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송리 금산(錦山)
마을 앞에 고인돌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마을의 정착년대가 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다. 그러나 옛날에는 이씨가 살았다는 말만 전할 뿐이다. 확실한 것은 500여 년 전에 전주최씨가 정착하였으며, 이어 광산김씨 자분(自芬)의 손자인 혼(混 1470~1534)이 1500년대에 학교면 월산리에서 이주 정착하였고 150여 년 전에 나주김씨, 130년 전에 무안박씨 그리고 80여 년 전에는 김해김씨가 정착하여 여러 성씨가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 속금산이라는 마을 뒷산의 명칭을 따서 마을 이름을 "금산(錦山)"이라고 하였다고 하며(1789년 호구총수 지명 束錦山) 속금산의 우뚝 솟은 봉우리를 멀리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하다. 속금산은 원래 용금산이라 했는데 그 이름처럼 금광이 많이 있다.
금송리 향동(香洞)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 제주양씨가 최초로 입촌하였다고 하나 정확히는 알 수 없고 양씨가 신안군 지도면으로 이거한 후 전주최씨가 250여 년 전에 입촌하였으며 150여 년 전에는 압해정씨와 이천서씨가 무안군 몽탄에서 이거 정착했고 지금은 영성정씨가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학교남국민학교가 위치하여 영재교육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약 400여 년 전 제주양씨가 입촌하여 옆 마을인 금산(錦山)보다 위쪽에 위치한다 하여 "상동(上洞)"이라 불렀는데 그 후손이 거부장자로 살았다 하여 지금도 "장자터"라 부르기도 한다. 그 후 전주최씨가 입촌하면서 기념으로 심은 향나무가 잘 자랐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향동(香洞)"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금송리 방우동(放牛洞)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하동정씨 정두경이 입촌하여 촌을 형성하였고 지금은 여러 성씨가 모여살고 있으며 마을의 뒷산 형태가 고삐풀린 소가 풀을 뜯는 모습이라 해서 마을이름을 "방우동(放牛洞)"이라고 하였다 한다.
금송리 반송(盤松)
이 마을은 1789년 호구총수 지명에 보면 반송정(盤松亭)으로 되어 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의 지명은 反谷과 反松 두 마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한자(漢字) 표기도 다르다. 지금은 후동, 반곡, 반송을 합해 옛날과 같이 반송(盤松)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맨 먼저 고령신(申)씨 냉(冷)이 1526년경(냉은 1506년생)에 입촌했으며 이어 금성나씨 창서(昌緖 1568년생)가 1590년경에 입촌했고 이어 인평대군(麟坪大君) 준(濬)의 후손인 전주리씨 무림(茂林)이 1650년경 귀양왔다가 정착하여 그 후손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다. 마을 이름을 반송(盤松)이라 정한 전설은, 마을이 생긴 얼마 후 한 대사가 지나며 마을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는데 없다고 하자 조그만 연못가에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음을 보고 연못이 소반처럼 생겼으니 "반송(盤松)"이라 하라 했다고 한다. 연못은 지금 방앗간이 들어서 있는 자리다.