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빈 추락 전, 울먹이며 구조요청..산악인 15명이 무시"
류원혜 기자 입력 2021. 07. 26. 10:40 수정 2021. 07. 26. 11:23
지난 18일(현지시간) 김홍빈 대장을 가장 먼저 구조하러 나섰던 러시아 구조대의 비탈리 라조가 김 대장이 실종되기 10분 전에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사진='데스존프리라이드' 인스타그램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등반한 김홍빈(57) 산악대장이 실종된 가운데, 그의 조난 후 가장 먼저 도우러 나섰던 산악인이 현장을 목격하고도 돕지 않은 다른 산악인들을 공개 비판했다.
비탈리 라조(Vitaly Lazo·48)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자신이 속한 러시아 등반대 '데드존프리라이드'(Death Zone Freeride)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당신들은 SNS에서 8000m를 정복한 용감한 사람들이고 영웅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당신들을 인간성을 상실한, 한심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며 그저 사람 목숨을 경시한 미천한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적었다.
비탈리는 "산악인들은 (조난당한 김 대장을) 그냥 지나쳤다. 심지어 베이스캠프에 구조 신호를 보내지도 않았다"며 "적어도 산악인 15명이 (사고 현장을) 지나쳤다. 어두웠다고 하지만, 그의 헤드램프는 분명히 눈에 띄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같은 벼랑 아래 떨어진 러시아팀의 아나스타냐 루노바(Anastasia Runova)는 김 대장의 파키스탄인 짐꾼 리틀 후세인의 도움을 받아 구조됐다"며 "리틀 후세인이 '힘이 너무 빠져 김 대장까지 구할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울먹였는데도 모든 산악인들이 그냥 지나쳤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장을 구할 힘이 없었다는 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무전이나 인리치(구조 신호를 보내는 위성 장치)를 이용해 도움을 요청할 수는 있지 않았냐"며 "아나스타샤, 당신의 인리치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었다"고 저격했다.
비탈리는 또 "나와 안톤 푸고프킨(Anton Pugovkin)이 아나스타샤를 먼저 구해 캠프3까지 데려다줬는데, 김 대장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며 "멀쩡히 걸을 수 있었던 그 대신에 김 대장을 도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라고 안타까워했다. 또 김 대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선 "10분 후 김 대장이 로프를 타고 오르다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고 적었다.
러시아 등반대 '데드존프리라이드'가 지난 21일 공식 SNS에 게재한 김홍빈 대장의 구조 당시 상황 보고서. 왼쪽 사진은 브로드피크 정상 아래 벼랑길이다. 앞선 비탈리를 안톤이 뒤따르고 있다. 두 사람은 김 대장의 1차 구조를 맡았던 인물들이다./사진='데드존프리라이드' 인스타그램
앞서 김 대장은 지난 18일 오후 4시58분쯤(현지시간) 브로드피크(해발 8047m) 등정에 성공하면서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 한국인으로는 일곱 번째로 히말라야 봉우리 14개를 모두 올랐다. 하지만 하산 과정에서 조난, 실종됐다.
DZF팀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김 대장은 크레바스(빙하 틈)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러시아 여성 산악인 아나스타샤가 실족해 매달려 있는 로프를 보고 정상 루트로 착각해 벼랑 아래로 내려왔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김 대장의 짐꾼은 최소 산악인 15명에게 구조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돕거나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았고, 이 때문에 김 대장이 9시간가량 추위 속에 혼자 남겨졌다고 한다.
비탈리는 김 대장을 구하러 현장으로 향한 뒤 등강기를 이용해 그를 구하려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갑자기 등강기가 고장났고 이를 고치려고 몸을 움직이던 김 대장은 결국 경사 80도 암벽 아래로 추락했다.
지난 25일 파키스탄 육군 항공구조대 헬기 2대는 전날 중국이 자국 영공 진입을 허가함에 따라 현장으로 출동했다. 헬기는 사고 현장을 수차례 돌면서 정찰 수색을 했지만 김 대장의 모습은 육안으로 찾을 수 없었다. 사고수습대책위는 "영상 촬영 내용을 판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1964년생인 김 대장은 1991년 북미 최고봉 매킨리(6194m) 단독 등반 과정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열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15년에 걸쳐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에 모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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