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욕망과 해체로서 글쓰기
박양근
수필은 욕망을 이야기한다. 사랑, 향수, 생명, 하다못해 생리적 욕망도 다룬다. 라캉은 욕망은 욕망을 이야기한다고 말하면서 욕망을 기표라고 불렀다. 그래서 욕망은 완벽한 대상을 갖지 못하므로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거리를 찾게 된다. 욕망의 글쓰기가 가장 치열하고 강렬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크 라캉이 들려주는 욕망이론을 수필에 적용하면 새로운 담론이 생성된다. 이럴 경우 수필은 내면에 형성된 의식과 대상에 대한 끝없이 질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무의식과 의식, 인식과 자각, 작가와 대상이라는 모순된 두 실체가 만나는 경계에서 수필쓰기가 이루어진다. 비유하면 허공에 걸린 줄에서 치솟았을 때 양옆으로 벌린 두 다리의 모양과 같다. 작가는 욕망과 좌절이라는 체험을 해체하여 재조립해나갈 수밖에 없다.
수필작가는 미완의 욕망을 글로써 부분적으로나마 충족시키려 한다. 그 욕망이 없으면 작가로서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가장 무서운 작가는 글쓰기 욕망을 달성하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세헤라자드의 이야기 욕망을 기억하라. 욕망, 권력, 담론, 좌절의 문제가 자아에 대한 에고이즘과 에로티시즘으로 부활하지 않는가. 자크 라캉은 에고 심리가 욕망의 기저라고 보았다. 그의 말은 언어란 결핍과 욕망의 투사물이라는 뜻이다. 이번호에는 잠재적 욕망을 해체한 작품이 다수 게재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억압된 욕망을 이미지처럼 응시하면서 구현해나가는 방향성을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해체해간다. 욕망에 대한 작가와 화자의 감수성이 고양되면서 완성도가 높은 김정화의 <뽕짝 인생>, 노혜숙의 <조르바의 춤>, 심선경의 <딱새와 유리창>, 김사랑의 <아버지의 애첩>을 주목하고자 한다. 앞 두 작품은 노래와 춤으로 억압된 욕망을 표출하고, 후자의 두 작품은 순수의 향수에 대한 욕망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1. 김정화의 <뽕짝 인생>
김정화의 <뽕짝 인생>은 “아니야!”라는 부정적인 강박관념에서 “이야!”라는 긍정으로의 변화를 펼쳐낸다. 수용의 대상은 뽕짝이다. 그는 지금까지 의식과 무의식,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선에서 뽕짝을 경멸하였다. 자신이 기의화한 사회 언어학적 검열에 걸려 뽕짝을 이드의 대상으로 간주할 뿐 그것이 지닌 욕망의 화소를 제대로 살피려 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 언술이 그의 무의식을 억제하고 있다. 그는 ‘신파적, 함량 미달, 촌스러움, 중년남자들의 술판, 관광버스 아줌마, 직설적인 가사’라는 정의에 익숙해지면서 뽕짝이 지닌 내면적 의미를 해체하려는 욕망을 스스로 포기해왔다. 인간이 지닌 원초적 이드마저 부정해 왔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삶이 뽕짝이 되고 뽕짝 가사가 내 삶의 언저리”가 되었다고 고백할 정도로 뽕짝에 취해 살게 된 것이다. 자연인 김정화가 이드에 머문 뽕짝을 에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동안 초자아로서 작가는 이야기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 작가의 육신과 심적 현상을 진단해낸 <뽕짝 인생>은 진단서처럼 작품구조가 치밀하게 짜인다. 구조의 선후는 질서화 되어 있고 인과성으로 엮인 단락은 내적 깊이를 더해간다. “삶과 뽕짝이 일체가 되었다.”는 간결한 서두에서 시작하는 고정관념을 해체한 문장력도 만만찮다.
