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보은동학마당축제, 공연예술축제 이름만으로도 그 축제가 범상치 않게 보인다. ‘동학’, 백여 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한 지역의 공연축제에서, 그리고 그 공연축제의 판벌임을 하는 이들의 마당판도 ‘동학’에 관한 놀이판, 굿판이었으니 새삼 동학에 대해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무대 가장자리 내걸린 무지렁이 백성의 오만상의 탈들이 영이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무지러져서 못 쓰게 된 물건을 이르는 ‘무지렁이’처럼, 그 ‘백성(百姓)’이 ‘무지렁이’가 된 것을 한없이 한스럽게 지켜봐야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세도정치 세력들은 그들의 권력으로 온갖 부정축재를 일삼았고 그 부패가 극에 달았다. 이로 인하여 관서지방 농민봉기, 삼남지방의 농민봉기가 연이어 일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지배층은 현실에 대한 각성도 그에 따른 개혁의 의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런 가운데 1860년대 “사람이 한울이다”는 기치를 내걸고 동학이 일어났는데, 무엇보다 내세적(來世的) 구원보다 현실 세계의 개조를 내걸었다는 것은 바로 구태의 세계를 주체적으로 변혁해보겠다는 기층 민중의식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실 이 연극, <눈자라기> 역시 놀이와 굿 형식을 빌어서 현세적 삶의 지향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데에서 그 효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내걸린 걸개에서든, 짓과 대거리의 탈놀이든, 대형 꼭두의 조종술이든 결국은 현세에서 바라는 그들의 가치는 옛 스러진 ‘안민(安民), 위민(爲民)’의 탈박의 이야기를 구연하는 것에서 이를 쉽사리 찾아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의 이상(理想)’이 이미 내걸려 있다는 것은 이미 과거의 현실개혁 의지의 좌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그것은 현재의 구경꾼들에게 그리 좋은 구경거리가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 개혁의 좌절은 따지고 보면, 부정부패 권력에 있다기보다는 효수된 백성의 모가지, 즉 현실개혁 의지를 갖고 그 실현을 추구한 백성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하고 거세될 수밖에 없었던 민중성의 한계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지난 이야기와 지금의 상황적 동일화는 이 연극놀이의 중심 줄거리이기도 하다.
‘동학’은 인간중심주의의 인즉천(人卽天)사상을 기저로 출발하여 당시 압제받는 민중들의 위안과 희망으로 열띤 호응을 얻는다. 그러나 이런 평등사상은 기존의 지배 권력과 토호들에게 역심(逆心)을 가진 좌도난정(左道亂政)세력에 대한 위기감과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조건에서 동학은 당연히 공인받을 수 없었고 탄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동학마당축제가 열리는 충청도 보은은 19세기 말 급박하게 전개되던 정국(政局)에서 격동의 중심부이기도 했다. 당시 보은은 1893년 보국안민(輔國安民)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내세우며 보은에서는 동학을 믿는 이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린 곳이었으며, 동학농민전쟁 때는 보은, 황간, 영동이 북접농민군의 주둔지이기도 했다. 또 남접의 전봉준의 농민군과 합세하여 공주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끝내 일본군의 압도적인 화력에 의해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한 동학농민군의 마지막 보루이기도 했다. 보은은 곧 동학농민전쟁의 출발점이면서 최후의 전장이 된 곳이다. 특히 북실은 관군과 일본군 등의 포위와 추격 속에 동학농민들이 불의의 기습을 받고 수없이 학살당하고 희생당한 곳이기도 하다. 이는 여러 사료와 보고에서 밝혀진 것처럼 북실 싸움이후 보은을 비롯한 충청도 남부 일대의 동학농민군 조직이 이때 자취가 끊어졌다는 것에서 당시의 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이 동학마당극제와 극단 꼭두광대의 <눈자라기>는 그 동학농민군의 ‘상처’, 한스러운 이야기가 토대가 되어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실의 겨울, 그 동학농민이 다하지 못한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이상이 묻혀진 이 무대에서 어떠한 이야기를 캤는지 살펴봐야겠다.
