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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과 심리치료 : 심리학적 관점
시한부 환자 가족의 사례 연구
심리치료, 영성 그리고 신학적 성찰
아치 스미스 박사 (Rev. Archie Smith, Jr., MSW, Ph.D.)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 목회심리학 교수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14:7-8)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한 현실의 공동-창조자다. 현실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거나 그 너머를 가리키는 수평선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언제나 이미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맥락 안에 있으며 그 안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살아 움직이며 자신을 알게 된다는 가정을 한다. 내가 직접적인 맥락 속에서 “real" 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나의 방식들로 걸러지며 그것으로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심리치료, 영성, 신학적 성찰이 역사 속에 있으며 사회적으로 조건 지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들은 해석되고 또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하고 특별한 신앙과 실제 공동체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현실을 돕고 구성한다. 우리가 그러한 현실을 공동 창조할 때조차도 나는 언제나 알게 모르게 나의 현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미도 오해(왜곡)하기 쉽다. 나는 이것이 모든 인간의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세 가지 개념을 살펴보고 정의하는 것으로 이 발표를 시작할 것이다.
1. 하나의 심리치료 혹은 다양한 심리치료들 (통찰 지향 그리고/혹은 상호 주관성 상담)
2. 영성 (마음, 몸, 영혼과 사회)
3. 신학 (자연, 역사, 전통,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실존과 관련하여 신성한 창조적 현존에 대하여 말하고 설명하며 상상하는 방식)
이 세 가지 개념들은 어떻게 함께 작용할까? 나는 그것들을 체계적이고 관계적인 관점에서 논의할 것이다. 이 관점은 현실이 유기체적인 전체로 움직이고 있음을 가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부분적으로 그리고 맥락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부분들은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공동 진화하면서 상호작용한다.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이러한 관점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맥락과 분리되어 그것들을 도외시하는 것으로 개인의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시도와는 다르다.
나는 먼저 개념들을 정의한 후, 시한부였으나 회복된 환자의 사례를 말할 것이다. 그 가족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과 그들의 경험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위의 세 가지 개념으로 돌아올 것이다. 더 나아가 나는 치료사와 목회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역할을 이해할 것을 제안하며, 그것이 교육과 훈련을 위한 도전이 될 것을 믿는다.
세 가지 개념들 :
1. 심리치료 (PSYCHOTHERAPY)
심리치료는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다. 그것은 전형적으로 비-의료적 과정으로써 통찰하게 하며, 행동적, 정서적, 인지적 (신념)과 관계 문제를 완화시키고,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거나 유지할 수 있도록 그들의 시야를 넓게 하려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심리치료는 전문적 관계이며 훈련 받은 사람들이 문화적으로 능숙하고 적절한 services를 제공한다. 그것은 이야기-치료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문제의 맥락, 문제의 정의, 효과, 삶의 상황에 대한 해석과 의미, 자원과 치료적 관계들이 모두 중요하다.
Jerome D. Franks 는 “종교-마술적 (religio-magical)”, "경험-과학적(empirico-scientific)", 그리고 “수사적(rhetorical)” 범주들 사이를 구분함으로써 심리치료의 이해에 공헌하였다. (Frank & Frank, 1993).
그것들은 인간 딜레마에 대한 치료적 접근법을 생각해볼 수 있는 독특한 방식들이다. 그러나 각각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의 감정, 태도, 신념, 행동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종교-마술적 (religio-magical) 접근법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많은 것들이 - 신화, 환상, 꿈, 직관과 실존적 불안과 같은 것들이 - 측정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경험-과학적 (혹은 자연주의적인) 접근법은 과학적 접근법에 기초하고 있어서 결과를 측정할 수 있으며 규범적인 과학 모델의 예상과 기준에 맞는다. 그것은 정신적 질병을 연구하고 측정하며 경험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가정한다. 관찰자와는 상관이 없는 사실들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물리적이고 심리학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수사적 (rhetorical) 치료는 의미 혹은 상징적이고 심미적인 경험을 강조한다. 그 개념은 사람들이 의미 있는 것에 기초하여 행동한다는 것이다. 사이코드라마나 인간 딜레마에 대한 극적인 해석을 강조한다. 인간 딜레마는 개인들이 경험하거나 가족이 함께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Jerome D. Frank에 따르면 모든 심리치료들에는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고 보이는 공통성이 있다.
여러 심리치료의 공통점
“모든 심리치료의 공통점은 정서적으로 충만하고 신뢰로운 관계; 환자와 치료사에 의해 수용된 치료적 원리; 교훈, 예시와 자기-발견에 의해 주어지는 새로운 정보; 도움 받고 싶은 환자의 기대 강화; 성공 경험 제공; 정서적 각성 촉진이다.” (Frank, 1971)
심리치료는 사람들이 특별히 공동-구성된 맥락 속에서 자기와 서로를 인식하고 정의하는 방식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 그리고 그것을 해석하는 노련하고 기술적인 방식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자동적으로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 관계와 의미는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다. 지성적 의사소통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야하는 어떤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제 이 특별한 발표에서 보겠지만, 이것은 종교-마술적, 경험-과학적 그리고 수사적 차원을 내포하고 있다. 병원과 협력하는 것, 가족의 상호작용을 다르게 설명하는 것, 새롭게 생겨나는 관계는 그들이 가정했던 것에 대하여 공유하는 세계, 직접적인 상황, 자기-이미지 그리고 새롭게 출현하는 영적이고 대인관계적인 현실을 공유하고 다루었던 다양한 방식들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2. 영성 (SPIRITUALITY)
이것은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는 문제가 되는 용어이다. 거기에는 하나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개신교, 카톨릭,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세속인, 흑인, 한국 교회 영성이 있다. 만일 종교 경험에 다양성이 있다면 개인의 경험과 다양한 영성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William James는 말했다. 왜냐하면 개신교에서는 영성을 너무 모호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영성” 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하여 잠깐 설명할 것이다.
