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가 사진을 시작한 것은 2006년 무렵. 지인에게 카메라를 선물 받은 것이 계기가 돼 카메라와 친해지기 시작했고, 블로그에 올린 그의 사진을 보고 ‘참 좋다’는 칭찬들이 이어지면서 더욱 사진에 마음을 쏟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7년 돌연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뉴욕으로 떠났다. KBS에 입사한 것이 1997년이니, 아나운서의 길에 접어든 지 꼭 10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소위 ‘스타 아나운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처를 받기도 했고, 이 정도 경력이면 다른 직장에서는 왕성하게 더 높은 곳으로 뻗어나갈 시기인데 저희는 신입 아나운서나 10년차나 똑같이 캐스팅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에 회의감도 많이 들었어요. 매너리즘도 심각했죠.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설렘과 긴장감은 사라지고 뉴스를 진행하면서도 앵무새처럼 말하는 제가 참 싫더라고요. ‘이렇게 하려고 아나운서가 된 게 아닌데, 한 명의 청취자를 위해서라도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이 고리를 끊고 다시 시작하자’, 그런 결심을 하고 뉴욕으로 간 거예요.”
뉴욕은 2004년, 미국에 살고 있는 동생과 함께 놀러 갔다가 ‘이런 곳에서 꼭 1년만 살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동경했던 곳이지만 도착한 후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미국까지 왔으니 무언가 성과물을 남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다. ‘뉴욕에 관한 책을 쓸까’, ‘사진집을 낼까’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한 달이 흘렀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쉬는 것도 아닌 상태로 어정쩡하게 살고 있는 저를 보며 ‘뭘 해야 한다’는 마음을 다 버렸어요. 시계도 일부러 놓고 다녔어요. 오랫동안 뉴스를 진행하면서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항상 시계를 들여다보던 습관이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정말 편안하게 운동화차림에 카메라 가방 하나 메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어요.”
매너리즘 극복 위해 휴직하고 미국에서 사진 공부
일 욕심을 버리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시 바라본 뉴욕은 사진을 공부하는 그에게 색다른 피사체들이 널려 있는 ‘꿈의 도시’였다. 매일 엄청난 양의 사진을 찍었고, 뉴욕대학교에서 사진 강의도 들었다. 2주간 쿠바로 여행도 다녀왔다. 그 결과물들이 바로 이번 전시회에서 대중과 만난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전시회 계획이 전혀 없던’ 그를 부추겨 지금의 자리를 만든 사람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KBS 1라디오 〈신성원의 문화읽기〉의 조휴정 PD였다. 프로그램 작가로부터 우연히 “성원이가 사진 잘 찍는다”는 말을 들은 조PD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상명대 사진학과 양종훈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양 교수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낸 날, 그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며칠 뒤 “독특하다. 사람으로 말하면 매력적”이라는 문자 메시지를 받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것. 당시 그의 사진을 보고 양 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신성원 아나운서가 찍은 사진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면서 많이 놀랐다. 일단 프로다운 사진 기술에 놀랐고,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탁월하고 남다르다는 점에서 두 번 놀랐다. 사회에 물든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밝고 건강한 사진들에서 나는 그녀가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작가라는 걸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고.
“과분한 칭찬이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분명한 것은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이나 사물을 다르게 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똑같은 사물이라도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나거든요. 그러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도 달라지더라고요. 방송할 때도 도움이 많이 돼요. 인터뷰할 때도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그 사람의 이면에 더 관심을 갖고, 그것들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거든요. 뉴욕에서 돌아와 한 선배를 만났는데 “공부 많이 하고 왔느냐”고 묻기에 “인생 공부를 많이 했다”고 대답했어요. 농담처럼 들렸겠지만, 저는 진심이었어요. 방송국 사람들이 넓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항상 바쁜 일정에 쫓겨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쉽거든요. 쿠바에 가 보면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사람들은 참 밝고, 별것 아닌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요. 그곳에서 ‘나는 왜 그렇게 힘들었나’, ‘왜 늘 남과 비교하면서 휩쓸리듯 살았나’, 그런 반성을 많이 했어요. 자비 연수라 그동안 일하며 모은 돈을 다 쏟아붓긴 했지만 얻은 게 정말 많아요.”
자신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과정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은 덕분일까. 그의 목소리엔 활기가 넘쳤다. 최근에는 30대 초반 싱글 여성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담은 책도 준비하고 있다. 그가 진행하는 <문화 읽기>를 통해 만나는 문화계 거장들의 얼굴 사진을 찍어 전시하는 작업도 구상 중이다. 사진가로, 작가로, 문화 전문 MC로 영역을 넓히며 종횡무진 활동하는 그의 다재다능함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사진 : 문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