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글 (2013. 1. 2- )
*주: 12P의 짙은 글자는 제목이고, 10P의 짙은 글자는 중간 제목입니다. (원 저작이 주로 신문, 잡지에 발표된 글이라서 중간 제목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김용락)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글쓴이 : 염무웅 날짜 : 2012-11-23 05:33 조회 : 74
한국정치의 표면으로서의 민주주의
바야흐로 선거철이다. 텔레비전의 뉴스시간마다 대개 첫 소식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세 후보들의 일정과 그들의 공약으로 채워진다. 거의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다 보니, 차츰 ‘그 나물에 그 반찬’ 같아 식욕이 떨어지는 걸 느낀다. 정치에 대한 염증을 유발하기로 방송국들끼리 짠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답답할 때마다 왜 우리가 몇 해마다 이런 국가적 행사를 치러야 하나, 이런 대규모적 소란을 통해 우리가 진정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결국 얻게 될 것은 무엇인가, 민주주의라는 정치과정이 실제 우리 삶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구체적인 기여를 할 것인가 —이런 상념에 잠긴다.
평소에 나는 국어교육•역사교육•환경교육과 더불어 정치교육이 초•중등과정의 필수과목으로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가령, 지난 9월 이 난에 썼던「대한민국 정체성의 뿌리」라는 글에서 우리나라 건국운동의 선배들이 1948년 정부수립 훨씬 이전부터, 그러니까 1919년 삼일운동과 1898년 만민공동회 때부터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키우고 지켜왔다는 사실을 소개한 바 있는데, 그 사실에 함축된 정치적 의미를 국민들이 어려서부터 배우면서 자란다면 나라가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승만•박정희 시대의 이 나라 국가권력은 그렇게 하기는커녕 두 차례(1954, 1969)의 삼선개헌 강행이 보여주듯 특정인의 장기집권을 위해 민주주의를 만신창이로 짓밟았다. 그나마 삼선개헌은 헌법합치의 절차적 외양을 갖추기 위해 최소한의 시늉이라도 해본 것이었다. 하지만 1972년 10월 17일 유신쿠데타부터 1987년 10월 29일 직선제개헌안 공포까지 15년 동안에는 국민의 선거권은 사실상 박탈되고 삼권분립은 껍질만 남았으며 언론•집회•결사•신념의 자유 등 기본권은 심각한 제약을 받았다. 이것은 한마디로 민주주의라는 형식의 전면적 파괴였다.
정치의 이면에 있는 불법세계
하지만 형식의 파괴는 그 자체로서 심각한 사태라 해도 어떤 점에서는 정치의 표면을 이루는 사건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표면의 사실들로 다 설명되지 않는 또 하나의 지배질서, 일종의 이면(裏面)질서라고 부를 만한 것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경찰과 정보기관, 때로는 용역과 폭력배에 의한 미행•납치•협박•구타•체포•고문•암살 그리고 해직과 해고 등 공포영화에나 나옴직한 각종 불법적 수단들이 일상생활 깊숙이까지 침투하여 국민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얼어붙게 했던 것이다. 그것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끝내 역사기록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12년 독재정권이 무너지던 날 아침 시인은 그 감격을 이렇게 노래했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그놈의 동상이 선 곳에는
민주주의의 첫 기둥을 세우고
쓰러진 성스러운 학생들의 웅장한
기념탑을 세우자
아아 어서어서 썩어빠진 어제와 결별하자
—김수영,「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1960.4.26 지음) 제1연
그러나 4•19혁명이 가져온 해방의 감격은 잠깐이고 기득권의 반격은 순식간에 대세를 뒤집기 시작했다. 만인의 일상은 다시 환멸과 망각의 시간 속으로 침몰하고 시인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라갔다. 이제 시인의 언어는 쓰디쓴 자기비하와 바닥 모를 공허감과 풍자의 신랄함으로 돌아간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함께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 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김수영,「그 방을 생각하며」(1960.10.30 지음) 제1,2연
물론 민주화 이후 상황은 크게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이제 한국 시민들은 국가권력의 공공연한 위협과 언제 닥칠지 모를 폭력의 불안에서는 일단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을 ‘어떤 수준의’ 민주주의라고 불러야 할지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권력과 자본의 연합체로서의 기득권체제가 과거에 불법적이고 적나라한 폭력을 통해 얻었던 것을 이제는 부드럽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게 된 것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폭력적 수단의 동원이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진짜로 유리한 상황의 도래, 즉 피상적 변화에 불과한 상황을 우리가 민주화라는 수사로 분식해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각각의 사회적•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민주주의가 그때그때 참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실질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논쟁문화의 가능성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달에 내가 읽어본 책은 로널드 드워킨의 『민주주의는 가능한가』(홍한별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2)와 최장집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폴리테이아 2012)이다. 두말할 것 없이 나는 정치학에 문외한이고, 따라서 이 책들을 학술적으로 검토할 만한 식견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열망하면서 이 나라 정치현실을 주시해왔다고는 말할 수 있다. 어쨌든 국어학자가 아니어도 언어사용자로서 국어문제에 관여할 수 있듯이, 사람살이의 필수영역인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일정한 견해를 가지고 발언하는 것이 응분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내심에는 지금 진행 중인 대선의 판세를 옳게 읽고 바르게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민주주의는 가능한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책 뒤에 붙은 <해제>에서 정치학자 박상훈씨가 명쾌하게 요약했듯이 “과도한 정치적 양극화의 조건에서는 공적 관심을 이끄는 논쟁이 있을 수 없고, 그런 논쟁이 없다면 민주주의가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p.217)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주제가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과 가능성에 관한 것이므로, 먼저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의 양상이 어떤지 들어보자. 저자 드워킨은 책의 첫 페이지 첫 문단에서 다음과 같은 서술로 독자의 관심을 끌어당긴다.
미국 정치는 끔찍한 상태다. 거의 모든 것에 대해 극렬하게 의견이 갈린다. 테러와 안보, 사회정의, 정치와 종교, 어떤 사람한테 판사 자격이 있는가,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그냥 의견충돌 정도가 아니라 양쪽이 상대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 더 이상 자치의 협력자 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치는 전쟁의 양상에 가깝다.(p.11) (원문을 안 보고 얘기하는 것이 예의는 아니지만, 문맥으로 보아 ‘자치’는 governance 일 것 같은데, 그냥 ‘통치’나 ‘정치’라고 하는 것이 순탄한 번역일 것이다. —인용자)
그런데 드워킨은 민주당이 대표하는 ‘파란 문화’와 공화당이 상징하는 ‘붉은 문화’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데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만약에 두 문화 사이의 틈이 바닥 모를 정도로 깊다면, 공통기반도 찾을 수 없고 진정한 토론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정치다운 정치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텐데, 그것은 너무도 비극적인 일이다. 그래서 드워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너른 합의만 있다면 심각한 정치적 논쟁 없이도 건강할 수 있다. 또 합의가 없더라도 논쟁문화가 있다면 건강할 수 있다. 그러나 깊고 쓰라린 분열만 있고 진정한 논쟁이 없다면, 다수의 횡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p.18)
이런 입장에서 드워킨은 정치적 의견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적 논쟁이 얼마나 유익하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답할 수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하며, 심지어 선거의 민주성은 투표 자체보다도 선거과정의 정치적 논쟁이 어떤 성격의 것이냐에 달린 문제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만인이 동의하고 공유함으로써 진정한 논쟁의 바탕이 될 수 있는 기본원리를 세우는 것은 미국 정치의 ‘쓰라린 분열’을 치유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그 자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가 제시하는 논쟁의 두 원칙을 요약하면, 첫째는 모든 인간의 동등한 존엄성에 입각하여 그가 어떤 사람이고 그에게 정치적 판단능력이 있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그를 동료시민으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각각의 개인은 자신의 판단과 행동에 대해 자율적 책임을 갖는다는 것이다. 길게 설명할 여유가 없지만, 이것은 칸트가「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밝힌 유럽 휴머니즘의 정신과 사유를 드워킨이 진지하게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국가의 정치도 철학 세미나처럼 운영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체제는 누가 이 체제를 이끌 것인가에 대한 최종평결을 경제, 철학, 외교정책, 환경과학 등에 대한 지식이 없고 이런 분야에 대해 자질을 갖출 시간도 능력도 모자란 수천만의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p.170)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란 것이다. 그러나 드워킨은 단순히 다수결주의만을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보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왜냐하면 “다수결주의 개념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적 의견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분포되어 있느냐의 문제일 뿐, 이 의견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와는 무관하기 때문이다.”(p.177)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민주주의가 갖는 진정한 가치는 의견의 분포를 해석하는 차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형성해가는 차원에 있다. 그리고 모든 정치적 투쟁은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가치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 보편적 도덕원리의 공통기반 위에서 누구의 주장이 더 합리적인가를 두고 이론적으로 경합하는 싸움, 즉 건강한 논쟁이 되어야 한다.