영성에 대한 설명과 정의
영성의 특징은 초월이나 자유 그리고 새로운 의미 창조이다.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은 영적 의미를 해석하기 위한 자료다. 우리는 드러나는 삶 자체로부터 의미를 찾아야 하고 의미와 씨름해야 한다. 즉 우리는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결정할 때 우리는 조건의 구애를 받고 자유에 제한을 받는다. 우리는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물려받아서 이미 그 안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조상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의 결과를 피할 수 없으며 또 우리가 더 광범위한 역사의 힘을 자각하든 못하든 그것을 회피할 수 없다. 따라서 “영성” 에 대하여 말할 때 나는 역설 속에 있는 가정(paradoxically), 즉 자유와 시간의 한계, 개인과 집단의 부분, 역사적이고 사회적 존재이면서 의식적인 개인들로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의 현실 속에 살면서 우리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세계 속에 살면서 세계의 영향을 받고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세계를 상호 구성하고 공유하는 공동 창조자들이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Divine) 현존, 타인들 그리고 우리 자신과 발전하면서도 회피할 수 없는 관계 속에 있다. 우리는 상호 관계를 맺으며 과거로부터 벗어나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곳에선가는 치유된다. 우리는 하나의 관계이다. 우리는 육체이고, 마음이고, 영혼이고 사회(socius)다. 이것은 ‘어떤 사람도 홀로 있는 섬이 아니다. 우리는 main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 고 John Dunne이 말했던 것을 반영해준다. 인간됨 (human-ness)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Martin Luther King, Jr., 의 다음과 같은 말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불가피한 상호성의 network 속에서 하나의 고유한 운명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하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Birmingham 교도소에서 쓴 편지, 1963. 4. 16]. 따라서 나는 영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관계 속에 있다. 우리는 일차적이고 창조적이며 통합하고 무조건적이며 규정하기 힘든 무엇인가에 즉, 우리가 이 이름 없는 현존 (this nameless presence)을 담고 통제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근거하고 있고 그것으로부터 계속 소생하는 마음, 육체, 영혼과의 관계 속에 있다.
“이 이름 없는 현존” 은 새로움의 근거가 된다. 영성은 모든 경험의 깊은 곳에서 필수적이며 일차적이고 통합하며 초월하는 힘을 내포하고 있는 관계적 개념이다. 그것은 느껴지기도 하고 경험되기도 한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 영성은 모든 대관 관계에서 통합된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통합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으로 그 구성요소들은 성장 경험, 궁극적인 초월적 실재와의 관계; 종교적 예전, 윤리적 혹은 도덕적 책임, 원초적인 것에 근거한 것, 경험에 대한 창조적이고 비이성적인 원천이다. 영성 경험은 일상의 현실, 대인 관계, 문화와 역사 속에 있는 타인들과의 현재 경험과 정신의 영향을 받는다. (Smith, Jr., 1979).
3. 신학 (THEOLOGY)
신학은 전통, 언어에 대한 그리고 개인이나 공동체에 의한 평가적이고 비판적인 성찰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창조주, 존재케 하는 자 (sustainer), 우리의 삶 그리고 세계의 구세주, 희망의 근거, 구원자로 알고 있다면 신학은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이 역사적이고 공동체적인 맥락 그리고 개인적 삶에서 어떻게 설명되는가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미래의 목적을 생각해보거나 역사적 사건, 해석의 전통(들), 성서 (혹은 경전), 그리고 개인적/대인 관계적 경험의 맥락을 이용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신학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러한 자료들 (개인적 경험, 역사적 사건, 전통, 성서와 맥락들)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성찰하는가(이용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삶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찾는가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이제 발표할 사례에서 도출된 신학적 의미에 대하여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가설
통합된 주제 : 예측할 수 없는 변화. 어떤 삶의 우여곡절은 가족이 아버지의 죽음을 예기치 않았고 원치 않는 정보로 받아들일 때, 이 가족의 상황에서는 분명하게 되고 거기에 집중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예상하고 이 새롭고 원치 않는 정보에 반응하는 것은 이 가족을 재조직했던 하나의 분명한 사건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에너지가 이 가족에게로 들어와서 아버지 없는 삶과 죽음을 중심으로 재구조화가 일어났다. 그때 거기에는 아버지의 사망 선고와 상황 변화가 있다. 그들이 받아들이게 되었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버지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은) 사라지고 가족들 각자가 삶과 죽음의 의미, 그들의 정체성, 계획된 일에서의 역할과 위치에 대한 혼란과 가족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만 남게 되었다.
그러면 심리치료, 영성 그리고 신학에 대한 설명과 정의는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아래에 나오는 사례 연구는 한 가족의 실존적 그리고 존재론적 질문을 제기했던 가족 위기에 대한 것이다. 사례에는 경험적 정보가 포함되어 있지만 종교적 요소와 영적 요소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것들은 함께 심리치료, 영적 주제, 그리고 특별한 문화적 맥락 속에 있는 신학적 해석의 중요성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음에 나오는 사례 혹은 가족 이야기는 실제 삶의 상황에서 온 것이다.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과 장소 이름은 가명이다. 가족들은 이것을 공개하는데 합의했으며 그것을 편지로 첨부하였다. 이 사례/이야기는 질병과 그것에 대한 정보가 가족의 관계, 역할 기대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가장의 질병이 어떻게 분노, 우울, 부부 의사소통 붕괴에 영향을 미쳐서 결국 이혼하고 각자의 길로 가는가를 보여준다. 부부의 가상 이름은 Martha와 John이며, 장소는 Narnia City이다. 병원은 Canterbury, 대학은 Prestigious University, 혹은 PU이다.
1979년이었다. John은 안수 받은 장로교 목사이며 Prestigious University에서 박사 공부를 시작한 목회 상담자이다. Martha는 집에서 세 아이를 돌보면서 직장을 찾고 있었다. Martha도 치료사였다.
