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12.28.(수) 한파 중
1. 끈 사냥꾼 땅꼬
이틀을 앓고 난 후 어제부터 회복되어 오늘 아침은 컨디션 고조기. 그래선지 일찍 잠에서 깼다. 냥이들 아침을 주고 모래 화장실을 청소하고 서둘러 밥을 짓는다. 오늘 청소는 스킵. 작업실을 마련하고부터는 청소는 이틀에 한 번만 하기로 했다. 일찍 집을 나서고 싶었지만 밥 짓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오전이 훌쩍 달아나고 있다. 내가 꼭 식사준비를 할 때면 시작되는 놀아줘~~~ 싸이렌. 얄밉다. 평소 잘 울지 않는 땅꼬가 조르는 유일한 이유는 놀아달라는 거. 그런데 그 시간이 꼭 급하게 끼니를 해결하려 할 때다. “기다려~~” 별 소용 없을 걸 알면서도 엄포를 놓는다. 설거지 후 앓아 누운 날 동안 내 옆을 조용히 지켜준 땅꼬에게 미안해서 요즘 땅꼬가 꽂힌 놀이 공간 침대 바닥에 엎드려 열심히 분리수거용 비닐봉지를 흔든다. 오래 관망하는 신중한 땅꼬의 늑장에 골이 나고 지쳐 “끝.” 던져버리고 만다. “누가 노는 건지 원!!!”
작업실을 가려고 작업실 유니폼으로 갈아입는다. 내가 소장한 옷들중 가장 두둑한 것들이다. 난방비를 아끼려고 사정없이 껴입는다. 돌아오면 뱀이 허물을 벗듯 고스란히 벗어 석고틀처럼 옷방 선반에 걸쳐진다. 그중 가장 믿음직한 아이템은 얼마 전 시장 입구에서 팔던 까만 누비 고무줄 바지. 역시 거기서 데려온 내의 위에 벗어둔 허물을 다시 걸치려 방바닥에 앉았는데 땅꼬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흥분한다. 누비바지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끈 때문이다. 아니 어쩜 허물을 벗고 입는 나 때문일까??
고양이들은 끈처럼 긴 물체에 흥분한다. 사냥본능이 발동하나 보다. 뱀은 냥이들한테는 사냥감, 먹이감이니까. 땅꼬는 평생 한번도 진짜로 뱀을 만난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긴 물체에 사냥 충동이 발동하는 건 본능이다.
다 풀지 못한 놀이충동으로 욕구 불만일 땅꼬한테 미안해 바지를 마저 추켜올리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잠시 줄을 흔들어 땅꼬와 놀아준다.
“용맹하구나!!! 너희들은...”
사람은 어두운 길을 가다 줄처럼 긴 물체를 발견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혐오감을 느낀다. ‘이디오진크라시’라고 했던가? 이건 파충류의 뇌가 작동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회피의 감정으로 몸이 반응한다. 사람은 뱀의 공격 대상이었던 것이다.
유전된 종족의 기억은 흥미롭다.
평생 단 한번도 뱀을 공격한 적도, 공격당한 적도 없는 땅꼬와 내가 반응하는 방식은 종족의 기억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땅꼬 - 뱀 – 나
뱀과 관련된 서열은 이렇다. 갑자기 땅꼬가 대단해 보인다. 인간이란 참 나약한 존재야.
2. 혀를 내두르게 하는 너의 혀
냥이들은 늘 그루밍을 한다. 긴장이 풀리고 여유 시간이 찾아오면 그루밍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오전 가사일을 마치고 소파에 앉을 때면 땅꼬도 따라 올라와 내 허벅지에 엉덩이를 기대고 오침 준비 그루밍에 골몰한다. 그런 땅꼬를 보고 있자면 그 몰입의 정념에 반해 나까지 몰입해서 지켜보게 된다. 기특한 맘에 냥통수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으면 내 손까지 잡아끌어 핥아준다. “됐다 힘들다, 하던 거 마저 해.” 손을 뺀다. 침대에 따라 올라와 취침 전 그루밍을 하고 있는 땅꼬를 보면서 문득 미안하고 부끄러운 맘이 든다. “참 대단하구나 땅꼬.”
나는 벌써 며칠째 샤워는 고사하고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 하고 발도 안 씻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씻는 게 귀찮았던 내가 코로나 이후 게으름에 발동이 걸려, 퇴직 후에 아예 작정하고 씻는 일과 담을 쌓고 있다. 출,퇴근을 할 때면 화장을 해야 하고 아침, 저녁마다 씻고 옷을 차려 입고... 그게 너무 힘들었다. 퇴직했으니 안 해도 되는 건 안 하고 살고 싶다. 그래서 이런 요즘이 참 좋다. 더구나 한파다. 여차하면 감기든다. 안 씻어도 기름지지도 떡지지도 않고 보송한 체질이 받쳐주니까... 핑계를 대지만 냄새는... 모르겠다. 사실 씻을 시간도 없다. 집사 소임이 은근 시간도 힘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기운이 떨어지는 요즘은 나 혼자, 그리고 두냥이랑 살아내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다고 느낀다. 어떻게 직장에 다녔던 걸까? 아득하다. 내 목욕기피증은 너희들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겠지? 그러니 내 냄새를 양해 바람.
냄새를 풍기면 드러나게 되고 공격의 타겟이 될 수 있는 야생의 삶. 고양이들에게 냄새를 제거하는 일은 생존과 결부되는 일과일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무리들의 냄새도 경계해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선지 고양이들은 무리들도 열심히 핥아준다.