2. 우는 나무와 동학의 아이-파랑새는 길조가 아니다
노래가 들린다. “시천주(侍天主), 시천주(侍天主) 하늘님을 내 마음에 모신다.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같이 섬긴다. 인내천(人乃天)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 하늘이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른들이 손을 잡고 마당을 두르며 두 손을 합장하고 경건하게 앉는다. 이 연극의 열림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흔히 볼거리를 찾는 구경꾼들이 좀체로 볼 수 없다. 그들 남녀노소는 주문을 음송하면서 극적 공간의 형상화를 위한 무대를 개의치 않고 올라 합장하고 비손한다. ‘섬김’의 정성, 그리고 동아리를 맺는 것은 이 연극의 주체들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히 말해준다. 종래의 구경꾼이 한 연행에 있어 반응하는 것과 다른,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참여를 이 연극은 이끌어내고 있다. 특히 이러한 판 열음은 극중 소통방식의 참신함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에 대한 담당자이며 참여자에게 예술의 사회적 생산과 전승, 향유에 대한 폭넓은 사회성을 한꺼번에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연희적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집단적 동참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연행 현장에서 눈에 띌 수밖에 없는데, 그만큼 작품 <눈자라기>는 가변적 공간을 창출하려는 시도가 빈번하다. 한정된 무대를 시시때때로 허물려는 시도는 이야기의 몰입을 방해하는 부정적 요소가 될 수 있으나 애초에 이야기의 ‘말하기 방식’이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눈자라기>는 구비의 구조를 탈굿으로 변조하면서 ‘보기(showing)’와 ‘하기(doing)’를 중심으로 ‘동아리 만들기(Circles Creating)’에 골몰해 있다.
민속에서 나라의 큰 변고 있으면 나무가 울음소리를 낸다는 구비 설화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작품 <눈자라기>에서도 이러한 ‘신령수(神靈樹)’를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울음’을 듣는 ‘아이’가 등장하는데, 이는 ‘울음’의 사연을 가진 나무(화자)와 ‘울음’의 사연을 듣는 아이(청자) 간의 상호소통의 구조를 보여주는 것으로 이 작품에서 ‘풀이’의 기본 맥락이 된다. 하지만, 그 나무의 울음에 대한 연유를 찾기보다는 엉뚱하게도 ‘꽃을 사랑한 호랭이’를 등장시켜 아이와 호랭이와 어우러짐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다시 말해, ‘울음’의 부정적 상황(맺힘) 이전에 자연 상태(환원/복구 지점)를 보여주면서 ‘풀이’를 통한 ‘환원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 구조
꼭두광대의 동학 창작 탈굿 <눈자라기>(2012)
등장사물
구경꾼/
아이
⇨
우는 나무/
아이
⇨
호랭이/
아이
⇨
호랭이/
파랑새/
아이
⇨
꼬마병정
(파랑새 알)/
아이
⇨
동학농민/꼬마병정
아이
⇨
홍백가/홍동지/꼬마병정
/아이
⇨
구경꾼/호랭이/나무/
아이
분위기
경건
⇨
어둠
⇨
밝음
⇨
어둠
⇨
어둠/
경쾌
⇨
어둠/
무거움
⇨
어둠/
경쾌/
무거움
⇨
밝음/
무거움
사실, 대개의 공연예술 작품의 플롯은 ‘자연→부자연→자연’의 복귀 혹은 회복이라는 단순한 플롯(plot)을 가지고 있다. 이 <눈자라기> 역시 그러한 점에서 ‘풀이’로서의 환원 맥락을 가지고 있다. 다만 ‘프롤로그(서곡)’와 ‘에필로그(종곡)’의 ‘울고 있는 나무’라는 ‘맺힘’의 지속은 특이하게 받아들여진다. 곧. 풀이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울고 있다’는 진행적 과정, 다시 말해 ‘맺힘’의 지속은 ‘풀이’의 지속을 말해주며 변증적인 역사발전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맺힘’의 확인이야말로 ‘풀이’가 지속될 수 있는 이 굿놀이의 존재 양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의 공간은 비어 있지 않다. 그곳은 일련의 구체적 요소들(objet; 물질적, 가시적 재료)로 들어차 있는데, 그건 누구나 잘 알다시피 광대들의 몸과, 무대의 수많은 장치들, 소도구들이다. 그 요소들의 기능과 작용으로 하나의 세계가 만들어지고 전개가 된다. 한 사람의 광대만이아니라, 쓰이는 소품, 소도구 하나하나의 기능적 역할이 없다면 어떻게 극이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반드시 채운 무대만이 아니라 심지어 빈 무대를 만들어 놓는 것 역시 장식적인 기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극단 꼭두광대의 연행에서 이 재료(performing objet)의 기능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조종되는 인간, 동물 등의 물질적 이미지들은 어떠한 우리의 관습적 관념들과 관계되며, 그러한 관념은 체화된 삶의 경험, 혹은 믿음에서 상상되어지는 것의 재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눈자라기>에서 ‘호랭이’와 ‘파랑새’, ‘홍동지’는 이러한 연행적 재료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나오는 동적(動的) 꼭두각시들과 조형된 탈들은 분명 좋은 오브제로서 극적 기능을 다하고 있다.이 꼭두각시와 탈, 그리고 의상, 배경장치 등에 사용된 색채. 