<해제>에서 박상훈씨가 드워킨의 미국정치 분석에서 끊임없이 한국정치의 문제점에 대한 교훈을 발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실제로 정치적 양극화를 서술하는 드워킨의 문장은 몇 개의 필요한 수정만 가하면 그대로 한국정치에 대한 서술로 읽을 수 있다. 필요한 수정 중에서 결정적인 것은 미국과 한국 간의 국제적 위상의 차이에 관련된 것일 테고, 빠질 수 없는 것은 테러의 위협 대신 북핵 위협을 넣는 것일 게다. 물론 근본적인 것은 미국정치의 질적 개선을 위해 드워킨이 주장한 해결책 즉 수준 높은 논쟁문화가 우리의 경우 얼마나 착근 가능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가끔 우리의 토론문화를 접할 때마다 나는 공익에 부합하는 건설적인 논쟁과 사익의 추구를 내장한 표면상의 논쟁을 구별하는 것이 실로 쉽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와 롬니가 벌인 세 차례 토론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도 나는 토론내용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토론방식의 가차없음에 상당히 놀랐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후보들 간에 그만큼 노골적이고 치열한 논쟁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미국의 정치문화를 뒤쫓기 바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앞길은 요원하다는 걸 새삼 절감한다.
‘얼굴 없는 노동’ ‘노동 없는 민주주의’
몇 해전 최장집 교수의 유명한『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 초판, 2005 개정판)를 뒤늦게 읽고 전반적으로 깊이 공감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음을 느꼈는데, 이번에 나온『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하『상처들』로 약칭)에서도 마찬가지로 큰 감동과 작은 불만을 아울러 느꼈다. 그런데 전자는 대중독자를 염두에 두면서도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역사적•이론적으로 논술한 저서임에 비해 후자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는 — 정확히 말하면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 삶의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 그 자리에서 우러난 저자의 실감을 담고 있어, 전자가 한 권의 완결된 이론서라면 후자는 전자의 문학적 별책부록 같기도 하다. 그만큼 후자의 감동은 내 경우에는 주로 문학적인 것이었다.
이 책의 3분의 2쯤 되는 앞부분은 저자의 현장답사 내지 현지조사 기록이다. 현장답사라곤 하지만, 르포나 다큐처럼 사실의 구체적인 묘사가 많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내자의 사전준비가 충실해서인지 아니면 저자의 평소 문제의식이 현장의 실상과 맞아떨어져서인지, 독자인 나에게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핵심에 다가서는 저자의 감성적 충정과 이론적 날카로움이 화살처럼 전해져왔다. 170쪽 미만의 작은 분량임에도 이 저서가 오늘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을 대형화면으로 펼쳐 보이는 듯한 중량감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책을 쓰는 동안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지는 일도 많았다. 인간존재의 비극적 운명에 무너지지 않고 싸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를 많이 생각해본 시간이었다.”(p.10)는 <서문>의 언급도 큰 울림을 주었다.
『상처들』에서 저자는 여러 형태의 사회경제적 소외지대를 찾아간다. ①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인력시장이 열리는 성남시 수진리 고개 인근에서 그는 “전국적으로 약 57만 명에 이르는 이들의 삶의 조건과 생활현실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감춰진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본다고 말한다.(p.18) 그리고 “노동 없는 민주주의 혹은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다루지 못했던 한국 정당체제의 무기력함이 가져온 결과”(p.21)가 바로 오늘의 ‘안철수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② 현대차노조 비정규직 지회 사무실을 방문하고 나서 적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야말로 사회학적 문학작품으로서의『상처들』의 백미라 할 만하다.
한 노동자는 자신이 10년 가까이 현대차에서 일했는데, 그 사이 자신을 고용한 인력회사가 일곱 번이나 바뀌었다고 말한다. 그때마다 새로운 고용 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날 문득 ‘내가 지금 회사에 다니고 있는 건가’ 하고 자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말에서 나는 존재감을 상실한 채 헤매는, 카프카 소설 속 소외된 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다.(p.28)
그러나 조금 욕심을 내서 말한다면 저자가 성남이나 울산으로 떠나기 전에 먼저 박태순의『정든 땅 언덕 위』(민음사 1973), 황석영의『객지』(창작과비평사 1974), 윤흥길의『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문학과지성사 1977),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문학과지성사 1978) 같은 소설집을 다시 꺼내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소설들은 1970년대 한국 민중문학의 ‘위대한 성취’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거기에는 정치학자 최장집의 2010년대적 시선에 포착된 현실의 원형이 이미 40년 가까이 전에 풍성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③ 허름한 건물에 2천여 개의 작은 봉제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장위동, 서울에서만 대략 25만 내지 50만 노동자들이 일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산업현장에서 저자는 “적지 않은 고용을 흡수하고 도시 서민가구의 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음에도, 이 부문의 기업주-노동자들은 정부의 공식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세금도 없고 보험도 없이 공적 제도 밖에 존재하는 얼굴 없는 사회경제적 집단”(p.38)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는 강한 어조로 말한다.