Martha와 John 그리고 그들의 세 자녀 Mark, Alice 그리고 Joannie(실제 이름은 아니다)는 얼마 전에 Narnia로 이사 왔다. John은 목회상담 센터의 Assistant Director로 취업이 되었다. 그는 목회상담과 신학 분야에서 Prestigious University의 박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Martha와 John 두 사람은 활기차고 적극적이어서 상담 센터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예를 들어 그들은 1969년 센터에서 결혼과 가족 체계 치료를 위한 첫 번째 부부 목사였다. 그들은 공동체 세미나를 시작했고 위기 센터, 마약 갱생(Drug Rehabilitation) 센터에서 일하고 있었던 다른 치료사들과 함께 작업하고 그들을 훈련시켰으며 또한 우수한 공동체 건강 자원으로써 그들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목사와 함께 일했다.
John은 특히 심리학자로써 자신을 확립하려했으며 자폐증 어린이와 그들의 부모를 상담하는 어린이 정신의학 부서에서 훈련받았다. 이때 그는 John을 최고의 치료사로 인정했던 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수퍼비전을 받았다. John는 한 지방 대학과 University of Canterbury Medical School에서 심리학과 가족 상담을 가르쳤다. 그는 아내 Martha와 가족 상담을 시작했다. 1974년 그들은 가족 치료와 가족 치료사 훈련을 위한 센터 Narnia Family Institute를 설립했다. 그동안 John 은 Prestigious University (이후로는 PU로 표시)에서 박사 프로그램을 잘 진행하고 있었고 Martha 는 PU에서 교육 심리학 (Educational Psychology)으로 박사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우리가 한 팀으로써 함께 했던 일들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Narnia 경찰국을 위한 1년 동안의 감수성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었다.
1975년 나의 아내와 나는 East Coast 도시인 Narnia에서 West Coast에 있는 도시로 이사했다. 그때 나는 신학대학원 교수단에 가입했다. 우리는 John 과 Martha를 포함하여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떠났다. 우리의 만남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우리의 우정은 예상 외로 점점 깊어졌다. West Coast로 이사하게 된 동기 중 일부는 그때 암으로 투병하고 계셨던 아버지와 지리적으로 더 가깝게 있기 위한 것이었다.
West Coast로 이사한 후 얼마 안 있어서 우리는 John에게 매우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전갈을 받았다. Martha는 John이 간질병 발작을 몇 차례 일으켰고 최근에는 그것이 15분간이나 지속되었다고 말했다. John은 그런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는 상담소에 갔지만 잠깐 동안 갑자기 텅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상담소로 운전하고 갈 때 그는 누군가의 잔디밭에 있던 자신을 발견했고, 우체통을 칠 뻔 했으며, 집으로 돌진해서 잠깐 멈췄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John은 그런 것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러한 사건들, 간질병 발작과 운전하고 가면서 길에 남겨진 것은 CT 촬영을 위해 Canterbury 종합병원에 갈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어느 날 저녁 John 은 내담자를 치료하다가 Caterbury 종합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 “당신의 CT 촬영 결과가 나왔습니다. 좋지가 않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멈추고 될 수 있는 한 빨리 병원으로 오세요. 즉시 수술해야합니다. 운전하지 마시고 보호자와 함께 오세요.” 그때 Martha 는 이미 PU에서 강의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았다. John은 그의 내담자에게 상담을 계속할 수 없고 병원에 갔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긴급 상황이었다. 그는 옆방에서 상담 중에 있는 그의 동료에게 달려갔다. 그 동료는 John이 간질병 발작 증세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때 John의 상태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었다. John이 동료에게 지금 당장 병원에 데려다달라고 말했을 때 동료는 그 부탁을 들어주면서 내담자와 다른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John을 태우고 약 40 마일 되는 Canterbury 종합 병원으로 갔다. 그날 저녁 Martha 는 John의 개인 물품인 파자마, 칫솔 등을 챙겨 가지고 병원에 와서야 John과 동료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John과 함께 있었다.
이제 내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John과 Martha, 아이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의 삶에 변화를 주었던 일련의 사건들이다.
병원에서는 John이 우뇌의 전두엽에 배(pear)만한 크기의 종양이 있었다고 했다. 그의 의사는 그 종양을 수술해서 제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하여 실험을 하고 싶어 했다. 우리는 그 의사가 종양을 제거할 수 있어도 뇌에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 John이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는 다시는 정상으로 될 수가 없을 것이다. John과 그의 가족이 선택할 것은 수술을 하느냐 아니면 수술을 하지 않고 6개월 시한부의 삶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만일 당신이 갑자기 그런 말을 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John은 식물인간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그것이 가족에게 부당한 짐을 지우는 것이라고 느꼈다. 그는 끝까지 그가 할 수 있는 한 온전하게 살고 싶었다. 그는 치료사로서 계속 상담하고 싶었고 할 수만 있다면 PU에서 박사프로그램을 마치고 싶었다.
John의 상태에 대한 소식이 전해졌을 때 치료 공동체에 있는 많은 동료들은 그와 연락을 끊었다. 그는 소위 동료들로부터 점점 커져가는 침묵의 벽에 부딪혔다. 그들은 그를 피했다. 그가 지나가면서 그들에게 인사하면 그들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 모임의 초대가 점점 줄어들었고 몇 안 되는 친한 친구들만이 그에게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John의 지도교수였던 치료사 그리고 한 친구는 냉정한 목소리로 “그는 망상을 살고 있어. 그는 몇 달 안 있어서 죽을 거야.” 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상태에 대하여, 아마도 호기심에서, 묻고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거리를 두고 있었다. West coast에서 John과 Martha와는 주로 전화로 만났다.
