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본기(周本紀)-3 ⬇️
️나라를 망친 절세미녀 포사와 서주에서 동주로 천도하기전 무능한 3인왕 공왕, 여왕, 유왕이야기
유왕과 포사
여자를 차지 못해 밀국을 멸망시킨 공왕⬇️
강공에게는 미녀3총사를 공왕에게 바치지 않아 나중에 공왕은 밀국을 멸망시켰다⬇️
간신 등용한 주색 잡기에 골몰한 10대 여왕
아버지 포악을 닮음⬇️
도로이묵ㅡ언론탄압
말도 맘대로 못하는 억압된 세상⬇️
언론 통제, 무당 동원해서 비판자 처벌⬇️
소공의 직언⬇️
민심을 잃고 폭동 일어나 왕위 않고 숨어다님
소공은 태자 정(훗날선왕) 숨겨주고 보살핌 ⬇️
포사를 총애한 서주의 12대(마지막) 왕 유왕⬇️
천년전 신비한 용두마리 타액의 판도라 상자를 깨어져 포사 엄마가 품어되고 포사가 태어나다⬇️
웃지않는 포사가 비단 찢는 소리에 웃자 비단을 모조리 찢는다⬇️
연기오른 봉수 보고 웃는 모습에 봉수가 자주 피워서 위급상황에도 그들은 오지않는다⬇️
신후왕후 아버지는 견융과 힘을 합해 동주 유왕을 친다⬇️
️#인문학고전이야기
#역사이야기~^^♡
사마천 사기 주본기 (서주시대)
주나라 서주시대 유왕과 여인 포사 (중국판 양치기 유왕과 포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인문학 TV 고경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마천 사기 주본기 내용 중에서 은나라 폭군 주왕을 목야 전투에서 물리치고 은나라를 멸망시킨 무왕에 대한 이야기와 그를 도왔던 강태공, 주공단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 뒤를 이은 서주 시대에 제대로 활동하지 못 했던 왕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중에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신 포사라는 한 여인의 웃음을 위해 주나라를 망치게 한 유왕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자 때문에 밀(密)나라의 군주인 강공(康公)을 죽인 주나라 6대 임금 공왕(共王)
공왕이 경수(涇水)에 나가 사냥을 갈때 밀국(密國)의 강공(康公)이 따라가 수행하였다. 그 때 미모의 세 여인이 강공을 찾아와 몸을 의탁하였다. 강공의 모친이 그것을 보고 말했다.
“너는 그 여인을 반드시 왕에게 바치거라! 무릇 짐승도 세 마리가 모이게 되면 무리를 지을 수 있고 미녀 셋이 모이면 세상을 아름답게 빛내는 찬(粲)이라고 한다. 제후가 왕과 같이 사냥을 할 때는 왕보다는 짐승을 많이 잡아서는 안 되고, 또한 왕과 같이 출행을 나갈 때는 백성들로 하여금 수레에서 내리게 해서 자기에게 인사를 시켜서도 안 되며, 군왕도 비빈(妃嬪)을 취할 때 한 집안에서 같은 자매 셋을 동시에 취하는 일을 삼가하고 있다. 지금 너에게 몸을 의탁하러 온 여인 셋은 모두 아름답기가 그지없는데 너는 무슨 덕이 있다고 그 여인들은 모두 취하려고 하느냐? 군왕도 아직까지 그러한 일을 감당하지 못했거늘 너 같은 소인이 무슨 덕으로 이 세 미녀를 감당하려고 하느냐? 무릇 소인이 귀중한 보물을 취하게 되면 결국은 그것으로 인하여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밀강공(密康公)은 이 세 여인을 공왕에게 바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일 년 후에 공왕은 밀국을 멸했다.
분수에 맞는 윗 사람에 대한 예절과 섬김을 교육하려는 의도 인지는 몰라도 사마천 주본기에 이런 내용도 다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도 맞는 말이 될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익을 쫓다 나라를 망친 주나라 10대 임금 여왕(厲王)
서주(西周)의 10대 왕이었던 려왕(厲王·재위 기원전 877~841 / 생몰 기원전 ?~828)은 부패하고 사치를 일삼는 왕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전제왕정이 계속되다 보니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 진 상태였다.