민주주의라면 적어도 이상적 기준에서는 정치참여의 평등이라는 원리에 힘입어 모든 사회적 이익과 요구들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대표되고 조직됨으로써 그들의 이익이 정치과정을 통해 부분적으로라도 실현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봉제공장의 고용주-노동자들은 자율적 결사체의 효능을 경험해본 적이 없고, 그것을 상상할 수도 없으며, 그것을 시도할 필요를 느낄 수도 없다.(p.40)
④ 재벌 대기업 2세•3세들의 빵집•커피숍•분식점이 골목상권을 분쇄하고 대형마트가 재래시장을 초토화시키는 현실은 언론에 자주 보도되기도 했지만,『상처들』도 주목하는 우리 시대 사회경제적 상처의 하나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일본의 경우 이미 1930년대부터 소매상 보호법이 시행되었다는 걸 알고 놀랐고, 대기업•중산층•노동자의 공생을 제도화하는 원리가 자민당 같은 보수정당의 주도로 실현되었다는 걸 알고는 더욱 놀랐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저자의 탄식에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말해 중소기업과 소매업체들의 경제적 활력을 복원하는 일은 단순히 온정적 조치가 아니라 한국 경제와 한국 민주주의의 중심문제라는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들 모두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그러나 아무도 중소기업과 소(小)자영업자, 노동자와 같은 이해당사자들의 참여와 대표의 문제는 말하지 않는다.(p.59)
민주주의의 내용적 전진을 위하여
위의 몇 가지 사례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최장집 교수의『상처들』이 목표하는 것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소외지역의 삶을 현상적으로 묘사하거나 그 참상을 고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정치학자답게 모든 현장에서 사회적 소외의 정치학적 진단을 시도하며 그 궁극적 해결책도 정치에서 찾는다. 가령, 그는 현장방문을 마친 다음의 결론적인 문장에서 단순하다면 단순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다뤄야 할 실제문제(real issue)는, 절대다수 노동인구의 사회경제적 삶의 조건이 매우 크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한 정책대안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적어도 그 내용에 있어 공허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p.115)
이 언명의 정당성과 중요성을 공공연히 부인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당 대통령후보조차 한때 ‘경제민주화’를 소리 높여 외쳤던 사실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지점에서부터인지 최장집 교수의 견해에 일정 부분 동조하기 어려워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간단히 한두 가지 이견만 제시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에서 그렇다. 최장집 교수는『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개정판)에서 이미 ‘민주개혁정부’를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의 후퇴’라는 측면에서 비판한 바 있다. 이번『상처들』에서도 그의 비판적 어조는 도처에서 반복되는데, 예컨대 “권위주의적 관치경제 시기로부터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시대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제영역에서만큼 정책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p.120)는 지적이 그렇다. 이 점에 관해 김기원 교수가 이미 재비판을 한 바 있는데,(「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시장만능주의인가」, 최태욱 엮음,『신자유주의 대안론』창비 2009 수록) 내 생각에도 최장집 교수의 경우 ‘민주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경제 바깥의 영역에 대한 전반적 비판으로까지 과도하게 확대된 느낌이 있고, 경제영역 자체에서만 하더라도 남한의 ‘혁명정부’ 아닌 ‘민주정부’가 객관적 조건에 있어 정책선택의 자유공간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었는지도 고려해볼 사항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정부가 IMF위기를 ‘한국적 복지국가의 모델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p.129)로, 즉 민주주의의 내용적 전진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은 여전히 뼈아픈 것이다.
최장집 교수가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후퇴와 연관하여 강하게 비판한 다른 한 가지는 한국 정치와 정당들이 생활하는 민중의 구체적 현실로부터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정치 자체가 왜곡되고 공허해지는 현실을 개탄한다. 그런데 내 생각에 문제는 그가 주로 지식엘리트의 관념성에서 그 귀책사유를 찾는다는 점이다. 그가 보기에 한국에서 학생운동의 역사적 역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야 했다. 왜냐하면 “실제현실의 삶과 유리된 조건 아래 의식화되면서 갖게 된 (운동권 학생들의) 과잉 이념화된 사고방식과 도덕적 우월의식은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에 비례해 부정적 효과를 더 크게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p.22) 한국 진보정당들의 몰락의 원인도 그는 정당을 끌고나가는 상층부의 진보이념과 정당이 발딛고 있어야 할 실제현실의 유리에서 찾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정책이슈와 대안들이 이념적 거대담론으로부터 직접 도출되지 않아야 한다”(p.109)고 말한다. 이것은 내게도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실제현실의 구체적 생활인도 이념화된 지식인도 그 자체로서는 아직 자기 집단의 정치적 대표자가 아니다. 물론 나는 농민과 노동자도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도 정책형성에 참여하고 정당활동에 접맥될 수 있도록 정당의 체계가 달라져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참여’와 ‘접맥’의 과정은 불가피하게 이념화의 요소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물론 그 어느 단계에서나 과잉이념은 극복되어야 하지만, 과거나 현재나 학생운동•청년운동의 열정과 헌신이 없다면 정치적 대표가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토양도 더불어 소실되는 것이며, 따라서 현실에 밀착된 이념의 획득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선학(先學)들이 말했듯이 이론차원과 실천차원의 끊임없는 교류와 상호교섭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더 충실한 내용의 것으로 발전해가지 않겠는가 나는 생각한다.
(출전 : 다산연구소 <다산포럼>/ 염무웅: 1941년 생 문학평론가, 전 창작과비평 발행인, 영남대 명예교수)
=================================================================
동아시아에 몰려오는 삼각파도 (2012. 12. 28)
염 무 웅 (영남대 명예교수)
일본 극우정권의 재등장
지난해 연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죽음으로 시작된 지구촌의 정권교체 행사들이 12월 19일 한국 대선을 끝으로 일단 마무리되었다. 프랑스, 멕시코, 이집트 같은 나라들에서 새 대통령이 선출된 것도 세계적으로 또 지역적으로 나름의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아무래도 미미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중국에서 시진핑 체제가 등장한 것은 당연히 우리 현실에 중대한 관련이 있다.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복귀한 것이나 타이완에서 마잉주 총통이 재선된 것도 동아시아 정치지형의 변화에서 무시하지 못할 변수일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선거결과, 즉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백중지세의 싸움 끝에 적잖은 차이로 승리한 사실이다.
미국·중국의 정치변화 못지않게 우리가 예의 주시해야 할 곳은 일본이다. 알다시피 일본에서는 불과 한 달여 전에 갑작스레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의회를 해산하여 12월 16일 총선에 돌입했고 그 결과는 예상대로 자민당의 압승, 민주당의 대패로 나타났다. 고이즈미에 이어 잠시 집권했던 극우 성향 아베 신조의 새 내각이 바로 어제 출범했다. 1885년 내각책임제가 실시된 이후 일본 총리대신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 3개월 정도라 하는데, 최근 20여년 동안에도 이름을 익힐 만하면 바뀌기를 거듭해, 아마 일본인 자신들도 누가 현임총리고 누가 전임총리인지 헷갈릴 것 같다. 독특한 개성과 파격적인 행보로 일본 국민들의 인기를 얻었던 고이즈미가 유일한 예외일 텐데, 그 고이즈미의 5년 5개월도 이젠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혼란 중에도 어떤 일관된 흐름이 있음을 간취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의 보호와 지도 아래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이른바 ‘55년 체제’의 점진적 붕괴라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하면 자민당의 일방적 장기집권과 중간급 반대정당으로서의 사회당의 보조적 역할로 특징지어진 안정적 정당체제(소위 1.5당 체제)가 1990년 이후 종말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정당·정파들 간의 이합집산이 거듭되는 가운데 1996년 진보적 내지 리버럴을 자칭하는 다양한 그룹들의 연합체로서 민주당이 탄생하고, 2009년 9월 그 민주당이 총선에서 대승하여 역사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것은 바로 ‘55년 체제’의 붕괴과정에 하나의 매듭이 지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큰 기대 속에 출범했던 민주당 정권은 하토야마 유키오(2009.9.16 ~2010.6.8), 간 나오토(2010.6.8~2011.9.2), 노다 요시히코(2011.9.2~2012.12.26)로 이어지는 정치적 지리멸렬 끝에 몰락하고 아베의 자민당에 대승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자민당 집권체제의 붕괴라는 대세는 역전되는 것인가. 일본 정치의 이런 혼란스런 변전 내부에 감추어진 지속적 논리는 무엇이고, 그것은 동아시아 내지 한국의 현실변화에 어떤 긍정적 또는 부정적 파장을 일으킬 것인가.
이런 관심을 가지고 먼저 손에 든 책은 최근 번역된 테라시마 지쯔로오(寺島實郞)의『세계를 아는 힘』(김항 옮김, 창비 2012)이다. 다음에는 그 책과 일면 상통하는 바 있으면서도 외부자의 더욱 비판적 관점을 보여주는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의『종속국가 일본』(이기호·황정아 옮김, 창비 2008)을 잠깐 살펴보려고 한다.