뽕짝에 대한 변심은 노래방에서 시작한다. 노래방은 밑바닥 생활의 현장이면서 작가의 숨겨진 욕망이 펼쳐지는 무대이다. 고향 선배가 뽕짝에는 “고향냄새, 어머니의 목소리, 첫사랑의 추억, 향수”라는 화소가 담겨 있다고 주장할 때 작가는 전환의 계기를 찾게 된다. 전환모드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영어 테이프가 치워지고 뽕짝 테이프가 자동차의 전면에 자리한다. 냉장고 문에 ‘뽕짝 30곡 배우기’라는 계획표를 붙이고 뽕짝으로 일취월장하겠다고 다짐한다. 라캉은 <욕망이론>에서 그것을 살아가는 꿈이고 동력이라고 불렀다. 생에 대한 집착이 실상이라면 뽕짝은 그 그림자에 해당한다. 금기시했던 욕망에 접근해가는 방식을 살펴본다.
몇 개월째 뽕짝과 동거 중이다. 아예 악보 노트를 가지고 다닌다. 몰래 펼치는 악보는 혼자만의 암호가 빼곡하다. 돌체, 안단테, 칸타빌레, 스타카토 등의 음악 전문용어와는 거리가 멀다. 찍기, 뿌리기, 던지기, 내려앉기, 말아 올리기 외에도 확 끌어안기, 빠질 듯 말 듯 물수제비뜨듯이 등 나만의 댓글과 모래 위의 새 발자국처럼 찍힌 부호 자국들이 노랫길을 도운다.
뽕짝 배우기는 “몇 개월째 뽕짝과 동거 중이다.”고 표현된다. ‘동거’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중 가사의 대부분이 사랑을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뽕짝이 사랑의 욕망을 대체할 수 있다면 그에게 뽕짝은 무의식적 욕망의 기표가 된다. 그런데 욕망은 때로는 상실을 동반하기도 한다. 프로이트가 설명한 ‘잃어버린 낙원’으로 귀환하려는 사람이 작가이다. “나만의 댓글과 부호 자국들이 노랫길을 모은다.”는 발상이야말로 뽕짝은 감정을 표기하는 방정식이라는 뜻이다.
언어나 기호는 개인마다 다르다. 김정화에게 뽕짝은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기의이다. 이야기하는 존재(being)로서 작가는 뽕짝을 자기화하여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그에게는 두 개의 욕망이 존재한다. 뽕짝 실력을 인정받고 싶은 1차적 욕망 외에 사랑이라는 2차적 욕망이 드러난다. “뽕짝이 입에만 덜컥 붙은 게 아니라 마음자락까지 헤집고 들어와 자리 폈다.”는 언술이 그 점을 설명해준다.
뽕짝 가사는 사랑을 압축시킨 설화이기도 하다. 뽕짝 속의 ‘당신’은 애환과 애증의 대상이므로 당신은 ‘넝쿨, 연인, 정든 사람, 칼피스 향, 너, 콕 박힌 그대’ 등으로 표현되고 사랑의 과정은 ‘한잔 술, 매운 고추, 이불자락, 추억과 과거’로 은유된다. 인간사에서 펼쳐지는 숱한 사랑을 풀어내는 가사에 숨겨진 욕망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대중가요에 담겨 있는 사랑은 문학 장르에 표현된 사랑보다 더욱 진실할 수 있다. 적어도 김정화는 그렇게 여긴다. 그 진실을 욕망하는 작가는 뽕짝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함으로써 진지한 사랑을 간접체험하려 한다. 작가는 결미에서 사랑에 좌절하여도 “가사 한켠에 기댈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에고의 밑바닥에 이드가 자리해 있으므로 오히려 에고가 건강해질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이드, 출세의 이드, 물질적 이드라는 욕망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부인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그 이성적 그물망을 벗겨내라고 독자에게 말하고 있다.
김정화는 뽕짝을 통하여 욕망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독자도 <뽕짝 인생>을 읽으면서 자신의 욕망이 무엇이며 무엇이 욕망을 억누르고 있는가를 숙고하게 된다. 욕망은 각각 다른 기의를 나타내는 기표라는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하 생략> <2009년 11/12월 수필과비평 문제작평>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