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월(안 부)
4월이 되면
양지 쪽 솔밭 비탈에
무거워진 햇빛이 종일
여우바람과 미끄럼 탑니다
겨우내 마른 꿈꾸던
흔들리는 가지 끝마다
봄빛에, 바람에 물 올라
꽃망울로 움찔거립니다
바람 모퉁이를 돌아
봄으로 오는 산길을
푸석한 흙을 밟으면
온 산에 울리는 소리들
봄비가 내릴 때마다
메마른 그대 사연이
잊고 있던 그 사연이
꽃이 되어 내게 옵니다
5 월(안 부)
봄비 오는
갈참나무 숲에 서면
연초록 새잎들마다
희망을 꿈꾸는 5월입니다
산등성을 따라
푸른 정기가 내려오고
숲길을 걷노라면
그대 웃음이 따라 옵니다
산수유 꽃 지고
목련 지고 벚꽃 지고
봄날은 사기충천하고
여름은 아직 기다려야 합니다
넝쿨장미 줄지어 피고
아카시아 향기,
송홧가루 날리는
경이롭고 달콤하고 처음인,
다시 못 올 그런 5월입니다
안 부(6월)
비 개인 날, 아침
눈이 시린 하늘빛
푸른 넝쿨을 지고
담을 넘는 붉은 장미꽃들
녹음이 짙푸른
문수산 외진 숲 그늘엔
하얀 별꽃등들이 매달리는
때죽나무 그늘이 환해집니다
나무들이 키워 낸
산이 된 푸른 잎과 꽃들
골바람으로 종일 뒤척이는
유월의 삶이 깊어갑니다
서로 키를 재는 바람들이
나무들 사이를 기어 오르며
유월이 빚어 낸 하루,
그 하루들이 온전하게
지나가길 기도합니다
안 부(7월)
유월엔 설악에 가서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
왕복 12km를 걸었습니다
비오는 숲에선 지나간 날들이
불쑥 불쑥 어깨 위로 내려와 무릎을 발목을 눌렀습니다
푸른 산맥의 정기에 젖은
빗줄기들, 젊은 기운들이 정강이를 타고 올라 허벅지로 기어 올라 가슴으로,
목줄기로 기어 올라
내 정수리를 쳤습니다
이승을 건너 와 만난
목숨 하나 부둥켜 안고
칠십 년을 살면서 아껴 둔
그날들이 지금이라고
바람결에 나뭇잎들마다
외치고 있었습니다
안. 부(8월)
눈이 부신 능소화
불타는 저녁 노을
무지개 빛 자귀나무 꽃이
여름 강을 건너는 8월입니다
호젓한 참나무 숲길
바람에 나뭇잎 부비는 소리
소낙비 후드득거리는 소리들
여름 숲의 환희가 절정입니다
폭우 쏟아지던 밤엔
등에서 지느러미가 돋아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아침마다 비늘을 달고 돌아옵니다
폭염의 들녘에선
매일 과육들이 부풀어 가고
제 마음의 시간들은
여름의 교훈들로 부풀어 갑니다
9 월(안 부)
8월의 폭염으로 담금질 한
푸른 강철의 산능선들 아래
산자락 마을마다 대추가, 감이
여름의 사연들로 붉어 갑니다
뜨거워서 깊었던 열정들이
하늘을 지나온 바람의 갈피마다
여름의 사연들을 곱게 빚어
가을의 사색으로 성숙해갑니다
뜨거워서 괴롭던 인연들도
이유없이 끊어지고
나는 말을 잃어 비워지고
곱게 물든 잔영들이
쉼 없이 들녘으로 불어오고
한가위 보름달이
들녘의 어둠을 비워내면
눈을 감은 저도
가을처럼 물들어 갈겁니다.
시 월(안 부)
약수터 오솔길에
폭염의 사막을 건너온
도토리 하나 떨어지는
가을이 오는 시월입니다
떨어질 열매들 마다
가지를 붙잡고 매달리며
꽃 피우던 날들을 되집어
헤어질 날을 가늠하고 있습니다
고향집 우물에 뜬
쪽빛 하늘을 두레박으로
아침 저녁 퍼 올리던
누이는 이제 여든 다섯입니다
푸른 하늘 돗단배같은
흰 구름이 가을 짧은 한낮
한 세월 스러지 듯
푸른 허공에서 가믓거립니다
카페 게시글
27호 통진문학
최철호선생님
조 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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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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