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인 양변스님은 매가 키운 아이
승려로서 어머니 봉양한 전설남아
동대사 이월당에 스님조각상 안치
오사카, 나라, 교토 3도시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꼽으라면 나라의 동대사(東大寺, 도다이지)를 꼽을 사람들이 많다. 동대사라고하면 세계 최대의 비로자나불과 고대보물로 가득찬 정창원 등 국보급 보물을 숱하게 간직한 절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역사가 유서 깊은 절이다. 특히 동대사 앞에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이 눈에 삼삼하다는 사람도 꽤 있다. 관광버스가 한 무더기의 관광객을 내려놓으면 사슴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라붙는다. 사슴먹이용 과자 한 봉지를 사면 수십 마리의 사슴들과 사진도 찍고 뿔도 만져 볼 수 있다. 이래저래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나라의 동대사는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인연이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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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변스님을 물어다놓은 이월당 가람 |
《동대사요록, 東大寺要綠》에 따르면 동대사의 전신은 금종사(金鐘寺, 긴슈지)로 금종사는 서기 733년 백제스님 양변(良弁)에 의해 세워진 절이다. 당시 성무왕(聖武天皇)과 광명왕비(光明皇后)는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는데 유일한 한 점 혈육이던 왕자 모토이노미코(基皇子)가 생후 11개월 만에 죽자 몹시 상심하였고 이를 계기로 더욱 불심이 깊어졌다. 성무왕은 당시 일본의 60여 곳에 국분사(國分寺)를 지었는데 동대사는 그 총본산(國分寺)이다.
국분사란 741년 성무왕(聖武天皇)이 국가안위를 위해 각 지방에 세우도록 한 절로 이른바 국가관리절이다. 각 지방에는 비구절과 비구니절을 각각 하나씩 두되 비구절은 승려 20명을 두고 비구니절은 승려 10명을 두도록 했다. 이를 총 관장하는 절은 동대사와 법화사로 이 두 곳에서 전국의 국분사를 총관장하게 했던 만큼 동대사의 권위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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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사 명물 사슴 |
1200여년의 장구한 역사를 지닌 동대사는 창건 때는 호국불교 이념 아래 국가적 차원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오늘날에는 귀중한 문화유산을 많이 간직한 절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역사학자이자 213대 동대사 주지였던 히라오카(平岡定海, 1923~2011)씨는 동대사가 정치적, 종교적, 미술사학적, 사원경제적 측면에서 시대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고 말한다. 동대사가 없는 나라(奈良)는 불국사가 없는 경주를 상상해도 좋을 만큼 나라에서 빼놓을 수없는 중심사찰이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동대사의 첫 주지 스님이 백제스님 양변(良弁, 로벤)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동대사에서는 주지라는 직함대신 별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별당자리는 거대한 조직의 수장이자 호국불교를 주창하던 조정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자리다. 양변스님은 689년에 태어나 85살 되던 774년 1월 10일에 입적했다. 스님의 인물평에는 ‘동대사 개산(東大寺の開山)’이란 이름이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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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사 대불 |
오우미국(近江國) 백제씨(百濟氏) 출신인 양변 스님에 대해서는 재미난 설화가 전해진다. 스님이 어렸을 때 어머니가 밭에다 놔두고 뽕밭 일을 할 때 였다. 어디선가 매 한 마리가 날아와 어린아기를 물고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어린 양변을 물고 간 매는 당시 승려의 최고 직책을 맡았던 백제 의연(義淵)승정이 주석하던 동대사 전신의 금종사 절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가버렸다. 그때부터 양변스님은 의연승정의 제자가 되어 수행을 쌓은 뒤 동대사 건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고 초대 주지직에 오르게 되었는데 이 이야기는 《원형석서, 1278)》를 비롯한 《곤쟈쿠이야기, 1192) 》등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 밖에도 양변스님은 <매가 키운 아이>라는 전설로 여러 지방에 전해지고 있는데 어린 아들을 매에게 빼앗긴 어머니는 아들을 찾기 위해 30년을 하루같이 전국을 떠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대사 주지 스님이 매가 물어온 아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가 꿈에도 그리던 모자상봉을 하게 되는데 이후 양변스님은 각별한 효심으로 어머니를 봉양했으며 효자스님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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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사 대불전 |
이 이야기는 일본의 유명한 인형극인 죠루리(淨瑠璃)의 단골 주제인 죠루리기다유(淨瑠璃義太夫) 2절에 ‘이월당 양변스님의 유래’라는 이름으로 오늘날도 자주 무대에 오를 만큼 유명한 이야기다. 이월당(二月堂)이란 동대사 안에 있는 작은 가람으로 마당가에는 당시 양변스님을 매가 물어다 걸쳐놓은 삼나무가 있다. 이월당 건물은 일본 국보로 지정 되어 있으며 안에는 단아하면서도 기품있는 양변스님의 조각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초상조각(肖像彫刻)으로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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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사 남대문 |
양변스님은 스승이던 의연스님의 뒤를 이어 763에 승정(僧正)자리에 올랐다. 당시 쟁쟁하던 고덕대승은 거의 한반도 출신 스님들로 어린 양변스님은 이런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 연구소장〈주간불교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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