1. 주나라 10대 려왕, 일하기 싫어하고 주색잡기에만 골몰
려왕의 아버지였던 이왕만 하더라도 제(齊)나라의 애공(哀公)이 그에게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제후를 끓는 솥에 넣어 삶아 죽여 버릴 만큼 포악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려왕은 이런 포악성은 없었지만 일하기를 싫어하는 군주였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그는 국인(國人·주나라의 제후)에게 나눠주어야 할 토지와 산림, 소택지 등의 관리권을 빼앗아 그 이익을 독점하여 자신의 사치생활에 탕진했다. 또한 그는 일체의 언로(言路)를 막고 전제정치를 일삼았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해 말도 함부로 하지 못하고 길에서도 눈짓만으로 생각을 나눌 만큼 숨 막히는 사회가 됐다. 누구라도 자기가 듣기 싫은 말을 하면 극형에 처했기에 제후들도 왕을 알현(謁見)하러 오지 않아 려왕은 점점 궁궐 속에서 혼자 지내며 술과 여색만을 가까이 했다. 뿐만 아니라 위(韋)나라의 무당을 궁중에까지 끌어들여 백성들을 감시하고 반대세력은 모두 잡아 죽이기까지 했다.
보다 못한 소목공(召穆公)이 직언을 했지만 려왕은 이를 가벼이 흘려들었다. 소목공은 “백성의 말을 허락하지 않는 것은 강물을 막는 것만큼이나 위험합니다. 물을 다스리려면 필히 소통하는 물길이 있어야 물이 바다로 흘러갑니다. 국가를 통치하는 것도 이와 같아 백성들이 마음껏 말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라고 간언했지만 려왕은 귀담아 듣기는커녕 오히려 소목공을 축출해 버렸다.
2. 민심 폭발, 폭동에 왕위에서 쫓겨나 평생 숨어 살아
민심은 부글부글 끓었고 마침내 폭동이 일어나서 려왕은 쫓겨나 도읍인 호경(鎬京·지금의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 부근)에서 도망쳐 체(彘·지금의 산시(山西) 성 곽주(霍州) 부근)에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실상 여왕은 자신이 직접 폭정을 휘둘렀다기보다는 영(榮)나라의 이공 (夷公)을 측근에 두어 경사(卿士) 벼슬을 주고 그에게 국정의 전반을 맡겨 버리고 자기는 그저 주색잡기에만 열중한 것이었다.
포사에 반한 중국판 양치기 소년 유왕 (서주 마지막 유왕)
서주 12대왕 서주 유왕 희궁녈(西周 幽王 姬宮涅, 기원전 795년 ~ 기원전 771년), 재위기간 기원전 782년 ~ 기원전 771년. 기원전 780년에 관중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백양보(伯陽甫)라는 인물이 주나라 멸망의 징조라고 주창했다.
주선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서주 유왕이 즉위를 하는데, 유왕은 천성이 난폭하고 주색을 즐겼다 한다. 어머니 강후조차 말리지 못했고, 강후가 죽은후에는 더 여색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유왕의 총애를 받은 포사(褒姒)가 후궁으로 들어오면서 정실인 신후(申后) 및 태자 의구(宜臼)를 폐하고 포사를 왕후로, 백복(伯服)을 태자로 세웠다. 이에 정실 왕비 였던 신후의 일족들은 분노한다.
1. 포사에 관한 신비한 전설
하 왕조가 쇠퇴할 무렵 두 마리 신룡(神龍)이 왕궁 뜰에 나타나 '우리는 포(褒)의 두 임금이다.'라고 말했다. 포는 하 왕조의 왕족으로 지금의 섬서성 포성(褒城)현에 해당하는 곳이다. 하 왕이 괴상하게 여겨 점을 쳐보니 용의 정기인 타액을 받아 간직해두면 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이 일을 기록한 내용을 보여주자 용은 정기를 토해놓고 사라졌다.