이듬해 여름 우리는 휴가 계획을 짜서 John과 Martha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이것은 작별인사를 하는 우리의 방법이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1976년 여름에 우리는 여러 날을 함께 보냈고 John과 그 당시에 11살이었던 그의 아들 Mark가 사랑스럽게 포옹하는 것을 보았다. Martha는 아이들이 John과 논쟁하는 대신 그녀와 싸웠다고 말했다. 이것은 아이들이 John과 해왔던 레슬링과 장난의 패턴에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그녀와 아이들이 몸싸움을 할 때 그들은 매우 공격적이고 거칠었다고 말했다. Martha 는 이것을 아빠의 상태에 대한 그들의 분노, 두려움 그리고 좌절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해석했다. 그것은 그들이 ‘엄마, 그것을 이겨낼 만큼 강해요? 엄마도 아빠처럼 약하고 병들어서 우리를 버릴 거죠?’ 라고 말하는 방식이었다.
점점 더 Martha는 치료사로서 그리고 박사 과정 학생으로서 일을 계속하는 동안 가정을 꾸려 가야하는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있었던 압력의 일부는 John이 점점 더 의존적으로 되어갈 때 강해지고, John을 안심시키면서 돌보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John이 내담자와 약속을 하고 그것을 잊었던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내담자들이 치료 약속 때문에 집으로 왔을 때 John은 거기에 없었고, Martha는 그들에게 사과하면서 John과 전화 연결을 시켜주고 다시 약속을 잡아야만 했다. 그녀는 종종 John에게 약속 스케쥴을 기억나게 해서 갈등을 겪지 않도록 그를 도우려고 노력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의 큰 딸 Alice는 어린 숙녀가 되어서 과거에 했던 방식으로 엄마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Mark는 어린 청년이 되었고 학교에서 친구들과 마리화나를 피우기 시작했다. Martha가 겪는 압박감은 엄청났다.
물리적으로 John은 변화하고 있었다. 그는 머리숱이 많았었는데 지금은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서 완전히 대머리가 되었다. 그는 점점 말라갔고 쉽게 피곤해져서 잠을 많이 잤다. 그 이유는 수술, 매일 받는 방사선 치료, 나른하게 하는 약, 백혈구를 검사하기 위하여 매일 받는 혈액 검사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나타난 변화들” 에 대하여 말하곤 했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John은 ‘달라진 건 없어.’라는 말로 변화를 부인했다. 딸 Joannie는 하나의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 아빠가 놀이공원과 기구 타기를 좋아했고, Joannie와 “아빠”는 멋진 단짝이었다. (나중에 이것을 읽으면서 Martha는 “이건 잊었었어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아빠”는 더 이상 놀이공원에 가지 않았다. 그는 너무 혼란스러워서 놀이공원에 가서 놀이기구 타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Joannie는 놀이 공원을 좋아했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제 나는 놀이 공원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가? 라고 묻곤 했다.
목사였던 John은 종교 공동체에서 - 그의 몸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을 나누기 위하여 그리고 그가 하나님에게 가졌던 질문을 큰 소리로 말하기 위하여 - 그의 상태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John 은 Narnia Area 상담 센터의 소장과 함께 대화 설교를 했다. 거기에서 John 은 그의 마음에 있었던 것을 나눌 수 있었고, 그 모든 것을 신학적 그리고 목회적 맥락 안에 놓을 수 있었다. 그의 설교는 로마서 8:18-30 해석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의 기본적인 목표는 그의 이야기를 통하여 다른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태를 보다 열린 마음으로 공유하고 그것과 투쟁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Mable, 마녀 : John은 치료를 위하여 Texas에 있는 Simenson Institute에 연락했고 명상을 통하여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배웠다. 매일 아침 John 은 직장에 가기 전에 목욕탕에 따뜻한 물을 넣고 앉아서 30분 동안 명상을 했다. 그는 명상을 통하여 종양, 그것이 퇴색된 것, 그것의 크기를 볼 수 있었으며 약을 Mable이라는 황금색 마녀로 의인화했다고 말했다. 그는 종양이 있었던 그의 머리속으로 그와 함께 들어가는 추한 마녀를 상상했다. 그는 마녀 Mable에게 분노하면서, “이것은 거슬리는 실체야, 그것은 나의 일부가 아니야.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아. 나는 네가 그것을 떼어놓기를 원해.” 라고 말할 것이다. Mable의 손톱은 아주 길고, 발톱 같았다. 날마다 마녀 Mabel 은 한 손으로 종양을 할퀴었다. 불꽃이 일어나고 그녀는 암세포를 죽일 것이다. Mabel 은 다른 손에 있는 잔해를 쳐서 떨어뜨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영역의 뇌에 잔해가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동안 John은 방사선 치료를 위하여 Canterbury 종합 병원 약속을 매일 지켰다. 처음에 그는 방사선 기계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두려움을 통제하기로 결심한 후에야 그의 머리를 맴도는 방사선 기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 기계를 “Harry”라고 불렀다. John은 “이제 너는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거야, 그렇지 Harry?” 라고 말했다. John은 곧 Harry에게 “Hello”라고 인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상태와 감정에 대하여 Harry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친구로 Harry를 보게 되었다. John은 Harry라고 이름 붙인 기계에게 했던 것을 방사선 전문가이며 그의 인도 의사에게 말했다. 의사는 “우리 인도에서는 수세기 동안 그것을 해왔어요.” 라고 대답했다.
어느 날 그가 명상을 시작했을 때 그와 마녀 Mabel은 종양을 다시 한 번 만지기 위하여 그의 머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종양이 사라졌다. Mabel은 자신의 일을 모두 마쳤다. 그녀가 종양을 모두 없앤 것이다.
John이 Canterbury 종합병원으로 돌아와서 X-rays를 찍고 그의 최근 상태를 보았을 때 놀란 의사는 종양이 X-rays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을 전했다. 그의 의사는 그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어지는 검사와 X-rays는 종양이 사라졌고 거기에는 단지 상처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의학, 치료, 목회 공동체에 있는 몇몇 사람들은 아마도 처음에 말했던 “종양설”이 오진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John의 진단은 명상, 약, 방사선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나의 믿음이 합하여 치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내가 낯설게 보았던 것, 나의 육체에 침입한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John은 이 과정을 “전인적 치유 (holistic healing)” 라고 했다. 그것은 의학, 명상, 상징적 상호작용에 의하여 뇌의 종양과 같은 경험적 현실을 다루는 것이었다.