친미입아(親美入亞)의 실험
『세계를 아는 힘』의 저자는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다. 고도성장기에 거대상사의 외국주재원으로 오래 근무했고 이를 바탕으로 그 상사의 전략연구소 회장, 대학 학장, 재단법인 회장을 겸하면서 여러 권의 저서를 집필한 활동적인 인물이다. “경영기획과 정보분석이라는 일을 하면서 산(産)·관(官)·학(學) 사이의 앎의 네트워크 속에서 마지널 맨(경계인)으로서의 의지를 나선형으로 확충시켜왔다”(p.184)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듯이 그의 지식과 관점은 철저히 경험적이고 실용주의적이다. '지식의 프레임으로 보는 일본의 세계전략'이라는 책의 부제 때문에 상당한 수준의 이론적 저술로 알기 쉽지만, 읽어보면 실은 이 책은 긴장할 필요 없이 대할 수 있는 수필집 같은 저서이다.
저자 테라시마가 보기에 전후 대다수 일본인들은 일종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에 의하면 일본인은 종전후 오직 미국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만 세계를 바라보는 데 길들여져왔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나라와 지역을 방문하여 그곳 사람들과 접촉하는 동안 자신의 세계관이 ‘전후라는 특수한 시공간’(p.20)에 갇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가령, 러시아의 쌍뜨뻬쩨르부르그 대학에 갔을 때 그 대학 일본어학과의 모체인 일본어학교가 1705년에 설립된 사실을 알고 대경실색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러일관계는 미일관계보다 역사적으로 깊고 긴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p.37) 즉, 일본의 근대가 페리의 흑선 내항으로 시작되었다는 인식은 전후에 만들어진 편향일 뿐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우리 일본인의 몸속에는 중국 등 아시아·유라시아를 기원으로 하는 2천수백년에 걸친 역사시간이 축적되어 있다. 한편, 1945년부터 시작된 전후는 겨우 60년에 지나지 않는다. 2천수백년을 하루로 환산하면 60년 따위는 30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60년 남짓한 사이에 우리는 스스로의 몸속에 축적된 방대한 역사시간을 망각할 정도로 과도하게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다.(p.47)
한편 테라시마는 세상을 연관성의 관점에서, 즉 네트워크의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권한다. 가령, 그는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뒤 후진타오 주석이 공로자들을 표창하는 자리에서 “중화민족의 역사적 성과”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에 의문을 가진다. 왜 “중국 인민의 노력”이라든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위대한 성과”라고 하지 않았는가. 결국 그는 후 주석의 표현에 이중의 의미가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나는 1912년 쑨원(孫文)의 ‘오족공화’(한족·만주족·몽골족·위구르족·티베트족의 합심협력)를 상기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이완·홍콩·싱가포르 등지에 사는 여러 중국인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그는 오늘날 우리의 세계인식과 지식구조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고 있음을 실감하며, 그런 전환이 지식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산업의 영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익숙했던 대규모 집중형 문명체계에서 분산형 네트워크 사회로의 전환”(p.106)이다.
그가 보기에 1990년 전후 냉전의 해체와 소련의 붕괴는 사회주의의 존립근거를 무너트렸고, 21세기 들어 이라크전쟁과 금융위기는 ‘미국 일극지배’의 만능시대를 끝장냈다. “미국 자신이 ‘체인지’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신자유주의’라 불린 시장원리주의와 결별하려 하고 있다.”(p.119) 그런데도 일본은 냉전 이후의 이런 변화를 파악하지 못한 채 거의 20년 동안표류를 거듭하면서 사고정지 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그는 진단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 테라시마가『세계를 아는 힘』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이 제시되는데, 그는 고이즈미식 구조개혁과 시장주의·경쟁주의를 벗어나야 하며, 그와 더불어 미군이 일본에 주둔해 있는 것과 같은 냉전시대적 상황이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동아시아 안정을 위한 미군 기지를 오키나와와 한반도로부터 하와이와 괌으로 이전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동아시아 안정을 위한 긴급파견군을 유지하는 구상을 일본이 미국에 제안하고 거기에 필요한 경비를 일본이 응당히 부담하는 등, 새로운 안전보장체제를 꾀하는 방향도 검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139~140)
이것은 우리 한반도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제안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본에게 전후체제의 청산을 뜻하는 것일 뿐더러 한반도에 있어서도 냉전체제의 극복을 위한 결정적 한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의 소유자인 테라시마가 반미주의자인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미일군사동맹의 유지를 찬성한다. 다만 그는 위의 인용문에 제시된 바와 같이 새로운 세계상황에 맞는 유연한 발상의 안전보장이 요청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국가정책의 방향을 그는 ‘친미입아(親美入亞)’라는 슬로건으로 요약하는데, 그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고립당하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아시아로부터 신뢰를 얻는 일”(p.141)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커다란 방향전환이 바로 ‘민주당정권 탄생이 의미하는 바’(p.119)라고 그는 설명한다. 민주당 내각의 첫 총리 하토야마를 자신의 친구라고 부른 데서 짐작되듯이,『세계를 아는 힘』을 저술하게 된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는 민주당의 정치철학과 정책방향을 대중적으로 홍보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일본의 정치적 자기분열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자민당의 54년 장기집권을 넘어 등장한 민주당 정부는 애초에는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공정사회’ ‘시장과 복지의 양립’ ‘사회개혁과 분권사회’ 등의 구호가 서민들에게 어필했을 뿐더러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과 시기적으로 맞물려 미국의 과도한 압력에서 얼마쯤 벗어날 수 있을 듯한 가능성도 엿보였다. 특히 중국이 크게 부상하는 시대적 변화에 부응하여 아시아 국가들과 새로운 관계정립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21세기 일본의 국가적 진로에 획기적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들은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정책목표들이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실제의 정책수행에서 민주당 정부는 무능과 미숙함을 드러냈던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말만 앞세운 민주당의 아시아 중시외교였을 것이다. 이 경우 아시아란 구체적으로는 중국을 가리키는데, 일본이 ‘동맹국’ 미국과 미국의 ‘잠재적 적국’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노릇을 자처한다는 발상은 미국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배신이었다. 게다가 오키나와의 후텐마 기지이전 문제의 처리에서 보여준 불투명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는 때맞춰 발생한 한국에서의 천안함 사건(2010.3.26)과 연결되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하토야마를 강하게 압박할 빌미를 만들어주었다. 어떻든 민주당 정권의 몰락과정을 통해 새삼 입증된 것은 일본국가의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 미국은 여전히 부동의 거부권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이 미국에 얼마나 종속적인 국가인가 하는 점을 극히 신랄하고 냉소적으로 묘사한 책이 매코맥 교수의『종속국가 일본』이다.
이 책의 영어판 원본이 출간된 것은 2007년이고 한국어 번역판이 출간되는 것은 2008년인데, 그 이태 사이에 일본에서는 두 명의 총리가 새로 취임하고 사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사실을 지적하는 것으로 매코맥은 한국 독자에게 보내는 책의 머리말을 시작하는데, 그는 일본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정치적 위기의 근본원인이 “전후 형성된 일본인의 자기정체성 혼란”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오늘의 일본인 정체성은 미 군정기에 미 정부당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즉, 오늘날 일본인의 내면을 지배하는 정치적 자의식은 일본에 대한 미국 전후정책의 치밀한 계획적 산물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역설적 상황이 나타난다.