이에 하나라에서는 용의 타액(일설에는 정액이라고도 한다)을 상자에 받아 봉한 후 정성껏 간직하며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하면서 후대로 전해주었다. 이 상자는 상나라를 거쳐 주나라로 전해졌다. 천년 동안 금단의 상자로 간직되어온 용의 타액이 주나라 여왕(厲王)의 말년에 이르러 실수로 열렸다. 용의 타액은 궁전으로 흘러들어왔으며 아무리 쓸고 닦아도 없어지지 않았다.
이에 여왕은 한 무리의 여자들을 동원해 옷을 벗고 큰 소리를 질러 더러운 물건을 없애고자 했다. 그러자 과연 여인들의 기운에 놀란 용의 타액이 한 마리 검은 도마뱀으로 변해 후원 쪽으로 도망쳤고 마침 후원에 있던 일곱 살 난 어린 궁녀와 마주쳤다. 용의 정기를 받은 이 궁녀가 성년이 되자 처녀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배가 불러왔다. 아비도 모르는 아이를 낳는 것이 두려워진 여인은 고민 끝에 아이를 낳자마자 몰래 내다 버렸다.
여왕이 죽고 선왕(宣王)의 시대가 되자 민간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유행했다.
'산뽕나무 활과 대로 만든 화살 통이 주나라를 망치는 근본이라네.'
그런데 어느 날 산뽕나무 활과 대로 만든 화살 통을 파는 부부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선왕도 위 노래를 알고 신경이 쓰이던 차에 이런 보고가 들어오자 그들 부부를 잡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부부는 가까스로 도망쳐 위기를 모면했다. 그런데 허겁지겁 도주하던 활장수 부부의 귀에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마침 자식이 없었던 부부는 이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에 아기를 데려다 키우기로 작정했다.
활장수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멀리 포(褒)나라로 도망가 그곳에서 아기를 길렀다. 아기는 용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몸이라 자라면서 점점 예뻐졌고 누구라도 한번 보기만 하면 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미녀가 되었다.
이때 포나라 제후가 주나라 왕실에 죄를 지어 벌을 받게 되자 속죄하는 대가로 활장수 부부가 기른 여자를 바치니 이 여자의 이름이 바로 포사(褒姒)이다. 포나라 출신의 여인이란 의미이다.
2. 포사에 반한 유왕
포사는 웃지 않았기 때문에 유왕은 다양한 방법으로 포사를 웃기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 포사가 비단을 찢는 소리를 듣고 희미하게 미소를 짓자 유왕은 나라의 비단을 징수해 포사 앞에서 찢었다. 백성들의 원성은 늘어가지만, 유왕은 포사 외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느덧 포사는 비단 찢는 소리에 싫증이 났던지 다시 웃지를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신하가 유왕에게 봉화를 피우면 제후들이 달려오고 그 모습에 포사는 웃을 것이라고 아첨한다. 이 말을 들은 유왕이 봉화를 피워 제후가 허둥지둥 집결하자 그 모습을 본 포사가 웃는 모습을 보자 유왕은 계속해서 봉화를 피워 제후의 신뢰를 잃게 된다.
여기에 유왕은 아첨과 추종에 뛰어난 간신의 괵석부(虢石父)를 경으로 임명해 국가는 파탄 지경에 이르고 이러한 실정을 보다 못한 신후의 아버지 신후(申侯)는 유왕 11년에 서이 견융과 협력하여 유왕을 공격했다. 이 때 유왕은 봉화로 구원을 부탁했지만 제후 중에 유왕 밑으로 모이는 자는 없었다고 한다. 유왕과 세자 백복은 여산(驪山)에서 살해당하고 포사는 견융의 족장이 데려간다.
신후(申侯)가 원했던 것은 폐태자 의구를 세자로 다시 세우는 것이 었지 유왕을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 사태를 수습하려한 신후는 견융을 돌려 보내려 하지만, 견융은 아예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신후는 제후들에게 밀서를 보냈고 제후들의 연합군은 견융을 몰아냈다. 폐태자였던 의구가 주 평왕으로서 즉위한다.
그러나 이 병란에 의해 호경은 파괴되었고 견융이 수시로 호경을 침략하면서 주 평왕은 신하들의 만료에도 동쪽 낙읍(洛邑)으로 천도를 한다. 이때부터 동주 즉 춘추시대의 시작으로 본다.
https://youtu.be/EPZaMvvWOUM
(여경구선생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