한편, 무리를 핥아주는 행위는 서로의 냄새를 교환하면서 유대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기능도 하는 거라는데... 특히 냥통수나 어깨 사이, 턱밑같이, 유연성의 극치인 몸으로도 혀가 닿지 않는 불가항력의 부위는 서로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무리 중 일부인지라 땅꼬와 장군이는 나도 열심히 핥아준다. 그럴 때면 관계 맺고 살아가기 위해 치루어야 하는 수고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된다. 나도 동족과 무리 짓기 위해서 저렇게 열심히, 성심으로 노고를 치루었던가???
땅꼬는 깔끔하고 야무지다. 그래선지 혓바닥의 힘과 거칠기도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장군이는 그렇지 못하다. 장군이는 어려서부터 구내염을 앓았다. 열심히 약을 먹였지만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에 피가 고여있기도 했다. 그루밍은 무리였을 것이다. 그렇게 2년을 앓았다. 마음 먹고 어금니 발치를 한 후엔 편안해졌고 그루밍도 나름 열심히 하지만 땅꼬를 따라오려면 멀었다. 장군이 혀는 부드럽고 힘도 약하다. 구내염을 앓던 시절의 습관인지 똥꼬도 잘 핥지 않아 늘 거뭇하게 굳어있다. 가끔 너무한다 싶을 땐 물티슈로 똥꼬를 닦아주곤 한다. 빗질도 정기적으로 해준다. 장군이는 영낙 없이 고양이라서 습성이 교과서적이다. 빗질하면 좋아 죽는다. 하지만 땅꼬는 지 몸에 손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지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다,
똥꼬를 핥지도 않고 그루밍도 무성의한 장군이가 땅꼬한테 기꺼울 리 없다. 장군이가 아기 때는 똥꼬도 열심히 핥아줬지만 지금은 그러지도 못한다. 가끔 둘이 서로를 그루밍할 때 흐뭇하게 지켜보다 내 일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샌가 땅꼬가 “하악~~~” 짜증을 내고 티격태격 냥펀치를 주고 받다가 훌쩍 자리를 떠버린다. 그렇게 성질을 내는 땅꼬한테 “하악 안돼!!!” 야단을 치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땅꼬 표정이 억울하다.
대체 무슨 일인가 어느 날은 작정하고 지켜보았다. 땅꼬 바라기인데다 속정 깊은 장군이가 먼저 다가가 땅꼬의 이마부터 그루밍을 시작한다. 땅꼬도 기껍게 이마를 맡긴다. 그러나 곧 땅꼬의 귀를 깨물기 시작한다. 장군이의 시원치 않은 딴짓에 슬슬 땅꼬의 짜증이 돋는다. 장군이 엉덩이에 코를 대던 땅꼬가 엉덩이를 그루밍하려 하면 장군이가 긴 팔다리를 뻗어 땅꼬를 저지한다. 핥아주려는 땅꼬와 저항하는 장군이. 그러다 티격태격 냥펀치가 오가고 마침내 땅꼬가 폭발한다. “하악~~~”
이래저래 장군이는 빈틈투성이다. 장군이가 모래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면 땅꼬가 들어가 한차레 요란한 정리를 시작한다. 장군이가 무질서하게 질러놓은 변을 한쪽으로 밀어 쌓고 모래로 깔끔하게 덮느라 분주하다. 이래저래 동생이 흘리고 다니는 냄새를 뒷감당하느라 피곤한 땅꼬다. 어김없이 야무진 누나에 어리숙한 남동생 각이다.
만약 둘이 함께 길에 버려지는 일이 생긴다면 둘은 어떻게 될까?
괜히 이런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땅꼬는 어떻게든 잘 살아낼 것이다. 분명 그 탁월한 애교로 새 집사를 물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군이는? 땅꼬는 그때도 장군이를 챙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장군이를 챙길 수나 있을까? 장군이는 무리 짓기에 유리한 개체가 아니다. 장군이는 길냥이로 태어났으면 도태되었을지도 모른다. 땅꼬는 길냥이 출신이지만 장군이는 양평의 다묘 가정에서 입양해왔다. 세상 착한 아이지만.... 길살이를 견디지는 못했으리라.
혀로 자신을 돌보고, 새끼를 돌보고 관계를 돌보고... 외부에서 묻어오는 오물을 닦아 삼키면서, 새끼의 배변까지 받아먹으면서 냄새를 살피며 살아가는 냥이들. 물티슈도 휴지도 한 바가지의 물도, 세제도 없이, 오직 혀로 닦고 몸으로 거두며 사는 냥이들. 우리 도시 아래 흐르는 거대한 하수관을 생각한다.
뜨근한 온수가 넘치는 데도 나는 내 몸의 더러움도 거두지 않고 산다. 아니다. 사실 자주 씻지 않는 게 더 고양이다운 삶일지도 모른다. 물을 절약하고 세제도 과용하지 않고 기름도 덜 태우고 더러움을 세상으로 내보내지 않는 소극적 친환경적 삶을 실천하는 길, 맞지?
구내염과 고양이. 고양이 종족에겐 불가피한 질병이다. 땅꼬의 혀를 보고 있자면 저 버드나무 잎새 같은 혀 하나로... 얼마나 혀가 피곤할까? 대단하고 또 대단하다. 그러니 나까지 핥느라 애쓸 필요는 없어. 하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심하면서 혀의 길을 살펴야 하는, 그 댓가를 치뤄야 하는 우리 내 삶의 고단함도 만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