우리는 John의 종양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특히 Martha 와 아이들에게 좋은 소식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뒤 Martha와 아이들은 죽음과 함께 살고 있었으며 John의 죽음, 그의 부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힘들고도 소모적인 2년이었다. John 의 죽음이 이 어려운 시련을 끝내줄 것이다. Martha 와 가족의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했다. 그녀는 훈육과 결정을 해야 하는 가족 문제를 통제하기 위하여 힘들게 일했다.
이제 가족은 John이 죽지 않았고 주변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과 투쟁해야했다. Martha 의 치료사는 예상된 상실을 준비하게 했다. 그녀는 새로운 삶 아마도 또 다른 결혼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녀는 요요처럼 변덕스런 감정을 고백했다. “나는 낙담했어요. 그리고 낙담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꼈어요. 다른 모든 사람들은 기뻐했잖아요.”
그들의 결혼 생활에 통제의 문제, 즉 ‘어쨌든 이 일은 누구 책임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John은 가장의 자리로 돌아올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Martha는 이제 분명히 강하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녀는 약속했던 것을 지켰다. 그녀는 가장이 되었고 아이들과 싸우고 논쟁하는 사람이 되었다. John의 의존이 Martha에게는 짐이 되었다. John은 인격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큰딸 Alice는 그녀의 아빠인 John 에게 “기운내고 일어나세요. 그런 행동은 나의 아버지로는 적절치 않아요.” 라고 말했다. John 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Alice는 John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방으로 들어가서 고개를 파묻고 침대에 누웠다.
내담자로부터 전화가 올 때마다 John은 일을 잘 통제하고 있는 사람처럼 반응하고 말했다. 그의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은 아픈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고 “기운내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는 종종 그렇게 했다.
나는 1980년 East Coast에서 안식기간을 보냈다. 어느 일요일 나는 Avon, New Jersey에서 있었던 결혼식에서 돌아왔다. 그날 밤 Narnia에서 John 과 그의 가족과 함께 그날 밤을 같이 보내기로 선약이 되어 있었다. John 이 초대를 했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도 선약된 계획의 일부였다. 이른 저녁 내가 거기에 도착하여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무도 없어요?” 나는 놀랐다. 그 집의 개 Adam이 짖었고 마침내 Joannie가 문을 열었다.
나는 “존은 어디 있나요?” 물었고, 그녀는 “2층에서 TV 보고 있어요. 올라오세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갔다. Alice와 John이 마루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고 Alice가 나를 알아보았다. 조금 후 John 도 나를 보았지만 다시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거기에 약간 어색하게 서 있다가 “Martha 는 어디 있나요?” 라고 물었다. 그녀는 논문을 쓰기 위하여 공부하러 갔다는 것이다. 나는 저녁 초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배가 고팠다. 나는 잠시 멈추었다가 “맥도날드에 가서 먹을 것을 사와야겠어요. 뭘 사올까요?” 라고 말했다. 나는 이 질문이 “저녁 초대”를 떠오르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맥도날드 주문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가서 햄버거를 사왔다. 나중에 Martha 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먼저 내게 물었다. “저녁 식사 했어요?” 나는 우리 모두 먹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그녀는 또 다시 저녁 식사에 대하여 물었다. 나는 그때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녀는 미안해했고 John이 식사 준비를 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나는 앞에서 John이 인격의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 내가 말하는 것은 John이 과거에는 함께 식사를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일들을 계획하는 것에 리더였고 그 일들이 되도록 조취를 취했었다. Martha는 처음에 John이 그녀에게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가 성숙하게 동료들을 리드했던 것 그리고 그에게 의지할 수 있었던 것, 그가 삶에서 어딘가에 있었던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보는 John은 의존적이고 잘 잊어버리며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의지할 수 없었다. 그녀는 John을 걱정했고 그 관계 때문에 소진되어 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John과 Martha는 수년 동안 치료를 받다말다 했다. John과 Martha를 잘 알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매우 견고하고 현실에 기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들은 한 팀으로서 일을 아주 잘 했고 모델이 될 만한 부부였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John의 병과 회복 그리고 가족에게 시작된 변화는 그들에게 큰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 John 은 Martha가 이혼할까봐 두려웠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클수록 그는 더 우울해지고 의존적으로 되었다. 그가 우울해지고 의존적으로 될수록 Martha 에는 더 큰 짐이 되었다.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John이 1980년 봄에 West Coast로 우리를 방문했을 때 그는 Martha와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그는 내가 Narnia 근처에서 안식기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나는 John의 의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는 날 그는 Narnia에서 내가 있는 장소로 왔는데 나의 주변을 따라다녔다. 나는 그날 어떤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나를 그의 시야에서 떠나지 않게 했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실이었다.
