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문 가
남 순 백
마누라와 아이들은 처음 가는 곳에서도 제법 길을 잘 찾는 나를 보고 철새 같은 능력을 가졌다고 감탄을 한다. 낮이나 밤이나 나는 길을 잘 찾는 편이다. 그러나 칭찬을 받을 정도는 절대 아니다. 먼 산을 바라보며 동서남북 방향만 잘 유지하고 있으면 웬만한 길쯤은 저절로 찾아진다. 앞장서는 사람은 뒤에 따라오는 사람에 비해 길을 좀 더 잘 알게 마련이다. 내가 항상 앞장을 서서 길을 가니 뒤에 따라오는 가족들에겐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나름대로 한두 가지씩 다른 것에 비해 우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고 후천적으로 길러진 것일 수도 있다. 선천적, 후천적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사람은 금상첨화다.
우리 사무실에 구두를 가져가서 닦아 광을 내어 나눠주는 사람이 있다. 얼굴이 비치도록 광을 잘 낼뿐만 아니라 그가 낸 광은 적어도 사흘은 갔다. 그의 광내는 솜씨는 참으로 운동화라도 광을 낼 것만 같았다. 그는 신사화의 밑창도 갈아주고 숙녀화의 굽도 갈아줬다. 사무실의 남녀 구두를 수거하면 늘 스무 켤레를 넘었다. 그는 이 많은 구두를 긴 나무막대 두개를 엮어서 만든 기구에 끼워서 운반하였다. 스무 켤레가 넘는 구두를 광을 내거나 수선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임자에게 정확하게 돌려주었다.
“어떻게 그 많은 구두의 주인을 그렇게 정확하게 기억하는교?”
“이것의 두 배 세배가 되어도 다 알 수 있어요!”
“아니? 무슨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는교?”
“구두만 알 수 있어요! 다른 건 기억 잘 못해요”
내가 보기엔 그는 참으로 특별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수십 년간 구두만을 들여다보며 생각하고 닦고 고치며 그것으로 가족을 먹여 살려 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생계와 관련된 일에 가장 진지해지고 전문가가 된다. 친척 동생뻘 중에 치과의사가 있었다. 그에게 구두닦이의 구두를 구별해내는 탁월한 능력에 대해 이야기를 했더니 의외로 시큰둥했다.
“형님! 그건 별거 아니에요. 누구나 다 그 정도는 돼요!”
“아니? 누구나 다 그 정도라니? 난 내 구두도 잘 몰라 바꿔 신기 일쑤인데?”
“저는 사람 얼굴보다는 그 사람의 입안을 들여다보면 그가 누군지 더 잘 알아요! 사람의 치아구조는 사람의 얼굴이 다른 만큼이나 모두 틀린데다가 내가 한 번이라도 손을 댄 치아는 아주 친근하죠. 10년이 지나도 단번에 누군지 기억이 납니다.”
“햐! 그래? 정말 놀랄 노자로군! 사람의 인체에도 예술가들이 진품과 위작을 가려 낼 수 있듯이 부위마다 그런 특징이 있단 말이지?”
“그럼요! 산부인과 의사인 제 친구의 이야기는 더 걸작이죠.”
그는 얼굴에 웃음 한점 띄우 지 않고 능청스럽게 다음과 같이 너스레를 떨었다. 한 여인이 내 동생뻘 치과의사의 친구 산부인과에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예! 이리 와서 누우세요!”
그리고 여인의 아랫도리를 한참 진찰하다가는 그제야 여인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고 재차 인사를 한다는 것이다.
“아! 예! 안녕하십니까?”
내가 공대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온통 부호와 숫자의 나열로 이루어진 책을 읽어나가는 것을 보고 신기해 하니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는 아버지가 보시는 철학책은 단 한 장도 다 읽지 않아 하품이 나고 졸음이 오는걸요.”
어떤 젊은이가 송아지를 사서 아침저녁으로 매일 몇 번씩 들어올렸더니 그 송아지가 자라서 오백 근이 넘는 큰 황소가 되어서도 번쩍번쩍 들어올렸다는 얘기가 있고 마당에 미루나무를 심어놓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타고 넘었더니 나중에는 그 나무의 높이가 수십 미터가 되어도 펄쩍펄쩍 뛰어 넘더라는 얘기도 있다. 사람의 능력은 자기 적성에 맞아 흥미를 느끼는 것에 수십 년을 두고 정성을 쏟다보면 타인이 볼 때는 기적이라고 얘기를 할 정도로 발전을 한다. 그것을 몇 대를 이어 발전시켜 간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게 전문가다.
돈 냄새를 잘 맡아서 현금만 훔치던 도둑이 있어서 한 때 화제가 되기도 했고, 집 만 봐도 그 집에 감춰둔 다이아가 어디에 있다는 것을 알아 진귀한 다이아만 훔친 절도가 있어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미용사는 자기가 손질한 사람의 머릿결만 보아도 그를 알아보고 땅꾼의 손위에서는 그 무서운 독사도 기를 펴지 못한다. 우리도 지나가는 사람의 차림새만 보아도 그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지를 대강 알 수 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전문가를 존중한다. 하찮은 직업일지라도 몇 대까지 대를 이어 그 업에 종사한다고 하면 큰 존경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모든 전문가들이 결국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같은 정치가가 되어야 성공한 것인 줄 아는 모양이다. 회사를 잘 경영하다가도 혹은 유명한 대학교수도 존경받던 종교인과 예술가도 모두 자기의 전문을 버리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을 성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모든 유명한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정치판은 의외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바짝 들어섰다고 모두들 자찬을 하지만 전문가는 자기의 전문을 지키고 사람들이 그런 전문가를 존경하게 될 때 그 길이 더 빠를 것이다. 오늘이라도 집 마당에 미루나무 묘목을 심어놓고 하루 열 번씩 뛰어넘기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앞 부분에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뒷부분에 엉뚱한 글이 붙어버렸네요. 방금 다시 고쳤습니다.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에겐 전문가기질 보다는 제네럴리스트 기질이 많습니다. 전문가를 존중하는 풍토가 아니기때문일겁니다. 이것저것 두루두루 다둑다둑 하는 풍토에서는 개인이 한가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놔두질 않지요.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안정적인 직업만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되는 추세에 한가지에 몰두하여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지도모르지만 어떻게보면 더 현명한 판단이라고 생각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