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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소식 스크랩 풋풋한 젊음과 함께 한, 도너리오름 들꽃 잔치
김창집 추천 0 조회 97 07.02.27 10:1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제주작가회의 <청소년 창작 수련 캠프> 참가기(2002. 3. 23~24.)

 


* 도너리오름 분화구

 


▲ 문예반 학생들과 같이 참가한 '청소년 창작 수련 캠프'

가는 곳마다 봄꽃이 넘쳐나는 계절이다. 유채꽃, 개나리, 벚꽃, 목련, 배꽃, 복사꽃……. 청소년 창작 수련 캠프가 열리는 이틀 동안, 현장을 두 번씩이나 드나들면서 화창하게 피어 있는 꽃에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교통사고가 날 뻔한 일도 있었다. 더욱이 중산간 마을로 이어지는 16번 도로는 아직도 운치가 있는 나무들이 많이 남아 있어 옛 고향에 대한 추억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광령에서 고성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20여 년 된 벚나무 가로수가 있어 꽃대궐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 내 고향 윗마을인 애월읍 납읍리 휘트니스타운에서는 ‘청소년 창작 수련 캠프’가 있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제주도지부(지부장 고정국)가 주최하고 문화관광부와 제주도교육청이 후원하는 1박2일 동안의 이번 행사에서 나는 ‘생태 환경 체험 기행’을 담당, 참가자들을 오름으로 인솔하게 되었고, 또 우리 학교 12명 학생을 인솔하는 책임까지 떠맡았다. 그러나, 노모를 모시고 있는 관계로 밤에 왔다가 이튿날 아침에 가지 않으면 안 되어 단체 이동을 못하고 혼자 승용차로 오간 것이다.

요즘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 속에 위축되어 가는 청소년 문학의 활성화를 위하여, 문학인들 자신이 보낸 청소년기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창작을 지도하는 한편, 일선 학교에서 문학을 지도하는 선생님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글쓰기 교육의 내실화를 기하고, 생태 환경 체험을 통해 자연 사랑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목표를 두고 이런 행사를 마련한 것이다. 대상은 제주시내 고등학교 문예반 학생 남녀 120명과 문예반 담당교사, 그리고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일부 문학 지망생을 대상으로 했는데, 중앙에서 내려온 문인과 제주작가회의 소속 작가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문학에 대해 작가들과 직접 대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번 행사의 취지에 걸맞게 중앙에서 고형렬(작가회의 시분과위원장), 강형철(작가회의 상임이사, 시인), 안도현(시인) 등이 이곳으로 내려왔다. 제주에서도 고정국(시인) 회장과 나기철(시인), 양영길(시인) 부회장, 김수열, 홍성운 시인 등이 참석해 학생들의 문학적 갈증 해소에 한몫을 했다. 연합통신의 이성섭 기자는 ‘문학과 자연, 청소년의 꿈이 한데 어우러진 이번 행사는 학생들이 교실 밖으로 뛰쳐나와 마음껏 특기를 펼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현장교육의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는 기사를 썼다.


△ 다양한 창작 수련과 대화의 광장(신문 기사에서)

고정국 회장은 인사말에서 "역사의 질곡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지닌 제주지역은 그냥 '툭 치면' 문학이 나온다고 할 만큼 문학적 토양이 풍부한 곳"이라면서 학생들에게 "사르트르처럼 노벨상 작가로 선정돼도 거부할 수 있을 정도의 대작가로 성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안도현 시인도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문학의 꿈을 키워 가는 예비 문인들에게 생생한 체험에서 우러난 여러 가지 얘기로 도움말을 줬다.

행사는 크게 문학 강연과 창작 실습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제1회 노작문학상 수상작인 ‘서울로 가는 전봉준’등 6권의 시집과 ‘연어’ 같은 산문집을 낸 바 있는 안도현은 강연을 통해 '자신의 문학적 재능만을 과신해 손끝으로만 시를 쓸 것이 아니라, 먼저 열린 가슴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퇴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수영'과 '쿨' '리치' 등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의 '노랫말 개사하기'와 김수영의 시 '풀'을 패러디하기 등이 준비된 모둠별 창작실습 시간은 여타 문학 행사의 딱딱함과는 구별되는 것이라 많은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오마이뉴스의 홍성식 기자가 쓴 기사에는 '황사, 바람, 나' '제주, 바다, 나'라는 제재로 진행된 백일장과 '5분 촌극 시나리오 쓰기'에도 학생들의 참여 열기는 뜨거웠다. 참여 학생 중 몇몇은 '시나리오 쓰기'에 흠뻑 빠져 시간가는 것을 잊고 밤을 꼬박 세우기도. 이튿날 열린 백일장 시상식에서는 17명이 입상, 심사에 참여한 문인들의 격려와 함께 주최 측이 마련한 조그만 기념품을 받았다. 입상자 중 한 명인 고건(18) 군은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의 상상력이 메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닫힌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줄 따뜻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어른스런 말로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다.

