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론이란 하나의 유신론적 우주관을 말하며 신정론이 인정하는 신은 기독교의 창조신과 유사하다. 그 신은 선하고 지혜가 풍부하고 동력(動力)이 있기 때문에 그의 창조 작업에는 아무런 과오도 없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악에 있어서 사람들에게 많은 괴로움과 피해를 주는 파괴적인 일을 한다.
선하고 의로운 신이 만든 이 세계에 악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악의 현실성은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요, 이의 제기가 되는 것으로, 이 문제를 취급하는 신학을 신정론(thedicy)이라 한다.
신정론은 희랍어로, 신을 가리키는 데오스(theos)와 정의를 가리키는 디케(dike)란 말의 합성어에서 왔다. 그 의미는 정의로운 하나님과 악의 존재에 대한 것을 뜻한다. 즉, 이 세상에 악의 존재가 선과 능력에 있어서 무한한 하나님의 존재와 조화되고 화해될 수 있느냐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 그의 무한한 능력을 믿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악의 현존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연구자는 신정론에 대하여 핵심적인 학자들의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레니우스 신정론이라 함은 교회 최초의 조직 신학자이면서 변증가, 헬라 교부이며 서방에서 활동하여 헬라신학과 라틴신학의 교량적 역할을 담당했던 이레니우스가 그 기원이다.
이레니우스 신정론은 미성숙한 유아(infants)로서 창조된 인간의 죄는 거의 필연적이며, 모든 인간은 종말론적인 완전을 향한 점진적으로 발전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당대의 영지주의자들을 비롯한 이단종파에 대하여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원죄설과 구원론을 종합적으로 논술하였다.
이레니우스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구별하였다. 형상이란 육체적 형태에 존속하는 것으로서, 이성과 의지의 자유를 가지고 있음을 대변해 주고 있으며, 모양이라 할 때는 성령의 역사로 초자연적인 은사를 누리었음을 의미했다.
또한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격 존재일 뿐 아니라, 다만 가능성으로서의 완전한 존재인 연유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하여 무한히 선한 목적에 이르는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원칙적으로 인간이 하나님의 최상의 선물을 부여받을 수 없었던 미성숙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으며, 아담과 하와를 어린아이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불완전하고 미숙한 유아가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것과 같이 점진적인 영적 성장의 시발점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힉은 영혼형성(soul-making)의 신정론에서 목적론적 및 발전론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미래 지향적인 신정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이레니우스 에게서 발견하고 있다. 게다가, 이레니우스의 사상이 보다 뚜렷하고 체계적인 신정론으로 부각된 것은 슐라이어마허의 점진적 인간 이해로 부터로 본다.
고전형이상학의 허실과 실증주의의 위험성을 피하면서, 양자의 종합으로 출현하는 것이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과정 형이상학이다. 그에 따르면 모든 형이상학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정당성(the sole justification)은 우리의 직접적인 경험(our immediate experience)에 근거해야 하며, 이것에 대한 해석이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모든 형이상학은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론만의 신학과 실천만의 신학에 대한 대안으로 과정 신정론이 있다. 과정신학은 현대 물리학의 세계적 해석에 기초를 두고 이론을 전개시킨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에 의존해서 전개하는 신학적 이론이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체(actual entity)의 개념을 사용한다.
사물을 구성하는 유일한 근거로서의 현실체 또는 현실적 계기란 세계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실재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넘어서는 보다 궁극적인 것들은 없다고 보았다.
형이상학의 목적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묘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실재하는 것을 선명하게 설명하는데 있다. 따라서 과정 신학의 전체적 주장은 진정한 악의 가능성이 세계의 형이상학적 특성들에 근거되었다고 본다. 또한 이러한 현실체들은 복합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경험의 물방울들(drops of experience)이라고 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가장 하찮은 존재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현실체의 측면에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기본적인 유형, 또 하나의 실체는 영원한 대상들(eternal objects)이다. 영원한 대상들이란 현실체가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특정 짓는 한정성의 형식들(forms of definiteness)로서의 순수한 가능성들이며, 현 실체와 영원한 대상들을 결합하는 우주의 구성 요소 중 하나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신을 현실체와 동일한 형이상학적 카테고리로 이해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제일 질료는 신의 창조 행위에 선행해서 이미 전제되어 있는 것과 같이,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창조성은 신의 창조행위에 선행한다고 보았다. 무로부터(ex nihilo)세계를 창조한다는 전통적 신관과는 달리, 과정신학은 창조성이 우주의 기본이 되는 힘으로서 선재(先在)한다는 것이다.
현실체가 창조성을 갖는다는 것은 자기결정의 힘(self-determination)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신의 전능과 그 힘에 있어서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힘의 본질은 자기창조와 타자창조의 능력으로서 어떠한 세계이든 이러한 두 방향의 창조성을 갖는 현 실체에 의해서 구성되기 때문에, 세계는 필연적으로 악의 가능성을 포함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형이상학적 범주라고 보았다.
특별히 찰스 하츠혼은 모든 직접적인 힘은 설득이며 이것이 신이 가지고 있는 힘의 형태라고 말한다. 그는 원시적 힘(brute power)은 간접적인 인과율의 형태일지라도 선을 위해서든 악을 위해서든 동일하게 실제적으로 유효하며 고려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한 가지는 그것을 예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을 갖지 않은 존재는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에는 그리핀이 동의할 수 있지만, 예배 받을 만한 존재는 모든 것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전능한 존재여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츠혼은 다음과 같이 이를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