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에는 재채기로 유명한 애가 있다.
재채기로부터 유명해 졌다고 해야하나, 재채기또한 유명하다 해야하나.
이름은 설탕이다. 설탕.
설탕이는 재채기를 할 때면 입에서 설탕가루가 튀어나온다.
설탕이는 예뻐서 학교 안에서 눈에 잘 띄는데, 풍성한 분홍색 긴 생머리에 매끄러운 머릿결, 보송한 하얀색 피부와 발그레한 볼, 머리카락만큼이나 분홍색인 말랑한 입술을 가져서 온통 파스텔 톤인 여자애다. 눈은 반짝반짝하고, 속눈썹이 부들부들해 보이고, 손가락 끝과 팔꿈치와 발꿈치가 수채화 물감이 번진듯한 분홍색이라 모양부터 색깔까지 안예쁜 부분이 없다. 설탕이가 키가 조금만 덜 컸다면 남자애들한테 지금보다 인기가 훨씬 더 많았을 거다. (설탕이는 나보다 한 뼘은 크다.)
설탕이와 사귀어보거나 친한 친구들의 말에 따르면 그 애의 재채기 설탕도, 입술도, 치아도, 입천장도, 볼 안 쪽도, 혀도 모두모두 달콤해서 조금만 닿아도 정신이 어질어질 해진단다. 너무너무 달지만 기분 나쁜 단맛이 아니라 황홀한 달콤함이라는 거다. 그런 단맛은 어떤 단맛일까.(나는 달달한 걸 좋아한다)
간혹가다 설탕이는 입에 물고있던 막대사탕을 친구에게 넘겨주곤 하는데, 그걸 먹어 본 애들은 사탕의 맛이 달라졌다고 친구들에게 알려줬다. 분명히 딸기우유맛 사탕인데, 설탕맛으로 변했다고. 설탕이의 설탕맛 뿐이라고.
설탕이는 사랑을 하기 위해 난 존재같다. 모든 사람들이 설탕이를 좋아하고, 설탕이를 보면 웃고, 함께 다니고, 껴안고, 같이 놀고 즐거워 한다.
사람의 형상도 갖추지 못한 나와는 다르게, 설탕이는 정말정말 예쁜 애다.
팔랑팔랑한 교복 치마를 입고 담을 넘거나 하얀 허벅지를 불쑥 보이면서 창문을 뛰어넘어 급식실로 달려가는 활동적인 성격이지만, 그건 그거대로 모든 친구들이 그 애를 좋아한다.
그리고 나도 좋아해, 설탕아! 넌 정말 온통 사랑받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존재같아!
그리고 요샌 설탕이가 자꾸 나에게 다가온다.
봄이고, 4월이고, 일교차가 심해서 아침에는 두꺼운 옷을 입고, 낮에는 얇은 옷으로 벚꽃이 핀 나무 아래를 걸어다니는 날씨에, 설탕이는 입을 가리고 설탕을 튀기면서 내 옆을 걸었다.
“자고 일어나면 재채기 때문에 침대가 온통 설탕가루 투성인거야”
설탕이가 포곤포곤한 솜사탕 같은 목소리로 손바닥에 붙은 설탕가루를 털면서 말했다. 다른 애들이 말 한 것처럼 설탕이의 설탕은 정말로 황홀한 단맛일까. 혀에 닿으면 행복해져서 구름을 밟는 것 같은 기분일까.
“꼭 벚꽃이 필 때쯤에는 재채기가 이렇게 난다니까. 꽃가루 알레르기도 없고 비염도 아닌데. 넌 안그래? 에츄, 에츄!”
토독토독 데굴데굴 설탕이의 설탕이 내 머리털에 닿아 튕기는 소리가 들린다.
“응, 난 안그래. 난 언제나 건강했어”
우리는 벚나무가 늘어져서 점점 분홍색이 되어가는 거리 속을 걸으며 집에 가다가, 생일파티용 꼬깔모자와 위생봉투와 몸에 맬 수 있는 끈달린 귀여운 복조리 파우치를 샀다. 그리고 한동안 설탕이는 꼬깔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재채기를 할때마다 꼬깔모자 안쪽에 설탕을 튀겼고, 나는 옆에서 위생봉투를 넣은 복조리 주머니에 설탕이의 설탕을 모았다. 같이 밥을 먹고, 같은 치약을 나눠쓰며 양치질을 하고, 벚꽃나무 아래를 같이 걸으면서 설탕을 계속해서 모았고, 먼지 많은 음악교실이나 낡은 기구가 가득한 지구과학실에서도 나란히 앉아 책상에 설탕이 고이면 손가락으로 쓸어서 모았다. 꽃이 피기 시작할 때 쯤부터 꽃잎이 다 떨어질 때쯤까지 그렇게 같이 다니기로 했다.
설탕은 왜 모우기로 했냐면,
“너 단 거 만드는거 좋아한다며? 요리 잘해?”
