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와 관련된 전설(Ⅰ)
제우스는 주신으로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날씨를 관장하는 등, 천신의 수장역을 수행하였다. 제우스는 형제간의 제비뽑기에서 하늘을 지배하게 되었는데, 앞에서 살펴본 대로 탁월한 수완으로 감히 다른 신들이 넘볼 수 없는 카리스마를 확보하고 명실공히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로 군림하였다.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이며 우주의 지배자 제우스는 올림포스 산 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며 모든 일을 관장하였다. 직접 챙기기도 하고 때로는 헤르메스와 무지개의 신 이리스를 전령으로 파견하여 자신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다.
제우스는 혼란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만약 질서 파괴자가 있을 경우에는 인간이든 신이든 거인들이건 결코 용서하지 않고 중징계로 다스렸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오토스와 에피알테스의 올림포스 무단침법사건'도 자신의 형제인 포세이돈의 아들이었지만 중벌로 다스렸다.
자연법 위반자에 대한 처벌
예를 들어 아폴론의 아들이며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까지도 소생시킬 수 있는 신묘한 의술을 전수받았다. 그는 트로이아 원정 당시에 전사자를 소생시키는 의술을 베풀었는데,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한 명계(冥界)의 왕 하데스는 이에 깜짝 놀라서 제우스를 설득하여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벼락을 던지도록 하자,
자연의 순리를 중요시하는 제우스 역시 그의 말에 공감하여 번개를 내리쳐서 아스클레피오스를 죽여 버렸다(그림: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아폴론은 아들 아스클레피오스가 제우스의 번개로 죽자, 감히 아버지
제우스에게는 불만을 터뜨리지 못하고 번개를 만들어준 아이트나 산의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던 키클로프스에게 화살을 날려 분풀이하였는데, 사실을 알게 된 제우스는 아무리 자기 아들이지만 중징계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소환하여 구속하였다(아폴론은 제우스와 레토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며 아르테미스와는 쌍동이 남매 간이다).
원래는 '자연법 위반자에 대한 복수'이지만 아스클레피오스를 죽인 당사자는 제우스 자신인데도 번개라는 무기를 만들어준 키클로프스를 살해한 것은 마땅히 자신에 대한 분노의 표출, 즉 아스클레피오스의 죄목과 같지만, 헤라가 레토와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핍박한 점도 있고 해서 '단순 괘씸죄'를 적용하여 지하의 감옥인 타르타로스에 감금하려고 했지만 그를 낳은 어머니 레토가 제우스에게 울면서 애원하는 바람에 그곳에 유폐되는 형벌은 면할 수 있었는데, 형집행
정지가 아니라 감형되었을 뿐이었다.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신의 신분이지만 일 년 동안 인간의 종살이를 시켰다. 그래서 아폴론은 테살리아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의 머슴이 되어 암프리소스 강가의 언덕에서 양떼를 치면서 그를 상전으로 모셨다.
천체의 질서 위반자에 대한 처벌
언젠가 태양 신 헬리오스와 오케아니스의 님프 클리메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파에톤'이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이륜차를 몰겠다고 고집을 피운 일이 있었는데,
파에톤이 아버지에게 자신이 태양신의 아들이라면 그 증거를 보여달라는 통에 별수 없이 이륜차를 내어주고 말았다.
그러나 운전 미숙에다 침착성을 상실해버린 파에톤이 천상의 곳곳에 널려져 있는 괴물들의 형태를 보고 공포심에 사로 잡혀 정신을 잃고 말의 고삐를 놓쳐버렸다.
고삐 풀린 말들이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여 때로는 높은 하늘로 오르는가 하면 때로는 거의 지구와 충돌하기 일보전까지 내려갔다. 구름은 연기를 내기 시작하였고 산꼭대기에선 불길이 솟았다. 태양의 열기 때문에 들은 메마르고 식물은 시들었으며 잎이 무성한 수풀은 타고 추수한 곡식은 모두 화염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뿐만
도시들이 순식간에 소실되고 주민들이 타 죽었다.
제우스는 이 광경을 보고 모든 신들을 소집하여 '이번 일을 방치하면 자연의 질서는 근본적으로 파괴되며, 우주 자체가 존망의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 설명하고 높은 탑으로 올라가 번쩍이는 번개를 내리쳐서 이륜차를 몰던 파에톤을 죽여 버렸다.
영원한 형벌을 받은 파렴치범
익시온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원래 테살리아의 왕이었으나 친족을 살해한 최초의 인간으로 기록되었다. 즉 구약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살인자 카인에 해당한다. 익시온은 라피테스 족을 지배하면서 자신의 친족(?)인 에이오네우스의 딸 디아와 결혼하여 '페이리토오스'라는 아들을 얻었다(일설에 의하면 아버지가 제우스라는 설도 있음).
익시온은 결혼의 댓가로 에이오네우스에게 재물을 주겠다고 연락하여 테살리아로 초대하였는데, 깊은 구덩이를 파고 그 밑에는 타오르는 숱을 가득 채워 에이오네우스를 그곳으로 떨어뜨려 태워 죽였다. 이러한 친족살해라는 만행을 저지른 그에게 그 누구하나 가까이하려 하지 않게 됨으로써 따돌림을 당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으며, 신들도 그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편, 제우스는 못말리는 바람둥이였다. 사실 제우스는 익시온의 아내인 디아에게도 마음이 있었고 제우스의 부인 헤라는 남편의 못말리는 바람끼 때문에 무척이나 속이 상한 상태였다. 그때 제우스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익시온을 가엽게 생각하고 하늘로 데리고 가서 신들의 향연에 참석케 하였는데, 아뿔사! 익시온은 어마어마한 착각을 하고 말았다. 이미 제우스로부터 찬밥신세가 된 헤라가 고독한 나머지 제우스에 대한 화풀이로 자신의 유혹을 받아주리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 헤라에게 수작을 걸었다. '사모님 외롭지 않으세요?'하면서 말이다.