첫째, 일본이 미국에 종속되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내셔널리스트’라고 자칭하는 반면, 미국의 이익보다 일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비(非)일본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둘째, ‘보수적’이라는 단어가 헌법개정을 포함하여 전후 일본사회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전후 형성된 일본의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진보주의 혹은 급진좌파로 분류되고 있다.(p.4~5)
일본에서의 이런 이념적 전도(顚倒)현상은 ‘평화헌법’ ‘자위대’ 등과 관련된 몇 가지 특수한 사안을 제외하면 한국현실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코맥은 전후 일본과 한국의 국가형성 과정과 형성의 조건이 똑같이 ‘미국과의 관계 맺기’에서 이루어졌고 그 조건에 아직 본질적 변화가 없다는 점은 같지만, 한국에서는 그동안 치열한 민주주의 혁명이 전개되어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 커다란 전환이 일어난 반면 일본에서는 민주주의가 깊게 뿌리내리지 못하여 시민사회가 국가권력을 넘어설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과연 일본의 경우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같은 민주개혁 정권의 등장은 적어도 이 책이 출간된 2007년의 시점에서는 가망 없는 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일본의 정치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약진이 가시화될수록 이 책의 주된 분석대상인 고이즈미 정권에서처럼 모순적이고 자기분열적인 양태를 드러낸다.
중국이 경제강국으로 부상하고 남한에서 성숙하고 역동적인 시민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사태에 직면하여 고이즈미 정권의 일본은 모순적이며 심지어 분열증적인 전략을 추구했다. (고이즈미가 이따금씩 평양을 방문한 데서 보이듯) 어느 순간에는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민주적 제도에 토대를 둔 지역공동체 건설에 참여할 듯하다가도, 결정적으로 미국이라는 군사화된 세계제국에 의존하는 종속적 대리인 노릇을 하는 식이었다. 고이즈미는 매년 야스쿠니를 방문하여 아시아의 이웃들을 격분시키고 이라크와 다른 지역에 대한 미국의 군사작전에 협력하는가 하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개인적인 정치임무로 받아들이고 공동체로서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신념을 피력하기도 했다.(p.169)
그러나 이 종잡을 수 없는 정치적 자기분열은 고이즈미 개인의 병리적 인격을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 절정기를 지난 서구문명과 회복기에 접어든 아시아문명 사이에서 방황하는 정치약소국이자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의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인지 모른다.
아시아 공동체의 꿈
오늘날 일본과 한국(한반도)은 향후 국가진로의 모색에 있어 본질적으로 동일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양국은 근대전환의 경로가 달랐고, 따라서 오늘의 상황이 다르다. 그러나 지난 100년, 150년 동안 공히 부국강병 노선을 추구해온 점에서- 성패를 떠나-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 노선 자체의 정당성과 유효성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도 확실하다. 일찍이 근대 초기에 일본인들이 설정했던 탈아입구(脫亞入毆)라는 목표 가운데 ‘아’와 ‘구’의 역사적 비대칭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뿐만 아니라 그 ‘아’와 ‘구’를 포함한 지구현실 전체가 이제 팽창의 한계에 다다랐음도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인류생존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찾아볼 시점에 이른 것이다.
다른 한편, 냉전의 종결은 동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소련은 해체되었으므로 논외로 하고) 유일패권국 미국의 영향력 바깥에서 “어떻게 하면 평화롭고 정당하며 협력적인 질서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인가”(『종속국가 일본』, p.196)를 모색하게 만들었다. 동아시아에서도 동남아시아를 제외한 중국·일본·한국 및 북한과 타이완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지역적 협력조직 필요성에 대해 처음으로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일본의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였다. 그는 1990년 7월 동아일보사와 아사히신문사가 공동주최한 서울의 한 심포지엄에서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가 평화적으로 상호협력하며 살 수 있는 공생의 형태”로서 소련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유럽 공동의 집’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은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후 와다 교수와 그의 학문적 동료 강상중(姜尙中) 교수는 그 문제의식을 더욱 발전시켜 각각『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와다 하루키 지음, 이원덕 옮김, 일조각 2004)과『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뿌리와이파리 2002)를 간행하였다. 그중 가령, 강상중 교수는 일본 중의원 제151회 헌법조사회(2001.3.22)에 출석하여 발표와 토론을 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저서에 전재하였다. 그의 발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대목들은 강 교수가 테라시마의 ‘친미입아’ 슬로건을 벌써 여러 해 전에 선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저는 현재 일본 국민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친밀감과 동시에 반발심 또한 엄청나게 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본이 미일관계를 반석처럼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어떻게 인근 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 참으로 이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동반자관계를 구축해갈 것인지가 21세기 일본의 진로에서 가장 큰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향하여』, p.33)
이제 일본이 처음으로, 싫든 좋든 한국과 일본의 동반자관계를 만들고 그것이 한반도 전체와 일본의 동반자관계를 통해 미일관계의 왜곡을 조금씩 바로잡아가는 다극적인 관계로 축을 옮기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워싱턴과 월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미일 안보체제를 기축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인근 아시아 여러 나라와 다극적인 관계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21세기 일본의 요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같은 책, p.46)
그러고 보면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도 발상의 뿌리에 있어서는 ‘친미입아’론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터인데, 각국 정부들의 미숙한 대응은 미국의 압박을 돌파하는 데도 성공하지 못하고 국내 여론의 지지를 끌어내는 데도 실패함으로써 오늘과 같은 거대한 반동의 시대를 열고 말았다.
그런데 매코맥 교수는 동아시아 또는 동북아시아 개념이 해결해야 할 현실적 모순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고 있다.(『종속국가 일본』, p.197~199) 첫째, 표면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모순은 일본 내셔널리즘과 중국 내셔널리즘의 대립이다. 두 번째는 아시아의 지역적 정체성과 전지구적 패권국가로서의 미국 사이에 있는 모순이다. 세 번째는 “아마도 가장 감지하기 힘든 것으로, 일본의 국가정체성 의식에 배어 있는 고전적 모순”이다. 즉, 일본이 역사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자신을 어떤 국가로 규정할 것인가에서 발생하는 모순이다. 이 모두 깊은 고뇌와 현명한 대처가 필요한 국가적·세계사적 과제라 하겠다.
2012년 말에 나타난 한·중·일(및 북한) 3국(4국)의 정치적 선택은 동아시아 공동체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조차 희화적으로 느껴질 만큼 퇴행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초의 발설자인 와다 교수부터 강상중·매코맥 교수까지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들 저서에서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건설과 정착에 있어 한국(한반도)의 역할이 중심적이고 결정적임을 입을 모아 강조한 바 있는데, 그 출발은 다름아닌 남북한 간의 교류와 화해이다. 그런가 하면 남북한 화해구조의 성립에는 미·중의 우호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양대 국가로부터의 협력만 가능해진다면 2013년의 현안 즉 아베 정권의 경거망동을 제어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 길을 열기 위한 실낱같은 희망의 모든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는 유일한 당사자가 한국 정부와 한국 시민사회라는 점이다.
(출전 : 다산연구소 <다산포럼>/ 염무웅: 1941년 생 문학평론가, 전 창작과비평 발행인, 영남대 명예교수)
====================================================================
'희망2013'을 찾아서
신년칼럼
백낙청 / 《창작과비평》 편집인, 서울대 명예교수
연말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헌법에 따른 국민의 결정이니만큼 존중해 마땅하고 승자에게 축하를, 패자에게는 위로를 전하는 것이 도리다. 그중 내 마음이 먼저 가는 곳은 아무래도 패배의 아픔과 허탈감에 젖은 이들께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쪽이다.
국민은 훌륭했다
그분들이 '우리 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의가 어느 한쪽의 독점물일 수야 없지만, 정의감이 드높고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며 불안하더라도 희망찬 미래를 선택하겠다는 사람들이 패배한 편에 훨씬 많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들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냈다. 분단체제의 기형적인 정치지형임에도 야당 후보는 DJP연합이나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같은 이질적 세력의 도움 없이 투표인구 48%의 지지를 받았고 1470만 표라는 기록적인 득표를 했다. 민주통합당이 잘해서가 결코 아니었다. 문재인 후보 또한, 비록 차출된 정치신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력이나 개인적 득표력이 탁월하달 수 없었다. 오로지 그를 찍는 것이 대의에 더 부합한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판단해서 만들어낸 성과인 것이다.