“잘 하는건 아니고 그냥 만들줄만 알아, 쿠키, 마카롱, 마들렌 뭐 이런 간단한 거”
“그럼 내 설탕으로 뭔가를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아? 나는 벚꽃이 필때마다 만들어지는 이 무용한 설탕들로 뭔가를 해보고 싶었어! 너가 뭐라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내가?”
나는 설탕이의 사탕 단면같은 매끄럽고 반짝반짝한 앞머리 위쪽을 보며 직접적으로 마주보는 그 애의 눈맞춤을 슬쩍 피하며 한동안 생각했다.
“사탕을 만들어보고 싶어”
“와! 그럼 내 설탕으로 사탕을 만들어 줘!”
그 날에 당장 우리는 고깔모자와 위생봉투를 사러 간 것이다.
설탕이의 이야기를 더 하자면, 달콤한게 있으면 있으면 벌레가 꼬이지. 하지만 그 애는 스스로 벌레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킬수도 있는 멋지기까지 한 애였다. 어쩐지 한걸음의 도약으로 학교 담장을 뛰어넘고, 2층 창문에서 뛰어 내리고, 화장실 문을 부수는 주인공이 되곤 하더라. 1학년 땐 어떤 남학생 서배가 설탕이에게 덤빈적이 있는데, 선생님이 오시기도 전에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예기술로 그 남학생을 기절시키고 치마를 털고 있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멋있기까지 해서 세상에 어떻게 이런 애가 있을수가 있나 싶다. 넌 정말 완벽한 파스텔이야!
아무튼 우리는 열심히 설탕을 모았지만 사탕에는 설탕이 제법 많이 들어가는지라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벚꽃잎이 다 져서 설탕이의 재채기가 멈출때까지 모운 설탕으로는 막대사탕 하나 만들 수 없을 듯 했다.
그래서 설탕이는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해 이불에 쌓인 설탕을 털어 모우기로 했다. 그렇다. 여자애의 집에 가는 것이다! 말을 했던가? 나는 남자다!
여자애가 남자애를 초대를 한다고? 이건…이건….사귀는 게 아닌가? 좋아해서 그러는게 아닌가? 그런데 설탕이처럼 예쁜 애가 나같은 애를 좋아할 리가 없다. 키도 작고 인간의 형상도 아니며 목소리도 꼬부랑꼬부랑 흔들흔들한 나 같은 것에게 설탕이같은 부족함 없는 애가 무언가를 느낄리가 없다. 그럴 순 없다.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생긴것처럼 성격이 너무너무 좋아서 나랑 놀아주는 거거나. 어쨌거나 나랑 놀아줘서 고마워 설탕아! 사탕은 꼭 성공해서 너는 너의 재채기조차 무용하지 않다는 걸 증명할게!
설탕이의 집에 가는 길도 학교를 이어서 온통 벚나무였다. 꽃잎은 며칠전부터 떨어지는 중이라 약한 바람에도 꽃잎이 눈처럼 내렸다. 벚꽃잎의 색깔은 설탕이의 볼이나 손가락 끝, 복숭아 뼈의 색깔이었고, 아스팔트나 보도블럭이 깔린 길바닥은 온통 설탕이의 뺨의 발그레한 색이었다.
설탕이가 갑자기 허공에 뭔가를 낚아채더니 꽃잎을 잡았다고 웃으면서 보여줬다. 숱 많은 머리카락이 치맛자락처럼 퍼졌다가 모아졌다. 햇빛에 분홍색 머리카락이 반짝반짝이는게 보석같았다. 계속해서 머리카락이 보석같다.
그 애가 잡았던 꽃잎을 자기 혀 위에 놓고선 입 안에 넣고 머금더니 다시 꺼내 내 입에 넣어줬다.
솜사탕이 폭발한 걸 본 적이 있나? 나도 없지만 내 뇌는 그런 형상으로 터졌어. 솜사탕을 만들려다가 실패해서 허공에 솜사탕 조각이 날아다니듯이 뇌조각이 날아다니고 있다!
나는 정신이 없는채로 그애가 잡고 당기는 손길을 따라 그 애의 집으로 갔다. 꽃잎이 아직도 내 혀 위에 있다. 꽃잎은 녹지도 않았고 삼킬수도 없었다. 침이 자꾸자꾸 난다. 그 간 내가 먹어본 달다구리중에 우주 최고로 생에 최고로 달콤하고 예쁜 맛이다. 이게 그 애들이 말한 설탕이의 맛인가 보다. 심장이 터질것 같고 얼굴도 너무 뜨겁고 시야가 넓어지고 세상이 뚜렷하게 보이면서도 설탕이의 분홍색 머리카락이 걸음걸이대로 흔들리는 것만 보인다.
