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마6:24~34)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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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큰 시험이 오늘 본문말씀의 오해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회에 다니니까 내 문제는 다 해결될거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지!’ 등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어도 맹목적이고도, 어리석은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오해들이 생겨났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신(神)으로서 전지전능 하시고, 무소불위(無所不爲) 하신 분으로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생사에 힘든 일이 닥치면 신앙과 무관한 일도 ‘하나님은 감찰(鑑察)하시는 분이라 다 보고 계시니 내 일을 만사형통(萬事亨通)하게 처리해 주실거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에게 시험을 하시는 것이니 잘 이겨내 보자!’ 등의 식으로 합리화(合理化)를 하게 됩니다. 사람이 합리화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義)가 무너지면 그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육체의 보존을 위해 나오는 본능(本能)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 본문말씀은 주기도문 이후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합니다. 두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명의 주인이 되십니까? 당장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곧바로 굶어 죽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육체에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단 하루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우리는 당장 굶어 죽습니다. 그러니 육체를 입고 태어난 자에게 두 주인 中 한 분을 선택하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배’가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
하지만 세상은.. 내가 뿌린 씨의 열매를 먹고 마시면 어느 정도 배가 부르기도 합니다. 비록 종노릇을 하더라도 내 배가 부른 것이 생명(生命)이 되는 것이고, 나의 배부름이 진리(義)가 되어 버리니 이 세상이 주인노릇을 하여 ‘거짓의 영’으로 사람들의 생명을 지배하게 됩니다.
결국 종으로 살다가 종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가없는 인생의 굴레를 벗어나게 하고자 아버지는 교회를 통해 말씀으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시려 하지만, 우리는 그 손길이 내 욕구를 충족시키지 않기에 가차 없이 뿌리치게 됩니다. 내 배부름에 대한 믿음이 없고, 그로인해 소망 또한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소망이 없다는 것은 나타날 생명력이 없다는 것이고, 실상 또한 나타나지 않는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는 교회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맹목적이고, 방향성 없이 육체의 본능에 따른 ‘종의 소망’이 되지 않길 바라십니다. 세상의 영광이 아닌 감추어진 진실(眞實)을 발견한 ‘자유자의 소망’을 갖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참 주인을 발견해야 하며, 교회 안에서 아버지가 주시는 참 된 양식 즉, 은혜와 긍휼을 먹고, 마시고, 입음으로서 '무엇'을 걱정하지 않는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