국민들이 훌륭했기에 패배는 더욱 쓰라리다. 정치권 안팎을 막론하고 사회의 지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사람이라면 국민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 자신부터 반성하고 성찰할 일이며, 서로의 아픔을 최대한으로 달래주려 노력할 때이다. 특히 아픈 정도를 넘어 삶 자체를 버리고 싶은 절망감에 빠진 분들이--실제로 며칠 사이에 5명이 절망 속에 죽어갔다--어떻게든 참고 견딜 수 있도록 공감과 위무의 손길을 뻗어야 할 터이다.
접어넣기
한마디 덧붙인다면, 90% 안팎의 높은 비율로 정권교체를 지지하고도 좌절한 데 더해 영남지역의 '묻지마 새누리당' 투표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들먹여지는 호남인들에게도 특별한 위로를 전해야 옳을 것 같다. 지난 총선 때 영남의 67개 의석 가운데 새누리당 아닌 후보가 당선된 곳이 고작 3군데(전체의 5% 미만)인 데 비해 호남 30석 중 4석(전체의 13% 남짓)이 비민주당인 사실에서도 보듯이, 호남은 민주당의 전통적 아성이면서도 '묻지마 민주당'과는 거리가 엄연하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보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았던 곳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부산 출신 문재인 후보에게 대대적인 지지를 보냈고, 결과적으로 '경상도보다 전라도가 더 심하지 않냐'는 힐난까지 듣게 된 것이다. 지역간 통합과 화해를 위해서도 정확한 인식과 진심어린 위로가 필요한 대목이다.
승자에 대한 기대와 주문
아무튼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축하에 인색할 생각은 없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나는 당선 직후의 신년칼럼에서부터 새 정부와 각을 세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대선 직후에 서둘러 할 일들」, 창비주간논평 2007.12.31). BBK와 도곡동 등 엄중한 도덕성 문제가 걸려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당선인의 주된 정책 대부분이 결코 그대로 실현되게 방치해서는 안될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대운하 기획이 그랬고, 남북관계의 파탄을 불러올 게 뻔한 '비핵 개방 3000'이 그랬으며, MB판 '줄푸세'에 해당하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친재벌노선이 그랬다.
박근혜 당선인의 경우는 그 점에서 퍽이나 대조적이다. 그는 야당과 시민사회가 주장해온 갖가지 의제들--정치쇄신, 복지와 경제민주화, 남북관계 개선, 국민통합 등--을 자신이 실행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심지어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를 이룩하겠다'고까지 했다. 아, 이건 바로 '2013년체제론' 아닌가! 그런데도 솔직히 나는 기쁘다기보다 기가 찬 느낌이었고, 박 후보 지지세력의 체질이나 후보 자신의 성향으로 보아 그 좋은 공약들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선이 되고서 '약속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하는 마당에 실패를 예단하고 미리 악담을 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의 실패가 나라에 도움이 될 것도 아니다.
실제로 과반수 득표로 당선됐고 여당이 국회의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대선 공약의 이행은 대통령의 의지에 크게 달린 문제다. 특히 야당의 공약과 겹치는 대목이 많은 걸로 아는데, 이런 공약들을 초당적 합의로 처리한다면 굳건한 사회적 토대로 남을 수 있다. 남북관계 개선만 하더라도 야당은 정부가 더 많이 나가주기를 바라는 형국이니만큼, 박 후보가 공약대로 남북대화와 인도적 대북지원을 재개하면서 신뢰를 쌓아 북측 최고지도자와의 만남까지 성사시킨다면, 이는 보수진영 출신 대통령의 이점이 최대한으로 발휘된, '국민적 동의에 기반한 남북관계 발전'이 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알아서 잘해주겠지 하고 기다리는 것은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니다. 일단 대통령으로 뽑았으니 무조건 돕고 봐야 한다는 것도 진정한 나라사랑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노예근성의 발로일 수 있다. 공약 가운데 좋고 나쁜 것을 엄격히 가리고, 좋은 공약의 확실한 이행을 다그치며, 그 약속을 뒤집거나 나쁜 공약을 실행하려는 시도를 매섭게 비판해야 한다.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작업의 큰 몫을 맡은 제1 야당이 아직 혼미상태인 데다 시민사회에서 그런 기능을 일차적으로 떠맡은 언론계와 지식인사회의 풍토가 이명박정부 5년을 거치면서 극도로 황폐해져 있다는 점이다. 선거를 앞두고 김종엽(金鍾曄)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명박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룩하기 위해서 이미 축적된 민주화의 제도적·문화적 성과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해야 했던 데 비해, 만일 당선된다면 박근혜는 그런 '수고'조차 할 필요가 없이, 이명박정부가 잘 닦아놓은 역진(逆進)의 길 위에 있는 셈이다."(김종엽 「아직 깨지지 않은 박근혜에 대한 환상」, 창비주간논평 2012.12.17) 이번 선거의 민의가 박근혜 대통령이 그리 해도 좋다는 신호라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당선인 본인이나 선거철을 맞아 더욱 거침없이 활개치고 나선 고비용·저품질 인생들이 그렇게 오해할 소지는 충분하다. 역진을 막기 위한 시민사회의 지루한 진지전과 때로는 불꽃 튀는 기동전이 불가피할 듯싶다.
'희망2013'의 또 다른 의미
원래 '희망2013'은 '승리2012'를 전제한 구호였다. 그것은 그런 전제조건이 달성되었더라도 실현이 담보되는 목표는 아니었는데, 선거승리조차 못했으니 '희망2013'은 실종의 위기에 처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실종한 것인가? 바깥에서 실컷 두들겨맞고 집에 들어와서는 '정신적 승리'를 주장하는 아Q(루쉰의 소설 주인공 阿Q)처럼 돼서는 곤란하지만, '승리2012' 이후에도 '희망2013' 작업이 험난할 수밖에 없었을 터였듯이 패배 이후의 '희망2013' 또한 완전히 사라졌다기보다 한층 복잡해지고 다소 흐릿해졌을 따름이 아닐까?