1981년 3월 John과 Martha는 그들의 집을 팔았다. John 은 두 딸과 함께 Southern city로 이사 와서 직업을 구하고 치료사로서 일하려 했다. Martha는 논문을 마치기 위하여 남아 있었다. Martha는 상담 센터의 소장 그리고 그의 아내와 함께 살면서 PU에 통근하였다. Southern city 로 이사한 것은 John이 기대했던 대로 되어지지 않았다. 치료사 일을 하려고 노력했던 대략 8개월 후 John 과 두 딸은 Narnia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John은 개인 상담 치료사로서 다시 서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나? :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어떻게 말할 수 있나? John은 일을 주도해왔었다. 그는 추진력 있는 사람이었다. 언젠가 Martha와 John은 Bermuda로 갈 계획을 세웠다. John은 “아마도 가지 말아야할 것 같아.” 그는 말을 하다가 멈추었다가 전혀 터무니없는 말을 할 때가 있다. Martha는 “나는 John의 정신이 온전한지 걱정 되요. 그는 말을 하다가 중얼거리고는 그렇게 했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기절한다든지 그런 극적인 일은 없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아프구나.’ 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는 잠깐 방향감각을 상실할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다시 감각을 찾지만 분명하게 말하지 못해요. 이 모든 것은 그가 약간의 발작 증세가 있다는 걸 알기 전부터 그랬죠.” 이러한 증상들은 Martha에게 걱정을 끼쳤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일이나 그들의 결혼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한 John의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Martha는 “무심코 하는 행동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John은 암투병을 하는 초기에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죽어가는 과정이 두려웠다. 즉 “듣고 말하고 소화시키는 것과 같은 주요 신체 기능의 상실 그리고 가족이 나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 그런 것들이 수치스러웠다. 그때 나는 자살의 환상을 갖고 있었다. 나는 생명보험을 탈 수 있도록 어떻게 자살할까를 생각했다. 나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75마일로 달리다가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멈추지를 못해서 자동차 제방을 들이받고 말았다. 나는 나의 가족으로 하여금 이런 힘든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암이 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여전히 그것이 다시 생길까봐 두려웠다. 나는, 좋아, 다시 이겨낼 거야, 라고 말했다. 두 번째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 그때 또 다른 발작이 있었다. 하나님 제발 또 다시 암이 아니길 바랐다. 나중에 그것이 흉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우울했고 퇴행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정말로 최고의 치료를 해서 나의 내담자들이 실제로 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치료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전에 내가 했던 치료와는 달랐다. 왜냐하면 나는 훨씬 더 깊은 수준에서 내담자들의 문제에 개입하기 위하여 더 많은 에너지를 썼기 때문이다.
이 설명에서 우리는 말기로 진단된 질병의 영향과 가족 관계 회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심리치료에 대한 도전, 신중하게 부여하는 영적 의미 그리고 비판적인 신학적 성찰을 위한 역할을 볼 수 있다.
심리치료
전통적 개인 심리치료 접근법들은 독립적이고, 관념적이며 자족적인 개인에게 특권을 준다. (Sampson, 1983, 2000; Barnes, 1985). 그것은 종종 개인의 내면 상태를 해석하고, 그 개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설명하는 기능을 한다. 원인 결과가 중요하다. 이것에 비추어본다면 나는 John을 우리의 지명된 환자 (identified patient) 로 분류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의학적 상태로 인한 불안-우울 장애와” 같은 임상적 진단을 (DSM-IV, 2005:723) 제시했을 것이다. 개인 심리치료 접근법은 지명된 환자 John에 대하여 치료 계획을 세울 것을 권장할 것이다. 나, 관찰자/동료 그리고 나의 영향력은 진단의 일부분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런 전통적 심리치료 해석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나는 그 가족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맥락을 포함하며, 말기로 진단된 질병의 영향을 어떻게 다루는가를 포함하는 체계적 접근법을 제안했다. 가족과 그들의 환경 안에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상호작용의 신념과 패턴은 죽음과 함께 살고 있는 가족에게 물리적, 정서적, 경제적 그리고 관계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의 사회적 네트워크와 삶의 패턴에도 변화가 생겼다.
나는 체계적 관점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는 사회 계급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인종차별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lower working 계급 배경을 가진 흑인 미국 남성이다. 나는 흑인 침례교회에 나간다. 내가 설명했던 가족은 나와 달랐다. 그들은 금발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백인으로 이상적인 미국 사람이었다. 그들은 중산층이었고 고학력의 전문가 계급 배경을 가졌다. 그들은 장로교 교회를 다녔다. 나의 배경은 그들과 반대였다. 인종 차이와 힘의 역동, 문화, 경제, 종교적 차이는 종종 다양한 사회 환경의 크고 작은 상호작용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요소들은 우리의 상호작용에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함께 보내는지를 해석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성찰은 더 깊은 감사, 더 풍부한 감촉,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에 대한 더 풍부한 설명을 더할 수 있었다. 나는 체계적 관점의 이 중요한 차원들을 버리지 않았다.
전통적 심리치료와 체계적 치료 접근법 사이의 차이를 더 자세히 설명하면 치료적 선택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상황의 다양성, 경제적 능력 협의, 문화와 사회 과학 정보를 인식하는데 개방되어 있을 것이다. 체계적 치료 접근법은 개인의 상태나 개인의 심리 성찰에만 제한하여 분석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분석을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신학, 종교, 음악, 예술과도 비판적인 대화를 권장할 것이다.
심리치료사는 질병이 결국 환자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을 때 모든 가족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주제는 개인의 질병이 결국 죽음으로 끝날 것인지; 가족들은 질병에 관하여 어떤 정보를 갖고 있는지; 가족들은 말기 질병의 정보에 의하여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가족들은 ... 죽음을 수용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상실을 애도하며 궁극적으로는 가족을 잃은 가족들로서 성공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가족 심리치료사와 체계적 사상가는 가족의 요구에 그리고 죽음과 함께 하는 삶의 맥락에 반응할 때 하나님의 적극적인 현존을 자각하기 위한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Krieger and Bascue, 1975:351).
영성 주제들 : 가족의 경험으로써의 우울은 영적 문제이다
시편 작가는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나의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시편 42:5a). John은 우울하다고 말했으며, 아픈 사람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포기했고, 가족으로부터 철수하여 자살로 자신을 죽이려 했으며 Martha에게 모든 걸 떠넘겼다. John은 이전의 자기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암이 생기기 전에 나는 혈기왕성했고 때로는 잘난 척했었다. 나는 창조적일 수도 있었고 . . . 가족에게 할 일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능력을 포기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명상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면에 초점을 맞췄다. 나는 분명히 가족의 외적 세계로부터 철수해야만 했다. 매일 나의 몸에 집중했다. 즉 ‘지금 나의 느낌은 무엇인가? 나는 지금 어떻게 느끼고 있나?’”