이미지는 상호 대별적이면서 세밀하게 구조된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것은 이 작품에 등장한 꼭두각시와 탈 등은 그 어떠한 적의와 적대감을 가질 수 없는 얼굴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렬하면서도 그것이 모나지 않아 보이는 특이한 인형들은 이 이야기가 갖는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는’, ‘정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가령, ‘달호랭이’와 ‘아이’가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곳에 날아온 ‘파랑새’는 길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어떠한 부정적 인식을 갖지 못하게 한다든지, 파랑새가 낳은 알에서 나온 꼬마병정도 그리고 거대한 홍동지 인형 역시 적대할만한 생물체지만 큰 위험과 위협적 요소를 쉽게 가질 수 없으며 무대적 형상화에 대한 정황적 인식에서나마 두 충돌하는 대상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눈자라기>는 직접적인 표기보다는 환기된 사물재료를 통해 특정한 방식으로 유용하게 그들이 바라는 세계를 구현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홍백가의 땅-아이야 나오너라
<눈자라기>에 등장하는 ‘홍백가(紅白哥)’, ‘홍동지’는 모두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꼭두각시놀음>에서 ‘홍백가’는 홍백의 양면의 탈과 옷을 입고 겨우 외상 술값을 떼어먹은 사람으로 나올 따름이다. 하지만 <눈자라기>에선 조국강토를 들어다바치는 기회주의자로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홍동지(洪同知)’ 역시 <꼭두각시놀음>에서는 박첨지의 조카로 온몸이 붉고 벌거벗은 인형으로 붉은 몸통과, 근육, 노출된 남근과 음모까지 적나라한 알몸을 그대로 보여준다. ‘홍동지’는 거칠고 힘센 존재로 상징되는데, <꼭두각시놀음>에서는 세도가인 평안감사 앞에서도 무례하며 원색적인 행동도 서슴없다. 다시 말해, 형식도덕을 중시하는 양반들에게는 골칫덩이지만, 바꾸어 말하면, 그는 아무 것도 두려울 것 없고, 권력과 형식도덕을 파괴하는 ‘홍동지’야말로 봉건시대에 있어서 민중의 소망의지가 투영된 초인적, 환상적 인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눈자라기>에서는 이러한 ‘홍동지’를 힘과 권력을 상징하는 부정적 인물로 바꾸어버린다. 그 힘의 형상화를 위해서 꼭두각시도 거대하게 조형했으며 이를 조종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극단 꼭두광대는 작품 <눈자라기>를 위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인형의 특정한 상징을 과감히 탈피하고, 극적 기능 작용을 위해 새롭게 상상한 ‘권력의 형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어떤 원형을 변형한 인형오브제의 상징화는 자칫 지시 대상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극적기능을 위해 이러한 적극적인 작가적 견해가 관객, 구경꾼이 무대 안팎에서 경험하는 상상적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보다는 무대적 형상화의 인상에 있어서 보다 효과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 꼭두광대의 동학창작탈굿 <눈자라기>는 전통연희의 기법과 재료가 많이 차용된 작품이다. 또한 이 작품의 창작에는 지역적 역사 정서가 잘 녹아내려져있으며 지역민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잘 드러나 보인다. 이러한 전통연희술의 새로운 발견으로서 창작탈굿<눈자라기>는 종래의 공연예술작품과 차별화될 수 있다. 특히 몸짓과 춤, 노래, 악 등의 악(樂)‧가(歌)‧무(舞) 전통에 대한 고민과 이를 활용하여 투영한 작품의 주제는 더욱 상연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단순한 극적 기교일 수도 있겠으나, 관객이 이 연극 속(안)에 있게 됨으로써, 그것은 기교가 아닌 체험이 되며 그 사물에 대한 창조적 관계를 인식하고 수용하게 된다. 이러한 연극체험을 통한 정서의 체득은 교육연극으로서도 좋은 사례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이 제기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시간 속에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무대의 공간에 대한 영역의 인식 사이에서 ‘연극 행위’는 극 이야기의 시간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눈자라기’라는 단어 뜻이 ‘아직 꼿꼿이 앉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면, 작품 <눈자라기>가 가져야할 이야기의 주목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등장인물과 공간의 영역이 제대로 구조되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다시 말해 ‘이야기’가 그 ‘시간’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고, 이것은 수많은 ‘보기를 위한 볼 것’은 좋았으나 그 볼 것이 산만하여 ‘시간의 드라마’가 긴밀하게 연결되고 극적 의미를 제대로 구현하는데는 부족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보은이라는 지역적이고 공간적인 외적 배경에 대한 기대와 동학에 관한 역사적 시간에 대한 바람이 커서였는지 몰라도 드라마는 단조롭고 답답했으며 상연에 있어 ‘사연의 진술’이 아쉽게 느껴졌다. 단, 극적 공간을 허물어서 생긴 동네 아이들의 놀이는 과히 볼만한 것이었고, 연극의 비일상적 시공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은 아이들을 보면서 이 작품이 추구하는 바를 알게도 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극적 공간을 체험한 시간이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이들아, 나오너라, 동창 남창이 밝았느니라.”
우는 나무를 만져주는 아이는 없고, 꽃비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은 동학의 아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