아무리 남편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엄연한 제우스의 왕비이며, 첫 번째 부인은 아니지만 명색이 조강지처인데, 그 따위 인간의 수작으로 유혹한다는 사실에 격분한 나머니 제우스에게 일러 바쳤다.
제우스는 자신의 호의를 배은망덕으로 갚은 익시온을 벌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제우스는 익시온을 시험해보기 위해서 구름으로 헤라의 모습을 만들고 어떻게 나오나 기다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구름을 진짜 헤라로 착각한 익시온은 마치 암내를 맡은 수캐처럼 덤벼들어 교접하는 행동을 하였다. 이런 파렴치하고 참담한 모습을 본 제우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그를 잡아다가 타르타로스에 유폐시키고 네 바퀴가 달린 화염마차에 묶어 영원히 멈추지 않게 하였는데, 일찍이 제우스는 은덕을 베풀어 익시온을 불사의 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고통은 영원한 것이었다.
제우스를 시험한 리카온
아르카디아의 왕 리카온은 많은 아내로부터 50명의 아들을 얻었다(물론 딸도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칼리스토도 있었다. 제우스가 그녀를 마음에 두자, 헤라가 질투하여 곰으로 모습을 바꿈). 그런데 리카온이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아르카디아를 여행하고 있을 때, 제우스를 시험하기 위해서 몰록소스인 노예를 잡아 그 고기를 올려 놓았다. 제우스는 이러한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르는 리카온을 벌하기 위해서 닉티모스를 제외한 모든 나머지 자식들과 그를 벼락으로 내리쳐서 늑대로 만들어 버리고 필레몬과 바우키스를 구한 다음에 대홍수를 일으켰다.
한편 필레몬과 바우키스 부부는 제우스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그의 아들 헤르메스와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여기
저기서 하룻밤 신세지는 것을 거절당했지만 비록 초라한 오두막집에서나마 성심 성의껏 그들을 맞아주었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청빈과 겸허한 마음으로 참고 살아왔다.
그들 부부의 마음씨에 감동한 제우스가 '우리들은 하늘의 신이다, 고약한 마을은 징벌을 받아야 하지만 너희들만은 그 징벌을 면하게 하리라. 이 집을 떠나 우리와 함께 저 산으로 가자'면서 그들을 산으로 끌고 나와 그들을 구출했던 것이다.
소원을 묻는 제우스에게 필레몬은 아내 바우키스와 잠시 상의한 뒤 '우리 모두 사제가 되어 죽을 때까지 당신의 신전을 지키겠으며 같은 날 같이 죽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제우스는 그 소박하고 경건한 소원을 받아들였다.
제우스는 상과 벌이 확실한 신이었으며, 무엇이든지 어물쩍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제우스를 시험한 탄탈로스
역시 제우스를 시험하다가 영원한 기아의 고통을 당하게 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여기서 이야기할 '탄탈로스'이다. 원래 그는 소아시아 지방 리디아의 왕이며 엄청난 재물을 가진 부자였다. 그는 아틀라스의 딸 디오네와 결혼하였는데, 그들의 자식 중에는 그리스의 에리스에 이주한 펠롭스, 암피온과 결혼한 니오베, 레아 또는 키벨레의 최초의 상(像)을 조각한 조각가 브로테아스가 있었다.
탄탈로스는 한때
신들의 사랑을 받아 올림포스에서 식사를 같이하는 기회가 많았으며 신들의 식탁에서 신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불사의 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신들의 분노를 일으켜 영겁의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탄탈로스가 자신의 집으로 신들을 초대하고 신들을 시험하기 위해서 자신의 자식인 펠롭스를 죽여 그 고기를 식탁에 올려 놓았다.
데메테르 이외의 모든 신들은 그 고기요리를 보고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손도 대지 않았으나, 데메테르는 지하와 명계의 신 하데스에게 딸 페르세포네를 납치당하여 슬픈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펠롭스의 어깨 부분의 고기를 뜯고 말았다. 이를 본 헤르메스가 지하의 명계로 내려가서 죽은 펠롭스를 데리고 와서 그를 환생시키고 손상을 당한 어깨부분을 상아로 때워주었으며, 그 사건 이후부터 신들은 탄탈로스를 혐오하게 되었다.
탄탈로스는 파렴치하게도 신들의 식탁에서 신들의 음료인 암브로시아와 신주 넥타르를 훔쳐 자신의 친구들에게 인심을 쓰는가 하면, 신들과의 식탁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이를테면 천기를 누설한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범행을 저질렀는데, 직계 비속 살해죄와 절도죄, 천기누설죄 등 갈수록 태산인 탄탈로스를 벌하기 위해서 제우스는 지하의 타르타로스에 유폐시키고 영원히 기아와 갈증의 고통을 받는 형벌에 처했다. 지옥의 연못 속에서 아무리 물을 마시려 해도 물이 달아나 버려 영원히 목마름이 가시지 않고, 머리 위에 달린 음식은 그가 고개를 뽑으면 그만큼 위로 올라가 먹을 수가 없었다. 여기서 'tantalizing(애타게 하는, 감질나게 하는)이라는 형용사의 어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