물론 2013년 새정부 출범과 더불어 '2013년체제'의 건설이 힘차게 시작되리라는 꿈은 접어야 한다. 그러나 벌써부터 '희망2018' 또는 '희망2017'로 쉽게 목표를 바꾸는 대선 위주의 발상에 빠지다보면, '승리2012'에 집착한 나머지 선거승리마저 놓친 2012년의 실패를 되풀이할 위험이 크다. '희망2013'의 남은 불씨나마 어떻게든 살리려는 노력 없이 5년 후에 시원한 꼴을 보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대선은 양대 후보가 모두 '시대교체'를 약속하는 가운데 역대 최다 유권자가 참여한 선거였다. 여당 지지표 중 상당수를 포함한 국민 대다수가 2013년부터 세상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실현을 위해 낡은 세력을 확실히 제압하지 못하고 그들의 정권연장을 허용한 것이 뼈저린 좌절이며 '희망2013'의 일대 위기다. 그러나 2013년 2월이 획기적인 출발점이 못 되고 그 실행의 경로가 더 복잡해졌을 뿐, 2013년 이후에 대한 국민적 염원이 있고 여기에 그 염원을 감당하려는 사람들의 한결 끈덕지고 담대하며 유연한 활동이 더해진다면 '희망2013'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실행경로가 복잡해졌다는 것은, 집권세력이 확실한 구심점을 제공하지 못한 채 그 실현작업의 일부를 새누리당 대통령의 약속이행에 맡겨야 하고, 다른 일부를 협력과 견제의 양면작전을 슬기롭게 펼치는 원내야당들에 기대해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둘 중 어느 것도 안심할 대상이 아니다. 특히 민주통합당의 행로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문제다. 하지만 시민들이 바로 이런 불안요인을 감안해서 자신의 몫이 그만큼 커졌음을 자각한다면 그 자체로 하나의 진전일 수 있고, 각자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과제를 찾아내리라 본다. 결국 가장 본질적인 것은 새시대를 설계하고 준비하며 자신과 외부세계의 낡음을 끊임없이 닦아내는 시민 하나하나의 노력이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원리를 따라 큰 희망을 일궈내는 일이며, 그것은 미래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당장에 수행되어야 할 과제다. 2013년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은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백낙청 /1938년 생 《창작과비평》 편집인,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출전: 2012.12.28 ⓒ 창비주간논평)
====================================================================
"북한-미국·일본 정상화가 최우선… 6자 협의체, 민간차원 구성도 대안"[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제언] <1>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도쿄=글ㆍ사진 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입력시간 : 2012.12.31 21:01:16
와다 하루키 교수동아시아는 영토 분쟁 등으로 2012년 유례 없는 갈등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한국, 중국, 일본의 최고 지도자가 한꺼번에 바뀌면서 동아시아의 화해와 안정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한중일의 전문가들로부터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제언을 들어본다. 첫 회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일본의 양심'으로 불리는 그는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주변 국가를 배려하는 쪽으로 정치 방향을 틀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6자회담의 재개가 시급하며 민간 차원의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국, 일본, 중국은 물론 러시아에서도 새 정부가 출범했다. 이 지역의 권력이 한꺼번에 바뀐 것은 이례적이다. 권력의 변화가 지역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가.
"2011년 말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등장을 필두로 지난해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이 부활했고 한중일 3국에서도 권력이 바뀌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한 미국도 국무장관이 바뀌니 변화가 있을 것이다. 교체된 한중일 3국의 권력자들이 위기적인 대립과 긴장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립의 급진화와 극도의 긴장상태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렇게 해온 역사적 근거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을 없애고 평화로운 협력 관계를 만들지는 새로운 협력 관계 발전을 위한 노력의 여부에 달려있다."
우익 성향의 아베 총리는 평화헌법 개정 등 이웃 국가들을 긴장시킬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아베 총리가 임기 동안 이런 공약들을 이행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자민당이 일본 총선에서 승리한 것은 민주당의 미숙하고 무책임한 통치와 당내 상황 조차 수습할 수 없는 무능에 실망했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 다수가 우익 성향이어서 아베를 지지한 것은 아니다. 아베 자신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베의 심중에는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신념에 따른 정치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부활한 자민당 정권의 중심 인물로서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다투고 있다. 당분간은 후자를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미국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재해석하려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을 환영하고 있지만 한국, 중국과 대립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것은 찬성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하려 할 경우 미국은 아베 정권을 정면 비판할 것이다. (여성인) 박근혜 대통령의 등장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일본 정부의 퇴행을 막을 계기가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와, 일본의 식민지배를 인정한 무라야마 담화의 수정 등은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헌법도 (헌법개정 요건을 명시한) 96조는 개정하려 하겠지만 (군대 보유와 전쟁을 금지한) 9조의 개정은 착수조차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베 정권은 무라야마 담화는 계승하겠다고 하고도 고노 담화의 계승 여부에는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우익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의 일부 세력은 위안부를 매춘부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일본 정부와 국민이 위안부 문제에 책임을 느끼고 사죄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리어 화를 낸다. 이들은 일본의 공식 입장에 도전해 어떻게 해서든 역사를 역행시키려 한다.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아시아여성기금 등 일본의 공식 입장을 이들로부터 지켜내는 데는 어떠한 타협도 있을 수 없다고 본다."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승리한 것이 보여주듯 일본 정치가 극우로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본뿐 아니라 주변 국가에서도 흘러 나오고 있다. 일본 정치의 우경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의 우경화가 그리 단순한 현상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살아온 것, 오키나와를 비롯한 수많은 기지를 미국에 제공하고 자국의 안전 보장을 미국에 맡긴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며 제 나라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부상한 것이다. 냉전시대는 미국의 편에서 일을 진행시키는 게 숙명이었지만 냉전이 종식된 이상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었다. 그래서 미국이 억눌러온 헌법을 개정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군대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가 고개를 든 것이다. 이런 과정을 우경화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더 나아가 일본의 침략전쟁을 긍정적으로 바라 보고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참전하는데 찬성함으로써 기존의 논의 전체가 무용지물이 돼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극우화를 막기 위한 방법이 있나.
"단적으로 말하면 일본의 극우화는 불가능하다. 과거 일본은 50년간 전쟁을 지속하며 조선을 식민지화했고 중국을 침략했다. 그때 천황제파시즘이라고 부르는 극우 체제가 성립됐다. 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과 중국을 지배하고 침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국도, 한국도, 북한도 일본의 침략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본이 극우화해도 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일본은 이미 67년 동안 전쟁을 한 적이 없다. 우익화든 극우화든 일본은 스스로 고립되고 자신을 상실하고 내부붕괴 할 것이다."
중국은 시진핑 총서기가 취임하면서 중화사상을 강조했다.
"중국은 근ㆍ현대에 들어 일본을 비롯한 열강의 침략을 받아 망국의 위기를 경험했다. 신중국이 성립하면서 망국의 위기는 사라졌지만 공산당 체제 아래 오랜 기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개혁개방정책이 도입된 이후 공산당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고 군비도 증강했다. 하지만 빈부의 격차, 부정부패 등의 모순 또한 함께 발생했다. 공산주의 사상이 자취를 감추면서 중국의 국가 사상으로 중화민족주의만 남게 됐다. 중국은 큰 문제를 떠안고 있는 거대 국가다. 어떻게든 이런 문제와 모순을 해결해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변국의 조언과 협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현대 민주 혁명을 실현한 국가로서 중국에 조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침략의 역사를 중국이 반면교사로 삼아 일본과 똑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충고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탄생할 예정이다. 동아시아의 화해를 위해 한국의 새 정권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일본 정부에 더 강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 단체가 내놓은 해결안을 아베 정부가 받아들이도록 촉구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도 피해자 할머니들이 차례차례 세상을 떠나고 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는 하루라도 빨리 해결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요구하지 않으면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을 것이다. 대북 정책에서는 일본 정부가 (북일)대화를 진행시킬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협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동아시아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며 갈등 해결을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가장 큰 원인은 북한과 미일의 관계가 정상화하지 않은 것이다. 두번째는 남북간의 긴장이고 세번째는 북한, 중국, 일본의 내정 문제다. 네번째는 독도, 센카쿠 열도, 쿠릴열도 등 3개의 영토 문제이고 마지막은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문제다. 한일 관계만 놓고 보자면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하고 식민지로 지배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식을 확립하는 것이 양국관계의 기초를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일 영토 문제 등으로 야기된 갈등이 경제ㆍ문화 등 민간 교류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양국 국민 사이에도 상대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 갈등 해소를 위해 민간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2015년은 한일기본조약 체결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때까지 한일 역사문제를 기본적으로 해결하고 북일 국교정상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해결책으로는 동아시아공동체,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등 다양한 구상이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현재 존재하고 있는 6자 협의를 재개하는 것이 중요하다. 6자 협의를 동북아 6개국의 상설협의체로 만들고 여기서 군축 문제도, 영토 문제도, 역사 문제도 논의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차원에서 6개국 협의체를 만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와다 하루키 교수는…
1938년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60년 도쿄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동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소련사와 남북한 현대사를 연구했으며 한국에는 북한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진보 지식인이자 행동하는 학자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 지원, 재일한국인 사회적 처우 개선, 전후보상 문제 등에 적극 참여했다. 1995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사죄와 배상을 담당하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여성기금' 창설 발기인으로 참가했고 2010년 한일지식인 214명이 발표한 한일병합 무효선언을 주도했다. 2010년 김대중 학술상, 2012년 제8회 비무장지대(DMZ) 평화상을 수상했다.