우리는 건전하게 설탕만 털어 모우고 헤어졌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매일매일 집에 가서 설탕이의 이불을 털었다. 벚꽃이 다 떨어지고 설탕이의 재채기가 하루에 한두번이나 나올때까지 우리가 모운 설탕은 자판기 종이컵 한 컵 분량이었다. 벚꽃이 다 떨어지고나니 버드나무의 꽃가루가 솜솜히 날리기 시작했다. 설탕이의 집은 벚나무 길 속에 있지만 우리 집은 강가 주변이라 버드나무의 솜이 날렸다. 토요일에 우리 집에서 같이 사탕을 만들기로 했고, 레시피 상으로는 우리가 모운 설탕은 막대사탕 10개정도를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이 사탕을 만들고 나서도 설탕이랑 계속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키가 더 커서 설탕이보다 커지고 싶고, 설탕이가 내 정수리를 쓰다듬는것처럼 나도 설탕이의 보석같은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싶다. 엄마는 지금의 내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했지만 멀쩡한 사람의 모습이 되고싶기도 하다. 설탕이랑 어울리는 모습이 되고싶다.
벚꽃 재채기 굿바이
첫댓글 설탕이는 완벽한 존재인 것 같아요. 완벽해 보이는 존재도 결점이 있지 않을까요? 저는 완벽해 보이는 설탕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화자가 더 궁금해졌어요. 둘은 서로 달라서 잘 지낼 수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는 동화처럼 읽었어요.
으악 조조조님 너무 귀여운 동화네요. 설탕이의 재채기로 만든 사탕 저도 먹어보고 싶어요. 전 초콜릿보다 사탕을 좋아하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하면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참 못나보이죠. 좋아하는 사람은 한없이 달콤하고 아름다워 보이구요. 애정이 무엇이길래 나를 이렇게 못나게 만드는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설탕이를 좋아하는 ‘나‘의 심정은 쫌 뾰족뾰족 가시같겠죠? 전 그래서 누군가를 애정하는 일이 싫습니다.
조조조님 다음 글도 너무너무 궁금해요. 저 약간 단골이 될 것 같은데, 이런 글을 이렇게 마음껏 봐도 되는걸까요.
와우 조조조님은 묘사를 정말 잘하시네요 이 글을 읽고 든 생각은 되게 예쁜 일러스트 있잖아요. 웹소설이나 로판 표지 같은 반짝이는 여자 주인공들. 그런 예쁜 모습이 생각나요. 설탕이는 참 반짝거리고, 달고 주인공은 섬세하네요. 뜨겁지 않고 적당한 온도로. 봄처럼. 그래서 설탕이 곁에 있는 거겠죠? 괜히 어딘가에서 사락-하고 설탕 소리가 나는 것 같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이런 달달하고 순수하고 귀엽고 발랄하고 뽀용(?)한 글이라니!! 너무너무 좋아요!! 이것을 단행본으로 낸다면 단연 분홍+보라+하늘색이 솜사탕처럼 섞인 몽글몽글한 표지일 거예요!! 설탕이의 이미지가 정말 솜사탕처럼 몽글몽글하게 떠오르는 데 너무 재밌게 흐뭇하게 읽었어요!! 조조조님은 어쩜 이런 글을 쓰시나요ㅠㅠ 제발 단행본을 내주세요!! 내달라고요!!! 텍마머니!! 아니, 찝찝하고 딥한 글도 잘 쓰시는데 이런 가볍고 귀엽고 몽글몽글한 글도 잘 쓰시다니?! 조조조! 당신의 한계는 과연 어디인가!! 저 그냥 조조조님의 팬이 되겠습니다ㅠㅠ🍭🍬☁️🩵
조조조님의 글을 읽으면 꼭 주인공이나 배경을 제가 직접 눈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런 표현력이 어디서 생기셨을까를 생각해보다가 조조조님이 타인을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셔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빛나는 부분들을 잘 발견해주시기 때문에 이런 글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짜 너무 재밌고 귀엽고 마음이 몽글몽글하네요...ㅎㅎ 벚꽃잎을 입에 넣었다 건내주고 그걸 솜사탕이 폭발한다고 표현을 하시다니.. 완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고 너무 달아요. 너무 달콤해서 감동입니다ㅎㅎ 5월의 글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
너무 달달해요!!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죠? 조조조님의 필력과 상상력에 창작통을 느낍니다.. 재채기에 설탕이 떨어지고 그걸로 사탕을 만든다니 너무 재밌어요 ㅎㅎ 설탕이에 대한 묘사도 제가 다 몽글몽글합니다. 주인공과 설탕이가 매년 봄마다 다양한 달달구리를 만들기를 바라요 🍬🍬🍬
으아아 저도 설탕가루로 만든 사탕 맛 보고 싶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탕 만들기 전에 주인공이 생활 먼지를 체에 걸렀을지 걱정도 됩니다ㅋㅋ 그리고 또... 혈당 덜 오르게 설탕가루가 대체당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근데 남학생 선배 왜 설탕이한테 덤볐죠? 인기 많아서 아니꼬왔나요?! 궁금합니다.
한 편의 뮤비를 본 것 같고 마음이 간질간질 이상하네용 너무 재밌어요 주인공이 설탕이랑 사탕 만드는 부분도 글로 나왔으면 좋겠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