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향기에 젖고 꽃에 취하니 만산홍엽으로 선홍빛 단풍이 황홀한 10월의 마지막날, 함평 국화축제 행사장 찾았다... 함평에서 영광으로 가는 길에 '국화축제'라는 현수막이 내 시선을 붙잡았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국화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우연찮게도 그 날이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전시장 본부석까지 진입로 좌우로 입국(立菊)이 늘어서서 짙은 향기를 내뿜으며, 어서 오라며 반겨 맞아주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한 발이나 축 늘어진 치맛자락 펼쳐 놓은듯한, 국화들이 탐스럽게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행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개선문을 본 뜬 국화문, 대형 우산을 펼친 듯 원형으로 겹겹이 활짝 핀 국화 송이들이 질서정연하게 어깨동무를 하고 50~60개의 꽃봉오리가 어우러진 화분이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탐스럽게 활짝 핀 오색의 국화송이가 어우러진 화분을 가리키며, 사람들은 감탄사 연발했다. 가까이 가서 관찰해 보니 참으로 신기했다. 꽃대는 한 대를 굷게 뽑아 올렸고, 그 꽃대에서 가지를 원형으로 돌려서 철사로 얽어매어 동심원(同心圓)을 만들어 5~6겹, 안으로 연결하여 꽃을 피웠다. 맨 바깥 원에 꽃송이가 30송이, 안으로 두 번째 원에 20송이, 그 안으로 또 10송이, 또 안으로 5송이, 맨 가운데 한 송이로 구성되었다. 그 많은 꽃송이들이 하나같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다섯 가지색깔로 만든 화분도 있었다. 무슨 재주로 꽃대 하나에서 저렇게 동심원으로 몇 십 송이의 꽃을 피우게 재배했을까? 보는 사람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신비로운 예술작품이었다. 그 국화는 단순한 화분이 아니었다. 그 어떤 조각가나 조형 미술가도 감히 창작할 수 없을 만큼 원예 예술의 극치였다. 그런 대형 화분이 행사장에 수 십 분(盆)이 향기를 내뿜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황홀했다. 많은 국화전시회를 본 적이 있지만, 함평 국화전시회처럼 기기묘묘한 국화의 진수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어찌 그것뿐인가. 전시장 주변은 몇m 가량 축 늘어진 한복 치맛자락처럼 펼쳐진 현애국도 수십 분(盆)이나 아름다운 자태를 선보이고 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이 아름다운 예술품을 창조해낸 재배자는 얼마나 피나는 노력과 땀을 흘렸을까 생각하니 고개가 숙여지고 숙연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국화 전시회장을 두루 살펴보니 국화향기의 황홀경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생명의 신비감, 자연의 신비, 존엄승을 깨닫게 했다. 국화를 보며 인생을 관조해 보고, 살아온 지난날은 반성하면서, 이정보의 국화찬가(菊花讚歌) 옛 시조 한수가 떠올랐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보내고 /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는가 /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이가 하노라//
과연 그러하다. 심한 서릿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국화 본연의 향기를 내뿜으며 홀로 절개를 자랑하는 모습은, 고고한 선비의 높은 기상(氣象)을 보는 듯 대견했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매화, 난초, 대나무, 국화를 일러 사군자(四君子)라 하여, 성현이나 시인묵객들이 시, 시조, 문장 그림으로 군자의 기품을 표현했음을 이날 절실히 실감하게 되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국화를 예술작품으로 창조한 함평 국화 축제 행사 관계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내리기를 축원하면서 아쉬움을 달래며 전시장을 나와 광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