행사의 주된 프로그램은 실제 창작 훈련과정인 모둠별 활동. 이 시간에는 노래가사 개사하기, 합동 시 쓰기, 패러디 연습, 소설 결말 새로 맺기, 5분 촌극 시나리오 쓰기 등을 통해 실제 글 쓰기 기법을 익혔다. 이 행사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행사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공부라고 생각한다"면서 "제주가 배출한 현기영 선생님 같은 훌륭한 소설가로 성장해 '따뜻한 글'을 쓰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은 이튿날 점심을 마치고 소설가 김창집의 안내로 도너리오름 기행과 한라 아트홀에서 ‘하늘굿’ 공연을 관람하는 등 다른 장르를 통해 문학적 상상력을 키우는 시간도 가졌다.


▲ 안도현 시인의 초청 강연 요지 - '시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눈발이라면 / 안도현
∴∵∴∵∴∵∴∵∴∵∴∵∴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다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

중학교 1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이다. 금년 2월 제주시내 고교 합동 ‘문학의 밤’ 행사 때, ‘만약 현역 문인을 초청해 얘기를 듣는다면 누가 좋을까’하는 물음에 1위로 꼽힌 그의 강연 첫 마디는 의외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믿지 마라”였다. 자신은 줄곧 미술반 활동을 해오다가 중3 졸업 무렵에서야 비로소 시라는 걸 한 편 썼다는 것이다. 그 뒤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하고 나서 시인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그로 보아 재능보다는 더 요구되는 것이 노력이었다는 요지였다.

둘째로 그가 한 얘기는 ‘시 쓰기에서 우선적으로 배척해야 할 세 가지’. 즉, ‘그리운 척, 외로운 척하지 마라’ 그것은 ‘과장(誇張)’이 될 테니까. ‘아픈 척, 슬픈 척도 하지 마라’ 그것은 ‘감상(感傷)’으로 흐를 테니까. ‘유식한 척 하지 마라’ 그것은 ‘현학취(衒學臭)’가 날 테니까. ‘현학취’는 ‘아는 척, 고상한 척하는 유치하고,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뜻인가? 셋째는 ‘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쓰자’였다. 손끝으로 쓴다는 말은 여러 번 다듬자는 의미. 또, 하나 덧붙이면 ‘엉덩이로 쓰자’는 것이었는데, 이는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는 재미있는 표현이다.

넷째는 ‘자기 체험을 재구성하는 상상력을 중요하게 여기자’이다. 모든 문학은 체험의 소산으로 내가 눈으로 한 번이라도 본 것, 내가 잘 아는 것을 택해 쓰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자신이 체험한 것을 단지 ‘있는 그대로’ 쓴다고 해서 다 훌륭한 시가 아니니, 체험을 재구성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자신이 작품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는 앞부분에 눈이 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이끌기 위해 ‘시적 허구(虛構)’라는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라는 고백이었다. 다섯째 ‘시는 언어의 게임이다. 살아 있는 언어를 찾아 나서자’였다. 일테면, ‘하얀 눈’보다는 ‘쌀밥 같은 눈’(시골), ‘팝콘 같은 눈’(도시)과 같은 표현으로.

여섯째로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퇴고(推敲)이기에 ‘끊임없이 고치자’고 강조했다. 자신은 단 석 줄짜리를 쓰면서도 수십 번 고쳐 쓴다고 했다. 반질반질 윤이 흐르도록. 일곱째는 ‘나를 슬프게 하는 시들’이다. 그 중 앞부분을 소개한다.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슬프게 한다. 그런데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자기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시라는 형식을 빌려 일방적인 고백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시의 옷을 입고 이리저리 시달리는 그 언어는 또 얼마나 몸이 아플 것인가.