(출전: 한국일보 2013. 1. 1)
===================================================================
[특별 기고] 후쿠시마의 교훈과 ‘좋은 삶’
등록 : 2012.12.31 19:07 수정 : 2012.12.31 19:07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작년 6월7일 일본 여성들 수십명이 총리 관저를 찾았다. 한동안 전면 정지 상태에 있던 원전의 재가동을 정부가 허가할 움직임을 보이자 항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에는 후쿠시마 원전 부근에 삶터가 있는 어머니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자신들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을 눈물과 분노로써 묘사하고, 이 참극에도 원자력을 단념하지 않는 정부의 자세를 격렬히 규탄했다. 한 어머니는 “우리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역사를 처음부터 다시 배웠다. 그리고 우리는 인간의 역사가 말할 수 없이 어리석은 역사였음을 알게 되었다”고 비통하게 말했다.
생각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을 열거하자면 끝도 없지만, 그중에서 원자력 기술의 개발과 응용보다도 더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근대적 기술에는 근원적인 폭력성 혹은 파괴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 말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이든, 실제로 거의 모든 근대적 기술이 인간생활에 혜택을 주는 만큼 반드시 부작용을 수반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흔히 혜택은 단기적이고, 피해는 장기간 지속되게 마련이다.
근대적 기술의 이 근본적 한계는 어디서 기인하는가. 간단히 답하면, 그 기술을 뒷받침하는 서구 근대의 ‘과학적 이성’이라는 것이 “모든 자연은 계산을 통해서 정복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자폐적이고 근시안적인 자연관 위에 구축돼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는 부분적·단기적으로는 합리적이되 전체적·장기적으로는 비합리적인 사고와 논리에 의해 압도적으로 지배되어왔다.
그러한 사고의 극단적인 산물이 원자력 기술이다. 원자력 기술은 방대한 전력생산 기술로서는 유효할지 모르지만, 핵폐기물 처리를 비롯한 사회적·정치적·경제적·생태적 비용은 인류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 그 핵심적 비용에는 물론 생물체에 대한 치명적인 손상이라는 문제가 있다. 지구 탄생 이후 최초의 원시 생명이 출현하기까지 10억~20억년이 경과해야 했던 것은 방사능이 제거되기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방사능은 지구 생물체와 절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생물학자 허먼 조지프 멀러는 일찍이 ‘방사선과 유전’(1964)이라는 논문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 빈번한 핵실험에 의한 대기 중 방사능 증가로 인류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이 축소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멀러의 이 경고가 나온 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핵실험 이외에 420기가 넘는 상업용 원자로, 그리고 스리마일·체르노빌·후쿠시마에서의 핵사고로 세계는 돌이킬 수 없이 심각히 오염되었다. 게다가 작년 5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가 발표한 연구에 의하면, 세계의 원전에서 중대사고가 터질 확률은 10~20년 만에 한번이다. 만약 이 연구가 옳고, 원자력 시스템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앞으로 100년 안에 북반구 전역은 인간의 거주가 불가능한, 광대한 방사능 오염지대로 변할 것이 분명하다.
원자력이란, 군사용이든 민생용이든, 이 지상에서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될 기술이다. 세계적 반핵활동가 헬렌 칼디콧의 말이 아니더라도, 원자력의 근간에 있는 것은 ‘광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수많은 정치가·관료·경제인·과학자·언론인은 한사코 원자력을 장려·옹호해왔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원자력이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널리 유포된 거짓말을 그들이 믿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원전의 건설과 유지, 폐기를 모두 고려한다면 원자력의 경제성이란 완전히 허구임이 이미 명확해졌다. 그런데도 원전에 집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원전 비즈니스를 둘러싼 강고한 기득권 체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본주의체제에서 절박한 것은 단기적인 이윤추구이지 생명과 자연의 보호가 아니다. 따라서 자본의 이해관계와 긴밀히 결합돼 있는 산업국가의 입장에서 볼 때도, 생명의 논리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번 대선 후보들의 세 차례에 걸친 텔레비전 토론에서 원전을 포함한 환경문제가 완전히 배제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근대국가는 자본주의를 토대로 전개돼온 정치체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성장·확대에 불가결한 기술혁신을 위한 테크놀로지는 자본과 국가 모두에게 요긴한 존재이다. 설령 그 기술의 궁극적 결과가 세계의 파괴일지라도 단기적인 이익에 골몰한 눈에는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핵폐기물 처리와 같은 것은 자신들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게 원전을 옹호·지지하는 자들의 근본적인 정신구조다. 사실상 오늘날 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 법질서 전체가 ‘조직화된 무책임의 체계’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지금까지 일본이 지향해온 것은 서구 근대문명을 단시간에 모방하여, 자신도 세계 열강의 일원이 되기 위한 대국주의(결국은 제국주의) 노선이었다. 그 길을 따라 정신없이 달린 끝에 전쟁 참패라는 좌절을 겪었으나 다시 전후의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한 듯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태는 대국이 되고자 하는 꿈의 허망함을 명확히 드러냈다. 후쿠시마 이후 널리 공개된 사실이지만, 지진의 나라 일본에 54기의 원전 건설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이 전개된 데에는 단순한 전력 확보 이외에 숨겨진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언제든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잠재능력을 보유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발언력을 높이려는”(기시 노부스케) 것이었다.
군국주의를 통한 제국 건설의 꿈이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산산조각이 난 것처럼, 경제대국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로 종언을 고했다. 애당초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토대를 둔 경제발전과 대국 지향 노선 자체가 지속 불가능한 것이었다. 후쿠시마 사태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과 원자력이라는 광기의 기술에 의존하는 정치·경제 체제의 필연적인 붕괴를 상징하는 파국적 재앙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의 모든 근대국가, 서구 근대문명을 무반성적으로 모방해온 모든 신흥 산업국가의 공통한 운명이다. 이것을 뚜렷이 드러냈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핵사고는 스리마일이나 체르노빌 핵사고와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 그 차이의 배경은 후쿠시마 핵사고가 경제성장 시대의 종말이 가시화되기 시작한 시점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후쿠시마 이후에도 맹목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경제성장을 위해서 원자력을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작태임이 확실하다.
지금 인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진실로 ‘좋은 삶’ 혹은 ‘좋은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좋은 사회’란 무엇보다 안심하고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여야 한다. 그러한 사회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례도 존재한다. 그중 빠뜨릴 수 없는 나라는 물론 독일이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독일이 원전의 단계적 폐기를 거국적으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이뤄진 탈핵운동의 성과였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간소한 생활양식을 추구하고, 활발한 대안에너지 개발 등 진지하게 미래에 대비해온 국민적·국가적 차원의 지혜와 합리성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상황은 아직 절망적이다. 원전 강국이라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재앙을 직접 겪은 일본 정부도 별로 나을 게 없다. 후쿠시마의 어머니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쓴 탄원서를 접수한 바로 다음날 노다(野田) 당시 총리는 오이(大飯) 원전의 재개를 결정했다. 시급한 것은 동아시아 주민들의 정치적 각성과 궐기이다.
김종철: 1946년 생 <녹색평론> 발행인, 문학평론가, 전 영남대 영문과 교수
(출전: 한겨레신문 2013. 1.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