Martha는 John이 사람들 그리고 Martha와 만나는 것을 피한다고 말했다.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녀로부터 멀어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두 개의 다른 공간에서 살기 시작했어요.”
가족의 의사소통과 의미구조는 변했다.
가족의 책임을 똑같이 공유했던 건강한 두 부모로부터 건강한 육체를 가진 한 부모로 가족이 변화했다. John과 Martha는 그들의 세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함께 졌었다. 이제 세 아이들이 있고, 가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어머니와 아프거나 능력이 없고 의존적이며 어린 아이 같은 어른 한 명이 있다. 구조적이고 물리적인 현실이 변할 때 영적 현실도 변한다.
이 사례에서 John의 병은 전형적이며 문화적으로 아버지와 남편에게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성인으로서 그의 능력에 심각한 장애가 생겼음을 의미했다. Martha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존하는 네 명의 가족에게 한 부모가 되는 것을 의미했다. John은 물리적으로는 있었지만 기능적으로는 “거기에” 없었다.
연구원 Kristin Wright는 우리가 살고 죽는 방식은 반복적으로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관찰했다. 삶과 죽음은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예기치 않게 서로를 말해준다. 가족 구성원들은 그들 중에 있는 말기 환자에 대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다르게 반응한다. 그리고 죽어가는 환자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하여 다르게 반응한다. 죽는 과정 그리고 변화하는 영적 현실은 아마도 말기 환자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묘한 차이가 있고 복잡할 것이다. 만일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게 이해한다면, 혼란과 갈등이 쉽게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과 함께 하는 삶의 과정은 더 많은 인내, 세부적인 일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관계의 어려움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무엇이 적절한 반응인가에 대하여 단순하게 이미 만들어진 규칙은 없을 것이다. 이것을 다룬다는 것은 가족 구조, 관계의 패턴, 가족이 그들의 삶에서 함께 의미를 찾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상황의 변화와 자원에 귀를 기울이고, 기술, 공감과 존중의 느낌을 가져야 한다. (Wright, 2003).
영성의 종교-마술적 그리고 시간적 차원
처음에 John이 병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의식이 있었다. 방사선 치료를 받기 위하여 매일 도시로 차를 타고 갔다; 의사들의 칭찬과 격려; 가까운 친구들의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Martha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려함이 사라지고, 치료가 끝나고, 일상의 여정이 끝났을 때 상황은 어렵게 된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장례가 끝났을 때를 설명하는 방식과 같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당신이 미망인이라는 것을 잊는다. 내가 정말로 우울하게 될 때는 그때였다.”
영성에서의 비합리적인 분노
아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분노를 느꼈어요. John이 가족을 도울 수 없고 살기 위하여 자신을 돌보아야만 했던 것, 즉 명상을 해야 했던 것을 이해해요. 그러난 나는 이해하는 데 지쳐서 ‘삶이 무슨 소용 있나? 당신은 우리에게 별로 도움도 되지 않는데.’ 라고 말했어요. 그는 정말로 우리게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John에 대한 Martha의 분노는 대략 CT 촬영이 끝나고 종양이 사라졌다고 했을 때 드러났다. Martha의 분노는 John에게서 느꼈던 의존 때문에 표면화되었다. John 은 이전에는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들을 Martha에게 물었다. 예를 들면, “계란 요리 할 냄비가 어디에 있지?” Martha는 “알잖아, 당신 머리는 그 냄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만큼 손상되지 않았어! 종양이 사라졌잖아. 나는 당신이 다시 할 수 있기를 바래.” 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가 다시 결정하는 사람이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영성은 모든 경험의 깊은 곳에서 활기차고 원초적으로 연합하고 초월하는 힘을 내포하는 관계적 개념으로 정의되었다. 이것은 질병의 경험들을 포함하고 있다. 영적 현실과 삶의 우여곡절은 이 젊은 가족이 아버지의 임박한 죽음에 대한 정보를 함께 나눌 때 초점이 되었다. 의존적인 행동과 중도탈락에 도전하였다. 죽음과 함께 하는 삶이 그 가족의 현실이 되었다. 일상의 의미, 신화와 현실에 도전했다. “왜 나야?” “왜 우리야?”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신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나?” 와 같은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것들은 영적 (의미, 종교-마술적) 그리고 신학적 (인지-수사적) 질문들이다. 가족 구성원들마다 이 질문들을 다르게 보고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도덕적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도덕적 책임에 이의를 제기한다. 즉 ‘가장인 나는 중도 탈락되어 아프고 비이성적으로 될 것인가? 그리고 이 낯설고 원하지 않는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까?’ 유한성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John 은 가족의 돌봄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영적으로 고갈되고 우울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John 이 예전 같지 않으며 더 이상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이와 같은 주제와 질문, 신념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가족의 영성에 영향을 미친다.
신학
앞에서 나는 경험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하나님의 현존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안목 있는 질문을 하게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이 사례에 대하여 간략하게 성찰하고 싶은 핵심적인 신학적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의식 속에 그리고 이야기 속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가?”
내가 죤에게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존재하시나요?” 라고 물었을 때 그는 “그럼요! 당연하죠! 하나님은 나의 치유 과정 중에 함께 하셨죠.”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은 대인 관계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아프기 전에) 알았을 때처럼 판단하시지 않고 나와 당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합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되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도움을 주는 작은 제스처 속에서도 하나님의 무조건적 수용을 알 수 있어요.” 그때 Martha 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갚을 것을 기대하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나에게 똑 같이 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위하여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단지 내가 당신을 위하여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당신이 알기를 원해요!”
