대의 정경에는 미치지 못하다는 게 관람자 전원의 공통된 느낌이었으나, 이런 곳도 많은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것을 보고 우리도 관광, 그리고 홍보에 더 높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어 ‘회색빛 온천’이란 아이누어인 노보리베츠(登別)로 갔다. 펄펄 끓어오르는 유황천과 골짜기를 가득 메운 메케한 유황 냄새가 금방이라도 무슨 일을 낼 듯하다. 누구라도 이 음산한 분위기에서 지옥 계곡이라 부르는 것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면적 11만 평방미터의 광대한 분출구가 이곳저곳에서 자욱한 연기를 피워 내고 있다. 또한 수질이 다양한 온천지로 매일 3,000리터의 온천수가 나오고 있어 노보리베츠 지다이무라(登別時代村)는 온천 관광지로 유명할 뿐 아니라, 전국시대(1477~1573) 말기에서 아츠치 모모야마(安士桃山)를 거쳐 에도 시대(1603~1868) 초기에 걸친 사회 풍속 문화를 재현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은 도마코마이항에서 19시 정각에 태평양 페리호를 타고 센다이(仙臺)항으로 이동하는 여정이다. 오랜만에 일행이 한방에 다모여 준비해 간 주류를 내놓고 대작하며 옛날 교직 생활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그 때의 애환도 모두 추억으로 윤색되어지는 즐겁고 아름다운 밤이었다.
배의 기관 소리와 흔들림에 뒤척이다 아침을 선식으로 하고 9시 20분 센다이항에 내렸다. 우리들은 곧장 혼슈를 세로로 지르며 니코(日光)로 향해 3시간 반을 달리는 여정이다. 혹가이도는 위도가 높으
니 설산이 많고 철쭉도 피고 있는 5월 말이지만, 혼슈에도 국도 따라 펼쳐진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산맥들임에도 5월의 태양을 비웃기라도 하듯 잔설이 하얗게 봉우리들을 감싸고 있다. 난다이산(2,480m) 허리를 스무 고비를 돌아, 작은 고개를 넘어 1,260m 고도에 형성된 칼데라 호수인 주젠지 호수에 도착했다. 점심을 먹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99m 높이에서 떨어지는 게곤 폭포를 보면서, 자연이 내린 폭포마저도 웅장 장엄보다는 기교가 있는 일본적인 아기자기함을 느끼게 한다.
도쿄의 신주쿠 메트로폴리탄 호텔에서 여독을 풀고, 아침 일찍 서둘러 아사쿠사 관음절을 보는 둥 마는 둥 서둘러 후지산(富士山)으로 향했다. 후지산은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에는 아예 개방을 않고,
평시에도 기후가 좋지 못하면 입산 통제가 심하여 1합목도 못 들어 간단다. 태풍 예보로 마음 졸이던 우리는 요행만을 바라고 있었는데, 천우신조인가 어제부터 온다든 태풍이 아직 오지 않아 차가 운행할 수 있는 최고지인 5합목(2,305m)까지 무사통과하는 행운을 얻었다. 후지산은 부끄럼 많은 숫처녀가 마음에 드는 총각을 엿보듯, 살짝 한 번 얼굴을 내밀었다 카메라 초점을 맞추는 순간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애를 태우게 하는 요술을 부려 헛방 셔트를 눌렀다는 한탄의 목소리만 들리게 한다. 아쉬움을 안고 귀로에 올랐는데, 내려오는 도중 한 번씩 얼굴을 내놓아 살짝 모습을 보일 때마다 환호성이 절규에 가까울 정도다.
이어 온천 관광지로 이름난 하꼬네(箱根)로 갔다. 오와쿠다니 유황 계곡에서 한 개 먹으면 7년을 더 산다는 달걀을 하나씩 사 먹고 아시 호수에서 유람선을 타고 왕의 피서지였던 온시하코네 공원으로
갔다. 조경 기술과 관리의 섬세함과 청결에 모두가 감탄하는 모습이다.
수많은 왜구의 노략질과 삼포왜란(1510), 사량진왜변(1544), 을묘왜변(1555), 임진왜란 등 침입과 결국 35년 간의 식민 지배라는 엄청난 수난을 겪게 한 나라 일본, 남한의 4배 가까운 약 37.8만 평방키로, 인구는 남한의 2배반인 1억3천만, 고도의 산업화된 환경과 옛것이 공존하는 나라다. 4개의 큰 섬과 4,000여 개 이상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이 산지로 경작이 가능한 면적은 16% 정도인
나라다. 우리의 많은 조상들이 흘러 들어갔고 우리 문화가 흘러들어 그 나름의 문화를 이룬 일본이란 인식이기에 더욱더 호기심이 발동되는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