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둑
지난 5월 26일 누리호가 우주를 향하여 힘차게 날아올랐다. 누리호 발사 성공은 우주산업과 안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상관측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한 목적이라고 한다. 기상청에서는 이렇게 위성으로부터 영상을 전해 받아 자연재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시시각각 일기예보를 전달해주고 있다.
그날 아침에도 장마구름이 하늘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일기예보에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전국적으로 장맛비가 내릴 거라고 대비에 만전을 기하라 한다.
나는 저녁 9시 뉴스가 끝나고 10시경이면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한다. 여간해선 11시를 넘기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어 명상음악이나 다라니경을 소리 죽여 듣고 있노라면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게 꿈속을 헤맨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이다. 알람은 6시에 맞추어 놓았으나 대개는 5시 전후에 잠이 깬다. 그리고 욕실에 가서 소금으로 양치를 하고 나면 잠은 이미 저만치 달아나고 만다.
집을 나서면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도장공원은 신흥초등학교와 도장중학교 울타리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공원에는 팔각지붕 정자가 있고, 정자에 앉았노라면 멀리 청계산 너머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을 맞이할 수가 있다. 정자 아래로는 4차선 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며, 철커덕철커덕 소리 내며 지나는 전동차의 모습까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또 넓게 조성된 부지에 철봉이며 각종 체육시설이 비치되어 있어서 건강에 관심이 많은 지역주민들이 시나브로 이용하는데, 나도 오래전부터 이 공원에서 아침마다 심신을 다지고 있다.
이곳은 소나무, 아까시나무, 참나무, 밤나무 등으로 숲이 울창하여 푸르름 속에 산새들 소리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개미들 또한 분주하다. 몸집이 큰 검은 개미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목으로 바삐 왕래하는데 발걸음 옮길 때마다 혹 밟고 지나갈까봐 흠칫흠칫 놀라기도 한다. 산길에도 사람 다니는 길과 개미가 지나는 길이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어릴 적에는 머리와 덩치가 큰 검은 개미들을 잡아서 싸움을 시켜보고 잘록한 허리를 잘라보기도 하면서 놀았지만, 나이 들고 보니 발아래 개미 한 마리 밟힐까봐 노심초사하는 심약한 마음으로 변했다.
큰 개미와 달리 덩치가 작은 붉은 개미들은 집단적으로 움직인다. 땅바닥 구멍사이로 부지런히 들락날락하는데 무엇을 하는지 종잡을 수도 없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녀석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출입구 주변으로 넓고 높은 둑을 쌓고 있는 것이다. 개미들은 알고 있었다. 곧 비가 내리리라는 것을, 비가 내리면 자기네 집안으로 빗물이 들어온다는 것을, 그리하여 빗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둑을 쌓고 있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뉴스를 들어봐도 제주도부터 장맛비가 곧 시작될 거라는 기상예보가 계속 흘러나왔다.
장마철이 되면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난다. 장맛비와 폭우가 그치고 나면 우리는 남강 변으로 물 구경을 나갔다. 그때는 남강댐이 축조되기 전이라 큰비가 내리고 나면 지리산 계곡으로부터 덕천강을 거쳐 흘러 내려온 물이 순식간에 남강으로 내달려 왔다. 평소 반짝이는 모래톱과 은어와 피라미가 노닐던 푸른 강물 위로 시뻘건 황톳물이 넘쳐흘러 강물 위로 초가지붕이며 소·돼지 등 가축이나 세간 등이 빠른 물살을 타고 흘러갔다. 우리들은 애타는 마음으로 물 구경을 다녔다. 지금은 산이 울창하고 치수, 배수시설이 잘 되어있을 뿐 아니라 댐이 조성되어 그런 재난은 사라졌다.
그러나 치산치수가 열악한 북녘 땅에는 우리가 60년대에 겪었던 자연재해를 겪고 있다고 한다. 10여 년 전에 북녘 삼길포협동농장을 방문했을 때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이란 산은 민둥산으로 나무가 없었다. 그러니 비만 오면 토사가 떠내려 와 하천을 메웠다. 하천에 물이 없으니 농사가 잘 될 리가 없다. 옥수수는 어른 키 보다 작았고, 콩밭의 콩도 열매가 부실하였다. 산천을 잘 다스려서 가뭄과 홍수 따위의 재해를 미리 막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땅은 황폐화 되고, 땅이 황폐화 되니 곡식이 잘 자랄 수가 없었다. 주민들의 헐벗은 모습도 가슴 아팠지만 자연의 헐벗은 모습에 더욱 가슴이 저렸다. 지금쯤은 북한도 치산에 힘 기울이고 있다하니 숲이 무성하고, 하천에 물이 흐르고, 농사도 잘 되었으면 좋겠다.
뉴스 시간이 아니라도 장마는 예측할 수 있다. 숲속의 산새들은 먹이를 준비하느라 부지런한 날갯짓으로 알려주고, 개미들은 출입구에 둑을 쌓으면서 알려주며, 평생을 힘들게 일을 했던 우리네 어버이들은 허리나 무릎통증을 통해서도 장마가 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나도 며칠 전부터 무릎이 시큰시큰해오는 것이 장마에 대비할 일이 있나 돌아봐야겠다. 어디 개미 둑이라도 쌓아야 할지 살필 일이다.
조현옥 choho3126@hanmail.net
<한국수필>등단(2024). ISO품질심사원, 국가품질상대통령상, 산업포장 수상,
전)한국농어촌공사 지사장, 전)대동파이프(주)사장, 한국수필가협회, 지송문학회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