John과 Martha와의 인터뷰에서는 직접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말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성령(Holy Spirit)”, "영(spirit)", "죄(sin)", "구원(salvation)" “구속(redemption)” 과 같은 전통적 신학적 언어나 범주는 그들의 경험을 설명하거나 해석하는데 사용되지 않았다. 그들은 심리학적 언어와 치료적 언어를 사용하여 “나는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요.” “하나님은 나를 수용해요.” “나는 당신을 위하여 거기에 있었어요.” 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들은 자기 가치와 자존감에 대한 주제들이다. 거기에는 또한 영적 관심과 신학적 관심도 있다. 신학적 관심은 궁극적 관심이다. “그러나 . . . 개인적 정체성에 . . . 문제가 있다면, 궁극적인 문제는 매우 왜곡되어 있을 것이고 <그리고> 신학적 현실은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Henry and Stransky, 1982:75). 우리가 Imago Dei (하나님 형상)의 의미에 대한 비판적 대화 속에 역할과 개인적 정체성에 대한 관심 그리고 대인관계적 관심을 포함시킨다면 성령 운동 그리고 일상의 관계에서의 새로움에 대한 가능성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죤이 성령과 하나님 형상(Imago Dei)에 대하여, 즉 “하나님은 나의 치유에 나와 함께 계셨어요.” 그리고 “하나님의 실재는 대인 관계를 통하여 전해지죠.” 라고 말했던 것을 확장할 것이다.
John Cobb은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방향성(directivity)”의 개념을 사용했다. 하나님의 현존 혹은 신성은 다른 대상들과 함께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방향성, 목표 지향성, 목표, 혹은 미래 지향성으로써 세계에서 발견될 수 있다. 방향성이라는 이 개념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물질주의에서 계급 없는 사회에 대한 역사적 지향성으로 설명된 것이었다. Paul Tillich는 그것을 존재의 근거와 일치 (Ground and Unity of Being) 로 설명하였는데 그것은 관계 단절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가 그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구약 성서에서 방향성이라는 용어는 세상에 대한 야훼(Yahweh)의 목적과 관련이 있다. 인간은 그 목적으로부터 존재의 목적을 이끌어낸다.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의 사상에서 방향성은 전 우주가 나아가고 있는 근본적인 새로운 미래로 설명된다. 화이트헤드(Afred North Whitehead) 는 방향성을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모든 것의 목표로 설명하였다.
방향성은 적극적이고 내재적인 하나님 현존으로 생각될 수 있으며,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그리고 우리를 넘어서 작용함으로 우리로 하여금 미래에 열려 있고 책임지게 하며 새롭지만 아직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을 깨닫게 한다. 그때 하나님은 깊은 인간 경험 속에서, 비극과 상실 속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며, 과거와 현재에 매여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반복하거나 그것의 희생자가 되기보다 그것을 변화시키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미래로 나아가도록 부르시는 분이다.
죤은 “전인적 치유(holistic healing)” 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나는 그 용어를 예술적 비유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전 세계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여 치유된 창조 (지속적인 창조)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계와 인간의 삶은 그것의 중요성을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이끌어낸다. 창조는 우리가 창조에 참여함으로써 확인되고 새롭게 된다. 예술가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취하여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창조한다. 이것은 이 가족 앞에 놓인 도전을 밝히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주어진 것은 창조하는데 쓰이는 유화 물감, 붓, 캔버스일 것이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경우에 그에게 주어진 것은 작업할 딱딱한 대리석, 조각칼, 망치였다. 그는 망치와 조각칼을 갖고 대리석을 찍고 잘라내었다. 미켈란젤로는 딱딱한 대리석으로부터 조각상을 - David, Day and Night, Dust and Dawn, Slave 그리고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 창조했다.
이 예술의 비유와 과정은 인간이 그들에게 주어진 것을 받은 창조적인 agents 라는 것을 가정한다. 인간은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과 삶의 우여곡절로부터 만들어간다. 이렇게 “주어진 것들” 중 어떤 것은 잠정적으로는 치료될 수도 있는 말기암, 두 번째 기회, 혹은 부담스럽고 변해버린 가족 상황 등이 될 수 있다.
목회돌봄 그리고 상담에 대한 도전
말기암 환자와 그의 가족의 목회 돌봄과 상담에 대한 도전은 고통 속에 있는 가족을 지지하고 지도하며, 한편으로는 가족으로 하여금 슬퍼하게 하며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게 한다. 목회 돌봄은 궁극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제한하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운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더 많은 도전을 받는다. 이상적으로는 고통을 겪는 가족이 교회와 사회에서 그들의 돌봄 사역을 위하여 준비되어야 한다. 말기암 환자 가족을 상담하는 목회 돌봄과 상담은 새로운 훈련에 부름 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이야기와 전기 속에서 무조건적인 사랑, 창조주, 구원자, 희망의 근거가 되신다면 그리고 그분에게서 삶의 여정이 시작되고 우리가 그분에게로 돌아간다면 John 과 Martha 의 이야기 속에 계신 하나님의 적극적인 현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Martha가 위의 글을 읽은 후 내게 보낸 개인적인 편지로 이 발표를 마치려한다.
Archie, 당신은 분명히 우리 가족에게 일어났던 일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분석했어요. 나는 나의 분노가 부인(denial) 이라는 방어기제였을 거라고 생각해요. - 마치 내가 죤을 낫게 할 수 있을 것처럼 - 내가 충분히 소리만 질렀어도 John(가명)이 ‘바르게 행동’했을 것처럼요.”
나는 암환자와 결혼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을 때 그것은 또한 나에게 의미 있는 상실이었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었고 그래서 그는 아마도 호전되었을 거예요.
나는 당신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는지 그리고 쓰고 있는지 알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고 저의 마음이 너무 행복했어요. 나는 죤이 생기 있고 일관성이 있었으면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느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그곳에 계서서 그리고 이 모든 경험이 의미 있게 되도록 우리를 돕고 돌보신 것에 대하여 매우 감사합니다. 나는 언제나 그곳에서의 여름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랑. Martha (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