그는 학생이 자신이 생각하는 ‘시의 정의’를 물었을 때, 고은(高銀) 선생의 ‘시는 심장의 뉴스다’가 인상 깊었다면서, ‘시인은 삶의 이면에 있는 언어를 찾아내서 언어로 보여주는 사람’이며. 그런 점에서 발견가라고 볼 수 있는데, ‘마음의 눈’과 ‘실제의 눈’의 시력을 키워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피해야 할 말은 ‘한자어로 된 관념어’로 ‘행복(幸福)’, ‘고독(孤獨)’, ‘희망(希望)’ 등이라고 했다. 문득 몇 년 전 문학 강좌가 끝나고 이어진 뒤풀이에서 옆에 앉아 말없이 술을 들면서, 학창시절 대구에서 시체실을 지키던 아르바이트의 느낌을 담담히 들려주던 얘기가 떠올랐다. ‘시는 진실을 언어로 그려 넣는 작업’이라는 말과 함께.


△ 풋풋한 젊음과 함께 한 도너리오름 들꽃의 향연

버스 3대에 나눠 탄 참가자들을 이끌고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도너리오름으로 향했다. 승용차를 혼자서 타고 맨 앞에서 선도하는 느낌은 사뭇 별다르다. 기승을 부리던 황사 현상도 풋풋한 젊은이들의 기세에 눌려서인지 거의 사라졌다. 모처럼 교실을 떠나 시골 들판을 달리는 학생들의 지금 기분은 어떨까? 서울서 내려온 시인들과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중앙지 기자들도 모처럼 운치 있는 취재에 신이 나는 모양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아름답고 전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16번 도로는 벚꽃을 비롯한 유채꽃, 복사꽃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차에서 내려 목장 입구에서 간식인 빵과 우유 그리고 생수병을 받아드는 순간 벌써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들. 방금 점심 식사를 마치고 왔음에도 먹어도먹어도 부족하기만 한 이들의 식욕에서 만춘을 느낀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 봄은 왜 그렇게 길었던지. 보릿고개를 넘긴 세대들은 부러운 눈으로 이들의 왕성한 식욕을 지켜보며 감회어린 모습이다. 목장 안으로 들어가서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얘기를 시작했다. ‘산불 조심’과 ‘자연에 임하는 자세’를 먼저 얘기했다. 이 오름이 비록 해발 439.6m, 실제 높이 110m, 넓이 306,369㎡밖에 안 되지만 교만은 금물이라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우선 눈에 띄는 대로 발 앞의 조그만 개불알풀꽃 하나를 꺾어 들었다. 이름을 다같이 크게 말해보도록 하니,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진다. 쇠별꽃과 마침 솟아오른 두릅나물을 꺾어 다시 따라 하도록 했다. 이처럼 보잘 것 없이 작은 식물에서도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질서를 얘기했다. 긴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피어난 작은 생명, 이것에서 한없는 자연의 경외(敬畏)를 느낀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도 자연의 일부인 줄도 모르고, 자연을 인간의 소속물인 것처럼 여겨 함부로 대해온 결과 지구는 병들어 온갖 재해를 몰고 왔다. 앞으로 문학인들은 생태 환경을 지키려는 쪽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 체험에 대한 얘기다. 우리 세대와는 달리 자연과 떨어져 커온 학생들에게 작은 풀꽃의 아름다움,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꽃 이름이 주는 이미지나 모양에서 시의 모티프를 끌어낼 수 있다는 얘기로부터 자연에서 질서를 발견하고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길을 찾아 시로 형상화 한 시인들의 시를 들려준다. 실제로 체험하지 않고 앉아서 쓴 문학 작품의 오류를 교과서에 나오는 소설 얘기에서 찾아 지적해 준 뒤, 진행하는 측에서 시계를 자주 쳐다 보길래, 내가 가리키는 풀꽃 이름을 계속해서 뒤로 전달하도록 부탁하고 앞장섰다. 정상 바로 아래서 조랑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 곳을 통과하여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내려올 것이다.

맨 처음 눈에 띈 것은 산자고 무리. 마른 풀잎 사이로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수줍게 피어나고 있었다. 오름 초입에는 민들레와 양지꽃의 노랑색 잔치를 벌이고, 오름 전역에 제비꽃과 솜나물 꽃이 봄을 노래한다. 흰빛에다 잎사귀가 갈라진 남산제비 꽃도 그 자태를 뽐내고. 8부 능선에서 드디어 수줍게 고개를 내민 고사리 무리를 발견한다. 아줌마 시인들은 벌써 한 줌씩 꺾었다. 한 시인은 제대로 핀 할미꽃을 골라 찍느라 바쁘다. 드디어 정상! 사진 찍기에 바쁜 아이들을 깊이 패인 굼부리(분화구) 옆으로 불러 놓고 150만년 전 제주도의 탄생으로부터 오름의 생성까지 나의 오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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